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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끔 증세’ 말고, ‘보편 증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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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끔 증세’ 말고, ‘보편 증세’를!

익명 (미확인) | 월, 2017/08/07- 13:44

증세논쟁이 한참이다. 

대선 과정에서 ‘더불어 잘사는 경제’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집권 5년간 178조의 재정을 복지와 일자리 등에 투입하겠다면서도 세금을 올리는 일은 없다던 입장에서 벗어나, 문재인 정부가 이제야 증세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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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부자증세’ ‘서민감세’를 기조로한 문재인 정부의 첫 세법개정안이 발표됐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2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2017년 세법개정안에 대해 브리핑 하고 있다. (사진출처: http://www.news33.net/)

아직도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며 옹이를 부리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는, 증세에 가장 적극적인 정의당 그리고 기본적인 방향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바른정당’과 ‘국민의 당’ 등의 입장을 고려해보면, 미세한 내용과 항목에서 약간의 조정을 거치겠지만 중세법안에 대한 국회의 입법과정은 무난히 이루어 질것으로 예상된다.

‘찔끔 증세’ …본격적 증세 논의 나서야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다 보면 증세라는 표현이 가소로운 수준으로, 세율의 미미한 조정을통해 연간 5-6조의 세금을 더 걷어들이면서 겨우 GDP 기준 약 0.3-0.4%의 조세부담률 증가가 있을 뿐이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의 증세정책에 이름을 공모하겠다던 집권당의 멘트는 한마디로 한심스럽고 애처로운 해프닝이다.

증세에 관한 문재인 정책을 평가하자면, 연간 35-40조 수준의 필요한 추가 재정을 포플리즘에 빠져서 자연 증가분에 기대하고 안이하게 기존의 재정을 알뜰히 살펴서 해결하겠다는, 마치 나무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기회주의적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운용에 대한 장기적 비전과 철학도 없이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 땜질 방식으로 처방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고로 조세정책은 국가의 근본이고 정권의 성격을 담보하는 기조적 방향이다. 국무회의에서 몇명의 장관과 논의하고 집권당 대표가 던지는 한마디로 이루지는 즉흥적 대응이 아니라, 보다 깊고 넓게 다양한 의견과 검토를 거치되 정권의 의지와 시대적 흐름을 담대하고 결기있게 담아냈어야 했다.

다만 박근혜 탄핵 이후 짧은 시간에 정권교체가 이루어 지는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과 수구적 집단이 국회를 점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서는 일단의 이해를 갖는다.

‘불평등 해소’는 문재인정부의 시대적 과제

소비구매력 수준이 3만불을 훨씬 넘은 경제강국 한국사회의 수치이자 최대의 과제는 한국 사회를뒤덮고 있는 개별화된 불안이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청년 일자리, 노후빈곤, 비정규직, 자영업 쇠락, 불황, 실업걱정 등 나열된 단어에서 예시하듯이 결국은 적정한 삶의 지속적인 조건이 흔들리면서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심각한 불안감이다.

문제는 검은 구름처럼 한국사회를 덮고 있는 전반적인 불안감을 국가 기능의 결핍으로 인하여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감당할 재정능력이 부족하여, 국민 각 개인의 수준에서 해결하고 처리해가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이해의 첨예한 충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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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IMF의 ‘아시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소득 불평등이 큰 나라이다. (이미지 출처: http://sixfy.tistory.com/134)

예컨대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못 벗어나는 것은 자신이 무능한 탓이요, 몸이 아파 일을 못할 지경에도 병원을 못 찾는 것도 자신이 건강관리를 잘못한 것이요, 대학교를 졸업해도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것 역시 부모를 잘못 만난 탓으로 돌리는 등 단간의 장면에서 보여지는 그러나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풍토와 조건이 문제이다.

결국은 개별적 수준에서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이면서 정글의 법칙 속에서 살아 남아야만 하고, 자연스레 눈치보기, 불법과 탈법, 비리와 부정, 투기와 지대추구, 오로지 고시와 자격증, 철밥통의 직업에 매달리기, 내 자식만을 위한 치열한 입시경쟁 등이 온 사회에 만연하게 된 것이 오늘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현대국가의 일차적 기능은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명기된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독일 헌법의 제1조에 적혀있는 시민적 존엄을 지켜주는 데 있다.

따라서 촛불시민혁명이라는 계기를 통하여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시민 각각 개인이 겪는 개별적 불안에 대해 국가가 일차적 책임을 갖고 국민 모두와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국가차원의 정책과 조치를 강구하고 실천해 나가는 데 있다.

당연히 이러한 관점과 역사적 상황과제를 국정의 기본적 목표로 삼아야 했다.

부끄럽게도 2017년 현재, 대한민국은 OECD 국가로 한정하여 비교하여 보면 사회안전망과 삶의 질적 항목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총괄적 수치로 보면 조세 부담률이 OECD 평균이 25% 수준임 비하여 한국은 18%에 머물러 있다. 보다 중요한 지표로서 사회보험과 공공지출을 포함한 국민분담률에서는 OECD 평균 35-40% 대비하여 28%에도 못 미치고 있다.

예컨대 세계에서 국민들이 제일 행복한 국가라는 덴마크의 경우 국민분담률이 55%에 달하며, 육아의 천국으로 알려진 프랑스 역시 5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은 시민과 정부 공히 국가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상호신뢰 속에서 함께 분담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노르딕 지역에서 회자하듯이, 현대의 선진국가는 모름지기 시민들이 미래의 불안을 떨쳐버리고 일상적으로 평온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인민의 집’ 역할을 반드시 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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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국민일보)

더 나가서 금융소득과 부동산 보유현황을 포함한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 현황은 OECD 최악으로 평가받는 미국보다도 한국이 실제로 더욱 심하다.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가 피켓티 지수로 국민총생산액 대비 국민 순자산의 비율이 8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는 필자가 여러 번 칼럼에서 언급하였듯이, 공동체를 유치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폭동과 혁명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분단체제에서 오는 군사적 위협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2016년 기준 국민 순자산 규모가 1경2000조을 넘어섰고 이 중 토지와 건물을 포함한 부동산 가액이 9000조에 이르렀는데 시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져 이익실현이 가능한 자산의 50% 이상을 불과 1.0% 초상류층(법인포함)이 보유하고 있으며, 상위 10%가 민부(民富)의 90%를 넘게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소득주도성장과 경제의 선순환을 주창하는 문재인 정부는 당연한 수순으로 과감한 조세개혁을 도입하여,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극심한 부의 편재를 재배분하고, 10년안에 경제규모에 합당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하여 OECD 평균 수준의 국민분담률(최소 35%)에 도달하는 것을 국정목표로 제시하였어야 했다.

조세정의 실현은 국가의 의무

일부에서는 과감한 증세조치에 대항하여 사적 소유 또는 재산권 역시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기본권적 영역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런 분들에게는 우선 경제규범을 제시한 제헌헌법을 일독하도록 권하고 싶다. 제헌헌법은 악랄한 일제의 강압에서 해방된 시점에서 모든 국민이 각자의 위치와 이해를 뛰어넘어서 민족의 일반적 보편적 소망을 담아낸 기념비적 선언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권리와 사회경제적 조건 그리고 재산권의 보호는 국가기능의 기본적 영역임에는 분명하지만, 동일한 선상에서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는 층별적 주제이다.

이를 축차적 서열로 재구성하면 1) 정치적 제 권리와 평등 > 2) 사회적 경제적 적정한 상황과 조건> 3) 보상적 재산의 보호권리 라고 나열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수단이 민주적 절차에 의거하여 사회적 강제력을 동반하며 시행되는 조세권과 복지정책이다.

재산권 또는 사적 소유를 절대시하는 시각에 대하여, 이를 흡연의 권리로 비유하여 생각해 보자.

흡연의 권리는 당연히 개인의 기호에 대한 선택의 문제로 타자나 국가권력이 개입할 수 없다. 그러나 흡연의 결과로 담배에서 발생하는 연기가 주변인들의 건강에 매우 해롭다는 것이 실제적으로 밝혀지면서 담배가격에 공공의료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게 하고 흡연의 권리에 장소적 제한을 가하는 등 이제는 흡연의 권리에 대해 적정한 공공적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보편화 되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지금은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이지만 미국의 역사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유재산권의 과다한 법적 방어의 기록을 살펴본다.

 

1905년 뉴욕주의 노동시간은 1일 10시간, 주당 6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주법이 제정되어 있었으나, 제과점을 운영하던 주인 로크너가 이를 지키지 않아 벌금을 물게 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대하여 연방법원은 로크너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계약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이라고 판결하였다.

또 한 예로 1936년 같은 뉴욕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티팔도라는 주인이 여성과 아동 노동자에게 적용하는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은폐한 사건에 대하여 연방법원은 동일한 시각에서 계약의 자유를 들어 티팔도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상윤 지음. 영미법, 박영사 2000).

상기 예와 같은 비상식적이고 부당한 법체계에 대하여 루스벨트 대통령과 이후 진보적 민주당 정권이 중심이 되어 극우적인 연방 법원과 부단하게 투쟁하면서 오늘의 강대국인 미국의 기초가 형성되었다.

당시의 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증여 및 상속세뿐 아니라, 소득세의 최고세율이 80-90% 수준에 이르렀음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증세를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위에 예시하였듯이, 당시 반역사적 미국의 연방법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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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레디앙)

부의 편재와 불평등이 극심하여 민주공화국에 대한 다른 표현인 ‘서민으로서 국민 개개인이 존엄’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만큼 현실적 조건이 부당하게 왜곡되어 있다면, 공공적 합의체인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켜야 하는 정부는 당연한 과제로서 조세와 세정의 개정과 집행을 통해 이를 과감하게 시정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기본적 수준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만큼 소비구매력 수준이 3만불을 넘어선 현 시점에서는 공리적인 시각으로 총합적 효율성과 성과주의의 결과물로서 경제성장을 우선 논하기 이전에, 당연히 공정함을 기준으로 삼아 국민 개개인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실제적 정치 참여와 사회적 경제적 기본권리의 보편적 전개가 선차적으로 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해야 한다.

또한 낙수효과가 거짓말이었음이 명백해진 현 시점에서 제대로 된 질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도 OECD와 IMF의 전문가들이 명백하게 밝히고 제시하였듯이, 성장의 장애물로 작동하는 부의 편재와 양극화를 극복하고, 복지정책의 강화와 소득주도성장으로 표현되는 선순환적 재분배정책을 강력히 도입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의 산업과 경제 체질을 강화시키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긴급한 요체라고 믿는다.

보편적 증세 논의를 시작하자

현재 진행중인 증세논쟁을 계기로 조세 전문가는 아니지만 실물경제에서 30여년간 종사한 경험을 토대로 개혁적 정부가 추구해야 할 조세의 기본적 방향을 제시해 본다.

첫째로 핀셋 증세를 넘어서 보편적 증세로 확장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경제활동의 근간인 기업의 법인세는 추후 개별적 소득세 형태로 일원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인상을 억제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법인세를 미세하게 나마 상향 조정한 것은 매우 정합적이다.

왜냐하면 자본시장이 완전 개방된 한국적 조건에서 외국자본의 주식 거래시 발생하는 이익실현에는 일체의 세금이 없으며, 배당소득에 대해서도 겨우 5.0 % 수준의 미미한 세금이 부가되는 현재 세법 체계상 외국자본이 집중 투자되어 2000억 이상의 초과이윤을 실현한 우량 법인에 대하여 선제적으로 법인세를 인상하는 것은 정당한 방향이다. 국민경제의 방어적 기제이다.

소득세는 국가적 필요에 따라 상향조정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10억이 넘는 고소득 영역에 대해서는 추후 50% 수준이상으로 소득세율을 높이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수직적 과세 정책과 더불어 수평적으로 모든 소득에는 세율에 상관없이 가능한 세금을 부과하여 소득이 발생한 모든 국민이 조세의 의무를 경험하고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일체의 소득공제 제도를 폐지하고, 일체의 발생한 소득에 대해 과표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되, 저소득층과 소상공인들에게는 해당 사안에 따라 직접적으로 다양한 수당과 정책적 지원을 통하여 실제 납부한 세금 이상으로 사후에 보충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납세의 의무를 경험하는 동시에 적정한 지원수당과 사회이전소득으로 정부에서 반대급부적으로 보충받는 상호적 관계를 형성하면, 조세기능과 복지정책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긍정적이며 수준높은 신뢰와 이해를 한층 높여 갈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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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약간의 소득이 있으면 일단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은 조세정의 실현과 조세 혜택 체감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보편적 조세와 동시에 보편적 복지라는 공동체적 시스템이 반드시 작동해야 하며, 이에 따라 현재의 절반수준인 면세점 이하의 국민 비중을 반드시 20% 이하로 떨어뜨려야 한다.

보유세, 상속, 증여세의 강화

둘째, 자산 보유세 및 증여상속세를 대폭 강화하여야 한다.

위에 언급하였듯이 한국 양극화 현상의 근본적이고 일차적 원인은 자산보유의 편재에서 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피켓티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일정자산 이상에는 1-2% 자산보유세를 부과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당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향후 국제적 수준의 협의가 가능한 시점이 온다면 적극적으로 연구할 과제이다.

토지정의 시민연대가 오랫동안 연구하여 왔듯이 거래세를 폐지하는 대신 일정 규모(예컨대 10억) 이상 종합 자산에 대해 재산세를 현행보다 0.5% 정도를 올리면 수 십조 수준의 대단한 재정소득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부가 시행 발표한 부동산 대책의 내용은 단기간의 정책으로 유효할지 모르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거래세를 폐지하고 보유세를 구미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것이 재정수입의 증대와 함께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데 보다 효과적이다.

다만 보유세 인상 시, 이를 참여정부처럼 급하게 시행하는 것보다, 장기적 조치라는 점에서 5년간 0.1 %씩 비례적으로 올려가며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증여상속세는 현재 50억 이상의 과표에 대해 50%를 적용하는 수준에서 100억 이상에 대해서는 80% 이상으로 대폭 인상해야 하며, 기업의 지속적 활동을 핑계로 상속 공제하는 제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처분이 어려운 고정자산의 상속인 경우 이를 20년간 장기 분납하는 것을 허용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부와 재산의 개별적 소유권은 분명히 보장하되 사회적 합의와 동의가 없이 세대를 이어 혈연적으로나 지연(知然)적으로 축적되는 것은 어떠한 근거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으며, 차제에 기업 자체가 공공재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복지세 도입

셋째, 부가소비세 방식으로 복지세를 도입하여야 한다.

저소득층에게 가중적인 생활비용의 부담을 준다는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의 부가소비세10%를 점차적으로 유럽 수준으로 높여가야 한다. 다만 여기서 발생하는 추가적인 소비세의 재정소득은 반드시 복지재정으로만 사용하는 복지세를 도입하여야 한다. 참조로 유럽의 부가세 수준은 평균 17-20%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세의 형태인 복지세의 명목으로 확실하게 못을 밖아 기존 부과가치세의 10% 위에 추가하여 시행할 수 있다.

이러한 복지세의 추가 적용에 주요 생활 필수품은 제외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일괄 적용 후 일정 소득 이하 계층에게 EITC(저소득보충세제)방식으로 별도 지원하는 것이 실제적인지는 전문 조세행정가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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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거짓말 중 하나는 ‘증세없는 복지’였고, 이런 말도 안되는 정책은 박근혜정부dml 국정 난맥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를 실현하는데는 178조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필요한 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해 문재인정부는 국민에게 정직하게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증세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YTN)

상기의 방식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끝나는 시점에서 국민분담률이 32% 수준 이상에 도달하여야 하며, 십 년 뒤인 2027년 이후에는 반드시 OECD 평균을 유지하여야 한다.

개별적인 불안한 현실을 넘어서, 공정하고 평형적인 사회 조건과 복지 제도가 형성되어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안전한 미래가 보장되면, 자연스레 모든 국민이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일상적인 활동에 참여하게 되고 비로소 산업과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혁신적 작동이 마치 기름진 토양에서 흡족한 수분을 취한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 날수 있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단순히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탄생한 우연적이며 과도적인 기회주의 정권인지, 아니면 촛불시민혁명을 계승하여 역사적 과제를 수행하는 개혁적 정권인지 결정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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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작년 북한농업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강연에 중국인민농업대학의 원로인 원톄쥔 교수를 초빙하게된 배경에는 이병한 다른백년 이사와 김유익선생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습니다. 김유익 선생은 농업과 농촌의 미래적 가능성을 바라보며 원교수가 추진하는 중국의 신향촌 건설 사업에 참여하여 몸소 체험하고 있는 이 시대의 참으로 귀한 분입니다. 중국의 소위 삼농 사업은 실히 인류의 문명사적 대실험입니다. 생태문명의 실현이라는 대명제와 더불어 농민공을 합쳐 농촌에 적을 두고 있는 인구가 9억에 육박하는 가운데, 과학기술과 ICT 산업의 눈부신 발전으로 기존의 산업에서 일자리가 새로이만들어 지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며 중국 지도부는 젊은 세대들이 농촌에서 미래를 찾도록 정책적 지원과 조언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른 측면에서 미패권주의의 말기적 패악에 대응한 근거지로 중국 농촌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以農村包衛覇權 이랄까요. 오늘부터 시작되는 김유익 선생의 칼럼 ‘신향촌건설’에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베이징에서는 3월초부터 2주간에 걸쳐, 흔히 양회兩會로 불리는 인민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어김없이 중국 언론 지면은 그 소식으로 도배된다. 올해도 2월18일에 나온 (2019년)중앙 1호 문건으로 시작되는 중국의 대외 정치 메시지 발표 일정은 그렇게 이어진다. 그 메시지에 공통적으로 작년과 올해, 제일 먼저 언급된 정책이 무엇일까 ? 중미무역협상, AI와 전기자동차, 5G같은 첨단기술개발, 아니면 홍콩, 마카우, 광둥 지역의 11개도시를 선봉으로 삼는 粤澳港大湾区 개발?

정답은, 한국말로 읽으면 다소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향촌진흥鄉村振興정책’이다. 이게 중국의 새마을 운동 같은 건가 ? 사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은 10년도 전에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열심히 벤치마킹했다. 그래서, 2005년부터 ‘신농촌건설운동’ 정책을 추진했었고, ‘화끈한’ 재정투입을 통한 그 성과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순탄하게 넘기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원톄쥔, “토지개혁으로 위기를 극복해온 중국” 녹색평론 2018년 1-2월호). 향촌진흥정책은, 어찌보면 중국 농촌 구석구석까지 도로, 전기, 수도, 전화, 인터넷 등의 ‘5통通’인프라를 완성한 ‘하드웨어판’ 신농촌건설 정책의 ‘소프트웨어판’ 후속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국정부의 양회 공식 선전 웹사이트, 정책 심화 이해를 돕기 위한 문답식 설명 – 1번으로 향촌진흥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향촌진흥정책은 2017년 연말 세간의 화제가 됐던 19대 공산당 전당대회의 가장 중요한 의제중 하나였는데, 한국을 포함한 해외언론은 주로 시진핑 장기집권 레짐을 위한 헌법개정논란에 치중하다보니, 소홀히 다루어진 감이 없지 않다.

중국을 논하다 보면, 최근의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문제, 아니면 경제나 외교정치영역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중국 정부가 ‘삼농문제’(三農- 농민, 농업, 농촌)를 重中之重 – 가장 중요한 정책 현안으로 다룬 것이 이미 16년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 흐름의 형성과 실천에는, 흔히 상상하기 쉬운,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혁명과 같은 관제 프로파간다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신향촌건설운동’이라는 민간 사회운동의 개입이 존재한다.

신(新)향촌건설운동이라 했으니, 앞서 향촌건설운동이 있을법한데, 그렇다면 역사공부부터 해보자. 올해가 삼일운동 백주년이라 새로운 다음 백년에 대한 다짐이 꼭 필요한 곳이 이 지면인데, 바로 그 당시, 굴곡많은 동아시아 근대화 여정의 초입에 벌어졌던 이웃나라의 이야기이니 우리의 역사 회감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에도 100여년전에 근대화를 고민하던 기라성같은 선각자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마지막 유학자’로 불린 량슈밍(梁漱溟 1893~1988) 선생이 있다. 그는 약관의 20대에 명문 북경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됐는데 그 좋은 자리를 박차고 농촌으로 갔다. 그 핵심문화가 농업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농민의 나라 중국에서, 자주적 근대는 농민의 자각과 농촌의 변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불교철학과 신유학의 대가로서, 제(諸)문명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여, 서구사상, 인도철학, 중국의 사유를 비교한 역저 ‘동서문화와 철학’을 남긴 국학대사(國學大師)답게, 동양 고유의 정신과 문화, 제도와 사회구조를 기반으로 어떻게 중국의 근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상아탑안에만 안주할 수 없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그는, 직접 농촌으로 들어가, 향촌의 문화와 자원을 기반으로 한 근대화 개혁 실험을 진행했다. 량슈밍을 비롯한 중국의 지식인과 계몽청년들이, 향촌을 기반으로 저마다 중국의 전역에서 벌였던 실험이 시작된 계기가 된 것은, 동아시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특히 한국과 중국에게는 감격과 통한이 교차하는 사건이었던 1894년 갑오동학농민운동과 바로 이어진 청일전쟁이다. 굴욕적인 패전과 전쟁부채 배상 등으로 인한 막대한 손실이, 중국인들을 움직인 것이다. 이 당시에도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부국강병’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위로부터의 계몽을 통한 서구적 민주, 과학의 근대 혁명을 역설하고 있을 때, 또다른 일군의 지식인들은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꾀하며, 향촌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허베이河北성 딩定縣현 쟈이청翟城村마을은 1904년에 지역엘리트였던 미춘밍米春明, 미디강米迪刚 부자의 마을자치 실험이 시작된 곳으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향촌건설운동 실험지로 알려져 있으며, 1926년, 대표적인 향촌건설운동 지식인/활동가 중 하나인 옌양추晏陽初가 이를 이어받아 딩현에서 평민교육 운동을 펼쳐나가기도 했다. 또, 아들 미디강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의 농촌자치 실험을 공부하고 돌아왔다하니, 동아시아 삼국의 향촌건설과 농촌공동체 운동은 그 역사적 연원이 서로 몸을 섞고 있음에 틀림없다.

20년~30년대에 황금기를 맞았던 향촌건설운동은 중국 전역의 600여개 단체 1,000여개가 넘는 실험마을을 헤아릴 정도로 활성화됐다고 한다(中國鄉村建設 百年圖錄, 西南師範大學出版社,2018).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대부분 중단되었고, 일본의 침공을 피해 국민당 임시정부가 위치했던 충칭重慶에서 명맥이 유지되는 정도였다. 이곳 지역의 기업가인 루쭈어푸魯作孚의,항일활동과 병행된 향촌건설사업은 마침 이곳으로 피난왔던 량슈밍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일제의 패망, 국공내전을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됐을 때, 량슈밍과 같은 일부 향촌건설운동 활동가들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국가의 건설에 참여하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의 승리는 마르크스/레닌이 서유럽의 상황에서 이론적으로 설파한 것과 같은, 도시 노동자가 주축이 된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량슈밍선생 (사진: 바이뚜백과사전)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중국 공산당의 향촌혁명파와 향촌건설파는 마오쩌뚱과 량슈밍의 관계가 협력과 긴장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것과 같이, 실천방법과 핵심주제차원에서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었다. 전자가 주로 무력투쟁에 의한 토지혁명과 그 운용을 지속적으로 고민했다면, 후자는 문화와 교육을 통한, 주민들의 자치역량 강화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하여, 기실 상당수의 향촌건설운동 참가자들은 대륙을 떠나 대만 등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1938년 량슈밍과 옌안延安의 토굴에서 밤새워 토론하는 마오쩌뚱 (중국 인민대학교 ZHOU Li교수)

이제 현재형 향촌건설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필자는 2015년부터 매년, 중국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공동체지원농업)대회를 참관할 기회를 얻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국여성농민연합회, 한살림협동조합, 홍성의 풀무학교 공동체와 같은 단체들이 이 대회에 초청을 받아 연사로 참여하는 데, 다리 놓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에도, 중국 각지에서 1,000여명 이상의 국내외 농민과 활동가, 학자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이번 행사가 10회차였고, 중국 최초의 CSA 농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베이징 교외의 작은당나귀 농장도 마침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국내에는 ‘채소 꾸러미’로 더 잘 알려진 CSA 개념을 실천하는 농장들이 이미 중국 전역에 2,00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이들이 이런 농장을 운영하고 있을까? 이들 대부분이 바로 중국에서는 반향청년(返乡青年)이라 불리는 귀농청년들이다. 또 이들중 대다수는 소농이자 가족농장, 혹은 우리로 치면, 영농조합법인 정도의 중소농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가 얼굴을 아는 생산자를 만나는 것이 CSA의 핵심요건중 하나임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또 필연적으로, 친구나 가족같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꼭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야 하고, 그래서 생태농업, 즉. 유기농 혹은 자연농을 경작방법으로 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향촌건설운동’의 성과인 것이다. 그럼, 대체 누가, 왜 ‘신향촌건설운동’을 제창하고 참여해왔을까? 그것은 민간 조직의 NGO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깨인’ 생산자와 소비자들이다. 그리고, 100년전 향촌건설운동에 량슈밍이 있었다면, 신향촌건설운동에는 중국 삼농문제의 최고 권위자중 한명이며 스스로를 역시 이 운동의 견결한 자원활동가로 칭하는 인민대학의 원톄쥔(溫鐵軍)선생이 있다.

중국인민대학교 원톄쥔(Wen Tiejun) 교수

원톄쥔은 중국을 연구하는 전세계의 학자들에게, 중국 근대화에 대한 독창적 분석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중 한명이다. 그런데, 량슈밍이 그러했듯, 단순히 뛰어난 학자가 아니라, 사회운동가로서의 활약이 적지 않다. 국내에도 그의 대표적 저작인 ‘100년의 급진’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시진핑 시대에, 관변화되어 가거나, 독립적인 목소리를 잃어가는 중국의 ‘지식인’들에 대한 실망이 적지 않음에도, 정부와의 마찰은 피하면서, 계속 중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여전히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다.

대학에서 출발한 학자가 아니라, 연구관료 출신이었던 그는 80년대부터 현장을 발로 뛰면서 농촌문제를 연구하다가, 2001년부터 ‘신향촌건설운동’의 기치를 내걸게 된다. 정책제안을 통한 위로부터의 개혁만으로는 목표하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대학생들과 함께, 농촌으로 들어가서 농민과 연대하기 시작한다. 청소년 시절 문화대혁명기의 상산하방 경험을 통해, 11년간 기층 농민의 생활을 체험했던 그였지만, 이를 개인적 트라우마로 남기지 않고, 자기수행과 사회변혁의 재료와 동기로 삼아, 향촌과 중국의 변화에 헌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중국 전역의 대학에서 이루어진 방학중 농활과 정기적인 교내 독서모임 등으로 유지되던 산발적인 참여활동은, 향촌건설운동의 효시가 됐던 허베이성 딩현에 2003년 만들어진 ‘옌양추농민학교’와 2004년 베이징에 만들어진 ‘량슈밍향촌건설센터’의 설립과 함께 본격적인 사회운동으로 진화하게 된다. 옌양추농민학교에서는 의식이 있는 전국의 농민을 모아서, 협동조합, 생태농업, 생태건축 등을 무상으로 교육하였다. 량슈밍센터에서는 매년 10~20여명의 젊은이를 선발, 농민학교에서 수학한 농민들이 협동조합과 마을만들기 등을 진행하는 실험지로 1년 이상 파견하여 생활과 학습, 향촌건설 사업을 병행하게 하였다.

엔양추 농민학교는 지역 정부의 간섭으로 결국 2006년에 문을 닫게 됐다. 다른 한편으로 활동가들은, 농촌의 변화를 위해서는 도시 소비자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그래서, 농민학교 운영에 참여했던 이들 중 일부가 베이징으로 집단 이주하여, 유기농재배쌀과 같은 생태농업 생산물 판로를 개척하기 위한, 소비자 협동조합 실험을 시작하는 동시에, 2008년 작은 당나귀 시민농원을 설립하게 된다.

당시의 ‘빠링호우’(80년대 출생) 대학생들과 이에 영향을 받은 젊은 농민들이 지금은 중국 각지의 농촌으로 들어가, 유기농 농장운영과 마을자치 실험을 하고, 도시에서 학계, NGO, 사회적 기업 활동을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를 잇는 역할을 하며 신향촌건설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30대의 핵심일꾼들이다.

중국의 귀농청년들

이들이 사명감으로 이 운동에 임하게 된 것은 중국 농촌이 90년대에 겪은 파괴적 변화를 당사자로서 경험한 때문이다. 78년에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의 시발점은 사실 우리가 상상하는 북경이나 상해가 아니라, 농가책임경영제(大包干)를 처음 실시한 안휘성 봉양(鳳陽)의 한 시골마을이었다. 국가가 더 이상 개별 농가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대신, 개인 노력의 성과를 인정해주겠다는 계약에, 18명의 농민이 수결로써 합의한 것이다. 이렇게 생산성이 향상된 농업은 당시 농촌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중소규모 마을기업인 ‘향진(鄕鎭)기업’ 육성과 함께, 농촌과 도시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데 기여하여 80년대 중국 농촌의 르네상스를 가져온다. 하지만, 88~89년의 인플레이션에 동반한 거래수단의 화폐화,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한 도시화, 수출 제조업 중심의 공업화, WTO가입을 계기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적극적으로 편입하기 위한 금융화 흐름이 강화된다. 이에, 농촌은 환경파괴와 더불어, 인력과 자본의 심각한 유출로, 공동체가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국가 현대화의 비용을 농업, 농촌, 농민에게 전가하는 ‘삼농문제’가 최악의 상태로 치달은 것이다. 결국 앞서 언급한 젊은이들은, 유년기에 가난하지만 먹고는 살만하고 아름다웠던 농촌을 기억하는 동시에, 그 쇠락의 과정을 생생히 지켜 본 마지막 세대였던 것이다.

공동화되어가는 중국 농촌

중국이 농민들의 지지속에 성공한 공산혁명후에도 농민과 농촌의 희생을 요구했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49년 신중국 건국직후 발생한 한국전쟁의 참화속에 적대국인 미국과, 공산권의 라이벌 맹주인 소련에 맞서기 위한 전쟁무기 생산기술과 자본이 긴요했던 마오쩌뚱은 농민 노동력을 시초자본 축적의 도구로 삼았다. 량슈밍이 이때 공식 회의석상에서, 농민을 배신하지 말라며 마오쩌뚱에게 항의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그래서, 원톄쥔 등은 21세기에, 현대화를 추구하는 발전주의가 농민들의 삶과 농촌을 피폐하게 만든 것에 대해서, 다시 문제를 제기한다. 2000년 농촌지역 당간부였던 리창핑李昌平이라는 이가 당시 주룽지 총리에게 공개서신을 보내, “농민의 삶은 진정 고통스럽고, 농촌은 심각한 빈곤에 찌들어 있으며, 농업은 매우 위험합니다(农民真苦、农村真穷、农业真危险)라고 표현한 것이 ‘삼농’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문제의식을 상당부분 수용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신농촌건설을 시작했고, 2012년부터 생태문명 건설이라는 목표를 헌법에 명시했으며, 2018년부터 앞서 언급한 ‘향촌진흥’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이 안에는, 생태농업과 6차산업(6차산업은 1차 (농업생산), 2차 (가공), 3차 (서비스 산업)이 결합된 농촌의 융복합 산업을 지칭한다) 육성등을 통한, 농촌의 환경과 경제적 삶의 질 개선정책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인프라의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되고 절대빈곤을 벗어난 지금 시점부터 농촌과 도시의 문화적 생활수준 격차와 실질적 경제능력 격차를 줄이려는 목표를 설정하게 된 것이다.

중국 정부가 삼농문제를 중시하게 된 것은, 농민혁명정부라는 대의명분에 충실하기 위함이 아니라. 환경오염문제, 먹거리 주권과 안전문제, 도시화의 문제가 체제의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07년에 중국의 제1환경 오염원은 도시나 공업이 아니라 농업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항생제와 촉진제, 그리고 첨가물 범벅인 중국의 농축수산물 문제는 더 이상 스캔들 축에도 들지 못한다. 이미 60%이상 진행된 도시화를 감당하기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미 실제 생산에 참여하는 농민은 2~3억도 안될지 모른다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데, 농기계, 화학비료, 농약 등 과도한 에너지 사용과 환경파괴를 불가피하게 초래하는 관행농이 아니면, 소수의 농민이 그 많은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 이전 세기 서구열강처럼 해외 식민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한국같이 농민인구가 5% 미만으로 줄어들거나, 식량 자급률이 20%대로 떨어지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강대국’은 역사속에 존재한 적이 없다.

신향촌건설운동에는 원톄쥔교수뿐 아니라 많은 대학과 연구소에 재직하는 상당수의 지식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긴밀하게 조직화된 형태는 아니지만, 그들은 소위 ‘대향촌건설운동’이라는 기치하에, 다양한 학술포럼이나 활동가, 농민들, 소비자들도 참여하는 행사에서도 지속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현장에 기반한 정책 연구와 제안, 향촌건설운동의 역사와 이념 정립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대중들과의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원톄쥔 교수의 활동과 연구가 중앙과 각급 지역정부와의 일정한 긴장관계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정책에 반영됐듯이, 이들 그룹의 연구 성과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중국 정부의 정책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촌진흥정책의 얼개와 세부 내용을 살펴 보면, 소농/가족농 중심의 생태농업, 도농교류, 시민하향, 전통문화와 생태자원에 기반한 향촌의 6차산업 발전 등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신향촌건설운동의 15년에 걸친 실험 성과나 목표와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권위주의 정부의 성격상, 여전히 자본투하와 상명하달 지시를 통한 대중 동원이 정책의 주요한 실행수단인 반면, 신향촌건설 진영의 학자들은, 농민들의 재조직화를 통한 자발성과 주체의식 배양이 최우선 과제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어 방법상의 이견이 존재한다.

또, 이런 정책 흐름에 발맞춰 시민하향과 동시에 진행되는 자본하향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자아내게 하는 지점이다. 제한된 정부자원과 중앙, 지방정부의 급격한 채무 증가를 신경써야할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민간자본의 참여가 요구된다. 또, 도시의 부동산 개발에 의한 초과 이윤이 더 이상 녹녹치 않은 상황에서, 민간자본도, 투자처를 물색하며, 향촌진흥정책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편으로 물적 자본뿐 아니라, 문화자본을 갖춘 도시 중산층과 고학력자, 전문가 그룹의 참여가 향촌진흥 성패의 관건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미, 도시 생활의 경쟁적 환경에 지친, 젊은 중국인들이 귀농귀촌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하거나, 향촌생활경험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혹은 소비트렌드로 받아들이는 것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중국의 국내농촌관광 매출액이 이미 2018년 연말 기준으로 8천억 위안, 즉 한화 135조원에 상당하는 금액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국인민망 기사).

이때, 정부와 자본, 다양한 유관활동에 참여하거나 귀농귀촌한 중산층 시민 그리고, 현지 농민들이 협치를 이루고, 공정하게 과실을 나눌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신향촌건설 연구자들은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 다양한 정책 등을 연구하고 있는데, 필자는 매달 한편씩 이들의 연구 성과를 번역 소개하려고 한다. 이 글들이, 국내 독자들의 중국 사회에 대한 이해범위 편향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하고, 더불어, 양국 연구자와 활동가, 그리고 인민들의 보다 폭넓은 연대 및 교류의 출발점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해 본다.

[대산농촌문화] 통권 101호(2019신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하고 대산농촌재단의 허락을 득하여 본지에 실린 것임).

목, 2019/03/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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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원문보기]

 

 

 

'열심히' 투기 해도 GDP 1도 안 늘어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인구밀도가 높아서 땅값이 세계 최고라고?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부동산 투기는 1968년 2월 경부고속도로 착공부터 시작되었으니 투기의 역사가 대략 50년쯤 된 셈이다. 1970년대 이후 강남은 부동산 투기의 상징이 되어버렸고, 그 명성은 지금도,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50년 투기가 낳은 결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값이다. 우리나라의 2017년 GDP 대비 땅값은 무려 4.30배나 된다. 자료를 공개하는 OECD 국가들이 1~2배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땅값은 다른 나라의 두 배나 높은 셈이다. 1964년에 1.9조 원이었던 땅값은 2017년에 7,439조 원으로, 53년 동안 무려 3,915배가 올랐다.

 

세계 최고의 땅값은 생산과 분배와 소비 등 경제 전반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생산을 제약하고 분배를 악화시키며 하위계층의 소비를 억누르는 근인(根因)이 바로 세계 최고의 땅값이다.

 

혹자는 우리나라의 땅값이 비싼 이유를 땅덩어리는 작은데 인구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구 증가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진단인데, 멀리 갈 것 없이 네덜란드와 비교해보면 그 진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네덜란드의 인구밀도는 우리나라와 거의 같지만, GDP대비 땅값은 2015년 현재 1.47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네덜란드의 땅값은 우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세계 최고 지가는 만성적 부동산 투기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투기가 다른 나라보다 심각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부동산 소유에 대한 욕구가 유달리 강해서일까? 그럴 리 없다. 구조적 원인이 있다.

 

부동산 투기는 경제행위이고 경제행위는 투입보다 산출이 더 많을 것을 기대하고 하는 행위다.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기만 해도 매매하기만 해도 다른 경제활동에서 생기는 평균 수익을 크게 초과하는 이익이 생기는 것을 봐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투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동산 보유와 매각에서 생기는 이익을 환수 내지 차단하지 않는 한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를 잠재울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불로소득이다. 불로소득이 없으면 꼭 필요한 부동산만 소유한다. 서울 사람들이 수도권 근교의 농지를 소유할 필요가 없어진다. 기업은 사업에 필요한 부동산만 소유하려 든다. 그러므로 관건은 불로소득을 어떻게 환수하느냐이다.

 

부동산 투기는 개인적 관점에선 '노력'이지만 사회적 관점에선 '불로'

 

환수 방법을 논하기 전에 부동산의 보유·매각으로 버는 소득 앞에 왜 '불로'라는 딱지를 붙이는지부터 검토해보자. 여기서 말하는 불로소득은 매매차익과 매입가의 이자를 초과하는 (귀속)임대수익을 뜻한다.

 

부동산을 매입·보유·매각하는 행위는 '개인적 관점'으로 보면 '노력'이다. '불로'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런 행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GDP는 1도 증가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부동산을 통해서 돈을 벌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일찍이 경제학에서는 그런 행위를 비생산적 경제활동, 좀 근사한 말로 지대추구행위라고 불렀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부동산 불로소득은 건물이 아니라 토지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인공물인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반면 자연물인 토지는 가치가 (투기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동산 불로소득'의 정확한 명칭은 '토지 불로소득'인 것이다.

 

불로소득 환수·차단의 최선의 수단은 보유세 강화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토지 불로소득은 보유세로 환수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부동산 불로소득은 매매차익분과 지대상승분으로 나뉜다. 매매차익분은 매각 시 누리는 불로소득이고 지대상승분은 보유 시 향유하는 불로소득이다.

 

따라서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방식은 매매차익분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지대상승분에 대한 보유세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보유세를 강화하면 매매차익이 줄어든다. 부동산 가격이란 미래에 개인이 향유할 것으로 예상되는 임대가치(귀속임대가치도 포함)를 현재시점으로 할인해서 합한 값인데, 보유세가 개인이 향유할 임대가치의 크기를 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투기국면에서 보유세를 강화하고 시장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투기가 만든 거품이 빠지기 때문에 경제에 다른 변수가 없는 한 더 내려갈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6%(2016년)로 영국(0.78%), 프랑스(0.57%), 미국(1.04%), 일본(0.54%)의 1/6~1/3밖에 되지 않는다.

 

보유세 강화는 '장기 근본' 대책

 

그러면 보유세를 어떻게 강화하는 것이 좋을까? 강화를 논하기 전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보유세 강화는 '장기 근본' 대책이라는 점이다. 갑자기 세율을 높일 수 없기 때문에 '장기'이고, 부동산 문제의 뿌리를 건드리는 수단이기 때문에 '근본'인 것이다. 요컨대 보유세는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즉 시장이 침체되면 보유세를 낮추고 시장이 과열되면 높이는 세금이 아니라 그것과 무관하게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할 일은 실효세율의 목표를 정하고 그 실효세율을 달성할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를 목표로 잡아야 할까? 우리는 실효세율 1%가 적절하다고 본다. 실효세율 1%는 참여정부 때 형성된 사회적 합의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향후 10년 안에 실효세율 1% 달성을 목표로 잡고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적어도 실효세율 0.5%를 완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다음 과제는 로드맵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과세기준과 세율, 그리고 과세구간을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유세는 비례세가 아니라 누진세이기 때문에 현재 정부가 제공하는 통계를 가지고는 실효세율 1%를 향한 구체적인 과세기준·과세구간·세율의 로드맵 설계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몇 가지 개혁의 방향만 제시해 본다.

 

과세표준부터 고쳐야

 

첫 번째 과제가 과세표준 개혁인데, 여기에는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모두가 관련되어 있다. 과세표준은 공시가격·공시지가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해서 결정된다. 그런데 여기서 공정시장가액비율은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과세체계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단순해야 한다. 그래야 행정비용이 적게 들고 납세자들도 쉽게 납득하고 적응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과세표준 결정에 사용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은 과세체계를 복잡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실효세율도 낮추는 역할을 한다.

 

그 다음으로 공시가격·공시지가의 시가반영률을 85%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지금의 공동주택의 시가반영률은 70%이지만 개별주택은 60% 정도에 불과하고, 토지의 시가반영률도 60%에 그치고 있다. 물론 시가반영률을 100%로 할 수는 없지만, 최소 85% 이상은 되어야 한다. 이렇게 공정시장가액을 폐지하고 시가반영률을 85% 이상으로 높이면 종합부동산세뿐만 아니라 재산세의 세 부담도 늘어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보유세 실효세율은 지금의 2배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 된다.

 

상가빌딩의 종부세 대상자 대폭 늘리고 세율도 강화해야

 

다음으로 국세인 종합부동산세 개혁의 방향을 살펴보자. 먼저 할 일은 종합부동산세의 과세대상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주택의 경우에는 1주택자도 예외 없이 6억 원 아래로 끌어내려야 한다. 그뿐 아니라 종합부동산세 대상에서 제외된 임대주택도 다시 포함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에서 임대주택을 제외한 것은 투기를 조장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명백한 특혜다. 이렇게 해서 서울에 있는 대부분 주택이 종합부동산세 대상에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서울은 국가의 서울중심정책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혜택을 입어왔다. 그러나 그 혜택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바로 낮은 보유세다. 그러므로 서울의 상당수 주택이 종부세 대상에 포함되도록 하여 혜택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시장 원리에도 부합한다.

 

특히 재벌 및 대기업이 주로 보유하고 있는 빌딩의 부속토지에 부과하는 별도합산 대상 토지의 과세기준은 과감하게 끌어 내리고 세율도 강화해야 한다. 현재 별도합산토지의 과세기준은 80억 원이다. 주택이 6억 원(1주택일 경우 9억 원), 나대지 잡종지 등의 종합합산토지가 5억 원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특혜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빌딩의 건물분을 제외하고 토지분의 공시지가가 80억 원이 넘어야 하니, 시가로 따지면 빌딩 가격이 어림잡아 200억 원이 넘어야 겨우 종부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율도 특혜다. 현행 주택의 종부세 세율은 0.5~2%이고 종합합산토지는 0.75~2%인데, 별도합산토지는 0.5~0.7%에 불과하다.

 

동일한 가격의 종부세 세부담을 비교하면 특혜의 실상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가 200억 원 주택의 종부세는 4,549만 원, 상가빌딩은 197만 원, 토지는 1억 2,673억 원의 종부세를 각각 부담하는 것으로 계산되는데, 이것은 상가빌딩의 종부세 부담수준이 주택의 4.3%, 토지의 1.6%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기업의 생산 활동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라고 정부는 해명하지만,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기업의 비생산적 활동인 투기 행위를 조장하는 조치다. 더구나 주요 선진국들의 부동산 보유세 체계에서는 상가빌딩이라는 이유로 세제 상 혜택을 주는 구조를 찾아볼 수 없다(박준·박현. 2018. "비주거용 부동산 종합부동산세 개선방안." <공간과 사회> No. 63. 289; 293쪽).

 

요컨대 상가빌딩을 대상으로 한 종부세를 획기적으로 강화해서 과도한 특혜를 없애야 한다. 그래야 기업은 투기행위를 덜 하게 되고 생산적 경제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새로운 국세 토지보유세 신설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

 

기존의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고 모든 토지에 부과하는 새로운 국세 토지보유세를 신설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사실 지금의 국세인 종합부동산세는 여러 가지로 한계가 많다.

 

첫째는 불로소득의 진원지가 아닌 건물에까지 부과한다는 점이고, 둘째로 용도별 차등과세도 문제다. 주택 따로 별도합산토지 따로 종합합산토지 따로 나누어 인별 합산 과세하기 때문에, 더구나 농지 등은 분리과세로 종합부동산세 대상에서 아예 배제하기 때문에 여러 유형의 부동산을 두루 많이 보유한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따라서 새로 도입하는 국세 토지보유세는 용도 구분 없이 민유지 전체를 대상으로, 즉 비과세·감면을 폐지하고 인별 합산해서 과세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존립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걱정의 구체적인 근거는 출산률 저하다. 최근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2018년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3명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낮고, 인구 증가율은 0.4%로, 세계 평균 1.2%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들의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결혼하더라도 출산을 기피하는 중요한 원인에는 부동산이 있다. 부동산을 개혁하지 않으면 주거 불안정이 해소될 수 없고, 일자리도 생기기 어려우며, 출생이 일생을 좌우하는 나쁜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누차 강조했듯이 부동산 개혁의 핵심은 점진적이고 획기적인 보유세 강화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이 점을 잊으면 안된다. 부동산 개혁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

일, 2018/11/0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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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로티 한 장을 위해서 생산지인 인도네시아에는 2불을 지불하는데, 이를 미국 소비자는 왜 70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가?

* 사람들은 이같은 가격체계에 대해 당연히 경제학이 설명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금의 경제학 어디에도, 경제학자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실은 많은 사람들이 노벨상 경제학자가 주식해서 망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현실의 경제현상에 대해 경제학이 설명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담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을 발표하였고, 맑스는 1867년 자본론 1권을 출간하였다.

국부론에서 말하는 생산시스템은 사실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이 아니다. 그가 제창한 균형이론, 즉 보이지 않는 손의 신화는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으로 숭상하게 하고 있지만 정작 국부론에서 다루는 생산시스템은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공장제 수공업 시대를 배경이라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당연히 스미스는 1820년대 처음으로 발생한 경제공황에 대해서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을 터, 즉 보이지 않는 손, 균형이 깨어지는 상황이 거의 7~8년간이나 지속되고 이후 매 10년마다 반복되는 비정상(?)상황을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칼 맑스는 영국이 한창 자본주의 금자탑을 쌓고 있던 1860년대에 자본론을 썼다. 그가 목도한 경제공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발시키는 과정이었고, 그가 생각해낸 이윤율 경향저하의 논리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몰락의 길로 갈 것이라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150년, 맑스시대 영국이 경험한 자본주의 역사, 100년 보다 1.5배는 긴 기간을 지내 오는 동안, 자본주의는 이윤율 경향적 저하론과 무관하게 비교적 자~알 지내고 있으며, 도리어 그 경쟁 상대였던 현실사회주의를 경쟁에서 패퇴시켜 인류유일의 경제시스템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 우리는 자본주의와 경제학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담 스미스의 살아 생전에는 본격적인 자본주의가 채 시작되지도 않았었는데 그 시점에서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기본원리로서 고전경제학이 시작되었고, 그 숭고한 잣구의 한 점 오류도 없이, 경제학은 해마다 노벨상을 받고 있다.

맑스 사후 150년 간 자본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여 전 세계 80억 인류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생산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자본주의는 세계 유일의 경제시스템이며 어디에나 그의 제조공장을 만들 수 있고, 증권화를 통해 산업과 분리되어 있으며, 사람의 오감을 대신하는 기계적 장치로 인하여 자율 생산까지 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 10년마다 불황, 혹은 장기적 만성불황이 일어나고 있고, 전혀 망할 기색 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은 250년간 자본의 철옹성이지만 시민사회와 노동자들이 정치와 경제의 실제적인 소비자로 등장한 만큼, 그만큼의 지분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었다.

* 잠깐 다시 처음의 폴로티의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를 이야기해 보자. 여러분이 짐작하듯이 학생 때 잠시 안면이 있었던 노동가치설만 가지고는 인도네시아에서 미국까지의 그 험난한 과정을 설명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 사이의 엄청난 가치의 차이, 우리 주변에서 넘쳐나는 음식물과 생산이 많아 밭에서 썩히고 있는 농산물과 비교되는 수많은 아프리카 아동들의 굶주림, 이들에게 하루 1불이면 2~3명이 풍족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자본주의 경제학은 소비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왜냐하면 생산된 상품은 당연히 소비될 것이므로! 이는 맑스 경제학도 마찬가지이다. 즉 상품의 개념, 그 자체가 다른 상품에 의해 교환되어야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경제학의 출발점을 그대로 채용하고 있어서이다.

오늘날 인터넷 쇼핑이 오프라인 쇼핑을 압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자본주의 초반에는 모든 생산이 상업자본의 의한 주문생산이 이루어졌다. 즉 1700년대 말에서야 근대적인 소매점이 생겼고, 귀족이 아닌 일반 자본가에게조차 상시적 소비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이때부터 산업자본이 상업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그로부터 150년여가 지난 1900년대 초중반이후 노동자에게도 전면적인 소비의 기회가 주어진 대량소비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이제 인터넷쇼핑 시대, 유통의 힘이 생산을 압도하고 나아가서 소비가 생산을 압도할 준비가 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 2019년, 우리는 150년 전의 맑스는 상상하지 못했던 자본주의 세상, 생산과 분리된 자본의 시대, 국제금융의 시대, 새로운 노동에 의한 생산이 예고된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250년 역사를 통해서 발전해온 가치와 가격에 대한 사고를 보다 발전시켜야 할 때이다.

* 가치와 가격에 기본사고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탐험이 필요하다. 모든 사변이 과학적이려면 그 사변의 근거가 되는 환경을 반드시 고려하여 생각해야 한다. 선언이 말하는 1800년대 노동자들은 지금의 노동자와 많이 다르다. 근대교육이 없던 시절의 노동자들은 신문물과 과학에 대해서 가장 감수성이 높은 계층이었다. 현실세상이 변하는 만큼을 사변, 학문, 특히 사회과학은 따라 가지 못한다. 우리는 현재의 우리 주변의 것이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를 이해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더욱이 학문이라는 것도, 역사적 사실들도 지배적 계층입장에서 보고 싶은 것들만 보니, 지금 우리 주변의 현상들이 아무리 자연스러워도, 그의 기원을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현대 종교도 생겨날 시점에서는 최고의 과학이며 인간 사고의 최고봉이었다. 하지만 200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2000년 전의 사고체계를 우러러 숭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는가? 특히 산업혁명 이후 우리 인류는 새로운 종으로 거듭 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류는 자신만이 가진 것, ‘과학적 사고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참으로 게으른 종족이다.

* 일생의 노력으로 새로운 경제학적 사고를 시작해 보자. 자본주의 원리인 가격과 가치에 대해서, 맑스 사후 150년 지나고도 이윤율저하는 계속되고 있는지, 그리고 현실사회주의는 어째서 붕괴했는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는 현재 어떤 단계이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현대 자본주의 내부에 위치한 화산들은 어느 지점에 있고 어떻게 분출될 것인지 등을 힘 닿는대로 밝혀 보고 싶다. (‘힘되는만큼’에 방점!!! ㅎㅎㅎ)

 

월, 2019/03/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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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은 방러 임박?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뒤 북한과 러시아간 움직임이 분주하고 심상치 않다. 양측 고위 인사들의 접촉이 빈번해졌다. 하노이 회담 일주일 만인 3월 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북한과 러시아가 정부 차원에서 경제협력 문제를 논의하는 <북-러 통상경제·과학기술 협력 정부 간 위원회(북-러 경제협력위원회)> 제9차 회의가 열렸다. 14일에는 임천일 북한 외무성 부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부 아태담당 차관과 회담했다. 16일에는 러시아 상원 대표단이 평양을 찾았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이고 예정된 상호 방문으로 이해된다. 3월 17일이 ‘북러 경제.문화 협력 협정’을 체결한지 70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일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창선 부장은 모스크바에 나흘 머무는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3일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타나면서 언론에 포착됐다.

김창선 부장은 김정일.김정은 일가의 집사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요 정무를 보다가 막히는 일이 생길때면 김창선 부장을 불러 아버지 김정일때는 어떻게 일처리를 했는지 물어본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서실장이자 대외방문 의전 책임자로 알려진 김창선 부장이 모스크바에 나타났으니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으로 읽혀질만하다.

3월 23일 모스크바 세레메쩨보 공항에 나타난 김창선 부장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무대에 전격 등장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자 러시아도 김 위원장의 방러를 적극 추진했다. 지난해 5월 평양을 방문한 라프로프 외무장관은 김 위원장을 만나 9월 동방경제포럼도 좋고 편리한 시간에 러시아를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6월 러시아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크렘린에 따로 부른 푸틴 대통령은 재차 김 위원장의 방러를 요청했고, 9월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에 평양을 찾은 마트비옌코 상원의장도 김정은 위원장과 환담한 바 있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서울을 방문한 마트비옌코 상원의장을 단독 인터뷰했는데,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에 대해 마트비옌코 의장은 ”양국 지도자들이 만날 장소와 시간을 놓고 북러간에 긴밀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가까운 장래, 아마도 연말 전에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에 대해 많은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된 뒤 갑자기 김창선 부장이 모스크바에 나타나고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 언론에선 북한이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유대관계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무역협상을 앞둔 시점이라 중국은 운신의 폭이 좁은 만큼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자유로운 러시아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으로 분석한다. 이와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줄 선물이 마땅치 않더라도 미국을 긴장시키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김창선 부장이 이번 모스크바 방문길에 김 위원장의 방러 문제를 논의했는지, 논의했다면 구체적 방문 장소와 시기를 결정했는지, 결정했다면 이를 어느 시점에 공개할는지 등이 관심사로 주목된다.

 

(2) 북러 경제협력위원회

지난 6일 9차 ‘북-러 경제협력위원회’에 북한에선 김영재 대외경제상을 단장으로 수산성, 보건성, 철도성 등 여러 정부 부처. 기관 대표들이 정부 대표단으로 참가했고 러시아에선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극동개발부 장관이 이끄는 정부 대표단이 참석해 양국간 교역 확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북러 양국은 해마다 상대국을 오가며 경제협력위원회를 열고 있으며, 제8차 회의는 지난해 3월 평양에서 열렸다. 이번 회담에서는 ▶북러 교역 확대 방안과 루블화 결제 도입 방안 ▶두만강에 자동차 통행용 교량 건설 문제 ▶러시아내 북한 노동자 체류 문제 ▶나진~하산 복합물류 사업 추진 문제 ▶러시아에 대북 무역 전담 회사 설립 문제 등이 논의됐다고, 코즐로프 장관이 회담이 끝난뒤 언론 브리핑에서 밝혔다. 북한은 이 중에서도 두만강 자동차 교량 건설과 북한 노동자 체류 문제에 관심을 많이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두만강 철교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 2015년부터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통행용 교량 건설 협상을 벌여오고 있다. 북러 국경의 두만강 위에는 현재 북한 두만강 역과 러시아 하산역을 연결하는 기차가 지나가도록 철교가 놓여 있지만 자동차 도로용 다리는 없다. 코즐로프 장관은 “자동차 도로용 교량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타당성 조사를 주문한 상태이며 그 결과에 따라 (북측과) 사업 견적 문제와 건설 조건 등에 대해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교량은 길이 915m, 너비 14m, 2차선 도로에 하루 차량통행량은 500대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교량 건설에는 4천만 달러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측이 적극적인 반면 러시아측은 소극적인 편이다. 이미 벌려놓은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유엔 제재 등으로 소강상태인지라 러시아 입장에선 북러 국경에 또다른 건설 인프라를 추진해야할 필요성을 덜 느끼는 듯하다. 시베리아 석탄을 북한 나진항을 통해 한국에 보내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위해 러시아는 나진역과 하산역 54km를 개보수하는 사업에 7천만 달러를 투입해 2013년 9월 완공한 바 있다. 당초 나진~하산 프로젝트에는 한국 기업 컨소시움도 참여하기로 했었으나,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한국 정부의 대북 제재가 시행되면서 무기한 연기됐다.

러시아 건설현장의 북한 노동자들

코즐로프 장관은 또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문제도 논의했고, 특히 안보리 결의의 틀 내에서 북한 노동력을 계속해 이용하는 문제가 검토됐다고 밝혔다. 한때 3만 8천여명에 달했던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은 현재 9,800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하는데 (실제론 만 2천명 정도로 예상됨) 유엔 대북 제재에 따르면 올 12월까지 순차적으로 북한에 돌려보내야 한다.

2017년 9월 3일 실시한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가 9월 11일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는 다른 국가에서 북한 노동자 신규 채용, 고용을 금지했다. 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 미사일 ‘화성-15형’ 발사에 대한 응징으로 2017년 12월 22일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24개월 이내에 모두 송환시키도록 규정했다. 북한 정부로선 사활이 걸린 문제이고 러시아 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번 회의에선 어학연수생으로 북한 노동자를 받아 들인다거나 사할린에 기술자로 파견하는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모스크바 회의에선 이밖에도 러시아에 북한과의 무역을 전담하는 회사를 건립하고 러시아 내에 북한 상품관을 개설하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한다.

 

(3)북한의 전략적 도발

필자가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재직할 당시 북한은 전략적 무력 도발을 강도 높게 자행했다. 특히 2016년과 2017년 2년 동안에 집중됐는데, 3차례의 핵실험과 35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진행됐다. 다음은 2016~2017년 동안의 주요 무력 도발 일지다.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 북 “첫 수소탄 실험 성공”

3월 3일: 동해상으로 300㎜ 방사포 6발 발사

3월 10일: 동해상으로 스커드 계열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 발사

3월 18일: 동해상으로 노동계열 미사일 2발 발사

3월 21일: 동해상으로 300㎜ 방사포 5발 발사

3월 29일: 300㎜ 방사포 추정 발사체 1발 발사

4월 1일: 동해상으로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1발 발사

4월 15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1발 발사

4월 23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발 시험발사

4월 28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2발 발사

5월 31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1발 발사

6월 22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2발 발사

7월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발 시험발사

7월 19일: 동해상으로 노동 2발, 스커드 계열 1발 발사

8월 3일: 동해상으로 노동미사일 2발 발사

8월 24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발 시험발사

9월 5일: 동해상으로 스커드 계열 추정 미사일 3발 발사

9월 9일: 5차 핵실험, 북 새로 연구 제작한 핵탄두 위력 판정 시험 주장

10월 15일: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무수단 미사일 1기 발사

10월 20일: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무수단 미사일 1기 발사

-2017년  2월 12일: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서 동해상으로 북극성-2 미사일 1기 발사

3월 6일: 평북 동창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스커드 개량형 추정 미사일 4기 발사

3월 22일: 강원도 원산비행장 일대에서 미사일 1기 발사했으나 실패 추정

4월 5일: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불상 발사체 발사

4월 16일: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불상 미사일 발사를 시도했으나 실패 추정

4월 29일: 평안남도 북창 일대서 북동방향으로 미사일 1기 발사했으나 실패 추정

5월 14일: 평안북도 구성 일대서 미사일 1기 발사

5월 21일: 평안남도 북창 일대서 미사일 1기 발사

5월 27일: 장소 미상(북한 동쪽지역 추정) 지대공 미사일 발사

5월 29일: 강원도 원산 일대서 동쪽으로 지대지·지대함 복합 미사일 발사

6월 8일: 강원도 원산일대서 동해방향 지대함 미사일 수발 발사

7월 4일: 평안북도 방현 일대서 동해방향 미사일 발사 (화성 14형)

7월 28일: 자강도 무평리 일대서 동해방향 미사일 1기 발사 (화성 14형)

8월 26일: 강원도 깃대령일대서 동해방향 단거리 미사일 3발 발사. 이 중 2발 성공

8월 29일: 평양 순안 일대서 북태평양 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기 발사 (화성 12형)

9월 3일: 풍계리 일대서 6차 핵실험

9월 15일: 평양 순안 일대서 북태평양 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기 발사 (화성 12형)

11월 29일: 평안남도 평성 일대서 동해상으로 장거리탄도미사일 1기 발사

   김정은, ”신형 ICBM 화성-15형 발사 성공, 핵무력 완성 선언

2017년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불과 석달 뒤 2018년 3월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특사에게 비핵화 의지를 전격적으로 밝혔다. 2016~2017년 동안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로 끌어올린 것은 결국 핵협상에서 자신들의 몸값을 최대치로 높이기위한 계산된 전략적 도발이자 몸부림이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4) 러시아의 대응

1) 대북 금융거래 전면 금지

북한의 강도 높은 전략적 도발에 국제사회의 대응은 단호했다. 유엔은 2016년부터 2년 동안 모두 6개의 사상 유례없는 대북 제재안을 의결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도 이같은 국제사회의 흐름에 적극 동참했다. 러시아가 취한 대응은 대북 금융거래 전면 금지와 러시아내 북한 노동자 송환으로 압축된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단행한지 57일 만인 3월 3일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의 2270호는 ▷소형무기(small arms) 수입 금지 ▷북한을 들고나는 모든 화물에 대한 전수조사 의무화 ▷북한산 석탄, 철, 철광 수입 금지 ▷항공유 수출 금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 대폭 강화 등이 주요 골자인데, 70년 유엔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군사적 조치로는 가장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 결의로 평가됐다. 두달 뒤 5월 19일 러시아 중앙은행은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사실상 중단할 것을 지시하는 통지문을 산하 은행과 금융기관들에게 발송했다. 통지문의 내용은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의 개인.법인 소유 자산즉시 동결 ▷북한 은행들과의 송금 거래 금지, 북한에 새 계좌 개설도 금지 ▷북한 핵.미사일 개발 관련 러시아내 금융계좌 폐쇄 등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의 북한 노동자들

 

2)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

북한 노동자가 소련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46년 노동계약에 따라 사할린에 도착했을 때이다. 그후 연해주 일대 벌목 현장이나 건설 현장, 시베리아 석유개발 현장, 극동지역의 수산물 가공공장, 농장 등에서 일하고 있다. 그 수는 한때 4만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노동자들은 훈련돼 있고 규율을 잘 지키며 부지런하고 험한 작업현장에서도 일할 준비가 돼 있는 노동력이다. 러시아 특히 극동지역의 입장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것이 경제적 관점에서 매우 유리하다. 극동 연해주 일대에서 일하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 가운데 북한 노동자들이 단연 제일 우수하다는 말을 필자는 여러 러시아 지인들로부터 들은 바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해외 노동자들이 보내온 외화 수입이 연간 2~3억 달러에 달하니 괜찮은 소득원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이 받는 월 평균 급여는 500~600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중에서 충성자금 명목으로 본국에 송금하는 돈을 제외하면 노동자 본인이 월 100달러 정도 벌어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던 분위기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17년 9월 이후부터다.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는 다른 국가에서 북한 노동자 신규 채용, 고용을 금지했고 기존 노동자는 계약이 끝나면 연장을 못하도록 했다. 이를 의식한 러시아 정부는 2017년 11월 ‘북한 노동자 쿼터’를 25,000명으로 결정해 버렸다. 4만 수준이던 노동자가 40% 가까이 급감하는 것이어서 주러 북한 대사관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대외경제성 차관이 모스크바에 40일 이상 머물면서, “요즘 중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물밀 듯이 북한으로 돌아와서 북한에 일자리가 부족하고 외화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도와달라”고 읍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 12월에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24개월 이내에 모두 송환시키도록 규정한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가 채택되면서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가 계속 줄어들어 2019년 현재 9,800여 명이 된 것이다.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올 12월까지 북한 노동자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최근 들어 북중 접경 지역의 북한 노동자들도 잇따라 귀국길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북한 당국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화, 2019/03/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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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다. 샹탈 무페는 이 책을 ‘포퓰리즘 계기가 드러내는 현재 정세의 본질과 도전을 좌파가 시급하게 이해’하고, 지금이 좌파가 신자유주의 우파의 권력독점을 깨고 민주적 권력을 창출하는 최적의 기회임을 알리려 썼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무페는 왜 이토록 시급한 주장을 좌파를 향해 펼칠까? 무페에게 신자유주의가 지배해 온 지난 40여 년간 (무페는 자신의 분석을 서유럽으로 제한한다)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정치적 무능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변함없이 무능력한 정당들은 권력 장악을 위해 신자유주의 아래 금융 자본주의의 강제적 명령을 수용하면서, 정치를 우파와 좌파 엘리트 집단 사이 ‘중도적 합의’로 축소해 버렸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1985년에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쓸 때만 하더라도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무페의 생각은 이 정도로 절망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소비에트 해체 이후 사회민주주의 정당 스스로 신자유주의에 갇혀 대중주권과 평등이라는 민주적 이상 추구를 포기하고, 대중들의 탈정치화를 촉진했을 때, 무페의 생각은 크게 달라졌다.

사진: 한겨레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악화한 신자유주의 맥락에서 변질된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한 좌파의 새로운 과제를 주장한다. 이 새로운 좌파의 과제는 무능력한 기존 좌파의 회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통제불능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불평등 확산, 부채 증가, 나쁜 노동의 확산, 젠트리피케이션 심화 등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점점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약탈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또한 우파 포퓰리즘이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 사회적 약자 차별 등 반인권적이고 배타적인 가치를 내세워 헤게모니를 장악해 가는 것을 저지하고 민주적 가치를 복원하는 대안 헤게모니 세력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전통적 좌파처럼 노동자 계급을 절대화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노동자 계급’ 정체성은 다양한 가치와 어떻게 접합되는가에 따라 민주적 가치와 부딪힐 수도, 가장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주체가 될 수도 있다. 노동자 계급은 모든 세계시민의 수평적 관계를 나타내는 정체성이 되거나, ‘국민’과 결합하여 가장 폐쇄적인 정체성이 되는, 즉 좌·우파 포퓰리즘 어느 특성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좌파의 과제는 신자유주의라는 전 지구적 신조와 헤게모니가 유기적 위기에 처하고, 정치사회적으로 도전받는 ‘포퓰리즘 계기’에 좌파가 전통적 전략이 아닌 새로운 정치전략을 통해 시급히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전략은 곧 좌파 포퓰리즘 정치이다. 우선 무페는 포퓰리즘이란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리하는 정치적 경계를 구성하고, ‘권력자들’에 맞선 ‘패배자들’의 동원을 위한 담론 전략’이라는 라클라우의 정의를 따른다. ‘국민’, ‘민족’, ‘인종’처럼 수평적으로 확장될 수 없는 폐쇄적이고 차별적인 정체성과 결합한 우파 포퓰리즘이 정치사회적 배제와 차별화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시도라면, 좌파 포퓰리즘은 이에 맞서는 전략이다. 좌파 포퓰리즘은 한가지 정체성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경계를 형성하지 않고, 평등주의적 대중주권을 내세운다. 이 정체성은 다른 정체성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 등가 관계를 형성하고 이 관계를 보다 다양한 정체성과 민주적 가치로 끊임없이 확산한다. 이를 통해 ‘대중’의 새로운 민주적 정체성이 구성된다. 따라서 좌파 포퓰리즘은 전체주의적 경향의 우파 포퓰리즘과 달리 하나의 정체성을 절대적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 반본질주의 입장에서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을 추진한다. 이 새로운 정체성의 ‘이름’이 바로 새로운 헤게모니, 그리고 이 특수한 좌파 포퓰리즘의 이름이 된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대중’은 소유적 개인주의 및 대의제의 자유주의와 끊임없이 경합하며 탈정치와 과두제의 포스트 민주주의에 저항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서유럽을 먼저 장악해가는 우파 포퓰리즘이 대중을 사로잡은 공감 방식이다. 이것은 좌파의 무능력이기도 하다. 그간 좌파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승리를 그 지지자들 탓으로 돌리면서, 우파가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은 방식에서 교훈을 얻기를 꺼려했다. 무페는 ‘자신들의 문제에 신경 써주는 유일한 자들이 우파 포퓰리즘 정당뿐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이 정당들에 마음이 끌리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고 본다. 물론, 혐오와 차별이 보편 가치가 될 수 없기에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수사적 표현은 진리와 충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좌파가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목표를 추구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언어적 표현으로 대중과 정서적 공감을 해야 한다.

잘못하면 포퓰리즘의 이론적 논쟁은 걸리버 여행기의 달걀 논쟁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훈고학적 논쟁보다 어떤 이름으로 드러나든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통한 좌파 포퓰리즘 정치의 출발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배제와 차별의 우파 포퓰리즘의 승리가 분명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살아남은 모든 자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교수신문, 2019년 3월 12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가 공동게재에 동의하여 실린 것임).

 

이승원

서울대·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월, 2019/03/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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