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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문재인식 대북 해법 중미가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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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문재인식 대북 해법 중미가 도와야

익명 (미확인) | 수, 2017/06/14- 11:29

뉴욕타임스, 문재인식 대북 해법 중미가 도와야 – 두 강대국 사이 시험대 오른 균형 외교 – 사드 4기 배치 중단 및 환경영향평가 – 문 대통령 통찰력…중미 안심시킨 조치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사설에서 한반도 긴장에 대처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에 통찰력이 엿보인다며, 대북 문제 해결을 위해 주변 강대국들이 문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지난 12일자 인터넷판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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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외부 세력을 말하는가?

밀양, 그리고 성주

 

김우창 전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활동가


2014년 1월 25일. 2차 희망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밀양에 내려갔다. 그때는 이미 밀양 송전탑 공사를 찬성하는 이가 많았다. 공사를 반대하는 밀양 할매‧할배는 전국적으로도, 그리고 밀양에서도 소수였다. 그래서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외로운 싸움을 지지하고 응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2000여 명의 연대자들이 희망 버스에 올랐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과 중앙 정부는 희망 버스를 타고 밀양에 내려가는 우리들을 정부, 한국전력과 밀양 주민 사이에서 진행되는 협의와 합의를 방해하고 훼방을 놓는 '외부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밀양에 지어지는 송전탑 공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우리 외부 세력들이 밀양의 순박한 노인들을 회유하여 반대 집회와 투쟁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2014년 4월 5일. 127번 송전탑이 들어설 부지에 송전탑 대신 꽃과 나무를 심기 위한 '꽃보다 할매 :127 꽃동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다시 밀양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굵은 밧줄들이 쳐 있었고 송전탑 반대 주민이 마을에 들어가려는 차와 사람들을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그곳에서 처음 들었던 말은 반가운 인사말이 아닌 "어디서 왔소? 직장이나 소속된 곳이 어디요? 경찰이나 한전 직원 아니죠?"라는 차갑고 무뚝뚝한 질문 세례였다. 시커먼 등산복을 입고 서울에서 혼자 내려간 나는 밀양 주민들에겐 의심과 의혹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한전 직원과 경찰은 사복을 입고 등산객이나 연대자인 것처럼 속인 뒤 농성장의 상황이나 농성장에 나와 있는 반대 주민들과 연대자들의 수를 세기 위해 종종 온다는 것이었다.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외부 세력은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연대자'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송전탑 공사를 불도저식으로 강행하려는 '경찰과 한전'이었던 것이다. 연대자. 어색하고 낯선 단어였지만 주민들과 나를 가깝게 만들어준 단어이자 내게 부여된 새로운 정체성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연대자와 그들의 외부 세력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2014년 6월 11일. 6월 11일에 예정된 행정 대집행을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세워놓은 101,115,127,129번 농성장 근처에 전날인 10일 오전부터 2000여명의 경찰이 농성장으로 이어진 마을의 모든 길을 막았다. 연대자들만이 아니라 마을에 사는 주민들도 경찰의 제지로 들어가지 못하거나 마을 주민임을 입증한 후에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전남도청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광주로 진입하는 모든 길과 언로를 차단한, 책에서 보던 1980년의 광주가 떠오를 정도였다. 밀양 할매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전국에서 온 연대자들은 모든 길을 차단한 경찰에 의해 오도가도 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밤이 되고 그들이 택한 것은 경찰의 삼엄한 경계가 미치지 않는 험하고 어두운 산길이었다. 전쟁을 앞 둔 그날 밤, 하늘에선 부슬부슬 비가 내려 한층 을씨년스러웠다. 새벽 3시가 넘을 무렵 산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경찰과 한전이 급습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어둠 속에서 눈을 크게 떴다.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비와 땀으로 온 몸이 젖은 연대자들이었다. 할머니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행정 대집행을 막기 위해 궂은 날씨임에도 그들은 경찰의 눈을 피한 채 3~4시간 동안 산을 기어 올라왔다. 이런 연대자들이 밀양 주민들을 현혹시켜 갈등을 부추기는 외부 세력인가?

 

같은 날 밤, 경찰의 제지에 농성장에 닿지 못한 또 다른 '외부 세력들'이 있었다. 농성장에 자주 방문해 할머니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었던 수녀님들 또한 발이 묶였다. 경찰은 수녀님들의 방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대여섯의 수녀님들은 마을 주민의 작은 차 트렁크에 몸을 웅크린 채 경찰의 눈을 피하고서야 겨우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땀범벅이 되고 풀과 나무에 찔리고 쓸려 상처가 나고, 좁은 트렁크에 몸을 구겨서라도 할매들의 손을 잡겠다는 이들이 과연 외부 세력이란 말인가? 우리들은 외부 세력이 아니라, 연대자다.

 

'우리가 밀양이다', '전기는 할매의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서울에, 도시에 사는 내가 쓰는 전기는 주로 노인들이 살고 있는 시골 마을에서 생산되어 송전탑을 타고 우리 집까지 이동한다. 거대한 발전소가 들어서면서 강제로 이주해야했던 사람들, 핵‧화력 발전소 근처에서 살면서 암이나 백혈병에 걸린 사람들, 제대로 된 절차도 보상도 없이 토지를 강제로 빼앗긴 사람들, 전자파에 의해 병에 걸린 사람들….

 

정부와 한전은 발전소와 송전탑 공사는 그 지역만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단호히 말해야 한다. 그 문제는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우리가 쓰기 위한 전기를 생산하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삶이 송두리째 밟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밀양'이라고 믿는, '더 이상 전기가 할매의 눈물을 타고 흘러서는 안 된다'고 믿는 수많은 연대자들은 자신이 결코 외부 세력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은 절대 외부 세력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외부 세력이라고 부르는 자들에게 물을 차례다. 왜 당신은 우리를 외부 세력이라고 부르는가? 무엇을 얻기 위해 외부 세력 프레임을 쏟아내는가?

 

국책 사업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국가의 방식은 언제나 같다. 군부 정권이든 민주화 이후 선거로 집권한 민주 세력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해당 지역 주민들을 배제한 채 전문가들끼리 밀실에서 결정한 사실을 통보한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을 지역 이기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힘이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을 외부 세력이라고 낙인찍는다. 즉, 국가는 지역 주민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지역 이기주의‧외부 세력‧종북몰이라는 대처 방식을 끊임없이 재생산했다. 또한 언론은 사실이 아니더라도 무책임하게 내질렀다. 밀양의 '통진당(통합진보당) 구덩이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밀양에서만이 아니다. 강정에서도, 세월호에서도, 그리고 현재 사드배치 결정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경북 성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드 배치로 한반도에 미칠 영향과 동북아시아에 미칠 영향, 미-일-남한과 중-러-북한 사이에 생겨날 새로운 냉전과 끝없는 군비 경쟁을 생각해본다면 사드 문제는 결코 성주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 결국 답은 '연대의 힘'을 믿는 것이다. 아무런 협의도 없이 희생만이 강제로 지워진 성주 군민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성주 군민 역시 외부 세력론에 휘둘리지 말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물론 성주는 현재 이 문제를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다. 특히 사드가 '성주만이 아니라 한반도 어디에도 안 된다'라고 천명한 것은 님비(NIMBY : 내 지역엔 안 된다)를 극복하고 니아비(NIABY : 우리 지역만이 아니라 어디에도 안 된다)로 나아간 것이다. 지난 7월 28일 사드 배치 철회를 위한 촛불 집회가 진행 중인 성주군청에 밀양의 주민들이 연대 방문을 갔다. 무대에 선 밀양 주민들은 "우리도 지난 10년간 연대의 힘으로 버텼다. 우리가 지금까지 받은 연대의 힘으로 앞으로는 성주를 지지하고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연대는 "한 덩어리로 서로 굳게 뭉침"이란 뜻을 갖고 있다. 연대를 말하는 자와 외부 세력을 말하는 자,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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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6/08/0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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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07]

 

87년 체제, 민주주의 가로막는 반동의 원천

제7공화국'을 위한 연대 ①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작년에 이어 올해의 4.29 재·보선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참패했다. 여기저기서 숱한 분석과 조언이 넘쳐난다. 야권의 분열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에서부터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정치력에 대한 비판이나 향후 행보에 대한 다양한 훈수까지, 살짝 어지럽기까지 하다. 모두 귀담아들을 구석이 있기는 해 보인다. 그러나 어딘지 식상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특히 재·보선 이후 깊은 내홍에 빠진 새정치연합의 혁신이나 문재인 대표의 변신에 대한 주문은 너무도 적절해 보이지만 어쩐지 비현실적으로만 들린다. 무언가 결정적인 것이 빠져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볼 때 이번 선거의 가장 큰 교훈은 새정치연합은 물론 야권 전체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데 있다. 정치 자영업자들의 연합체 같은 새정치연합이 대안이 될 수 없음도 명백하지만, 진보와 보수가 대결하는 유럽적 정치 지형을 만들겠다던 국민모임이나 정의당 등의 오래된 '민주노동당 모델 2'도 다시 좌절했다고 보아야 하고, 천정배 의원의 '호남 정치 복원' 구상은 기껏해야 '새정치연합의 호남화 프로젝트' 이상이 되기 힘들 것 같다. 어디 하나 미더운 데가 없다.

 

상황이 무척 엄중해 보인다.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과 조건에서 무능하기 짝이 없는 데다 분열되기까지 한 야권이 계속 한국 정치와 사회의 진보적 미래에 대한 아무런 의미 있는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기만 한다고 해 보라.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압승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가 보수가 장기 집권하는 일본을 닮는 상황을 걱정하곤 한다. 내가 볼 땐 대단한 착각이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일천한 경험 등 여러 면에서 일본보다는 21세기 들어 민주적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를 확립한 러시아, 헝가리, 터키 같은 나라와 더 가깝다고 해야 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보수파 집권 뒤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는 등의 온갖 악법으로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심지어 러시아의 푸틴과 터키의 에르도얀은 권좌에서 물러나고도 실권을 행사하다가 권좌에 복귀했거나 복귀할 예정이고, 헝가리의 오르반은 아예 개헌을 통해 자신과 보수파의 영구 집권을 위한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이미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는 듯한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더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루빨리 야권의 올바른 정립과 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단순히 문재인 대표를 대신할 새로운 인물을 찾는 따위의 것에 있지 않다. 야권 전체가 어떤 식으로든, 개별 정당 차원에서 또 연합 정치의 수준에서, 뚜렷한 정치적 지향과 미래 전망, 신뢰할 수 있는 정책들, 관용과 포용의 정치 문화, 국가 운용 능력 등을 갖춘 정치적 대안을 형성하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상투적인 혁신을 넘어,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위한 분골쇄신이 절실하다. 


내 생각에 그 출발점은 우리의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과 야권의 지리멸렬함을 그 근본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른바 '87년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87년 정치 체제는 더 이상 그저 어쩔 수 없는 우리 민주주의의 주어진 조건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적 정의'의 원칙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결손 민주주의' 체제로서, 이제 우리 사회의 진보와 민주주의의 심화를 막는 가장 근본적인 장애의 하나, 아니 심지어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반동의 원천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진보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 체제를 깨트리지 않으면 안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주주의의 이 87년 체제는 오랜 민주화 운동의 성취를 부당하게 전취한 구민주당 세력과 구체제의 수구 세력이 밀실에서 이룬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 결과 지금의 제6공화국의 헌정 질서가 만들어질 때 정작 가장 앞장서 군부 독재를 종식시켰던 시민적 주체들은 철저하게 배제되었더랬다. 비록 87년의 민주화가 이룬 역사적 진보의 의미 전부를 폄훼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의 우리 민주주의 체제는 시민들의 자기-지배를 위한 평등한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시민적 권력'의 체제로서는 처음부터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대의 제도와 통치 구조부터 민주주의적 정의의 원리에 여러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승자독식의 단순 다수결 소선구제를 핵심으로 하는 현행 선거 제도는 결코 공정한 민주적 대의 제도가 아니다. 이 제도에서는 예컨대 전국적으로 40% 정도의 지지를 받는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다. 또 구조적으로 양당제를 강요하고 다양한 정치 이념의 실험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는 것을 매우 힘들게 한다.

 

또 이 체제에서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이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의 견제를 우회하여 너무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심지어 사법부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 권력의 구조적 비대함은 우리 민주주의를 기본적으로 '위임 민주주의(delegate democracy)'로 만들었고, 최근 들어서는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제약되는 '비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로 전락시켰다. 

 

나아가 사법부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에서 보듯, 87년 체제의 가장 중요한 민주적 장치의 하나로서 시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만든 헌법재판소는 외려 그 기본권 침해의 첨병이 되는 아이러니도 드러났다. 선출되지 않은 헌법재판관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회의원의 자격을 간단히 박탈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이와 함께 사법부 전반의 행정 권력 종속성도 자주 나타난다.

 

다른 한 편으로 이 체제는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적 요구를 담아내고 시민적 권력을 제도화 내어야 할 정치적 주체도 제대로 성숙시켜내지 못했다.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와 같은 생활세계의 기초적인 시민적-민주주의적 조직들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는 배경이 있기는 하지만, 이 체제의 근본적인 정치적 틀은 무엇보다도 민주적 시민 사회의 정치적 기구가 될 수 있는 정당을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했다. 지금까지 단지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시민적 권력의 현실적 구심점 역할을 했던 새정치연합(구민주당)의 거의 범죄적 수준의 무능함은 일차적으로 87년 체제가 배태한 지역주의적 기득권 안주에서 비롯한다고 해야 한다. 나아가 이는 다른 진보 정당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막은 결정적 배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구조적 제약 말고도 우리 정치적 주체들의 이념적, 문화적 미성숙에도 상당한 탓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민주 진보 세력은 '역사적 공산주의' 이후 시대의 냉전적 분단 상황에서 유교적-근대적 특징을 갖고 있는 한국 사회에 걸맞은 제대로 된 민주적 진보 이념과 노선을 가공해 내는 데 완전하게 실패했다. 

 

특히 우리 정치적 주체들은 그동안 분단과 그에 따른 이른바 '48년 체제'의 냉전적 틀을 합리적으로 극복할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지나치게 민족주의에 경도되거나(이른바 NL) 반대로 분단 문제 자체를 아예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이른바 PD) 거울상 오류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의 87년 체제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앙상한 민주주의'이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민주 세력은 딱 10년만, 그것도 거의 기적적으로 우연적인 상황에서 집권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짧은 집권 기간 동안에도 늘 정치적 불안정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숱한 차원에서 정치적 무능을 드러냈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층을 제대로 대변하고 포괄하지 못하는 정당 체제 속에서 시민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기만 했다. 

 

결국 87년 체제는, 정의의 실현과 비-지배의 제도화라는 민주주의가 감당해야 할 본연의 과업을 제대로 수행해 내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사회 수구보수 세력의 과두 특권 독점 체제를 강화시켜주기까지 하고 말았다. 구조의 측면에서나 주체적 조건에서 우리가 이 체제의 틀 안에 머물면서 사회의 민주주의적 진보를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내 생각엔 이제 단지 이를 전체로서 극복하기 위한 담대한 정치적 기획을 실천함으로써만 우리 민주 진보 세력과 민주주의에 희망이 있을 것처럼 보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5/05/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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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 visit was prompted by letters a Korean teenage girl sent him with a box of Korean snacks.
화, 2016/02/16-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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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5월 3일, Foreign Policy in Focus에 실린 Trump and the Rush to Deploy THAAD 를 번역한 것입니다.)

4월 26일 새벽,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3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성주의 골프장으로 경찰들이 집결했다. 경찰은 잠에서 덜 깬 주민들을 밀어내고, 사드를 실은 미군들을 호위했다.

사드 배치는 중국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한국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5월 9일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드가 배치됐다는 것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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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전 0시부터 주한미군은 4시간여 만에 사드 발사대 2~3기, 사격통제레이더, 교전통제소 등 핵심장비 대부분을 성주골프장에 반입했다. 사전예고도 없이 신속하게 배치된 이번 결정의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당선이 유력한 문재인이 더 많은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했는데도, 이렇게 신속 배치된 것은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드 비용 청구, 한미FTA 폐기

이 일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사드 신속 배치는 결국 한국 정치를 우회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한미 관계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국내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사드 배치에 찬성했는데도 한국 측에 10억 달러의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는 한미FTA를 재앙(horrible deal)이라고 부르며 폐기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는 안보이슈와 무역이슈를 연계하면서 한국이 안보를 해결하려면 무역에서 양보해야 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이 유지했던 한국과의 가치공유 전략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동맹은 경제적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사드는 가격이 맞으면 변경 또는 폐기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트럼프에게 군대란 민주주의나 자유시장을 위해 헌신하는 군대가 아니라, 국가간 수지를 맞추기 위한 용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5월 1일, 트럼프는 북한의 김정은과 만날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틸러슨 국무장관은 중국의 계속된 제안에도 불구하고 북한과는 대화할 수 없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또 얼마 전에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이 임박했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숨은 의도는?

미국의 오락가락하는 정책 때문에 한국인들은 트럼프 행정부를 비이성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충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드 비용 청구는 사드에 대한 문재인의 의구심을 키웠고, 한국의 반미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 문재인은 보수세력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사드 배치를 비판하고 있다.

사드를 배치 과정에서 완전히 절차가 무시되면서 반미감정이 커지고 있다.  현재 황교안 권한대행은 그런 결정을 할 정당성이 전혀 없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회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드 배치를 결정했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국회에서 사실상 어떤 토론도 없었다.

사드는 단순히 북한의 위협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사드를 자신의 방어능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드 배치는 한국, 일본, 러시아 등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무기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

중국은 7000기에 달하는 미국의 핵무기에 대항해 300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사드가 자신들의 핵능력을 무력화한다고 생각한다면, 핵무기를 수 천기로 늘릴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인들은 어떻게 사드 배치가 이렇게 신속하게 결정됐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 사이에 내려진 결정일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호전적인데다 군수업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번 결정에 트럼프 대통령은 별로 관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한 일이라곤 한국의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일일 것이다. 트럼프는 국무부에서 아시아 전문가를 모두 해고하는 바람에 그의 주변에는 전문가가 없다. 트럼프가 북한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꾼 것도 이처럼 관련 전문가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시 코리아패싱?

만약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된다면, 지난 10년 간의 보수정부와 달리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할 것이다. 그럴 경우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관계처럼 한미 관계가 긴장국면에 진입할지도 모른다.

보수주의자들은 지난해 개성공단 폐쇄로 DJ의 햇볕정책을 완전 끝장냈다고 생각할테지만, 문재인은 어쩌면 그 햇볕정책을 복원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북한과의 대화를 추구하면서 전시작전권 환수를 추진하고, 미국과의 균형외교를 추구할 것이다.

사실 문재인정부에서 한국은 가장 독립적인 동맹국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북핵 도발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무시 전략은 한국인들을 실망시켜왔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워싱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대북접근 정책을 취할지도 모른다.

북한은 리비아의 가다피정권이나 이라크의 후세인정권이 몰락한 것은 충분한 억제력이 없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정통성과 국가운명을 핵무기 개발에 걸고 있는 김정은으로서는 더욱 양보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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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사드 비용 청구, 한미FTA 폐기 발언 등으로 한국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가 불쑥 “영광스럽게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와 공식적인 접촉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대신 한반도 문제가 중국, 일본과만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코리아 패싱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에 대한 숱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반도 개입은 점차 축소되는 양상이다.

반대로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는 중국어 학교가 전국적으로 성업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 4월 시티뱅크는 한국지점의 3분1을 폐쇄하기로 했고,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숫자는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북한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인데도 미국은 지난 1월19일 마크 리퍼드 주한대사가 물러난 이후 신임 대사 후보조차 준비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지난 2월 아베 일본 총리와, 지난 4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 문제를 논의했다. 황교안 권한 대행은 지난 3월 틸러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녁식사 약속조차 잡지 못했다.

결국 사드 문제는 100여 년이 넘는 한미관계의 일부분이다. 북한이 연일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한국, 즉 남한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거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 문제 외의 사안에 대해 한미 간의 공동 이해와 행동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한국 내에서는 다시 반미감정이 득세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될 것이다.

목, 2017/05/04-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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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04/1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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