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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정치발전소] 호남에서 정당 경쟁이 가지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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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정치발전소] 호남에서 정당 경쟁이 가지는 의미

익명 (미확인) | 금, 2017/06/09- 10:50

왜 정치지도자는 ‘경상도사투리 쓰는 남자’ 몫인가?

 

며칠전 광주의 지인들과 대선 후 호남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리가 파할 무렵 한 지인은 “지난 대선에 나온 유력후보 4명이 모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라며 “DJ 이후, 호남 출신의 좋은 정치지도자는 이제 씨가 말라버린 것 아닌가 싶다”고 푸념하듯 말했다. 처음에는 지인의 그런 생각이 좀 생경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지인의 의문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의 중요한 문제와 연관된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만 예외적으로 경기도 출신의 여성 후보가 출마했을 뿐, 유력한 대선 후보들은 전부 영남출신이었다. 대선을 당대 정치지도자들이 자웅을 겨루는 정치 경쟁의 장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정치자도자의 평균적 인물상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라고 한들 틀린 말이 아니다.
호남은 민주화 이후 민주파와 진보파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지역적 기반이자 정치적 자원의 화수분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호남 지역구를 상당부분 상실했음에도 여전히 소속 현역의원의 다수는 호남 출신이다. 국민의당은 소속의원의 거의 대부분이 호남이다.
우리 민주주의에서 호남이 가진 중요성과 역할은 쉽게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의미 있는 호남 출신 정치지도자가 어느 당이냐를 떠나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물론, 정치지도자에게 중요한 것은 출신 지역이 어디냐 보다는 그가 추구하는 정치의 내용과 비전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정치지도자의 이와 같은 지역적 편중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호남에서 왜 변화를 만들어 낼 능력을 가진 정치지도자가 성장하지 못하는가를 생각하다보니 지난 총선과정에서 만난 한 전주 시민의 말이 떠올랐다.
알다시피 지난해 4.13 총선은 호남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경쟁함으로써 기존 민주당 일당 체제가 경쟁적 정당체제로 전환된 계기였다. 지난 총선과정에서 만난 한 전주 시민은 호남의 경쟁적 정당체제가 불러온 변화를 다음과 같이 ‘자신의 언어’로 표현했다.
“과거 민주당만 있을 때는 정치인들이 위만 바라봤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인들이 아래를 보기 시작했다.”
말인즉, 공천만 받으면 작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는 1당 지배체제에서는 지역 정치인들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당 지도부나 지역 유지들만 쫒아 다녔지만, 유력한 복수의 정당이 경쟁하는 정당체제에서는 표를 주는 유권자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태어나면서 정치지도자인 사람은 없다. 정치지도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던 간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적 가치를 위해 일관되고 완강하게 투쟁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진다. 일정한 시간, 경력, 고난과 단련의 과정을 통과하며 대중의 신뢰와 지지뿐만 아니라 정치지도자로서 다른 정치인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이 모든 일은 개인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지도자는 반드시 자신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를 조직적으로 체화한 정당에 기반해 다른 정당의 정치인과 구분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유권자 속에서의 정치적 경쟁이 정치지도자를 만드는 단련의 과정이라 한다면, 경쟁적 정당체제야 말로 정치지도자 형성의 가장 중요한 기본 전제이자 조건이라 할 수 있다.
호남의 정치가 지도자 없는 정치로 정체되고 있는 것의 문제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호남에서 경쟁적 정당체제가 형성되지 못했던 저간의 사정과 관련이 깊다.
호남에서 경쟁을 배제했던 과거 민주당 일당체제는 중앙에 의존하고, 중앙만 바라보는 참모형 정치인들에게는 기회의 장이지만, 다른 정치인들과 차별화된 새로운 정치적 목표와 가치를 위해 유권자들 속에서 분투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미래의 정치리더에게는 매우 가혹한 조건이었다. 다시 말해 유권자 없는 정치가 지도자 없는 정치를 낳았다.
호남 유권자들은 이제 경쟁적 정당체제가 주는 이로움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총선이 민주당 일당체제에 대한 호남 유권자의 심판이었다면, 이번 대선은 과거 민주당과 다를 바 없이 호남에서 군림하고자했던 국민의당식 낡은 정치에 대한 심판인 면이 있다.
또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했지만, 호남에서의 득표율은 민주화 이후 집권한 역대 어느 민주파 정부보다 낮았다. 두 번의 선거를 거치며, 호남은 무조건 민주당이라거나, 될 사람 밀어주는 전략적 선택을 한다는 식의 통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호남도 사람 사는 곳이다. 호남 역시 어느 사회와 똑같이 기득권 질서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과 고통을 받는 사람이 존재한다. 호남에 경쟁적 정당체제가 자리 잡는 것은 서로 상충하는 다양한 시민들의 이해가 다양한 정당들에 의해 대표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안정화될 수 있다.
앞으로 어느 정당이 호남의 경쟁적 정당체제를 이끌어 가는 주역이 될 수 있을까? 호남 유권자들이 다시 국민의당에게 기회를 줄까? 그것은 불분명하다. 국민의당은 대선 과정에서도 그랬지만,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에 대한 선언적 강조 외에 민주당과 구별되는 정치적 가치나 대표하고자 하는 사회경제적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기존 체제와는 다른 선택지를 주지 못하는 정당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존립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민의당은 호남을 대표한다고 말하기에 앞서, 국민의당이 우리 사회에서 왜 있어야 하는지에 그 이유를 먼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호남의 경쟁적 정당체제를 만들어가는 주역은 이제 호남만의 정치에 침잠하거나 호남의 충성을 요구하는 정치세력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호남이 가진 보편적 고통에 주목하는 정치인이자 정당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뜻하는 Democracy의 demo는 민중이라는 의미와 함께 ‘지방민’이라는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지방, 역시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이며, 정당이 지방에 뿌리내리지 않고는 민주정치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호남이 경쟁적 정당체제를 수용한 것을 계기로 지금과 같은 5당체제 내지 다원적 정당 체제가 형성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당 스스로 새로운 선택지가 되어 그동안 적대적 양당체제에서 대표되지 못했던 유권자들을 발굴하고, 이들에게 종류가 다른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면, 모처럼 주어진 다원적 정치질서의 가능성도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날 수 있다.
언제나 그랬지만, 호남이 다시 한국 정치에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었다. 기회는 어느 정당, 정치인에게나 있다. 다만 누가 무엇을 통해 분투하고, 헌신할 것인지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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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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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주의 체제는 ‘정부·시민’보다 ‘국가·국민’의 개념을 선호한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새 정부가 ‘정당 정부에 기초를 둔 책임정치 실현’을 약속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라 부르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아울러 국가와 정부라는 용어 사용도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민주국가’보다는 ‘민주정부’가 잘 어울리듯, 민주주의는 정부라는 개념에 상응하는 정치체제다. 자주국가, 독립국가, 주권국가라 쓰듯 국가 역시 꼭 있어야 할 정치 용어지만 민주주의와 관련된 진술에서는 절제하는 게 옳다.

정부를 뜻하는 ‘government’는 ‘키를 잡고 배를 조종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쿠베르나오(kuberna´o)’의 라틴어 옮김 말인 구베르노(guberno)에서 유래했다. 공동체를 이끄는 정치 리더십 혹은 그런 리더십의 조직체라는 의미를 갖는다. 반면 국가를 뜻하는 ‘state’는 라틴어 ‘status’에서 유래한 말로 애초에는 ‘지위’나 ‘상태’를 뜻했으나 16세기로 들어서면서 ‘배타적인 영향력의 범위를 가리키는 통치의 단위’라는 의미가 덧붙여졌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에는 ‘영토, 국민, 주권’의 세 요소를 가진 국제법적 주체로 발전했고, 그에 따라 통치자도 애국과 충성의 맹세를 해야 하는 윤리적 실체로 격상되었다.

주권(sovereignty) 개념을 기준으로 봐도 다르다. 국가는 주권의 대외적 측면을, 정부는 주권의 대내적 측면에 가리킨다. 대외적으로 주권의 부재가 ‘무국가 상태’ 혹은 ‘식민지 종속국’을 뜻한다면, 대내적으로 주권의 부재는 ‘무정부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와 짝을 이루는 주권자는 국민(nation)이라 하고 그들의 정체성은 법률적 근거를 가진 국적(nationality)이 기준이 된다. 국가는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고 간첩죄나 내란죄를 적용할 수 있다. 반면 정부와 짝을 이루는 주권자는 시민(citizen)이라고 부르고, 그들이 가진 권리는 시민권(civil rights)이라 한다. 정부에 대해 시민은 자발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고 자유로이 비판하고 반대할 수도 있다. 정부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시민에게만 자유와 권리를 허용한다면, 이를 반대하는 시민과의 내전(civil war)은 피할 수 없다. 시민권에는 (정부조차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를 가리키는) ‘자유권’도 있고, (정부 선출에의 평등한 참정권을 가리키는) 정치권, 나아가 (정부에 사회경제적 분배 책임을 요구할 권리를 가리키는) 사회권 등이 있다.

비민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가를 신성화하고 국가안보와 국가이익, 국민의 의무, 국민교육 등을 강조한다. 시민 주권을 부정하면서 그로 인한 정당성의 결핍을 늘 외부로부터의 안보 위협으로 채우려는 권위주의 체제일수록 더 그렇다.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민주화의 요구를 억압하려 한 것도 같은 이유로 이해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반공을 국시(國是)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정부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반공국가라는 의미를 담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쓴다. 정부 행사라는 표현 대신 국가의 공식 행사라고 규정하길 좋아하거나,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조차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안 되고 꼭 애국가를 불러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도 국가에 대한 맹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일 때가 많다.

국가가 아닌 정부라는 말에 친화적인 사회가 되어야, 시민은 그야말로 ‘갑’이 되고 주권자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라면 정부는 ‘시민에 의해’ 선출되고,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할 의무를 안게 된, ‘시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의해 우리가 국민이 아닌, ‘동료 시민 여러분(My fellow citizen)’으로 호명되는 일이 많아야 민주주의일 것이다.

대통령이란 명칭도 냉정하게 말하면 문제가 있다. 통령(統領)이란 의미도 대단한데, 이를 더 크고 위대하게 높여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담는 듯하다. 시민의 공동체를 주관하는 의장 내지 시민 가운데 으뜸 자리임을 뜻하는 좀 더 자연스러운 용어가 있었으면 한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523/84510160/1#csidx0a4c1c974309cf78c258b9435a72460

화, 2017/05/2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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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아무개 지원서 마감일 지나 접수돼 공정성 잃고
자격 미달자인 유 씨를 특별히 인정할 근거도 없어

지난해 6월 시청자미디어재단 신입 직원 공채가 유 아무개 씨를 위한 이석우 이사장의 특혜로 얼룩진 게 확인됐다.

1일 입수한 2015년 재단 신입사원 1•2•3차 전형 결과를 보면 유 씨의 입사 지원서는 제출 마감일인 2015년 6월 12일이 아닌 6월 15일에야 접수됐다. 6월 15일은 응모 마감일로부터 3일이나 지난 데다 하루 전(14일) 인재선발위원별로 평가 대상자 배정을 끝내고 1차 서류심사를 시작한 날이었음에도 유 씨가 심사 대상에 포함되는 특혜를 누렸다.

▲유 아무개 씨 지원서가 ‘2015년 6월 15일(오른쪽 빨간 사각형)’에야 접수됐음을 보여 주는 시청자미디어재단 1차 전형 결과. 지원서 제출 마감일을 3일이나 넘긴 터라 특혜 시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유 아무개 씨 지원서가 ‘2015년 6월 15일(오른쪽 빨간 사각형)’에야 접수됐음을 보여 주는 시청자미디어재단 1차 전형 결과. 지원서 제출 마감일을 3일이나 넘긴 터라 특혜 시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유 씨 지원서가 3일이나 늦게 접수된 건 이석우 이사장 특별 지시 때문. 재단 인사 실무진이 2016년 2월 졸업 예정자인 유 씨를 ‘자격(2015년 8월 졸업 예정) 미달’로 탈락시켰는데 이사장이 뒤집었다. 이 이사장이 신입 지원자 435명이 낸 서류를 모두 살펴본 뒤 유 씨만을 ‘이사장이 특별히 인정하는 자’로 삼아 실무진으로 하여금 지원서를 받아들이게 했다.

유 씨는 그러나 이사장으로부터 특별히 인정받을 만한 자격이나 근거를 전혀 제출하지 못했다. 이석우 이사장도 기자에게 “우리(한국 사회 또는 재단)가 학력 철폐로 가기 때문”이라고 강변했을 뿐 유 씨를 특별히 인정한 까닭을 입증할 자료를 내놓지 못해 특혜였음을 스스로 내보였다.

▲시청자미디어재단 2015년 신입사원 전형 일정. 6월 12일 지원서 제출을 마감했고, 3일 뒤(6월 15일) 서류 심사를 시작했다.

▲시청자미디어재단 2015년 신입사원 전형 일정. 6월 12일 지원서 제출을 마감했고, 3일 뒤(6월 15일) 서류 심사를 시작했다.

유 씨, 2015년 7월 입사했는데도 2015년 2학기에 12학점 이수

유 씨는 모교인 명지대에 ‘2016년 2월 졸업’한 것으로 돼 있다. 2015년 2학기에 특별한 일 없이 12학점을 모두 이수한 것으로도 기록됐다. 노춘환 명지대 인문학사지원팀장은 “(유 씨) 학적에 이상이 없다”며 “2015학년 2학기까지 수업을 들어 성적을 이수했고, 졸업사정위원회에서 졸업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해 2016년 2월 17일 졸업시켰다”고 확인했다. 노 팀장은 특히 6개월 앞당겨 졸업하는 체계가 학교에 있느냐는 질문에 “학칙에 의해 졸업 여부를 사정하고 엄격한 기준에 따라 졸업시키기 때문에 2016년 2월 졸업 예정자가 2015년 8월에 앞당겨 졸업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며 “졸업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학적이 정상이어서 더욱 이상한 건 2015년 2학기 때문. 유 씨는 2015년 7월 시청자미디어재단에 들어가 2016년 2월 말까지 7개월 동안 대전센터에서 일했다. 유 씨가 졸업에 필요한 2015년 2학기 12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낮에 대전 유성구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171.5㎞나 떨어진 서울 서대문구 명지대까지 오가며 일과 학업을 모두 소화했다는 얘기. 불가능한 일이었다. 재단으로부터 학교에 수업하러 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은 일도 없었다.

지원 자격에 모자랐던 2016년 2월 졸업 예정자를 ‘이사장이 특별히 인정’해 채용한 재단뿐만 아니라 2015년 2학기에 수업이나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않았을 개연성이 큰 유 씨의 학적이 정상적으로 기록된 명지대도 특혜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석우 이사장의 호남 배척한 최종 낙점도 확인돼

신입 직원 3차 면접 전형 뒤 3배수로 추천된 48명 가운데 이석우 이사장이 유 씨를 포함한 최종 합격자 16명을 직접 낙점하면서 호남 쪽 지원자를 모두 배척한 것도 문서로 방증됐다.

재단 인재선발시험위원회가 2차 필기시험을 통과한 80명을 면접한 뒤 뽑은 합격자 후보 3배수에 든 광주(4명)•전남(1명) 출신 지원자 5명을 이석우 이사장이 모두 외면한 것. 서울(13명)에서 5명, 경기(8명)•인천(3명)에서 4명, 부산(6명)•경남(3명)에서 3명, 대구(5명)에서 2명, 대전(1명)•충남(1명)에서 1명을 뽑은 것과 사뭇 달랐다. 3배수 후보자가 있는 지역마다 1명 이상 낙점됐으나 광주•전남에만 이석우 이사장의 지역 안배가 닿지 않았다.

▲시청자미디어재단 3차 면접 전형을 통과한 48명. 이 가운데 16명을 이석우 이사장이 직접 최종 합격자로 낙점했다. 빨간 네모 속 5명이 광주•전남 출신 지원자. 파란 네모 속 16명이 낙점을 받은 사람. 이 가운데 한 명이 채용되자마자 그만뒀고 보결로 1명이 합류해 모두 17명이 이석우 이사장의 낙점을 받았다.

▲시청자미디어재단 3차 면접 전형을 통과한 48명. 이 가운데 16명을 이석우 이사장이 직접 최종 합격자로 낙점했다. 빨간 네모 속 5명이 광주•전남 출신 지원자. 파란 네모 속 16명이 낙점을 받은 사람. 이 가운데 한 명이 채용되자마자 그만뒀고 보결로 1명이 합류해 모두 17명이 이석우 이사장의 낙점을 받았다.

2015년 6월 신입 공채 전형 책임자였던 박태옥 시청자미디어재단 시청자진흥본부장과 실무자 이 아무개 씨, 그때 재단 직원 공채를 대행한 김 아무개 J사 채용컨설팅본부장은 전형 과정에 관한 기자의 질문과 통화 요구를 모두 외면했다. 김 아무개 J사 본부장은 공채 대행 기간 중에 이석우 이사장과 세 차례 이상 만난 게 재단 직원에게 목격됐음에도 “(채용 대행) 계약을 하기 전에 세부적으로 진행 절차에 대해 처음 설명을 드렸을 때 딱 한 번 만났다”고 주장했다.

이석우 이사장은 지난 7월 4일 재단 월례 조회에서 “제가 와서 선발된 신입 직원들은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객관적인 절차와 필기시험 등에 의해 가장 우수한 성적의 사람들이 선발됐음을 다시 한 번 알아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아무개 씨를 ‘특별히 인정해’ 지원서를 받게 한 ‘객관적인 절차와 근거’를 여전히 내밀지 못한 상태다. 광주•전남 쪽 지원자를 모두 배척한 까닭도 아직 밝히지 않았다.

2차 필기시험에서 4위, 13위, 21위에 올라 3차 면접에 진출했던 광주•전남 출신 지원자 3명은 모두 3배수 밖으로 밀려났다. 2차 전형에서 11위였던 광주 출신 한 지원자는 3차 면접 뒤 3배수에도 들었지만, 이석우 이사장이 낙점하지 않았다. 2013년 6월부터 2015년 6월까지 2년 동안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인턴•보조강사•비정규 파견 사원으로 일하다가 신입 공채에 응해 3차 면접까지 통과한 또 다른 광주 출신 지원자가 낙점되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였다는 게 재단 내 중론이다.

▲“방통위가 시청자미디어재단 종합 감사 시점을 11월로 귀띔해 줬는지”에 대한 최성준 방통위원장(왼쪽)과 반상권 운영지원과장의 답변.

▲“방통위가 시청자미디어재단 종합 감사 시점을 11월로 귀띔해 줬는지”에 대한 최성준 방통위원장(왼쪽)과 반상권 운영지원과장의 답변.

반상권 방송통신위원회 운영지원과장은 시청자미디어재단의 “인사, 회계, 사업 수행 방식 및 절차 등 업무 전반에 대해 종합적인 감사를 실시할 계획”이며 “감사 시점을 재단에 알려 준 적 없다”고 밝혔다. 반 과장의 이런 설명은 최성준 방통위 위원장 지시에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석우 이사장은 그러나 7월 재단 월례 조회에서 방통위 종합 감사 시점을 11월로 예상하며 간부 중심 대응을 주문해 귀띔의 개연성을 엿보게 했다.

월, 2016/08/0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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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1

[사회정책연구센터 _ 르포 읽고 쓰기 모임]

현실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르포.
삶의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기록문학의 매력이죠.

좋은 르포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히고자 합니다.
이번 모임은 ‘읽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읽고 쓰기’입니다.

주제도 있습니다. 바로, ‘노동’입니다.
노동을 주제로 한 달에 한 편, 총 네 편의 르포를 써야 합니다.

각자 써온 르포를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고, 다시 고쳐 쓰면서 집단적 성장의 즐거움을 맛보았으면 합니다.
연말이 되면 네 권의 책, 네 편의 르포, 측정할 수 없는 보람이 남을 것입니다.

기간 : 8월~12월 격주 월요일 오후 7시30분~9시30분 (총 8회)
장소 : 서울혁신파크 내 정치발전소 (불광역 2번 출구)
방식 : 1회 책 읽고 토론하기/ 2회 각자 써온 르포 읽고 평해주기 (수정본 공유)
참가비 : 5만원 (입금 계좌 : 농협 036-12-101163 박선민)
참가신청 : http://goo.gl/forms/q0FWBJdx8J

진행 : 박선민 사회정책연구센터장
문의 : [email protected]

커리큘럼

1차(8월31일) 노동여지도 (박점규, 알마)
2차(9월14일) ‘나의 노동’ 르포 써오기

3차(10월12일) 노동자, 쓰러지다 (희정, 오월의봄)
4차(10월26일) ‘일하다, 아프다’ 르포 써오기

5차(11월9일) 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후마니타스)
6차(11월23일) ‘다른 이의 노동’ 르포 써오기

7차(12월7일)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8차(12월21일) ‘자유 주제’ 르포 써오기

* 신청 전 한 번 더 생각하세요!
글쓰기 기법 등 이론 수업이 없습니다. 르포 전문가의 가르침도 없습니다.
<르포 읽고, 쓰기 모임>은 비전문가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집니다.

금, 2015/07/3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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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개혁공약들 중요하나
국가와 대통령에 권력집중을
중심적인 문제로 보지 않는다
관료행정체제 근본적 문제들의
책임을 묻고 개혁하지 않는다면
대선 과정에서 큰 공백이 될 것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명예교수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명예교수

해방 후 미군정 관리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이 1960년대 말 출간한 『소용돌이의 정치』는 권력이 국가권력의 중앙으로, 공간적으로는 서울로 집중하면서 중심을 향해 치닫는 권력경쟁의 소용돌이가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그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할 뿐만 아니라, 지금은 더 강한 설명력을 갖는다고 믿는다. 정치체제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구 내에서 권력이 사회로 분산되고 다원화되기보다 국가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으로 더 집중화되고 있는 현상이야말로 그의 이론을 뒷받침한다. 헨더슨 이론의 모델이 되는 프랑스 정치이론가 토크빌은 구체제로부터 시작되는 중앙으로의 권력집중이 프랑스대혁명의 원인이었지만 혁명 이후 공화정하에서 그 권력집중을 구현하는 행정관료체제는 더 강화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분석은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설명력을 갖는다.

60~70년대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국가가 위로부터 경제발전을 주도했던 모델 사례의 하나로 알려져 발전국가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흥미 있게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세계경제 환경의 혁명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운영하는 방식에 관한 한 국가가 주도하는 관치경제는 그래도 유지돼 왔다. 이 특징을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라는 형용모순적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원래 사적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을 줄이고,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했던 신자유주의 이론이 경제 운영에서의 작은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었다고 할 때 한국에서의 관치경제를 통한 신자유주의는 최소한 그 원리와는 모순된다. 그 핵심원리로서 민영화는 관료기구의 역할, 기능뿐 아니라 관료행정체제의 목표와 운영의 규칙, 그리고 관료공직자들의 행위규범과 가치 자체를 외주화했다. 그리고 또한 공직윤리와 공익정신을 뚜렷하게 약화시켰다. 그러는 동안 중앙부서 산하의 300여 개에 달하는 공기업, 공사, 청 단위 여러 형태의 공공기구들의 재정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팽창했다. 또한 민영화는 공적 영역과 사적 민간 영역 간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공적인 것도, 사적인 것도 아닌 애매한 기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 넓은 영역이야말로 부패와 비리, 편법과 탈법, 무능과 무책임의 온상이 되기에 적합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는 것을 통해 승계를 지원했다는 혐의는 지금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주요 쟁점의 하나라는 것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공기업, 사기업 모두를 포함해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재정 규모를 갖는 사업체의 하나인 대표적인 공공기구의 결정 과정이 이사회를 뛰어넘어 대통령의 의사 하나로, 그것도 사적 목적을 위해 결정이 날 만큼 허술하기 그지없다. 그 밖에도 코레일,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사업 규모와 거래는 천문학적이다. 대통령과 관료기구의 권력은 너무 커졌을 뿐만 아니라, 그 운영의 책임 또한 약하고, 불분명하기만 하다. 민주주의하에서 국가운영의 최대 과제는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한 공공기관의 장들과, 그들의 휘하에서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공기업, 공사들이 수행하는 공적 결정과 업무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관리, 통제하고, 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본다.

민주주의에서는 제도를 벗어나 정치와 사회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은 단지 좁게 열려 있을 뿐이다. 모든 사회세력이 크든 작든 각기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상호 간 억제와 균형의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에서, 큰 개혁은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순실 사태가 불러온 정치적 격변은 일정 기간 그동안 현상을 유지했던 힘들이 작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불러왔다. 평상시에는 어려운 구조개혁도 가능한 공간을 열어놓았다. 대선에 나설 주요 정당 후보들은 청와대 개혁, 검찰 개혁, 재벌 개혁 등을 포함하는 여러 주요 개혁안들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개혁 사안들이 무척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과 병행하면서 그것을 떠받쳐온 중심적인 문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개별적인 개혁안들은 대통령과 국가권력의 팽창이라는 현상의 여러 측면 가운데 어떤 것들을 드러내는 문제들이다. 관료행정체제의 비대화와 무능력, 무책임과 비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아직 제대로 제시되지 못했다. 국가관료체제에 대해 책임을 묻고 또 그것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선 경쟁 과정에서 드러나는 큰 공백이라고 생각한다.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명예교수

[출처: 중앙일보] [최장집 칼럼] 관료 행정개혁과 책임의 문제

화, 2017/01/2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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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통치의 시간’, 준비돼 있습니까?

정치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거 시기가 되면 연락이 뜸하던 친구들로부터 종종 안부 확인을 겸한 선거의 전망을 묻는 전화를 받곤 한다. 며칠 전에도 친구로부터 ‘선거가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전화를 받았다. 긴 수다 끝에 친구가 물었다. “근데 왜 이번 대선은 12월이 아니라 5월에 하지?”, 농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고 순간 당황했다. 중년의 건망증이라고 서로 웃어넘기긴 했지만, 통화가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질문이 영 생뚱맞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잊은 채, 선거판의 정글에 빠져들어 길을 잃고 있는 것이 단순한 건망증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대선의 열기 속에 어느새 까마득한 일이 된 듯하다. 간간이 언론을 통해 양념처럼 등장했다 사라지는 전임 대통령을 비롯한 사건 연루자들의 사법처리과정과 수감생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만이 우리가 왜 12월이 아니라 5월에 대선을 치르고 있는지를 문득 상기시킬 뿐이다.
이번 대선은 87년 민주화 이래 최대 사건, 헌정 중단에 준하는 정치적 대위기가 초래한 선거이다. 또한 대다수 시민들은 대통령을 파면한 것을 폭군을 내쫓은 일종의 명예혁명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다음 정부는 명예혁명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주조해야 하는 비상한 책무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그러한 비상함은 찾기 어렵다. 선거 과정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를 잊게 할 만큼, 이전의 여느 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 문제를 두고 냉전적 시각으로 상대를 적대하는 것도, 심판론의 연장인 적폐청산론으로 피아를 구별해 적대하는 것도 그렇다. 이놈 저놈 하는 격한 정치적 언사도 모두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 틈을 타 탄핵당한 헌법 밖의 정치세력이 슬슬 다시 몸을 풀고, 또 그만큼 적대와 증오는 깊어지고 있다.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면 모든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될 거라는 자족적 기대도 상당히 커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탄핵정국 통해 표출된 사회적 에너지의 규모에 비춰, 그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의 다양함에 비춰,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복합적인 성격에 비춰 지극히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번 대선이 12월이 아니라 5월에 치러지게 된 것은 통치의 위기가 불러온 결과다 
보수-진보, 여-야를 떠나 절대 다수 시민들이 유사 사회적 합의를 통해 최고 통치자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 과정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넘어, 극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불균형, 시장을 지배하는 권력과 재벌 간의 오래된 담합구조, 대통령과 청와대로 초 집중화된 권력체계, 자율성과 자생력을 상실한 대학을 비롯한 사회 각 부분, 예스맨들의 집합체가 된 집권당과 책임성 없는 내각, 외교안보적 무능력과 리스크 증대 등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각 영역의 누적된 위기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일거에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 조기 대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촛불시위 과정에서 보인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함성은 더 나은 통치에 대한 시민들의 집약적 요구라고 할 수 있고, 이번 선거는 그것을 묻고 있다.
선거는 정치가 가진 여러 얼굴 가운데, 가장 경쟁적이며 대립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선거가 정치의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없다. 선거가 끝나면, 누가 집권하든 통치의 시간이 온다. 통치(government)는 원래 배의 키를 잡는 행위에서 유래한 말이다. 키를 잡고 거대한 함선을 이끌 듯이 최선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나라의 전반을 조정하고, 조율하고, 운행하는 정치적 실천이 통치다. 따라서 선거하듯 통치할 수 없다. 민주적 통치는 경쟁보다는 건설적 협력을, 대립보다는 상호 존중과 이해에 기초해야 한다.
더 좋은 통치의 비전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핍박과 조롱을 통해 이기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통치의 위기가 불러온 이번 대선의 의미를 정확히 뒤집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거 과정에서 과도하게 동원된 적대와 상대에 대한 모욕은 비단, 후보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그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 역시 그러한 적대와 모욕으로 고통받는다. 우리가 협력할 수 있고, 또 서로 존중받고 있다는 시민적 공감대가 없다면, 선거의 뒤끝은 격렬한 분열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누가 집권해도 여소야대의 분권정부, 즉 소수파 정부일 수밖에 없다. 지금 유력한 대선후보가 상대하는 후보와 정당은 선거가 끝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 촛불을 거치면서 높아진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수준 속에서 나라를 이끌기 위해서는 집권한 정당, 후보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첩첩산중이다. 아무리 승부가 중요하다 해도 서로가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 서로가 존중받고 있다는 신뢰의 근거는 남겨놓아야 한다. 그것이 통치의 시간을 준비하는 ‘통치자의 태도’이다.
선거는 이제 종반전이다. 비상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평범한 선거를 보며, 미래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다. 단 며칠이라도 적대와 증오, 서로에 대한 모욕이 커지는 선거가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를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서로가 존중받고 있다는 이해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그 맨 가장자리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발견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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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5/0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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