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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펀딩]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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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펀딩]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익명 (미확인) | 수, 2017/07/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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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기억을 위해 집을 지어주려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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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쪽, 나가사키 항에서 약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시마(군함도)는 야구장 두 개 정도 크기의 작은 섬입니다. 1916년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세워져 근대화의 상징으로 불렸던 이 섬은 좁은 섬에 근대식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는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여 그때부터 ‘군함도’라고 불렸습니다. 과거의 영화를 그대로 간직한 그 섬에서 과연 누가 살았을까요?

지상에서 일하는 일본인과 달리 강제동원 된 조선인 노동자들은 지하에서 석탄을 캐야 했습니다. 그 지하는 숨 쉬기조차 어렵고 몸을 펼 수 없을 만큼 좁았으며, 식량과 식수조차 주어지지 않는 말 그대로의 지옥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석탄 채굴을 위해 강제동원 되었지만, 그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관한 기록은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때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가 족히 10개는 넘게 들어 있다는 납골당과 공양탑은 지금은 파괴되어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근대화의 상징’,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으로 포장하려는 군함도(하시마)는 일본의 근대화가 강제징용 된 조선인들의 무덤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었습니다. 0712-3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많은 나라들이 과거를 돌이켜보며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역사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정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떨까요? 우리는 아직도 친일문제가 분명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한일 과거사를 청산하고,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반민특위 정신을 이어받고,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일 과거사 문제뿐만 아니라 박정희기념관 건립 저지, 친일파기념사업 저지와 같은 다양한 활동과 전시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과거사 청산의 당위성을 알리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이제 행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민족문제연구소가 꾸준히 모아온 자료를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며 우리의 과거를 제대로 바라보고 기억하기 위해 2018년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려 합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건립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부지를 정했지만,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박물관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많은 것들이 부족합니다. 0712-4 Print

일본은 한일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근거 없음’이라고 주장합니다. 과거에 동아시아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도리어 동아시아 안보를 지키는 파수꾼이라 자처합니다. 게다가 일본은 일제 침략 이후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진 한국의 상황을 토대로 경제부흥을 이끌었지만, 전후 보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정부는 그렇다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했을까요? 한국정부 역시 일본정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한국정부는 국민적 합의 없이 한일협정을 진행해 그 청구금을 경제발전의 재원으로 사용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합의 역시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진행하여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 번 눈물을 쏟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곁에는 과거를 부정하는 세력들에 저항하며 물러서지 않고 목소리를 내온 역사의 산 증인들이 살아 계십니다. 그러나 역사의 산 증인이신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며 과거를 증명하는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조금씩 사라지고 흩어져가는 기억들을 이제 한 곳에 모아 모든 이들이 함께 기억하고, 세대를 넘어 기억을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지어주려 합니다. 이 기억들이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시민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시민들이 함께 모여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여 제대로 된 역사 인식과 함께 역사를 통해 성찰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역사의 참혹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민의 귀에 닿도록 만든 것은 피해자의 용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용기가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곁에서 도운 것은 한국에서 조직된 시민들의 힘이었습니다. 역사는 시민의 것입니다. 강한 자들이 제멋대로 헝클어놓은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기 위해,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제 역사 위에서 성찰하기 위해 시민의 힘이 필요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을 통해 과거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기 위한 큰 길을 내고 싶습니다. 함께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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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미 점령군 합작해 지배체제 유지” 발언에
윤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대통령 입장 표명도 없어”
역사학계 “윤 전 총장 ‘극우·독재정권 역사관’ 드러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일 오후 국민의힘 대외협력위원장인 권영세 의원과의 회동을 위해 중구의 한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친일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유지했다”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발언을 두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고 공개 비판했다. 이 지사의 실제 발언을 교묘하게 비틀어 이념논쟁·색깔론에 불을 붙인 것으로 “윤 전 총장이 극우·독재정권의 역사관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전 총장은 4일 페이스북에 “셀프 역사 왜곡,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세력의 차기 유력후보 이재명 지사도 이어받았다”며 “이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어떤 입장 표명도 없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그들은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역사의 단편만을 부각해 맥락을 무시하는 세력은 국민들의 성취에 기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의 발언을 김원웅 광복회장 말과 연결하고, 이들을 비판하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끌어들여 ‘좌파세력 재집권 음모’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윤 전 총장의 이런 주장은 사실 왜곡일 뿐 아니라, 철 지난 색깔론을 덧칠하는 극우세력의 전형적 행태와 유사하다. 앞서 이 지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난 1일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 단계와는 좀 달라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나.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이어 “이육사 시인 같은 경우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사하지 않았느냐”며 “그 점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충분한 역사적 평가나 예우나 보상을 했는지 의문이고, 그런 면에서 보면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새로 출발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이 지사 발언은 이육사 시인 등 ‘독립운동가 공적 인정’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지난 3일 <조선일보>는 이 발언을 소개한 뒤 “이 지사 발언은 대한민국이 친일세력이 주도해 건국됐고 미군이 점령군이라는 인식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 ‘친일·미점령군이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친일세력과 미 점령군이 합작해 지배체제를 유지했다’는 이 지사 발언을 대한민국은 “친일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품”이라는 식으로 규정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 지사 발언을 “‘대한민국은 친일세력들과 미 점령군의 합작품으로 탄생했다.’ 온 국민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주장”이라고 비판하며 <조선일보> 주장을 반복했다. 왜곡된 표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윤 전 총장은 “국정을 장악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다음 정권까지 노리고 있는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지향하고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까? 6·25 전쟁 당시 죽고 다친 수많은 국군장병과 국민들은 친일파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싸웠습니까?”라고 되물으며 극단적 주장을 이어갔다. 그는 이 지사와 문재인 정부를 “권위주의 정권을 청산하고 민주화를 달성한 국민들과 뒤섞여 ‘더 열심히 싸운 민주투사’로 둔갑했다”고 비난하며 “이념에 취해 국민의식을 갈라치고 고통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의 공격에 이 지사는 이날 “해방 뒤 미군이 38선 이남을 점령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이승만 대통령도 썼던 표현”이라며 적극 반박했다. 이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윤석열 전 총장님의 구태색깔공세 안타깝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38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과 이남에 진주한 미군 모두 점령군이 맞다. 미군의 포고령에도 점령군임이 명시돼 있다”며 ”점령군으로 진주했던 미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철수했다가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지금까지 주둔하고 있다”고 적었다. “같은 미군이라도 시기에 따라 점령군과 주둔군으로서 법적 지위가 다르고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은 법학개론만 배워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이어 “일제에 부역하던 세력이 청산은커녕 새로 출발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주요 요직을 차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민특위도 이들에 의해 강제해산되지 않았냐”고 적었다. 친일파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 이 지사는 “그 일부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남아 사회통합을 방해하고 자주독립국가의 면모를 훼손하는 것이 현실이고, 총장께서 입당하실 국민의힘 역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해방직후 미군과 한국전 후 미군을 동일시한 것은 명백한 오류”라며 “총장님의 저에 대한 첫 정치발언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제 발언을 왜곡조작한 구태색깔공세라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며 글을 맺었다.

역사학계도 윤 전 총장의 주장을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하는 정쟁’으로 평가했다.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전 한국학중앙연구원장)는 “1945년 9월 미국이 들어와서 진주할 때 공식 용어가 점령군이다. 이 지사 발언이 논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잘못된 발언은 없다”며 “(윤 전 총장 등이) 점령군이라는 용어를 어딜 침략해서 강제 점령한다는 뉘앙스를 붙여 공격하는데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지적”이라고 짚었다. 근현대사를 전공한 한 역사학자도 “맥아더 장군의 포고문 1호에도 점령이란 표현이 네번이나 나온다”며 “(정부 수립 이후에도) 경찰과 군에 일제시대부터 직책 맡았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 지사가) 친일이 청산되지 못했다는 얘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분단과 독재체제,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는 사관을 정통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지사의 발언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윤 전 총장의 페북 글은 얼마나 현대사를 단정적이고 편파적으로 보는지 알 수 있고 극우 이승만과 전두환의 독재 역사관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배지현 서영지 기자 [email protected]

<2021-07-04> 한겨레

☞기사원문: 윤석열, 이재명 ‘미 점령군·친일파’ 발언에 철 지난 색깔론 대응

※관련기사

☞민중의소리: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윤석열 씨, 위안부 문제를 ‘그랜드 바겐’ 한다고요?

월, 2021/07/0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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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윤숙 시인·박시춘 작곡가 김해시민체육공원서 최근 발견
이번 해법에 따라 친일 해결 진정성 여부 판가름 전망
허성곤 김해시장 “신중히 검토해 해결하겠다”

▲ 이형탁 기자

경남 김해시에서 일제 잔재가 최근 잇따라 발견되면서 지자체의 청산 의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김해시가 일제 잔재 청산과 관련한 여러 사업을 발표한 만큼 이번에 내놓을 해법에 따라 친일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 여부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5일 김해시 등에 따르면 김해시민체육공원에서 친일파 모윤숙 시인과 박시춘 작곡가의 작품 비석이 최근 발견됐다.

모윤숙 시인과 박시춘 작곡가는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낸 4천여 명의 친일파가 담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이들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돼있다.

이들 작품 비석은 지난 2003년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김해시지회에서 김해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를 건립하면서 함께 세워졌다.

경남 밀양 출신 박시춘 노래비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작곡한 ‘전우야 잘 자라’가 새겨져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박시춘 작곡가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군국가요를 13곡 정도 작곡한 것으로 확인된 명실상부한 친일파다.

▲ 허성곤 김해시장. 허성곤 페이스북 캡처

옆에 세워진 함경남도 원산 출신 모윤석 시비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쓴 것으로 알려진 반공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새겨져 있다. 그녀는 1940년대 일제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시 ‘지원병에게’, ‘어린 날개-히로오카(廣岡) 소년항공병에게’ 등의 작품을 써내며 친일을 하다 해방 이후 이같은 반공시를 써내며 반공주의자로 변신했다.

문제는 김해시에서 이런 친일 잔재 문제에 대해 적극적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작품 비석도 2003년부터 현재까지 18년간 이어져왔는데도 이제껏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시 자체적으로 일제 잔재에 대한 전수조사도 이뤄진 바 없다.

시는 다만 지난 3월 일본식 지명을 정비하고 공적 장부에 남은 일본식 이름을 없애는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공표한 것에 비춰보면 일정 정도 청산 의지는 있어 보인다. 김해시의회에서도 지난달 24일 전수 조사 등을 위해 일제 잔재 청산 조례안을 통과시켰다는 점도 시와 의회가 함께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친일 잔재 문제는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성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거제에서는 지난 2019년 김백일 장군 동상 옆에 시민단체가 단죄비를 세웠는데, 거제시는 단죄비와 동상 모두 철거하지 않으면서 일제 청산 문제에 대한 철학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김백일은 항일독립군 토벌에 참여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있는 친일파인데 교육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거제시가 동상과 단죄비를 모두 그대로 두고 있다는 평가다. 꼭 청산으로 친일 잔재를 제거하는 것만이 아니라 옆에 단죄비를 세워 대비함으로써 교육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영진 경남도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거제에서 김백일 단죄비를 동상 옆에 나란히 설치하면서 좋은 교육 효과를 냈다”며 “김해시도 그 비석 옆에 설치하면 비슷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일단 이 문제와 관련해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입장이다. 허성곤 김해시장은 최근 김해시청 기자간담회에서 “청산에 대한 찬반 의견이 있으니 양쪽의 견해를 다 들어보고 신중히 검토해 결정할 것”라고 말했다.

<2021-07-05> 노컷뉴스

☞기사원문: 친일 잔재 잇따라 발견된 김해시…청산 의지 시험대 올라

※관련기사

☞노컷뉴스: 경남 친일 잔재 잇따라 발견…전수 조사는 언제쯤

☞경남도민일보: 김해 친일청산 진정성은?

☞김해뉴스: 김해 현충시설 모윤숙 시비 철거될까…일제잔재청산 조례 시의회 통과

화, 2021/07/06-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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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 [사진=김혜진 기자]
관람객들이 작성한 방명록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서울에는 다양하고 독특한 명소, 그리고 장인(匠人)들이 있다. 일요서울은 드넓은 도심 이면에 숨겨진 곳곳의 공간들과 오랜 세월 역사를 간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국내 최초 일제강점기 전문 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역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민주주의를 빼앗으려는 자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기르겠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역사, 인권을 유린당한 역사, 친일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음을 새깁니다.”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부근 길목에 세워진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한데 담긴 곳이다. 박물관 방문객들은 방명록에 이 같은 문구를 적어 놨다. 강제동원, 위안부, 독도 문제 등으로 오랫동안 한일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의 역사를 정확하게 배워 이성적으로 대응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모습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에 마련된 반민특위 터 묘석 [사진=김혜진 기자]

박물관 입구에 다다르자 ‘반민특위 터’ 묘석이 보였다. 반민특위는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파들의 민족 반역 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1948년 제헌 국회에 설치됐던 특별 기구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청산의 좌절이라는 민족사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1999년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이 표석을 설치했다. 서울시 중구 국민은행 본점 자리인 옛 반민특위 터에 세워졌지만 건물 신축 공사로 인해 2018년 10월 이곳 박물관으로 옮겨 보관 중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친일인명사전 관련 섹션 [사진=김혜진 기자]
식민지역사박물관 내부 [사진=김혜진 기자]

지난 2018년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와 독립운동계, 학계가 중심이 돼 건립한 이 박물관에서는 ‘기억과 성찰’을 주제로 식민지의 상흔과 항일 투쟁의 역사 등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민족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다.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 역사박물관’이라는 호칭답게 상설전시관에는 1876년 조선 침략의 계기가 된 ‘운요호 사건’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여 년에 걸친 식민지배, 강제동원의 실상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들의 민낯, 항일 투쟁의 역사 등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또 분단과 식민잔재,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청산 운동의 과정까지 담겨 있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야스쿠니 신사 회신, 3·1독립선언서 초판본, 동학 의병 관련 문서 등 생생한 사료들도 꼼꼼하게 나열돼 있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내 체험 공간 [사진=김혜진 기자]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을 주제로 한 기획전 [사진=김혜진 기자]

기획전시실에는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을 주제로 한 기획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동아일보가 일제강점기 당시 독재정권 하에서 식민지배에 눈 감는 부역 언론의 역할을 해 왔다는 게 골자다. 당시 조선·동아일보에서 보도됐던 신문 지면이 전시돼 있다.

최우현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 주임연구원은 “박물관이 생긴 첫해에 일본에 홍보가 많이 돼 일제 역사에 뜻이 있는 일본인 방문객이 많았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방문객이 줄었고 국내 방문객들에게는 박물관이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관람객 장한님 씨는 “사학과 대학원을 다닐 때 박물관이 만들어진다는 걸 알고 꼭 와 보고 싶었다”며 “박물관이 크진 않지만 일제강점기 역사들이 잘 구성돼 있는 듯 하다. 현재 한국어 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전시실에 1920년대 조선어 교육을 했던 책들이 소개돼 있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김혜진 기자 [email protected]

<2021-07-02> 일요서울

☞기사원문: [서울 명(소)장(인)을 찾아서-31] 일제강점기 역사 서린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

수, 2021/07/0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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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작가는 인도 델리를 여행하다 그곳에서 한국광복군이 영국군과 훈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독립운동의 흔적이 있었다. 그곳의 사람과 터를 찍었다.

멕시코에서 고국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던 김익주 선생의 후손 다빗 킴 씨. ⓒ김동우 제공

대부분 사람들은 ‘국외 독립운동’이란 말에서 만주 벌판을 연상한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이나 김원봉의 의열단이 떠오를 것이다. 지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한반도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예컨대 인도나 멕시코 같은 곳에 우리 독립운동의 발자취가 남아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김동우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기자 출신인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7년 사진 작업을 위해 장기 여행을 계획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독립운동을 주제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인도 델리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레드포트(Red Fort)에 방문하게 된 그는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파견한 한국광복군이 이곳에서 영국군과 함께 훈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구한말 한반도와 아무 연관도 없다고 여겼던 장소에서 들은, 뜻밖의 이야기였다.

김 작가는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독립운동의 흔적이 흩어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게 사실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는” 독립운동사가 미국·멕시코·쿠바 등지에 있었다. 아프리카와 남미 외에는 전 세계에 퍼져 있다고 할 정도였다.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현지에 정착하게 된 이주자들은 후손을 남겼다. 김동우 작가는 2017년부터 2년간 세계를 돌며 사람과 터를 찍었다. 5월18일부터 8월18일까지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열리는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에 전시된 사진들이 그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의 직접적 계기는 ‘쿠바 한인 이주 100주년’이다. 1921년 3월 한인 300여 명이 쿠바로 향했다. 이들이 출발한 곳은 한반도가 아니라 멕시코다. 김동우 작가는 그래서 “쿠바 이민을 이야기하려면 멕시코 이민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1905년 4월 제물포에서 영국 상선을 타고 멕시코로 간 1033명이 북중미 이민의 시초 격이다. 이역만리로 향한 이들 전부가 독립운동가는 아니었다. 갑자기 찾아온 기근을 피하고 돈을 벌려는 목적이 강했다. 1905년 〈황성신문〉에는 이런 이민 광고가 실렸다. “묵서가(墨西哥·멕시코)는 미합중국과 이웃한 문명 부강국이니 수토가 아주 좋고 기후도 따뜻하며 (…) 부자가 많고 가난한 사람이 적어 노동자를 구하기가 극히 어려우므로 한국인도 그곳에 가면 반드시 큰 이득을 볼 것이다.” 이민자 대부분은 에네켄(Henequen·용설란의 일종, 일명 애니깽) 농장으로 분산배치돼 노예와 같은 노동조건으로 혹사당했다. 멕시코 이민자 일부가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 위해 향한 곳이 쿠바이다.

‘경제적 이유로 건너간 이민자’와 ‘국외 독립운동가’가 늘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둘 다에 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혹독한 농장 생활을 견딘 이들이 차츰 돈을 모아 독립운동에 쓴 것이다. 독립군 훈련을 위해 군사학교를 설립하기도 했고, 번 돈 대부분을 독립자금으로 부치는 이도 있었다.

2017년부터 2년간 세계를 돌며 해외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아 촬영한 김동우 작가. ⓒ시사IN 조남진

아흔 넘은 안창호 선생의 아들 랄프 안

이민자들의 후손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김동우 작가는 과거에 나온 언론 인터뷰나 학술자료를 바탕으로 현지 한인회 선교사 등과 접촉했다. 오래된 자료가 대부분이라 허탕 치기 일쑤였다. 국가보훈처에도 문의했으나 ‘개인정보’를 건네는 데에 난색을 표했다. 소재지를 찾아도 문제였다. 한국을 기억하는 이들은 고령이거나 세상을 떠났고, 살아 있는 후손들은 한국과 유대감이 옅었다. “이민 3세대 이후로는 외양이 변한다. 한식을 먹고 한인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보니 점점 현지인과 동화된다. ‘우리 조상이 코리아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먼 곳에서 왔다고 하니 취재에 반갑게 응하기는 하는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약하다.” 후손들을 촬영한 뒤 김 작가는 인물만 반투명 처리를 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존재가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의미를 담았다.

김 작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 랄프 안(안필영) 씨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안창호의 ‘아들’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부터 놀라웠다. 아흔을 넘긴 랄프 안 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 김 작가를 만난 랄프 안 씨는 코리아타운에서 갈비탕을 사주었다고 한다. ‘아버지(안창호)가 독립운동에 앞장서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는 게 김동우 작가가 전한 랄프 안 씨의 말이다. 의병장 민긍호의 직계자손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만났다. 이들의 존재가 알려진 건 한국과 옛 소련이 수교를 맺은 이후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먼 친척들이 자손으로 인정받아 훈장을 받고, 연금을 수령했다. 직계자손들은 훈장만이라도 받기 위해 한국 정부에 훈장 재교부를 신청했지만, 어렵게 재교부된 훈장은 전달식도 없이 비닐봉지에 담긴 채 전달됐다. 김동우 작가는 “해외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집집마다 울먹이며 이런 사정을 호소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람 사진은 눈길을 끄는 반면, 이번 전시의 풍경 사진은 상대적으로 맥이 빠진다. 거리나 건물을 찍은 사진은 주의 깊게 들여다보더라도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앙상하게 골격만 남은 구조물, 나무와 풀뿐인 벌판도 마찬가지다. 관람객이 느끼는 헛헛함은 김동우 작가 스스로 느낀 것이며, 작업 과정에서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조상들이 토론하고 서성였던 자리, 건물이 있었던 곳에 막상 가보면 멸실된 게 많았다. 나무로 된 집이 다 헐려서 옥수수밭만 남았다면 옥수수밭을 찍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군사학교가 있던 곳에는 시장이 생겼고, 독립운동가들이 사형당한 곳은 소문에 의지해 추정만 할 따름이다. 그래서 김 작가는 “수많은 현장을 찾아다니며 가장 많이 마주한 풍경은 공(空)이었다”라고 했다. 시간의 흐름 때문이지만 적극적으로 보존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의 새벽. 100년 전 한인 이민자들이 하루를 시작하며 보았을 광경이다. ⓒ김동우 제공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100년 전과 다르지 않은 것도 있었다. 썩고 헐리는 인공물과 달리 자연 풍광은 그대로였다. 김 작가는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새벽 5시에 맞춰 셔터를 눌렀다. 한인 이민자들이 하루를 시작하며 보았을 광경이다. 쿠바 이민자들이 도착한 마나티 항구의 저녁노을, 연해주 한인들이 강제로 이주된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의 초원도 찍었다. 조상들이 본 광경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김동우 작가는 당분간 국외 독립운동과 관련된 사진 작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쿠바 이주 100주년’이라는 전시 주제에 맞지 않아 내놓지 못한 사진도 많다고 했다. 특히 중국 지역 독립운동이 그렇다. 김 작가는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동우 작가는 이 일이 “우연처럼 시작된 운명” 같다고 했다. 그는 씁쓸한 독립운동의 후일담을, 거의 냉정할 정도로 정직하게 기록하는 작업을 당분간 이어갈 예정이다.

이상원 기자

<2021-06-18> 시사인 호수 717

☞기사원문: 미국·멕시코·쿠바에서 독립운동의 흔적을 찍다

수, 2021/07/0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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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민단체가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과 미군이 격전을 벌인 오키나와(沖繩)현 본섬 남부 지역에서 새 미군 기지 매립지에 쓸 토사를 채취하는 것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평화를 기원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전몰자 유족 모임’은 오늘(7일) 일본 방위성과 후생노동성을 찾아 “헤노코(邊野古) 연안 매립 공사에 쓸 토사를 희생자 유해가 묻힌 곳에서 채취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서명 용지를 전달했습니다.

서명에는 일본 전역에서 1만 1천여 명이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희생자의 피가 스며든 토사를 미군 기지를 만드는 매립에 사용하는 것은 유골이라도 돌아와 달라는 유족의 염원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키나와 전투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이던 1945년 일본군이 본토를 지키기 위해 오키나와 본섬 남부 등에서 미군을 상대로 벌인 싸움입니다.

당시 일본군이 방패막이로 내세운 오키나와 주민과 미군 병사 등을 포함해 약 2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오키나와대 지역연구소 특별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오키나와 전투에는 조선인도 3천461명이 군인이나 군속으로 동원돼 701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노무 동원된 이들이나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이들을 제외한 숫자입니다.

기록으로 파악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면 실제 동원되거나 사망한 조선인은 더 많을 수 있고, 이들 대부분은 희생된 주변 지역에 묻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동안 희생자 유해 수습이 미흡해 이토만(絲滿)을 비롯한 격전지에서 발굴이 계속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본섬 남부의 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이전할 곳인 중부 헤노코 연안의 매립에 쓸 토사 일부를 당시 격전지였던 이토만 등에서 채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유골이 섞인 토사가 매립용으로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입니다.

지난 3월부터 오키나와 현청 앞에 단식 투쟁 등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가마후야’(ガマフヤ-)의 구시켄 다카마쓰(具志堅隆松·67) 대표는 최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그간 수습된 희생자 7백여 명의 유골을 가족에게 돌려주기 위한 후생노동성 주도의 DNA 감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한국의 유족들도 DNA 감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가마후야’는 한국 단체인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02-2139-0462)와 민족문제연구소(☎ 02-969-0226)를 통해 오키나와 유골 발굴 및 DNA 감정에 참여할 한국인 유족의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황현택 기자 [email protected]

<2021-07-07> KBS NEWS

☞기사원문: “조선인 등 묻힌 토사 채취 반대”…日시민단체, 1만여 명 서명 제출

※관련기사

☞연합뉴스: “피가 스며든 흙으로 軍기지 만드는 건 인도적으로 용납 불가”

☞한겨레: “희생자 유골 섞인 흙으로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 반인도적 행위”

☞연합뉴스: “피가 스며든 흙으로 軍기지 만드는 건 인도적으로 용납 불가”

☞연합뉴스: 조선인 유골 공사장에 묻히나…日NGO “한미 유족과 반대운동”

목, 2021/07/0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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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조사단 조사 결과… “충실한 이행 촉구” 결정문 홈페이지에 게재

▲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의 강제노역이 행해졌던 군함도. ⓒ 위키백과

유네스코가 일본이 ‘군함도’ 등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후속조치를 이행하고 있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일본은 지난 2015년 세계유산 등재 당시 후속조치로 한국인 노동자의 강제노역 등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는 오는 16일부터 온라인으로 열릴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를 앞두고 한국 시간으로 12일 오후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 이행 점검 결정문을 게재했다.

이 결정문은 지난 6월초 세계유산센터와 세계기념물유적협의회의 추천을 받아 호주, 벨기에, 독일 등의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된 공동조사단을 도쿄로 파견, 일본 정부가 만든 도쿄산업유산정보센터를 직접 방문한 뒤 만든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이례적 강한 문구… 일본의 약속 불이행 국제사회가 확인”

유네스코는 결정문에서 ▲ 그간 일본의 세계유산위원회 결정 내용과 일본의 약속 미이행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아주 강하게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 충실한 이행을 촉구했다.

결정문을 자세히 보면, 제5항에서 ‘당사국이 관련 결정을 아직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데 대해 강하게 유감 표명(strongly regrets)’이라고 돼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국제 기구의 결정문 안에 ‘strongly regrets’란 표현이 들어간 것은 아주 이례적인 것”이라며 “그동안 일본이 충실히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국제 사회가 명시적으로 확인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결정문은 또 이어진 제6항에서 ‘당사국이 관련 결정을 이행함에 있어 아래 사항들을 포함하는 공동조사단 보고서의 결론을 충분히 참고할 것을 요청(requests)한다’고 돼있어 일본측이 5개 사안을 충분히 고려해서 약속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5개 사안은 ▲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해석 전략 마련 ▲ 한국인 등의 강제동원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 ▲ 희생자 기리기 위한 조치 ▲ 국제 모범사례 고려 ▲ 관련 당사자간 대화 지속 등이 포함돼 있다.

당국자는 이 가운데 “특히 두 번째 수많은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서 가혹한 조건하에 강제노역했다는 사실과 세 번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 표현은 2015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될 당시 일본 대표가 발언한 내용”이라며 “이 내용이 결정문 각주로는 들어간 적이 있어도 본문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정문의 내용 자체가 과거와는 달리 공동조사단의 객관적인 심사 결과를 인용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국제모범 사례에 대해서는 “독일의 탄광, 제철소 등 2차대전 때 강제노역 시설에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고 피해자를 기리는 기념비 등이 설치돼있다”며 “일본측에서도 유사한 조치를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작년 2월 도쿄의 정보센터가 객관적으로 잘 건립될 수 있도록 개관 전 일본측에 공동조사단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일본측의 거부로 이뤄지지 못하는 등 이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양국간 대화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세계유산의 본질적인 특수성이 완전히 훼손됐을 경우에 한해 지정이 취소될 수 있으나 유네스코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며 “이번에 강한 결정문이 나온만큼 일본측이 결정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는커녕 사실 부정하는 자료만 전시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2015년 7월 군함도 등 일본의 23개 근대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는데, 당시 위원회는 각 시설에 전체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전략을 마련하라고 일본에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일본 대표는 ▲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동원되고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노역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 ▲ 인포메이션 센터와 같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해석전략에 포함시키겠다 등 2가지 조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은 당시 약속했던 조치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고, 급기야 일본의 근대산업 유산을 소개하기 위해 지난해 6월 도쿄에 문을 연 도쿄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강제노역을 부정하거나 희석시키는 증언 또는 자료들이 전시됐다.

이에 외교부 2차관이 즉각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강력한 유감을 표시하고, 장관 명의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발송해서 약속이 이행될 수 있도록 조치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김경년(sadragon)

<2021-07-12> 오마이뉴스

☞ 기사원문: 유네스코, 일본에 “군함도 강제노동 부정 강한 유감”

※관련기사

☞뉴시스: 유네스코 “日, 군함도 강제노역 알려야…불이행 강한 유감”(종합)

☞한겨레: 유네스코, 일 군함도 등에 강제동원 기록 미이행 “강하게 유감”

화, 2021/07/13-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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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제봉의 단죄비(斷罪碑)를 세우고 일제 잔재 청산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대책을 세우라고 주장하며 시청 입구와 부천시청역 그리고 중앙공원에서 5월 17일부터 7월 2일까지 총 33회의 집회시위를 진행하였다

[부천타임즈:양주승 대표기자]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지부장 박종선)는 광복 76주년을 맞이하여 부천시는 시민들과 함께 친일파 박제봉의 단죄비(斷罪碑)를 세울 것을 제안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는 13일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제봉이 살았던 역곡동 고택은 작년 11월 경기도지정문화재 지정 신청 예비심의에서 변형으로 문화재 가치가 미흡하다는 결과를 받고 부결되었으며, 올해 6월 부천시 향토문화재 심의에서도 부결되었다. 경기도 뿐만아니라 부천시의 심사에서 탈락되어 문화재의 가치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상황을 맞이하였다”고 말했다.

이어 민문연부천지부는 ” 경기도와 부천시의 문화재 심사 결과에 관계없이 친일행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확인되고 논쟁의 대상이 되었음으로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부천시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제봉의 단죄비(斷罪碑)를 세우고 일제 잔재 청산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대책을 세우라고 주장하며 시청 입구와 부천시청역 그리고 중앙공원에서 5월 17일부터 7월 2일까지 총 33회의 집회시위를 진행하였다”고 밝혔다.

▲ 친일파 박제봉 고택

(사)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가 집회시위를 오랫동안 진행한 이유에 대해 첫 번째, 문화재 심사와 별개로 역곡동 고택은 일제 잔재이며,두 번째, 어둡고 잊고 싶은 치욕의 역사도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알리고 시민들이 기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문연은 “우리 부천시는 여러 방법을 통해 부천의 인물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다”면서 ” 부천시청 1층 로비에는 부천을 빛낸 여섯 분들의 사진과 더불어 아름다운 업적을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공원에는 독립운동가 한항길 지사와 유일한 박사의 동상이 있으며, 변영로 선생의 논개 시비도 있다. 중동 안중근공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과 유묵이 있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의 큰 어르신인 김근태 장관의 표지석이 유네스코 로고와 함께 역곡동 일도아파트 부근 버스정류장에 세워져 있다. 김근태 장관의 표지석은 독재의 암울한 시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중심지였던 부천의 중요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문연은 “부천의 자랑스런 인물들과 관련된 기념물과 표지석이 있듯이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에 적극 부역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해서도 기억을 하고 단죄하는 표지석을 만들어야한다. 친일반민족행위자와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것은 잊고 지우자는 의미가 아니다. 추후에 국가적 위기가 찾아올 때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는 반역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며 반면교사로 삼자”고 주장했다.

끝으로 “경기도와 부천시 문화재 심사로 수면위로 떠오른 박제봉의 과거 행적에 대해 덮어서는 안 되며, 부천시민들이 잘 알 수 있도록 단죄비를 세우고 일제 잔재 청산에 관한 교육과 홍보를 진행해야 한다”면서 “부천시는 적극적인 행정으로 일제잔재 청산의 의지를 보여줄 것이며 시민을 대표하는 시의원들 또한 적극적으로 동참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제봉의 단죄비(斷罪碑)를 세우고 일제 잔재 청산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대책을 세우라고 주장하며 시청 입구와 부천시청역 그리고 중앙공원에서 5월 17일부터 7월 2일까지 총 33회의 집회시위를 진행하였다

양주승 기자 [email protected]

<2021-07-13> 부천타임즈

☞ 기사원문: 부천민족문제연구소, 친일반민족 행위자 박제봉 단죄비 세워야

※관련기사

☞부천시민신문: “76주년 광복절에 친일파 박제봉 단죄비 세우자”(종합)

화, 2021/07/1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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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성명] 국정원 재일동포 여권발급 공작사건에 대한 시민사회 규탄 성명

해외동포를 대상으로 한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강력히 규탄한다.
정부는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단하라!

◯ 지난 6월1일, MBC PD수첩은 “국정원과 하얀 방 고문 – 공작관들의 고백”을 통해 재일동포를 상대로 국정원이 저지른 여권발급공작을 폭로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국정원의 해외공작관이 어떤 임무를 수행해 왔는지가 드러났으며 우리는 국정원의 정치개입 공작의 실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 국정원 해외공작관은 “우리나라의 적을 상대로 하는 해외공작”(전향 등)이 임무이고, 외교부 지휘를 받는 영사로 영사관이나 대사관에 근무하며 국정원 임무를 동시에 수행한다. 2009년 공직 선거법 개정으로 재일동포 약60만명을 포함, 전체 재외국민 약 250만명이 새로운 유권자가 되었다. 한편 같은 해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하면서 국정원의 임무는 “북한관련 업무가 아니고 좌파척결”이 되었다고 전 해외공작관은 증언했다. 이 ‘좌파척결’은 새로운 유권자들에게도 적용되었는데, 이른바 ‘여권발급 공작’이 바로 그것이다.

“(좌파성향의) 동포들은 여권을 받아서 투표를 하면 야당을 찍을 테니 여권을 없애서 투표를 못하게 하면 2표의 효과가 있다는 거죠.”, “그 이상 좋은 방법이 없다고 해서 계속 그렇게 지시가 내려 옵니다.”

PD수첩에 등장한 전 국정원 해외공작관의 증언이다.

◯ 여권발급에는 신원조사과정이 있는데, 보안업무규정에 따라 국정원의 개입이 가능하다. 영사관의 국정원 해외공작관들이 이 과정에서 동포들의 여권취득을 곤란하게 하여 재외국민투표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신분증명을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권발급시 면담을 통해 동포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고, 이러한 일들이 동포사회에 퍼져 여권신청(재발급)을 단념하게 만드는 심리전 또한 지시받은 공작이라 밝혔다. 이명박 정부는 여권발급과정에서 국정원의 이러한 공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여권법 시행령까지 변경했다. (별첨1 참조)

◯ 원세훈 국정원장 재임시기 조선적 재일동포의 임시여행증명서 신청, 발급, 거부 건수와 한국국적 재일동포의 여권신청 및 재발급 건수를 보면 이러한 공작이 상당한 효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별첨2 참조)

◯ 우리는 2017년 <제18차 재외동포정책위원회>에서 결정한 여행증명서 발급제도 개선에 대해 논평을 하면서 우리가 동포들로 부터 받은 제보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제보 내용을 보면 조선적에서 한국적으로 변경한 동포들에 대한 폭언, 검열과 차별도 심각하였는데, 특히 여권기간 단축 및 재발급 여부를 두고 동포들이 겪는 불편과 불안은 가장 큰 고통 중에 하나였다. 조선적일때는 한국 국적으로의 변경을 요구하다가 정작 한국적을 받아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는 인물로 간주하였다.(별첨 3 참조)

◯ 우리는 여권법 시행령에서 여권유효기간을 제한할 수 있는 “외교부장관이 정하는 기준”을 명시한 문서를 정보공개청구했으나, “국가 안전보장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어” 비공개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최근 인권위는 외교부 장관에게 “여권법 시행령 제6조 2항 5호(국외에 체류하는 국가보안법 제2조에 따른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서 대한민국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통일·외교정책에 중대한 침해를 야기할 우려가 있는 사람)를 적용함에 있어 실체적 요건에 대한 판단 없이 일률적으로 여권의 유효기간을 제한하지 않도록 관련절차를 정비하라”고 권고했다. 한통련 관련자들의 여권 유효기간을 제한하거나 심지어 여권 발급을 안해주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의견이다.

◯ 당시 우리는 이와 같은 재일동포 탄압에 대한 피해자 증언은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어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PD수첩에서 드러난 국정원의 공작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헌법의 기본원리인 국민주권주의를 뒤흔드는 국가폭력이다. 어떻게 국가공무원이 국민을 괴롭혀 국민임을 포기하게 만드는 공작을 하는가? 국정원은 누구를 위한 조직이란 말인가? 이것은 단순한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이 아니라 국가가 마땅히 보호해야 할 국민을 배제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점에서 헌법질서를 유린한 매우 엄중한 문제다.

◯ 현 정부는 국정원 개혁을 위하여 두 개의 티에프(TF)를 설치해 ‘댓글 공작’ 등 국내 정치개입 사건들을 조사하였지만, 이번에 밝혀진 바와 같이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자행된 선거개입을 위한 여권발급공작과 같은 중대한 정치개입 사건은 조사한 바가 없다.

◯ 우리는 법치국가의 정보기관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재외국민에게 자행한 국가 폭력의 실체를 명명백백히 밝히고 책임자를 강력히 처벌할 것을 정부와 국정원에게 엄중히 요구한다.

1. 여권발급 공작사건 진상규명 실시하고 동포에게 사과하라!
국정원장은 이번 방송에서 제기된 내용에 대해 단 하나도 빠짐없이 정확한 진상을 밝히고 재일동포들에 게 사과해야 한다.

2. 여권발급 공작사건 책임자를 처벌하라!
정치개입공작의 책임자들이 다시는 국정원에 발을 못 붙이도록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3. 국회는 진상규명과 제도개혁에 즉각 착수하라!
일본뿐만 아니라 재외국민에 대한 국정원 정치개입 공작의 실상을 밝혀 공개하고, 이를 근절할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4.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재일동포의 삶을 파괴해온 간첩조작 사건 등과 이번 여권발급 공작의 근거가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위해 국회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5. 정부는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완전 차단하라!
외교부는 여권법 시행령의 독소조항을 신속히 삭제하고, 재일동포들이 여권신청 및 재발급시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면담실 CCTV설치, 녹화 및 녹취를 통해 동포들에게 행해지는 폭언과 각종 불법사항 등을 근절할 수 있는 조치들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2021년 7월 13일
조선적 재일동포 입국실현 모임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민족문제연구소, KIN(지구촌동포연대), 어린이어깨동무, 포럼 진실과 정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 사)남산놀이마당, (사)겨레하나, 평화디딤돌, 울산교사노동조합, 김복동의 희망, 부산을 바꾸는 시민의 힘 민들레, 우토로역사관을 위한 시민모임,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서울지부, 한국이주동포정책개발연구원, 민주시민기독연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사)조각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태평양전쟁 피해자보상 추진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고양YMCA,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 전교조 고양초동지회,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산시민모임, 겹겹프로젝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고려인센터 미르, 광주조선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민주조선,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연대, 천주교 인권위원회, 국정원감시네트워크, 한국진보연대 (35개 단체)

조경희 조미수 김지운 김지운 반민순 민병창 이용학 황재현 임채련 김민수 하연화 정미영 장재희 전안수 박정회 갈재봉 김영환 김진영 안광획 김무성 안혜영 유재철 국세현 김수복 정부교 안창섭 임용태 류감석 윤미라 천영기 권말선 임경희 윤희영 신승현 손동주 박승호 김상화 차준우 전나미 김이혜 정영환 송한별 배성식 남승원 김지형 최용철 신수정 진봉선 김명준 김민환 박신열 김신영 조선금 전영민 박영순 하상윤 이기숙 김상우 조기종 홍경지 권혁태 김해나 김태현 강현주 신은진 조경희 이수임 최지혜 황철민 남계수 이나윤 임석훈 표정미 김혜진 최선주 김영경 권주희 김은희 신창기 정영희 김민숙 박주용 나정수 박규상 이은경 정소영 허로미 김진숙 신만섭 이래형 박연숙 김조광수 윤송아 김상아 배성준 최계영 김성 이영희 기준성 김선덕 장지영 심재홍 미중탴 이은순 안진희 최성인 김경민 강승찬 문승원 허은심 기우서 김경희 황미화 조지헤 양명선 김경세 진인태 신홍식 소영숙 조양아 권민선 김성화 이순연 박화영 오세연 한유정 이진희 김진섭 정해경 송명은 송경숙 남지현 김숙영 박은숙 손성환 김수희 서원선 문인숙 전진찬 김윤태 고정숙 이준희 이재호 임채영 김찬유 임선순 김형배 박재준 장희정 정용우 이정섭 허행선 김홍주 하광주 정태욱 김현석 이성제 이성훈 임유연 우영순 강혜림 박영자 최승식 최경자 이주연 노수영 박형록 김보연 김정미 김재호 장국희 김연미 손영인 김연호 정경훈 유경희 백진숙 서미선 전태주 최문순 심우진 허성필 김명조 송철민 김현철 김태완 박혜성 김도희 백지현 소형석 문공진 박주현 장명식 임재랑 임민수 윤혜선 최경은 송현석 정명화 박영숙 정원영 이상호 문채린 김미희 김남수 이지현 김옥기 최지균 이상현 최호 김정신 이선순 이송희 신재솔 지선희 전지원 김영철 양지은 정혁진 배성윤 라인실 정한영 고은정 조여울 전수미 김대성 구동옥 이현아 김해경 최성우 강현진 박종경 안태언 박금이 박영미 조은애 박예규 박인영 신정빈 최성용 임수진 유하영 김은주 곽노진 김소향 구한이 원세헌 백시진 전소현 연병희 김규환 조시영 조영옥 김명신 오민철 이경실 김희정 조예진 한용문 김의태 박혜경 김창곤 박일규 김완규 김운성 백광현 요시자와 후미토시 이판도 김도균 전현주 강혜정 이명훈 이현순 이태경 류현신 임재은 이정섭 안영주 이성복 김태환 조은혜 김덕헌 이용수 강중근 박인범 나영옥 홍성미 최상구 정한교 한창연 김지미 이미연 백현욱 강천희 김성수 손현우 조영선 안악희 유병진 조세현 김영숙 김희연 김성희 김정임 조승래 고대영 정 정숙 정선미 최은주 김금자 김순기 이혜경 민채윤 이강준 조송자 박상혁 황옥란 윤경효 김여경 최진용 전명희 안세홍 김승중 이나영 김영진 한광희 강곤 김상덕 윤세라 신호재 신보경 김태윤 이순 이종식 김숙희 전종훈 김서혓 박성현 김화순 이선화 조정순 윤재화 박정순 최하늬 최길욱 남숙 배진만 김기현 주제준 최신혁 맹종호 남숙 허양실 김미란 정미화 김준엽 채정민 유영아 소정 황선미 박선영 신용규 변영호 전희경 조선이 김한라 채용성 오가타 요시히로 한경숙 남수경 이구 정세일 문선희 이은희 구동욱 공영자 한상진 리수정 김수복 박혜정 김승한 김현국 한수남 최혜영 김상헌 우정환 김윤선 이지선 장윤정 허미선 김효성 은희만 김주실 윤병호 연제헌 조선정 박영아 김성혜 양성화 유현진 이대화 양지애 리홍장 김리혜 박영이 김우윤 박명훈 전미순 장문국 유진 최아람 오인제 이희정 박창수 이우창 이원용 문창길 Jacques Y. Jeon 장병길 배안 오리애 모니카김 김승재 전현아 박은덕 권태원 박노일 전은숙 권용욱 이대례사 강성련 고희숙 문명숙 변미정 김지은 김보근 박성은 박솔지 이진경 이현주 이정옥 오지연 김희경 여유진 권영숙 최민서 김태양 윤지원 梁淳喜 김현주 강성국 오동석 (이상 451명)

별첨 1. 여권법 시행령 중 여권 유효기간 관련 조항

별첨 2. 원세훈 국정원장 재임시기 여행증명서(조선적), 여권(한국적) 현황

“별첨 3. 여행증명서 발급, 여권 신청, 재발급시 직원, 영사들의 폭언

화, 2021/07/1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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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1년 7월 13일 (화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군함도 왜곡에 대해 강한 유감의 표현을 나타냈습니다. 2015년 일본이 군함도를 포함해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후속 조치로 한국인 노동자의 강제노역을 포함한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지켜지지 않으면서 문제가 된 건데요. 우리 입장에선 이런 현장이 어떻게 세계 유산이 됐는지부터 의아하긴 합니다. 군함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자세한 내용 짚어보려고 합니다. 2015년 군함도의 등재 심사 당시,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 독일 현지에서등재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했던 단체가 있는데요. 군함도가 전범기업의 산업시설임을 알리고, 그곳에서 일어났던 강제동원의 역사를 지금까지도 알리고 있는 분들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승은 학예실장 연결해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승은 학예실장(이하 김승은): 네, 안녕하세요.

◇ 최형진: 먼저 이 질문부터 드릴게요. 지금 유네스코가 ‘강력한 유감이다’, 이런 표현을 했는데 이게 굉장히 이례적이고 강한 수위의 발언입니까?

◆ 김승은: 네, 국제사회에서 권고사항이라고 하는 것이 좀 유연하고 그런 발언으로 보통 표현이 되는데요. 이렇게까지 강력한 권고, ‘강력한 유감’, 이렇게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최형진: 시간을 거슬러 가보겠습니다. 2015년에 독일까지 가셨다고요?

◆ 김승은: 네, 그렇습니다.

◇ 최형진: 거기서 어떤 활동을 하신 겁니까?

◆ 김승은: 당시에 저희가 산업유산시설들에 포함된 장소가 바로 우리 강제동원 전시기에 고통 받았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산업유산이 등재될 당시에는 1910년까지의 역사만을 미화해서 아시아에서 비서구 국가에서 유일하게 산업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만 산업유산의 가치를 일본이 홍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의 역사 속에서는 전쟁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산업혁명이었고, 일본의 근대화라는 것이 아시아의 침략을 통해서 이룬 성과 아닙니까? 그래서 주변국에 대한 역사인식을 전혀 배제한 채로 자신의 어떤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미화된 그런 역사만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당함에 대해서 알리고 싶었고, 그 장소는 저희 강제동원 피해자들만 고생한 곳이 아니라 중국인들도 있었고 그리고 연합군 포로도 같이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곳입니다. 그래서 세계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반성적 차원에서 산업유산들, 그리고 세계유산들을 지정하고 보호하고 해왔는데, 세계유산을 지정하는 유네스코 정신에도 위반된다, 이런 사안을 가지고 저희가 전시회도 열고 워크숍도 진행을 했었습니다.

◇ 최형진: 그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지금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어 있습니다. 등재하면서 이건 지키겠다고 했던 조치들이 지금 현재 이행되지 않으면서, 세계유산위가 강한 유감을 표한 건데요. 당시 등재가 되면서 일본이 취하기로 했던 조치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 김승은: 네, 앞에서 제가 얘기했듯이 그 시설들이 1910년까지만 미화될 수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설들이 가장 강력하게 산업유산으로써의 활동을 했던 시기가 바로 2차 대전 기간이었어요. 그 점들을 포함해서 40년대까지 일부 시설에 한국인뿐만 아니라 여기에 강제적으로, 그러니까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동원됐던 사람들이 강제노역을 했다는 사실들을 포함한 전체역사를 알리도록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포메이션 센터의 설치와 그 희생자를 기리는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 이 두 가지를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산업유산정보센터라고 하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작년에 개관을 했습니다만, 알려야 하는 사실을 부정하는 방식의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죠.

◇ 최형진: 1910년 이전은 미화를 했고, 그럼 1910-1940년의 역사가 안 담겨 있는 겁니까?

◆ 김승은: 전혀 안 담겨 있습니다. 홍보를 할 때는 이 시설들이 어떻게 서구의 영향을 받아서 일본이 산업화를 이루는데 성공적으로 이 시설들을 만들었는지, 이것이 어떠한 규모였는지, 이렇게 산업적인 측면만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산업시설들 속에서 실제로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던 일본인 노동자의 이야기도 빠져있고, 사람의 이야기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거죠. 그래서 저희가 2015년부터 계속 이야기 했던 것은 그 현장에는 분명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강제노역으로 희생된 분들. 그리고 거기서 존재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희생자들을 거기서 기려야 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이 역사 속에 담겨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것이죠.

◇ 최형진: 제가 이쪽에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직설적으로 여쭤보면, 가슴 아픈 역사고요.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고요. 사실 보통 우리 국민들이나 시민들이 생각하면 세계문화유산이라고 들었을 때, 인간의 가치, 예술적인 가치, 이런 게 다 담겨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군함도가 어떻게 유네스코에 등재가 된 겁니까?

◆ 김승은: 그런데 조금만 저희가 생각을 해보면, 유대인 학살의 현장이었던 아우슈비츠도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어 있습니다.

◇ 최형진: 그렇군요.

◆ 김승은: 네, 세계유산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인류가 정말 공동으로, ‘어마어마한 인류 공동의 자산이야’ 라고 하는 그런 유산들도 물론 세계유산으로 지정이 됩니다만, 우리 인류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저질러졌던 일들, 다시는 반복되는 안 되는 일들, 그것을 이후에도 계속 교육적 가치로서 보전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적 성찰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역시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일본에서 산업유산시설로 등재된 곳들 가운데 저희가 얘기하고 있는 다섯 군데, 시설로써는 일곱 군데인데요. 거기가 일본제철의 야하타제철소, 그리고 미쓰비시가 운영했던 나가사키조선소, 그리고 다카시마탄광, 하시마탄광, 미쓰이 재벌이 이용했던 미이케탄광, 이곳은 바로 전쟁과 군수산업을 통해서 성장한 재벌들이 운영한 그런 장소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 어떻게 뒷받침을 했는지 거기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이 되었는지, 더 나아가서는 식민지 조선인들, 그리고 중국인 포로들, 중국인 민간들도 강제연행이 되었고, 그리고 연합군 포로들, 이런 사람들이 여기에서 전쟁에 희생되었다고 하는 역사가 같이 설명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 최형진: 그래서 말인데요. 앞서 말씀하신 게 뭐냐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일본은 지금 오히려 부인하고 있다면서요?

◆ 김승은: 지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은 2015년에 유네스코 대사가 직접 현장에서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노역을 한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겠다고 발언한 다음날 바로 부정을 했고, 그 부정들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들을 지난 5년 동안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본 정부가. 그래서 지금 개관된 정보센터 안에는 당시 하시마에 아주 어린 나이에, 그 이후에 거주했던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지고.

◇ 최형진: 당시에 어렸던 사람들의 증언만 가지고 된 겁니까?

◆ 김승은: 네, 그 증언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근거로 해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거짓말 내지는 과장, 이렇게 왜곡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게 지금 홈페이지가 한국 사람들 많이 보라고 한국어로도 번역되어서 ‘군함도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서 홍보가 되고 있습니다. 그걸 만드는 단체가 지금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 정보센터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요.

◇ 최형진: 일본이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거짓말을 한 거잖아요. 굉장히 화가 나는데요. 군함도, 지옥섬이라고도 불리는데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던 곳입니까?

◆ 김승은: 여기가 기본적으로 섬이기 때문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여러 장소에 끌려갑니다만, 섬이라고 하는 곳은 출입 자체를 할 수 없는 곳이잖아요. 마음대로. 그래서 아마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곳에다가 여기가 해저탄광이기 때문에 지하로 굉장히 깊이 들어가서 탄을 캐내야 하는,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고온,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고, 그래서 그냥 채탄을 하는 것도 굉장히 고된 일인데, 해저탄광에서의 열악한 환경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상징적으로 표현된 단어가 바로 ‘지옥섬’이라고 하는 표현인 것 같고. 이건 후대에 누군가가 이것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한 지명, 상징어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이 스스로 여기가 지옥이다, 지옥섬이다, 라고 하는 표현에서 연유된 호칭이거든요. 그래서 당대의 경험을 통해서도 이 작업환경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야 나갈 수 있다, 여기는 살아서는 도저히 나갈 수 없다고 하는 극단적인 상황의 표현으로 지옥섬이라고 불렸던 것 같고. 한동안은 74년인가에 폐강된 이후에 거의 폐허처럼 방치되다가 지금도 시설들이 굉장히 위험해서 지금은 입도가 안 되는 상황도 반복되고 있고요. 그러면서 계속 거기에 산업유산으로써의 미화된 역사만 계속 선전되고 유포되고 그러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 최형진: 저도 영화나 자료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긴 했는데, 정말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곳 같습니다. 거기서 실제로 일하시는 분들은 어땠을지 상상하기 쉽지 않은데요. 그럼 일본에서는 이런 사실들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 겁니까?

◆ 김승은: 아까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출발은 아마 식민지민이기 때문에 당시 식민지 지배 속에서 총동원법이나 이런 법에 근거하여 조선인들을 데려다가 쓴 것은 합법이다, 라고 하는 큰 틀에서의 식민지배 합법론을 주장하는 것이고. 그리고 거기에서의 어떤 노동환경이나 이런 것들의 민족차별은 없었다, 당시 전시에는 다 같이 힘들었다, 한국과 일본 차별 없이, 전시라고 하는 것은 원래 힘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사이좋게 잘 지냈다, 이웃으로 잘 지냈다, 이런 이야기들만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큰 틀에서 보면 식민지배라고 하는 것이 합법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일본에 의해서 저질러진 모든 것들은 근거 있는 합당한 행동이라고 계속 주장을 하는 것이고요. 우리는 대법원 판결에서도 식민지배가 불법이라고 하는 것을 강하게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시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갔던 강제노역 역시도 이건 불법 행위에 의해서 저질러진 범죄인 것이고 거기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사죄와 보상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런 이야기들을 간접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생존해 계신 분들, 그리고 고인이 되셨지만 생전에 증언 영상을 남기셨던 분들, 이런 분들의 목소리들을 담아서 저희가 이번 7월 16일 날 세계유산총회가 열리는 날인데, 그날에 맞춰서 전시회를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실제로 강제동원이라고 하는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그 분들의 목소리로 온전히 들을 수 있도록 전시를 꾸몄거든요. 그래서 상상하시기 어려우시다면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최형진: 실장님, 이거 취소시켜주면 안 됩니까? 일본이 약속도 안 지켰는데, 어떻게 취소 안 돼요? 죄송합니다. 제가 국민으로서 좀…

◆ 김승은: 제가 권한이…

◇ 최형진: 이거 취소 좀 시켜주세요. 제발.

◆ 김승은: 그렇다기보다는 저는 취소해서 없애버리는 것보다는 세계유산으로서 우리가 배워야 될, 기억해야 될, 그리고 그 속에서 전쟁은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식민지배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들이 저질러졌는지, 제국주의자들이 저질렀던 역사적인 범죄에 대해서 계속 알려나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지금 유네스코의 권고대로 이 산업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체의 역사, 부국 제국주의 국가들이 산업화를 통해서 작년 같은 경우는 노예노동에 대해서 엄청난 역사적인, 다시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반대운동들이 다시 벌어지는 그러한 상황들을 우리가 목격을 했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제국주의라고 하는 그 시대, 지난 200~400년 동안 제국주의국가들이 식민지국가들을 향해서 저질렀던 일들이 제대로 기억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저는 이 장소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유산이요. 그래서 저희는 이 피해자들, 연합군 포로들, 중국인 피해자들, 그리고 당시 일본인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어떠한 일들을 겪었는지를 전체 역사를 담아서 소개하는 장소가 되어야 된다,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최형진: 한 가지 짧게 여쭤보겠습니다. 지금 도쿄올림픽 앞두고 강행은 합니다만, 세계의 지탄을 일본이 받고 있고, 이번에 세계유산위가 강한 유감을 표했습니다. 일본이 타격을 입거나 자존심이 좀 꺾이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 김승은: 지금 이 유네스코 권고사항은 사실은 지난 5년 동안 저희 민족문제연구소와 일본에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라고 하는 시민연대단체에서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매년 이러한 사항들의 요구를 넣은 것의 결과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본이 일방적으로 아마 자신의 입장만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은 더 이상은 전개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더구나 올해는 POW연구회라고 일본에 전쟁포로로 와서 강제노역을 하셨던 그런 피해자분들도 4월에 성명을 발표하셨거든요. 그렇게 연대운동들이 더 거세질 것 같고, 그러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그것이 산업유산정보센터에 전시되도록 하라는 저희의 활동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외면하고 그런 거짓말을 계속 할 수는 없겠죠.

◇ 최형진: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김승은: 고맙습니다.

<2021-07-13> YTN라디오

☞ 기사원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군함도’, ‘희생자들을 위한 후속 조치’ 일본은 왜 안 지키나요?”-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

화, 2021/07/1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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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교육정책연구소, 일제 잔재 현황 파악
25곳 학교 교가 친일 인물 작곡 또는 군가풍

전북지역 학교 안 일제 잔재 현황을 연구한 보고서 표지.

“학교 안 일제 잔재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전북도교육청 전북정책연구소는 전북지역 초·중·고교의 ‘학교 안 일제 잔재 현황’을 조사한 결과, 교가에서 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인명사전에 의해 친일 인물로 분류된 작곡자가 작곡하거나 군가풍·엔카풍(일본 대중가요 장르)의 멜로디를 포함하는 학교가 25곳 발견됐다고 13일 밝혔다. 특히 25곳 중에서 ‘조국에 바쳐’, ‘○○학도’, ‘이 목숨 다하도록’ 등과 같은 일제군국주의 동원체제에서 비롯한 비교육적인 표현을 담은 교가도 대부분이었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전북교육청은 25곳을 청산 대상 교가로 선정한 가운데, 2019년 10곳에서 교체작업을 마치고 교가를 새로 만들었고, 나머지 15곳은 올해 교가 교체작업을 진행 중이다.

학교표식에서는 21곳 학교에서 일제를 상징하는 욱일문, 일장기, 일본 황실에서 사용하는 벚꽃문과 국화문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쟁·경기에서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수 모양이 75곳, 욱일문·월계수 등과 유사한 형태가 41곳, 맹수·맹금류·방패 등 군 관련이 29곳으로 집계됐다.

일제 잔재가 남은 학교 건물 외곽.

일제 잔재로 평가받는 가이스카 향나무, 금송 등을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는 91곳이었다. 가이스카 향나무는 이토 히로부미가 식민통치를 기념하며 심었다고 알려진 나무다. 학교 터에 일제강점기의 석물·건축물이 남아 있는 학교도 일부 있었다. 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시정표(→시간표), 시건장치(→잠금장치), 절취선(→자르는 선), 졸업사정회(→졸업평가회), 내교(→학교 방문) 등도 개선대상으로 지적됐다.

연구소는 △일제 잔재 관련 조례 제정과 역사교육 등 교육청 차원의 지원 △학교 안 일제 잔재 관련 석물 등의 현황 파악과 활용 △일제 잔재 인식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등을 제안했다. 최은경 전북교육정책연구소장은 “일제 잔재를 생활 속에서 교육적으로 활용하도록 지도하는 게 중요하다. 활용을 위해 발간 책자를 각 학교와 도서관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의 한 학교에 있는 봉안전 기단에 일제양식의 잔재가 남아있다.

이번 연구는 초중등교사와 연구사 등 9명이 지난 1월부터 6개월 동안 진행했다. 연구소는 전북지역 학교의 일재 잔재 현황을 주제로 9월 말에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박임근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전북교육정책연구소 제공

<2021-07-13> 한겨레

☞기사원문: “학교 안 일제 잔재,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관련기사

☞KBS 뉴스: 아직도 일선 학교에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는?

☞전북도민일보: ‘교가, 교목, 교표에 친일 잔재 여전히’ 전북지역 학교 일제 잔재 드러나

수, 2021/07/1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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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목, 2021/07/15-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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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차 수요시위 옛 일본대사관 앞서 열려… 방역지침 따라 1인시위 형식으로 진행

▲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 14일 낮 서울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500회 수요시위에서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 정의연

지난 92년 시작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가 14일 1500회를 맞아, 코로나19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격상에 따라 1인시위 형식으로 진행됐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이나영)는 14일 낮 12시부터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1500회 수요시위를, 현장참가자 없이 1인시위 형식으로 진행했다.

1500회 수요시위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등 총 14개국 1565명 국민과 단체가 주관했다.

특히 이날 수요시위는 방역지침에 따라1인 시위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대부분은 영상으로 대체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성명서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위,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시위가 1500차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정부가 성노예제를 중대한 반인도적, 반인권적 범죄로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인권이 보장될 것”이라며 “우리 모두가 식민지와 전쟁, 군국주의와 남성중심주의를 넘어 설 때, 비로소 평화의 새 장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사랑과 평등, 신뢰와 연대의 물결이 혐오와 차별, 두려움과 분노를 뒤덮을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며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1500번을 이어온 바위처럼 강한 연대의 힘으로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전했다.

1500회 수요시위에서는 일본정부를 향해 ▲ 전쟁범죄 인정 ▲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진상 규명 ▲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 ▲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배상 ▲ 일본군성노예제 범죄 책임자 처벌 ▲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역사교과서 기록해 교육 ▲ 추모관과 사료관 건립 등을 촉구했다.

이날 주변에서 수요시위를 방해한 사람들을 향해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저들이 내뱉는 역사부정의 말들은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한 것”이라며 “그래서 마침내 저들이 스스로 마이크를 내려놓을 날이 오리라고 저는 믿는다”고 말했다.

1500회 수요시위는 사진홍보 1인 시위, 평화네트워크의 ‘바위처럼’ 공연, 수요시위 영상 상영, 이옥선·이용수 할머니 발언, 문춘화 렌다 수녀·스프링세계시민연대 구보경 미국휴스턴 함께 맞는 비 대표·김지원 고등학생·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등의 발언, 춘천지역 근현대사 역사 연합동아리 날개짓의 ‘새물’ 율동, 수요 시위 에세이 ‘나와 수요시위’ 수상작 발표, 연대 영상,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의 성명서 발표순으로 이어졌다.

이날 정의연은 “역사적인 1500회 수요시위를 맞아 함께해온 많은 시민들의 염원과 연대를 함께 하기 위해 1500인 공동 주관인을 모집했다”며 “1565명이 참여해 성사됐다”고 밝혔다.

수요시위를 마친 정의연은 이날 오후 SNS를 통해 “총 14개국(대한민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 아랍에미리트(UAE))에서 1565명·단체가 공동주관인으로 함께해주셨다”며 “비록 1인시위의 형태로 대부분의 순서를 영상으로 대체하긴 했지만 바위처럼 강한 연대의 힘으로 1500차 수요시위를 무사히 마쳤다”고 감사 인사를 남겼다.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첫 시작됐고, 14일 현재 1500회를 맞았다.

▲ 1500회 수요시위 14일 일본군 성노예 해결 1500회 수요시위는 토로나19 방역지침 격상으로 1인시위형식으로 진행했다. ⓒ 김철관

김철관(3356605)

<2021-07-15> 오마이뉴스

☞ 기사원문: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슬픈, 그러나 자랑스러운 시위”

※관련기사

☞KBS 뉴스: 1,500회 수요시위…이옥선 할머니 “사죄 전엔 계속해야”

☞노컷뉴스: 1500차 수요시위, 일본정부 진정한 사죄·법적책임 이행 촉구

☞뉴스1: 1500차 맞은 정의연 수요시위…보수단체·유튜버 항의에 몸살(종합)

목, 2021/07/1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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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세계유산위, ‘일본에 유감 표명’ 결정문 채택해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는 주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해당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하시마 탄광(군함도), 다카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야하타 제철소, 미이케 탄광·제련소 등으로 동원된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공개했다. 하시마 탄광으로 강제동원된 고(故) 서정우씨 등의 영상은 최초로 공개됐다. 2021.7.16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왜 여기에 와서 이런 일을 당하는가’ 혼잣말을 하면서 매일 죽을 생각만 했습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면 너무 무서워서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군함도(하시마·端島) 강제동원 피해자 서정우 씨)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 산업시설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제기된 가운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육성 증언을 다루는 자리가 마련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공동 주최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전시회를 11월 7일까지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연다고 16일 밝혔다.

전시 영상들은 강제동원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담고 있다. 열네 살에 하시마 탄광에 동원됐다가 이후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겪은 고(故) 서정우(1928∼2001) 씨의 영상이 국내에서 공개되는 건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사복형사에게 연행돼 다카시마 탄광으로 끌려갔던 손용암(78)씨, 후쿠오카 미이케 탄광·제련소로 강제동원된 류기동(79)·손성춘(76)·이영주(77)씨 영상은 올봄 촬영돼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다.

징용 경험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과거를 이야기한다. 군수시설에서 탈출하려던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말을 잇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모습에선 그들이 겪었을 고통의 깊이가 가늠될 정도다.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은 “보통 강제동원을 떠올리면 ‘배고프다’ ‘아프다’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처럼 단편적으로만 안다”며 “이번 전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과정으로 가게 됐는지, 현장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느낌은 어땠는지, 언어 소통은 어떻게 했는지 등을 느낄 수 있게 증언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시민단체가 제공한 영상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나가사키 중국인 강제연행 진상을 조사하는 모임’이 제공한 중국인 포로, POW연구회가 제공한 연합군 포로의 증언 영상을 함께 전시해 강제노동이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오른쪽 두 번째)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는 주제의 전시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연구소 관계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해당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하시마 탄광(군함도), 다카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야하타 제철소, 미이케 탄광·제련소 등으로 동원된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공개했다. 2021.7.16 [email protected]

한편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은 일본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한 결과 센터가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 12일 공개했다. 지난해 6월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군함도 등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조사단은 일본이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을 일본의 관점뿐 아니라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 등 피해자의 시각까지 균형 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번 조사를 토대로 일본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결정문을 이르면 이달 21일 열리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식 채택할 예정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강제노동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온 우리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세계유산위원회가 공개한 권고를 지지하며 환영의 뜻을 표한다”면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이 권고를 채택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2021-07-16> 연합뉴스

☞ 기사원문: 피해자 육성 담은 ‘일제 강제동원’ 전시회 서울서 개막

※관련기사

☞뉴스토마토: 민족문제연구소, 군함도 등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19인 증언 공개

☞이투데이: ‘군함도 강제노동의 역사’,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19인의 증언

금, 2021/07/1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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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차별 없었다는 일본 주장 반박

 

[앵커]

일본의 군함도 역사 왜곡을 지적하는 유네스코 결정문이 오늘(16일)부터 열리는 온라인 회의에서 채택될 예정인데요. 우리나라와 일본의 시민단체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새로운 육성 증언을 공개했습니다. 일본의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내용들입니다.

신진 기자입니다.

[기자]

1940년대 일본 총독부가 ‘인력 공출 대상’으로 지목한 건 ‘농촌의 가난한 청년들’이었습니다.

[고 최장섭/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화면제공: 민족문제연구소) : 느닷없이 개 패듯 패가지고 강제로 들고 나갔지.]

손용암 할아버지는 16살 때, 아버지 심부름을 갔다가 사복 형사에 붙잡혔습니다.

[손용암/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화면제공: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민족문제연구소) : 옛날 ‘당꼬바지’라고 있잖아요. 형사들은 표가 났어요. 문 잠그고 내보내 주지를 않는 거예요. 납치죠. 완전 납치죠.]

동원에 응하지 않으면 가족들도 위험해졌습니다.

[고 최영배/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화면제공: 민족문제연구소) : 도망가면 부모를 마룻바닥에 무릎 꿇고 앉히고 해코지하려는 게 꼴 보기 싫어서 내가 죽으면 죽고 살면 산다 하고 (동원) 가는 거지.]

어딘지 모르고 끌려간 노동 현장은 ‘인간 지옥’이었다고 합니다.

군함도의 9층 건물 지하에 배치된 고 최장섭 할아버지는, 탈출하다 붙잡히면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맞았다고 했습니다.

[고 최장섭/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화면제공: 민족문제연구소) : (조선인들) 숙소는 제일 하층에, 하층에 (바닥이) 질퍽질퍽한 데. 일본 놈들은 다 고층에. 밤에 잠을 자는데 여러 어른들과 아이들이 쥐가 나서, 기운이 부족하니까 힘이 드니까 소리를 지르고, 밤이면 그 아우성 소리가…]

제련소와 탄광 등 가장 위험한 현장엔 여지없이 조선인들이 배치됐습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흔적은 남았습니다.

[류기동/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화면제공: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민족문제연구소) : 천장이 떨어져서 머리에 흉이 네 군데가 있어. 와이어 줄로 여기(발목)를 감아 끌려가다 다치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며 기억도 흐릿해졌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합니다.

[김승은/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 : 고령의 생존자들이 많은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자신을 지목해 강제동원했던 구장, 면장, 순사의 이름은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한·일 시민단체들이 새로 발굴한 피해자 19명의 육성 증언은 11월까지 서울 용산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전시됩니다.

(화면제공 : 민족문제연구소·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영상취재 : 이동현 / 영상편집 : 이지훈)

<2021-07-16> JTBC

☞기사원문: “개 패듯 패고 강제로 끌고가” 강제동원 피해자 새 증언

※관련기사

☞YTN: “두들겨 맞으며 끌려갔다”…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증언 공개

☞KBS: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日 강제징용자 육성 증언 공개

토, 2021/07/17-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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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발자국] 57. 서울 4‧19 묘지 : 4‧19탑은 왜 수유리 골짜기에 있는가?

1995년 해방 50년을 맞아 보수언론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진보진영의 민중사관에 맞선 한국현대사 재평가 움직임과 그 일환인 ‘이승만 복권운동’이었다. 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을 세운 ‘국부’인 이승만 복권운동을 왜 이처럼 뒤늦게 벌이기 시작했는가? 그 답은 수유리에 있다.

“데모가 이적(利敵)이냐, 폭정이 이적이냐?”, “부정선거 다시 실시하라!” 1960년 4월 19일 오후, 시위대는 점점 불어나 근 10만 명에 달하기 시작했다. 전날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국회 연좌농성을 마치고 귀가하던 고대생들을 이승만 정권이 사주하는 정치 깡패들이 쇠몽둥이 등으로 무차별 공격한 데에 분노한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에서 이승만이 있는 경무대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4.19 혁명 관련 사진들. 초등학생들까지 참가한 것이 이색적이다.

‘탕탕탕!’ 갑자기 경무대 앞을 지키고 있던 경찰들의 총구가 불을 토했다. ‘피의 화요일’과 함께 4.19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수유리 4‧19 묘역에 가면 4‧19 민주혁명기념탑 뒤로 줄지은 묘비들이 늘어서 있다. 186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결국 이승만은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경찰에 의존하고 경찰을 우대해온 이승만 정권에 불만이 많았던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

시위대는 경찰로부터 탈취한 소총으로 무장하고 눈에 보이는 차를 징발해 시내를 누비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경찰과 계엄군에 쫓겨 저항본부인 고려대학교로 후퇴했다. 고려대학교가 ‘4‧19의 전남도청’이었던 셈이다. 5‧18의 전남도청 학살과 같은 참극이 고려대학교에서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전두환과 달리 당시의 지휘관이 두 명의 부관을 데리고 직접 학교 강당으로 찾아가 태극기로 덮은 시신들에 정중하게 조의를 표했고, 이를 본 시위대가 군을 믿고 무장을 해제했다.

▲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된 고려대 시위와 관련해 고려대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4.19혁명 기념 조각 ⓒ손호철
▲ 마산 3.15 기념관에는 학생 등 시민들에게 발포한 경찰에 대해 “총은 쏘라고 준 것이다”라고 한 이기붕 부통령의 망언이 쓰여 있다.

진정되어 가는 것 같던 정국은 학생들에 이어 교수들이 나서 이승만의 하야를 직접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미국까지 이승만의 등을 돌리면서 이승만 하야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그러자 이승만도 마지못해 하야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은 4월 26일 하야 성명 발표이후에도 갑자기 자신이 사임하면 국가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사임서에 서명을 거부했다. 최후까지 비겁한 지도자의 추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러다가 주변의 압력으로 결국 서명을 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이처럼 이승만은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정선거를 하고 이에 항의하는 젊은이들의 목숨을 180여 명이나 빼앗고 쫓겨난 지도자이다. 즉 그는 박근혜에 앞서 국민의 손에 쫓겨난 최초의 지도자였다(최소한 박근혜는 이승만처럼 근 200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죽이고 물러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이승만보다는 덜 나쁜 지도자였다. 박정희도 자신의 권력 연장을 위해 시위대에 발포를 해 이처럼 많은 국민들을 공개적으로 죽이지는 않았다). 그런 만큼 그를 복권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 4.19 혁명 후 하야 압박에 굴복, 경무대를 떠나는 이승만의 사진이 화진포 이승만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승만기념관인 만큼 설명이 이승만에게 매우 우호적이다.

모든 사건이 그러하듯이, 4‧19의 원인은 사건사적 원인과 보다 구조적인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직접적인 이유는 장기집권을 위한 3.15 부정선거와 이에 항의하는 대구의 2.28 시위와 마산의 시위과정에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김주열 군의 시신 유기 사건이다(이에 대해서는 ‘손호철의 발자국’ 11회 ‘박근혜도 치켜세운 2‧28 운동, 대구의 민주화 전통을 걷다’ <프레시안> 2021년 3월 31일자와 12회 ‘진보의 요람과 보수의 아성 공존하는 도시’ <프레시안> 4월 2일자 참조). 설상가상으로, 이승만 정권이 4월 18일 깡패들을 동원해 고대생을 습격한 것이 4‧19를 촉발했다.

구조적으로는, 이승만 장기집권과 심각한 실업 등 경제 위기에 대한 반감이다. 특히 대학졸업생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등 청년실업이 심각해 청년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다. 1950년대 우리는 미국 원조물자를 가공하는 산업(방적, 제분, 설탕이라는 ‘3백산업’)이 중심이었는데 1950년대 말이 되며 이 같은 원조가공 산업화가 소진된 데다 미국의 제3세계 전략이 원조에서 차관으로 바뀌면서 원조를 크게 줄이자 경제위기가 심화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1950년대 말부터 동아시아에 미‧일‧한국으로 이어지는 안보 삼각동맹을 추진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한일 국교정상화를 압박했지만, 이승만은 말을 듣지 않았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그를 교체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우선 ‘4‧19 혁명’이라는 명칭이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 성공 후 4‧19의 명칭을 ‘4‧19 의거’로 폄하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4‧19 혁명이라고 부른다. 4‧19는 정말 혁명인가? 혁명이라면 왜 혁명인가? 혁명이라고 보는 이유는 이승만을 성공적으로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이라면, 4‧19는 혁명이 아니라 ‘성공한 항쟁’일 뿐이다. 사회구조 등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6년 말에 시작해 2017년 초까지 계속된 촛불항쟁이 박근혜를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촛불혁명’은 아니다. 나는 촛불 당시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라는 책을 썼는데, 이는 그것이 촛불항쟁 속에 단순히 박근혜를 몰아내자는 것을 넘어서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려는 급진적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살려서 촛불혁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후 현실은 전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즉 촛불혁명이 아니라 ‘촛불항쟁'(내지 ‘실패한 촛불혁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면 4‧19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에, 단순히 ‘4‧19 항쟁’인가? 나는 4‧19를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4‧19는 혁명이되, 실패한 ‘미완의 혁명’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승만 하야 이후다. 4‧19는 이승만 하야와 함께 끝난 것이 아니다. 이승만 하야로 그 1단계가 끝나고 2단계가 시작됐다. 이승만 정권 붕괴 후 이승만이 이끄는 극우정권에 의해 억눌려 있던 민중적 요구들이 거세게 분출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은 보도연맹, 거창 민간인학살 등 수많은 학살의 피해자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움직임이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유가족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특히 거창의 유가족들은 학살에 적극적 역할을 수행한 이장에게 사과를 요구하다 거부하자 산채로 불을 질러 버렸다. 어용노조에 대항하여 교원노조와 같은 자주적인 노조가 생겨났고, 사회대중당, 사회당과 같은 진보정당들이 나타나 국회에 진출했다.

가장 극적인 것은 극우 분단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남북한영세중립화를 통한 통일운동이 나타났고, 혁신정당들과 조직들이 자주·평화·민주 3대 원칙 하에 남북통일을 추진하기 위해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를 결성했다. 1961년 봄, 학생들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를 외치며 남북학생들의 평화교류를 추진했다. 이는 극우 분단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한 혁명이었다. 그러나 이 혁명은 5‧16 쿠데타로 실패하고 말았다. 따라서 4‧19는 실패한 미완의 혁명이다.

또 다른 문제는 4‧19를 단순히 ‘학생혁명’으로 보는 잘못된 경향이다. 물론 4‧19에서 학생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들 못지않게, 어쩌면 그들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도시 하층민들이다. 이는 4‧19 희생자들의 분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186명의 희생자 중 학생은 22명에 불과하고 하층노동자 61명, 무직자 33명 등 도시 하층이 절반에 달한다. 따라서 4‧19를 단순히 학생혁명으로 보는 것은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외면하는 일면적인 인식이다.

‘여기는 1960년 4월 불의와 독재에 항쟁하다가 희생된 185명의 젊은 혼들을 모신 곳이다. 이들의 정신을 길이 받들고자 1962년 3월 23일 재건국민운동본부 안에 각계각층을 망라한 기념탑 건립위원회를 구성하고, 1962년 11월 21일에 기공하여 전 국민의 성금과 국고 보조로 이 공사를 진행하여 오늘로써 제막식을 거행하다.’

▲ 수유리에 있는 국립 4.19 민주묘지 ⓒ손호철

나 자신이 ‘운동권 출신’인 만큼 수유리 4‧19 묘역은 가끔 찾아가는 ‘마음의 성지’지만, 이번 답사를 하면서 4‧19 혁명기념탑 앞조각 뒤편에 새겨진 이 설명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4‧19 묘역이 5‧16 쿠데타 직후 쿠데타 세력에 의해, 그것도 재건국민운동본부라는 군사독재 냄새가 풀풀 나는 조직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이를 다시 ‘민주 성역화’ 한 것은 김영삼 정부다). 그것만이 아니다. 탑의 글은 다른 사람도 아닌 이승만을 ‘성웅 이순신 같은 위인’이라고 극찬했고, 4‧19를 짓밟은 5‧16 쿠데타로 집권한 공화당의 창당선언문을 써주었으며 이후 유신과 전두환 지지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어용지식인 이은상이 썼다는 것도 발견했다.

아무리 5‧16 세력이 그와 친하다고 하더라도, 이승만을 ‘성웅’이라고 칭송하고 문인들을 모아 지원유세를 다녔으며 김주열 시신 인양과 함께 터져 나온 4‧11 마산의거에 대해 “적을 이롭게 하는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이며 특히 “고향 마산에서 터져 나온 일이기에 더욱 분개한다”고 했던 이은상에게 4‧19혁명기념탑 글을 의뢰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몇 년 전 자신이 성웅이라고 칭송한 이승만을 무너뜨린 4‧19, 자신이 ‘북괴를 도와주는 이적 행위’라고 힐난한 4‧11의 연장인 4‧19에 대해 탑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1960년 4월 19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 명 학생 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 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이은상의 탑문은 현 4‧19묘역이 비극을 넘어 희극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 5.16 쿠데타 세력은 4.19 혁명을 기념한다며 이승만을 성군이라고 찬양하던 어용 문인 이은상에게 4.19 기념글을 짓게하여 써 놓았다. ⓒ손호철

놀라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원래 4‧19기념탑을 광화문에 세우려 했으나 데모의 중심이 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수유리 골짜기로 귀양 보냈고, 탑은 친일인명사전에까지 오른 대표적인 친일, 친독재 조각가인 김경승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는 전두환이 1987년 황토현 동학전적지에 세운 전봉준 동상도 세웠는데 정읍시는 최근 이를 철거하고 동학의 정신에 맞는 동상을 새로 세우기로 했다). 넓은 공간이 필요한 묘역은 몰라도 기념탑은 역사의 현장인 광화문이나 청와대 앞에 세워야지, 왜 아무 관계도 없는 수유리에 세웠는가?

수유리 4‧19묘역을 떠나려는데, 한 자료에서 읽은 최석태 서울민족미술협회대표의 주장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5‧16세력이 4‧19를 짓밟지 않았나? 그것을 가리려고 성역화한 것 아닌가? 4‧19탑에는 정신이 송두리째 빠져있다. (…) 4.19탑은 철거돼야 한다. 아니 독립기념관으로 보내야 한다. 친일작가들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증거로, 친일유물로.” 맞다. 새로운 4‧19탑을 역사의 현장인 광화문에 세워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2021-07-19> 프레시안

☞ 기사원문: 4‧19기념탑에 새겨진 ‘친일‧친독재’ 흔적들

월, 2021/07/19-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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