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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2), 어떻게 중립평화외교를 확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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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2), 어떻게 중립평화외교를 확립했나

익명 (미확인) | 수, 2017/07/12- 14:59

지난 5월, 핀란드의 9대 대통령 마우노 꼬이비스토가 사망했다.

핀란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이었던 그는 재임 중 복지국가, 개헌, 중립평화외교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독립 100년 만에 이뤄낸 핀란드의 성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의 재임 중 성과를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으로 나눠 2회에 걸쳐 싣는다. 

1. 국내정책 편: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1), 어떻게 복지국가와 개헌을 이뤄냈나 

2. 대외정책 편: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2), 어떻게 중립평화외교를 확립했나

대통령으로서 마우노 꼬이비스토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빠시끼비-께꼬넨 노선’(Paasikivi-Kekkosen linja)로 알려진 전임 대통령들의 중립 평화 외교 노선을 한 단계 심화 발전시킴으로써 동서 냉전의 해체와 유럽 통합 등 국제질서의 대전환기를 지혜롭게 헤쳐나간 일이다.

동과 서 사이에서, 중립 평화 외교의 계승자

폴란드, 체코, 헝가리, 발트3국, 우크라이나 등 다른 ‘경계국가’(border country)들처럼 핀란드도 동과 서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소로 인해 20세기 내내 내전과 전쟁, 냉전 제약 등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의 평화조약 협상을 주도했던 외교관 출신 대통령 빠시끼비는 핀란드가 ‘지리’(geography)를 바꿀 수는 없는 이상 “동쪽의 이웃과도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며 서방과 소련 사이의 중립적 외교 노선을 천명했다.

보수당 출신이지만 합리적 실용주의자였던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는 말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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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중립평화외교의 기틀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빠시끼비 대통령(사진 왼쪽)과 께꼬넨 대통령

빠시끼비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오른 께꼬넨도 같은 노선을 견지했다. 그는 핀란드는 국제관계 문제의 ‘재판관’(judge)이 아니라 ‘의사’(doctor)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권 초기의 정치적 불안정과 1950~60년대의 대소 관계 위기(소련이 민주화와 인간적 사회주의를 요구하는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 진압할 당시 핀란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등을 집중된 권력의지와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극복한 께꼬넨 대통령은 빠시끼비의 소극적 중립외교 노선을 한층 업그레이드된 적극적 평화외교로 발전시켰다.

실제로 중도우파인 농민당(현 중앙당) 출신이면서도 적극적 대소 우호 정책을 펼친 그는 후르시초프, 브레즈네프 등 소련 서기장들과 사우나 외교를 통해 막역한 친구 관계를 맺었다. 이 시기 오히려 소련으로 치우친 듯 보였던 핀란드 정부의 대외 중립 외교 정책은 서구의 외교 이론가들로부터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 불리며 비판받기도 했다.

재임 초기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그 진의를 의심할 정도로 소련과의 전폭적 신뢰 관계를 구축한 께꼬넨은 국내 권력 기반이 안정되고 세계적인 데탕트(해빙) 물결이 시작되던 1970년대 적극적 평화외교정책을 추진한다.

미국과 소련, 서구와 동구 사이의 소통의 메신저로서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그 결실은 역사적인 1975년의 헬싱키 평화협정 체결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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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7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는 동서 양 진영의 34개 나라 정상이 ‘최종의정서’ 체결을 통해 ‘인권 존중’과 ‘국경 및 체제 존중’을 맞바꾸는 헬싱키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Muvx&articleno=78138…®dt=20160403185527)

20세기 핀란드를 대표하는 건축가 알바르 알토(Albar Aalto)가 설계한 헬싱키 핀란디아홀(Finlandia Hall)에서 개최된 <유럽안보협력정상회의>에 미국의 닉슨 대통령,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 등 동서 진영의 34개국 정상이 한데 모여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절차와 방안을 담은 협약에 서명한 것이다. 당시 동독과 서독의 수상도 함께 참여하여 회담하는 등 큰 성과를 올린 역사적 정상회의 개최로 핀란드의 국제적 위상도 한껏 고조됐다.

그러나 아직 냉전 질서는 강고했고, 미소 간의 핵무기 군사경쟁 등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께꼬넨 대통령이 연로한 나이와 체력 부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 연거푸 나선 데는 불안정한 국제관계에 대한 (독단적) 책임감도 작용했다. (당시 쓴 일기들에서 그는 종종 세계정세의 불안정한 발전에 대한 우려와 책임감을 토로하고 있다.)

께꼬넨의 사임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꼬이비스또에게는 빠시끼비와 께꼬넨으로 이어진 중립 평화외교를 한층 발전시키는 동시에 국제질서의 대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이중의 과제가 주어졌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신보수주의를 표방한 레이건 정부가 들어섰고, 소련은 이내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주도하는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변화의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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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비스토 대통령은 ‘빠시끼비-께꼬넨’으로 이어지는 중립 평화 외교를 계승 발전시켰다. 1990년 미소 정상을 헬싱키로 초청해 공동 정상회담을 개최한 일은 그의 가장 큰 외교적 업적으로 꼽힌다.

꼬이비스토 대통령은 핀란드 공산당과의 경쟁 관계에 있는 핀란드 사민당에 대한 소련 권부의 전통적 불신을 극복하며 외교적 성공의 첫 발걸음을 뗀 뒤, 점차 미소간 핵무기 감축과 평화 협상을 촉진하는 메신저 겸 중재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그는 러시아어를 직접 익히고 소련의 고위 인사들과도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련 내부의 사정에 정통했고, 레이건과 부시 등 미국의 대통령들은 그의 해박한 식견과 외교적 역량을 존중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1990년 미국의 조시 부시 대통령 내외와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내외를 헬싱키로 초청해 공동 정상회담을 개최한 일은 그의 외교 활동 중 백미로 꼽힌다.

대전환기, 유럽통합으로 향한 길

1980년대 후반에는 세계정세가 급변하면서 중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 그리고 1991년의 군사쿠데타 실패에 이은 고르바초프의 실각과 소련 해체 등이 꼬이비스토 대통령의 재임 2기에 발생했다.

사태는 꼬이비스토의 예상을 뛰어넘어 훨씬 빠르고 급진적으로 전개되었다. 대소관계의 안정적, 평화적 관리에 최우선적 역점을 둬왔던 전후 핀란드의 외교안보 정책에 첨예한 도전 과제가 제기된 것이다.

꼬이비스토는 신중하게 사태를 관찰하며 핀란드 외교정책의 전환을 준비했다. 우선 소련 해체 직후인 1992년, 1948년부터 체결해온 소련과의 ‘우호협력⦁상호지원조약’의 연장을 중단했다.

냉전 시기 이 조약이 부과한 정치 군사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뒤에는 서방으로 눈을 돌려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했다.

핀란드는 1994년 국민투표를 통해 EU 가입을 결정했다. 100년 전 러시아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핀란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군림한 소련이 부과한 제약에서 다시 온전히 벗어나 새로운 초국적 정치경제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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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비스토는 ‘전환기의 대통령’이었다. 독일 통일과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자 그는 외교 전략을 전환해 핀란드의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 성사시켰다.

꼬이비스토의 뒤를 이은 아흐띠사리, 할로넨 대통령도 유럽연합과 UN 등 국제무대에서 핀란드의 평화 인권 외교를 지속, 확대하며 변화된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들을 수행해냈다. (아흐띠사리는 2008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10년대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해 크림반도를 일방 병합하는 등 유럽 외교안보 질서에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고, 현 핀란드 대통령 니니스뙤(보수당, 2012~재임 중)는 국제사회의 요청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중재하는 등 2000년 헌법 질서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꼬이비스토의 유산이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적 혁신과 통합을 위한 리더십

마우노 꼬이비스토 대통령이 서거한 지 2주 뒤인 2017년 5월 25일(목) 오후 1시부터 헬싱키 대성당에서 부인 뗄레르보와 딸 아씨(Assi Koivisto) 등 가족과 친지, 그리고 전현직 대통령들과 현 총리 유하 시삘라(Juha Sipilä)를 비롯한 삼부 요인과 각국 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한 장례 미사가 거행되었다.

생명을 다한 그의 육신은 하얀 바탕에 파란 십자가와 붉고 노란 사자 문양이 새긴 핀란드 국기로 감싼 관에 담겨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대성당을 출발한 장례 차량이 헬싱키 대학, 상원 광장, 정부청사, 중앙은행, 대통령궁, 의회를 지나 묘지가 있는 히에따니에미(Hietaniemi) 공원으로 향할 때 거리에 나온 수만 명의 시민들은 조용한 침묵의 눈길로 깊은 존경과 추모의 인사를 보냈다.

청명한 북구의 초여름 하늘 아래 신록으로 빛나는 자작나무 가지들이 군악대의 연주를 실은 바람결에 고요히 나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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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5일 꼬이비스토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우르호 께꼬넨 대통령 옆 자리에 그가 묻힌 헬싱키 국립공원 묘소에는 시민들의 참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이 글의 필자가 묘역을 방문한 2017년 6월 14일의 풍경.

어린 나이에 직업 활동을 시작하고 전쟁에 참전했던 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중앙은행장, 재무장관, 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되어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통찰하며 핀란드형 복지국가, 합의 민주주의, 중립 평화외교를 완성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은 유라시아 대륙의 맞은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아직 20세기가 강요한 내전과 전쟁 상태를 완전히 종식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관점이 정치적으로 온전히 대표되는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현대 자본주의의 사회구조의 변동에 대응하는 역동적 복지국가 시스템을 수립하지 못했다.

대통령 탄핵과 촛불 시민혁명이라는 비상한 계기를 통해 등장한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시민들이 보내는 높은 기대는 동시에 한국사회가 처한 엄중한 위기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검찰, 국정원, 언론 개혁 등 부패한 구체제(ancien régime)의 청산과 극복, 경제사회적 불평등 해소 및 지속가능한 복지사회 건설, 한반도 분쟁 완화 및 평화공존체제로의 전환, 헌법 개혁과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민주주의 질서의 재구성 등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탁월한 역량과 리더십을 발휘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의 저자인 서현수 박사는 지난 5월 핀란드 땀뻬레대학에서 핀란드의 의회정치와 시민참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여기(☞Reaching Out to the People)를 클릭해 다운받을 수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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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9/2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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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9/2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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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잃은 것처럼 문재인을 잃을 수 없으니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는 문빠들의 논리...참 희한한 논리다. 문재인이 문빠들이 지켜야 할 만큼 유약하고 허약하다는 반증인가? 정치인이 국민을 지켜야 하는 거지 국민이 정치인을 지켜야 한다는 건 모순이며 어불성설일 뿐이다. 문재인은 트럼프의 등 뒤에서 김정은에게 압박을 하고, 아베에겐 위안부졸속합의 폐기는 커녕 오히려 언급을 안하기로 하고, 시진핑에겐 따지지도 못하고 트럼프에게 싸드보복에 대해 시진핑에게 얘기해 달라는등,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일 뿐이다. 그래서 지켜야 하는 걸까? 이런 무능하고 무력한 자를? 그렇게 지켜서 그 다음은 뭔가? 미국의 식민지임을 인증하고 일본과 중국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는 약소국임을 인증하고, 김정은에 대해서도 미국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허수아비를 왜 그렇게 지켜야 하는 걸까?
월, 2017/09/2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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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대한항공 총수 가족들이 총출연하여 매스컴을 장식했던 유별난 갑질과 밀수입 및 불법행위 등에 대해 여전히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들 가족들에 대한 형사처벌의 수준과 경영권 배제여부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돌출적이고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배경을 조양호 가족들만이 지닌 못된 관행과 버릇으로 제한하여 볼 것인지, 아니면 독점과 특혜로 점철되어온 개별 재벌 및 이에 결탁된 해당 공조직의 부패문제로 확장해서 접근할 것인지, 더 나가서는 한국 현대사에 뿌리를 내린 적폐와 봉건적 유제의 청산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개혁적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할 매우 중요한 지점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당연히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문제를 단순히 개별기업의 범위를 넘어서 한국사회가 추구해 가야하는 미래를 위해 중요한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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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한국사회를 전향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몇 번이나 놓쳤다. 우선 48년 9월 제헌국회에서 의결하고 공표된 반민특위법을 통해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에 부역한 반민족적이고 기회적인 출세주의자들을 처단하고 그들이 형성해온 물적 조직적 기반을 해체하여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웠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권유지에만 눈이 먼 독부 이승만에 의해 자행된 초법적 공갈과 협박으로 무력화 되었던 아픈 역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87년 민주화 대투쟁을 통하여 1961년 이래 기존의 군부개발독재에 의해 누적된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의 기득권 체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과 시민들의 참여와 합의의 기반위에서 출발할 기회가 있었으나, 양 김씨의 분열과 뒤이은 IMF 사태로 인해 재벌 등 독과점구도가 약화되기는커녕 국내의 기득권 체계와 국제적 자본이 결탁하여 신자유주의적 수탈체계를 강고하게 진행하여 왔다.

젊은 세대들은 절망속에 이를 헬조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지난 2016/7년 간 시민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던 남북의 적대적 대립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 수구적 정치집단을 압출시킴으로써 대대적인 적폐청산과 변혁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부터 문재인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손잡고 새로운 역사로 진입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비이락처럼 돌출한 대한항공 총수 조양호 가족의 패악적이고 불법적 행위에 대해 단호한 대응으로 기득권 체계에 갇혀있는 한국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해 중대한 변혁을 가져올 기회로 삼아야 하며, 단순한 형사적 처벌과 일시적인 경영권 배제의 수준을 넘어서서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실험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한항공의 역사와 지배구조

1962년에 설립되어 국내선을 주로 운용하던 국영기업 대한항공공사에 적자가 계속 누적되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6.25동란과 월남전의 군수물자 수송사업으로 급성장한 한진상사 조중훈 회장에게 이를 대신 인수하도록 강요하여 1967년 9월에 한진상사 산하에 민항인 대한항공이 출범한다. 태극문양을 단 국적 비행기가 해외로 나는 것을 갈망했던 박정희는 적자투성이 대한항공공사의 인수를 거부하던 조중훈에게 권총을 뽑아들고 인수를 강요했다는 비화를 남기기도 했다. 이를 뒤집어 이야기하면 선정된 민간기업에게 독점을 허용하고 수많은 특혜를 제공하면서 대한항공을 적극 육성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70년대 이후 중동건설의 붐으로 해외인력 및 자재 송출의 항공수요가 많아지면서 성장을 거듭하였고, 김영삼 정부의 해외여행 자유화로 일약 세계 20위권의 항공회사로 비약한다. 세계최초로 A300편을 도입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고 2000년 중반에는 화물수송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7년 기준으로 자산규모가 23조를 넘고 있으며, 매출액 11.8조를 실현하였고 8% 수준의 영억이익률에 종업원 18,550여명과 20여 개의 난삽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배구조를 보면 1대 주주인 주식회사 한진칼이 29.96%로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민연금이 12% 수준의 지분으로 2대 주주인 셈이다. 한진칼의 주주 구성을 살펴보면 조회장이 17.84%, 아들인 조원태가 2.34 %, 말썽의 중심에 섰던 조현아 조현민 두 딸이 각각 2.31%와 2.30%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친지의 특수관계 총지분율이 29.8%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항공의 주가수익배율(PER)은 3.9배로 국내기업의 KOSPI 평균인 9.9배에 한참 미달하고 있고, 동종의 경쟁업체들인 싱가포르 항공 22.3배와 호주 콴타즈 항공 11.2배의 15-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가수익배율이 이처럼 부실한 것은 조회장 일가가 개인적인 횡포와 부정뿐만 아니라 경영능력에 있어서도 국제적인 수준에 한참 미달임을 보여주고 있다. 연전에 문제가 된 계열사 한진해운 역시 능력이 부재한 며느리에게 경영책임을 맡기면서 결국 매우 소중한 한국 국적의 해운사 하나가 홀연히 사라진 경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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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투데이

이러한 배경과 중첩하여 기득권과 독과점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과 변혁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2018년 한국사회 과제상황을 고려하면, 부적격임을 스스로 연출한 대한항공의 총수가족 처리문제는 단순히 형사적 처벌과 일시적인 경영의 배제를 넘어서서 한국사회의 중심과제인 재벌체제에 대한 예행적 모범적 대응방식의 실험으로 진행을 구상해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국민연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이 한국의 간판 재벌 기업들의 경영과 지배구조의 의결과정에 반드시 참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연기금사회주의’논쟁은 기득체계를 대표하는 재벌과 자본가들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으로 한마디로 한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권력유착과 특혜의 과정에 무지한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다.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이래 인플레를 가장한 강제저축, 민족의 자존심을 팔아 들여온 대일청구 자금, 수천 명의 젊은 생명을 바친 월남파병 속에 전개된 이권, 밀수 및 삼분사건 등 온갖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이룩한 축재, 경제 쿠데타로 불리는 8.3 사채동결, 유신헌법과 군부독재를 통한 악랄한 노동운동의 탄압, IMF 이후 대기업에 투입한 엄청난 구제금융 등 한국사회가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자원의 특혜와 혜택을 누리면서 형성된 것이 오늘날 독과점의 재벌기업들과 기득권 체계이다. 이제 시대를 달리하여 산업과 경제운용의 성과를 역차별적으로 국민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자 시대의 요청이며, 이에 연기금과 기관투자기관들은 마땅히 능동적으로 부응해야 한다.

한진칼의 경우를 들여다보면 조회장 일가의 특수 지분 29.8%에 대응하여, 국민연금이 11%, KB자산운용이 10%, 한국투자자산이 5% 수준을 가지고 있어 주요 기관투자자 지분이 26%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더하여 대한항공 직원과 일반시민들이 합세하여 한진칼 지분을 집중 매집하여 조회장 가족지분을 훨씬 능가하면 조회장 일가들의 경영권 참여를 항구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필자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한항공의 노조 또는 직원회의가 중심이 되어 한진칼 주식 매입이라는 대대적인 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만약 대한항공 직원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기에 전문성이 부족하면, 경실련 등 시민단체 누군가가 구심점이 되어 대한항공 직원과 더불어 시민들이 대거 참여하도록 독려하면서 한진칼의 지분에 대한 매집운동을 전개하고 매입한 지분의 권한을 몽땅 위임받아 기관투자자들과 연합하면서 문제가 된 조씨 가족을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해당 산업에 밝은 전문경영인의 새시대를 열어야 한다.

한마디로 향후 언제라도 사회적 문제가 되는 재벌기업은 연기금등 공적 투자기관과 시민들이 연대하여 ‘국민의 기업’으로 재탄생시키는 첫걸음을 시작하여야 한다. 물론 실천 가능한 더욱 좋은 아이디어나 방식이 있으면 필자는 언제라도 흔쾌히 사재의 일부를 털어 새로운 제안에 참여할 것이다.

 

경제 운용의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출범이 책임경영에 대한 경험과 역사가 미천한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하지만, 대한항공이라는 기업의 적당한 규모와 항공수송이라는 특수분야라는 점을 고려하여 보면 전문경영인 체제의 도입을 실험적으로 과감하게 도입하고 진행할 가치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국민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재벌그룹에 소수 족벌의 가문이 전횡적이며 편법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을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아니 된다. 이에 때마침 사회적 문제로 제기된 대한항공을 예로 삼아 새로운 출발과 가능성의 계기를 삼아야 한다.

시야를 넓혀서 보면,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심각한 위기를 논하는 이 시점에서 회사의 지배구조를 규정하는 주식회사 방식의 회사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시작해 봄 직하다. 현재의 유한책임으로 애매하게 규정된 대주주의 경영참여 방식은 반드시 공식적이며 법적 지위를 강제적으로 부여하고 이에 따른 결과에 대해 무한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경영참여권을 제한하고 다만 합의된 수준에서 이익 공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만 허용해야 한다.

더 나가서 회사의 경영권과 이익처분권을 오로지 자본 중심으로 결정하는 방식에서 자본과 노동과 기술과 소비자와 해당사회와 환경단체들이 공히 참여하여 합의하는 공동결정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본인이 일생동안 성취한 성공과 부는 살아생전에는 당연히 향유할 권리를 갖되, 죽음을 앞두고는 그동안 형성한 재산의 기여를 자신이 속한 지리 자연과 해당 사회와 함께 나누는 것이 마땅하기에 일정액 이상의 재산전체를 의무적으로 사회적으로 상속시키는 것도 연구해야 할 주제이다. 

관행적이며 습관적 입장과 관점으로는 격변하는 현하 산업사회의 구조 이행과 경제 현안을 해결할 수 없음이 명증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 현상이 이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21세기의 경제운용에 대한 키워드는 배분과 순환이며 국가의 조세정책이 핵심을 이루게 된다. 보유세 등 자산세를 누진적으로 강화하여 자본의 탐욕을 규제하고 시장이 갖는 균형과 자원의 배분기능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에서, 경제활동 영역에 참여 – 협력 – 혁신 – 공유 – 포용 – 분배와 소비의 순환 과정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면 새로운 변화가 형성되고 지난 수백 년간 산업시대에서 형성되어 왔던 직업과는 질적으로 다른 형태로 미래의 일자리들이 제3의 섹터에서 우후주순으로 자라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현실의 변화를 바라보아야 한다.

월, 2018/06/18-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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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촛불 영상입니다

월, 2017/09/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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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25일 서울 종로구 kt스퀘어 앞에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한미연합연습과 북 핵실험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09.25.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월, 2017/09/2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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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전문 그룹 민주시민들을 위한 모임에 일제를 찬양하는 놈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김정은을 자신의 동료라며 우기며 인신공격을 만행하는 쓰레기들의 집합소입니다. 군복압는 불법 어린 젖먹이, 과대망상 대인관계 문제자, 인터넷상에서 인신공격하다가 경찰에 입건된 놈들까지 별종들이 모인곳입니다. 다름아닌 제가 이 글을 올린 이유는 이 그룹이 우리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그룹을 공격한다고 합니다!!! 바로 가입해서 공격합시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힘을 보여줍시다. 적폐를 청산합시다!
월, 2017/09/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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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사드배치 반대론자를 중심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군사적 효용성에 의구심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25일 공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사드체계의 군사적 효용성'을 주제로 한 공청회를 열었다. 사드특위는 사실상 사드배치 반대입장을 가진 의원들의 모임
월, 2017/09/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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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철회 성주촛불 440일 with CameraFi Live
월, 2017/09/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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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에 참여하는 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으로부터 경찰 개혁의 방향에 대해 들었습니다. #국가폭력 #백남기 #쌍용자동차 #강정 #용산참사 #밀양 #가톨릭교회
월, 2017/09/2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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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나라. 가장 전쟁을 많이 일으키고 무기 팔아먹은 나라. 우리나라에 주둔하여 전시작전권도 가져가고 안돌려주는 나라. 기업 투자하라고 무기 사라고 사드 배치하라고 명령하는 나라. 식민지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좋다는 호갱님들의 나라 우리나라. ≪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 미국-1 ≫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호전적(好戰的)인 국가다. 미국처럼 전쟁을 많이 해본 나라도 없고, 좋아하는 나라도 없으며, 잘하는 나라도 없다. 전쟁을 통해 나라를 세웠고,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으며, 전쟁을 통해 초강대국이 되었고, 전쟁을 통해 세계 패권을 유지해 왔다. 첫째, 미국은 1776년 독립 선언 이후 2016년 현재까지 240년 가운데 무려 219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전쟁을 치르지 않은 해는 8.8%인 21년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2016년 현재까지 전 세계 150개 이상의 지역에서 약 250개의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 가운데 200개 이상의 전쟁이 미국에 의해서 일어났다. 참고로 20세기에만 약 1억9000만 명이 전쟁으로 죽었다. 셋째, 미국은 2016년 세계 각지에 약 1000곳의 군사 기지를 운영하며, 150개 이상의 국가에 15만 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시켜 놓고 있다. 일본에 5만2000명, 한국에 2만5000명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8만 명 이상, 독일에 3만7000명, 이탈리아에 1만2000명 등 유럽에 6만 명 이상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 멕시코 : 원주민 학살의 역사 > 멕시코와의 전쟁을 전후로 미국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디언'이라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수백만 명 이상 죽었다.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운 '개척'일지라도 원주민들에겐 참담하고 끔찍한 학살이었다. 역사는 대개 승자가 쓰기 마련이며 패자의 기록보다는 승자의 기록이 퍼지고 오래 가기 마련이다. 우리가 미국의 '서부 개척'이라는 승자의 용어를 쓰려면, 일본의 '한반도 진출'이라는 승자의 용어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며 '한반도 침략'이라는 패자의 입장을 주장하려면, 미국의 잔인함을 비판하며 '원주민 학살'이라는 패자의 처지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 스페인 : 선민의식과 조선에 대한 배신 >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에서 1895년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미국 정부는 쿠바에 투자한 미국인들의 보호를 명목으로 1898년 쿠바에 해군 함정을 보냈다. 곧 이 함정이 원인 불명의 폭발로 침몰되자 미국은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하고 이겼다. 전리품으로 거의 모든 스페인 식민지를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지도자들이 내세운 게 선민의식이었다.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인종이 기독교 문화와 그를 기반으로 발전된 서양 문명을 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미개한 유색인종들을 개화시키는 것이 도리요, 의무라고까지 주장했다. 참고로, 1898년 쿠바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함정의 폭발은 무려 73년이 흐른 1971년에야 스페인군의 기뢰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일러실의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졌다.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해외로 확장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1905년 태프트-가쓰라 비밀 협정을 맺었다. 태프트 미군 장관이 식민지 필리핀 시찰에 앞서 일본의 가쓰라 총리를 만났다.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통치를 양해하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용인한다고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이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을 맺자, 서양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1882년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었던 미국은 가장 먼저 조선을 떠났다. < 일본 : 고립주의와 중립주의에서 국제주의로 > 1935년 히틀러의 독일은 군비 증강에 착수하고 주변국들을 위협하는 한편,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동원령을 내리고 에티오피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중립법을 제정했다.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중립을 지킬 뿐만 아니라 교전국에 대한 융자와 전쟁 물자의 판매까지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이에 맞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1940년 곤경에 처한 영국이 협력을 요청하자 미국은 중립법을 피하고 무기 대여법을 통해 영국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1941년 일본이 하와이를 공격하자 미국도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며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1945년 7월 인류 최초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8월 일본에 터뜨림으로써 전쟁을 끝냈다. 핵무기에 따른 조선인들의 피해도 매우 크고 끔찍했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 약 7만 명이 방사능에 노출되고 4만 명이 폭사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미국의 외교 정책은 세계 패권을 추구하는 국제주의로 바뀌었다. 유럽 열강들이 두 차례 대규모 전쟁으로 국고를 탕진하며 쇠퇴하는 터에, 세계 제1의 국가로 솟아오른 미국이 소극적 고립, 중립주의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국제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 소련 : 공산주의에 대한 봉쇄와 저지 > 제2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미국이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제1이 되었는데 곧 미국에 맞서는 나라가 나타났다. 자본주의 멸망을 추구하며 세계 제2위로 오른 사회주의 소련이었다. 미국은 한반도가 그리스나 터키보다 전략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여겨, 1947년 초부터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하며 물러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1947년 9월 미소 공동위원회 회의를 일방적으로 결렬시키고, 10월 한반도 문제를 미국 외교의 뒷마당이랄 수 있는 유엔에 떠넘겼다. 그리고 19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이끌었다. 국제 관계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 영원한 것은 오직 '국가 이익'이다.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소련과 손잡고 독일과 일본에 맞서 싸웠지만, 전쟁이 끝난 뒤엔 연합국이던 소련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적국이었던 독일과 일본까지 우방으로 만들었다. 1947년부터 안으로는 국가안보위원회 (NSC), 중앙정보국 (CIA), 그리고 합동참모본부 등을 만들고 밖으로는 미주기구 (OAS),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등의 창설을 주도하며 소련과의 냉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 한반도 : 60여 년 지나도 끝나지 않는 전쟁 > 1950년 6월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자 트루먼은 유엔 안보리를 소집했다. 그리고 남한이나 대만이 공산화하면 "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이 합법적이고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 직접적 위협이 될 것"이란 성명을 발표하고, 긴급 상황이라며 의회의 동의 없이 병력을 보냈다. 미군 주도의 유엔군이 1950년 9월 인천에 상륙해 서울을 되찾고 북쪽으로 진격했지만 10월 중국군이 참전함으로써 1951년 1월 후퇴했다. 1년간의 격전 끝에 1951년 7월부터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2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1953년 7월 휴전‧정전 협정이 맺어졌다. 그로부터 63년이 흐른 2016년 8월까지 전쟁을 쉬거나(휴전) 멈추고 있는(정전) 상태에서 완전히 끝내거나(종전) 평화 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다. '호전적'인 북한은 줄기차게 종전-평화 협정을 요구하지만,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는 미국과 남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 베트남 : 제2의 한국 전쟁 >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대한 베트남의 독립 전쟁인 제1차 베트남 전쟁은 1946년 시작되어 1954년 프랑스의 패배로 끝났다.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할하되 2년 안에 선거를 통해 통일 국가가 되도록 한다는 내용의 제네바 협정이 맺어졌다. 미국은 이에 반대하고 남베트남에 경제 및 군사 지원을 시작했다. 선거가 실시되면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을 추구해온 호치민의 북베트남이 압도적으로 이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군사 개입을 확대하면서 북베트남 통킹만에 함정을 보내 정찰 활동을 펼쳤다. 미국 함정이 공격당하는 이른바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이를 빌미로 1965년부터 북베트남을 폭격하면서 본격적인 침략 전쟁을 벌였다. 제2차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통킹만 사건은 일어난 지 7년이 지난 1971년 조작으로 밝혀졌다. 1898년 미국이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한 빌미로 삼았던 미국 함정의 폭발이 73년이 흐른 1971년에야 보일러실의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진 것과 비슷하다. 베트남 전쟁은 이렇게 파렴치한 침략 전쟁이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격렬한 반대와 저항을 받았던 범죄행위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이 유일하게 패배한 굴욕적인 전쟁이기도 했다. 이토록 파렴치한 침략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나라가 남한이었다. 처음엔 미국에 간청하다시피 해서 파병했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미국의 신임과 지지를 받으면서, 미국의 지원에 의한 경제 성장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 이라크 : 일방주의 그리고 선제공격 > 미국은 2003년 유엔의 반대와 많은 나라들의 비판을 받으며 이라크 자유 작전이라는 미명 아래 이라크를 침공했다. 네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첫째,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미국처럼 핵무기와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많이 배치해 놓고 있는 나라는 없다. 둘째, 이라크가 9.11테러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9.11 이전까지 미국만큼 테러를 많이 지원했던 나라는 없다. 셋째, 이라크가 독재를 실시하고 인권 탄압을 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그러나 독재와 인권 탄압에서 이라크 못지않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파키스탄 등에는 무기도 팔고 경제 지원도 했다. 그리고 미국처럼 독재 정권을 많이 지원한 나라는 없다. 세계 곳곳에서 독재 정권에 대항해 일어난 수십 개의 민주화 운동이 미국의 도움에 의해 반공의 이름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넷째, 이라크가 유엔 결의안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맞다. 그러나 유엔 역사상 미국만큼 유엔 결의안을 지키지 않은 나라는 없다. 국제 관계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엔을 무시하고 단독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대외 정책에 공개적으로 밝힌 나라 역시 미국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고 이라크를 점령해 군사 정권을 세우려는 진짜 속셈은 반미 정권을 제거하고 석유 자원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 있었다. 그렇게 파렴치한 침략 전쟁에 남한은 한미 동맹을 앞세우며 베트남전에 이어 또다시 병력을 보냈다. < 새로운 냉전의 시작 :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 >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국가로 간주하고 중국을 견제하며 봉쇄해왔다. '냉전'의 정의와 개념에 따라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이 많겠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1970년대 말 개혁 개방을 시작한 이래 해마다 10% 안팎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며 일본과의 군사 동맹을 강화해왔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1996년 일본과 안보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1997년엔 일본과의 방위 협력 지침을 개정했다. 2015년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 지침을 만들고,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일본과 남한을 끌어들여 이른바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화하는 것도 중국 견제용이다. 2016년 남한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겠다는 것 역시 중국 때문이다. 미국이 60여 년이 넘도록 한국 전쟁을 끝내지 않고 북한과의 평화 협정을 거부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종전 협정이나 평화 협정을 맺으면 주한 미군을 계속 유지할 명분이 약해지거나 사라지고, 주한 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구멍이 뚫리기 때문이다. *이 글은 기사의 내용을 일부 생략하여 간추린 것입니다.
화, 2017/09/26-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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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 지역경제보고서 발간] 제주도 사려니숲길을 찾은 관광객들. 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우리나라 주요 관광지로 꼽히는 제주지역이 사드 보복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지역경
월, 2017/09/2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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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촛불 영상입니다

월, 2017/09/25- 16:5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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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만든 서울출정 동영상입니다.^^

토, 2017/09/2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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