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30년 만에 배달된 선물

지역

30년 만에 배달된 선물

익명 (미확인) | 목, 2017/05/25- 11:08

(이 칼럼은 경향신문(2017. 5. 24)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한 잔 더 하시죠.” 방금 한 잔 했는데 또 재촉이다. 그는 이미 혀가 약간 꼬부라져 있었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마셔요, 술 마시는 기분 나지 않아요?”

요즘 뉴스를 보는 일이 즐겁다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가 흥을 돋운다고 한다.

뉴스에는 대통령이 참모들과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초등학생이 사인 받을 종이를 찾느라 가방을 뒤적이는 동안 키를 낮춰 기다려주는 대통령도, 5·18 때 아버지를 잃은 시민을 안고 위로해주는 대통령도 볼 수 있다.

이런 일에도 시민들은 감동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말했듯이 “뭔가 특별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세월호·광주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고도 무표정한 지도자, 비정규직을 숫자로는 이해해도 결코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로봇 같은 지도자 대신 시민의 고통과 슬픔을 느낄 줄 아는 이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20170525_110532
인간에겐 너무 쉬운 것이 로봇에겐 어렵다. 로봇에겐 타인의 고통과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쉬운 일은 로봇에게 어렵고, 로봇에게 쉬운 일은 사람에게 어렵다.’ 모라벡의 역설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밥 먹고 말하고 걷고 커피 마시는 것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로봇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반면 복잡한 계산은 로봇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람에겐 어렵다. 보통 사람은 절대 못하는, 정치 공학적 계산에는 능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걸 어려워하는 로봇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고 하자.

대통령이 그토록 쉬운 걸 왜 못하는지 사람은 절대 이해 못한다. 이렇게 속아서였을까. 5월9일까지만 해도 차선의 선택이라도 한 것인지 불안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시민은 자신의 손으로 뽑고도 놀란다. 우리처럼 말하고 우리처럼 생각하고 우리처럼 느끼는 정부를 선출했다니!

새 정부가 정말 적폐를 청산할지, 개혁에 성공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겨우 새 정부 출범 14일째다.

연합정부 없이 ‘여·야·정 협의체’만으로 여소야대 정국을 이끌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다. 앞으로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새 정부가 시민을 대하는 자세, 정부를 책임질 인물을 고르는 감각, 현안을 다루는 방식만 보고 있으면 불안감이 사라진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인기를 의식한 것도 있겠지만, 그걸로 시민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왜 하지 말아야 하는가? 가슴 태우던 세월, 절망스럽고 부끄러운 시간을 견뎌내느라 지친 시민, 낡은 권력에 시달린 시민을 위로하는 퍼포먼스가 당분간 필요하다.

새 정부는 앞으로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그건 문제가 아니다. 우리를 고통에 빠뜨린 건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묻지마 지지와 반대를 위한 반대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칭찬하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비판하면 된다. 그게 공정한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그래야 실패를 줄이고 성공을 부추긴다.

20170525_111600
2014년 4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유족 논란을 빚은 인물을 위로하고 있다 (왼쪽 사진).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아버지를 잃은 5.18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다행히 대선 이후 이념·지역에 결박된 지지와 반대가 약화됐다. 시민들은 이념·지역이 아닌 당면한 의제와 현안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과 태도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긴다. 그게 시민의 요구에 반응할 줄 아는 민주당·정의당 지지율은 오르고 세상 물정 모르고 역주행하는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폭락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TK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85%에 이르고, 민주당 지지율이 한국당을 앞선 이유도 알려준다. 한국당의 전국 지지율은 8%, 국회 의석수는 36%. 과잉대표다. 한국당은 이제 시민이 준 지지보다 4.5배나 큰 몸집을 지닌, 덩칫값 못하는 공룡이 됐다. 이것 역시 시민들이 반응성 있는 정치를 한 결과다.

예전의 한국인을 정의한다면, ‘정치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상처 때문에 정치를 혐오했고, 상처를 줄 수 있는 정치의 힘 때문에 정치를 욕망했다.

정치에 대한 이런 혐오와 집착은 한국 정치를 병들게 했고 시민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정치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시민은 더 이상 정치 밖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해 촛불집회가 정치 참여의 마당이 된 것도 정치에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상처에 굴복하지 않고 정치 속으로 들어가는 용기를 낸 결과였다.

이제 정치는 시민을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것으로 보답하고 있다. 치유된 시민은 더 많은 정치 참여를 할 것이다. 그래서 더 나은 정치, 더 나은 삶도 가능할 것이다. 이게 바로 민주화 30년 만에 뒤늦게 배달된 선물이다.

다시 어려움이 닥쳐도 시민은 극복할 수 있다. 동료 시민을 믿자. 내일 또 행진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오늘은 건배하자. 낡은 권력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세운 시민은 그럴 자격이 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아침 10시부터 시작된 이날 면접의 첫 심사 대상지역은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구로, 박진·오세훈·정인봉·김막걸리 예비후보가 가장 먼저 면접장에 나타났다. 면접을 기다리는 동안 박 전 의원과 오 전 서울시장은 "동생이...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9:35
9
0

아침 10시부터 시작된 이날 면접의 첫 심사 대상지역은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구로, 박진·오세훈·정인봉·김막걸리 예비후보가 가장 먼저 면접장에 나타났다. 면접을 기다리는 동안 박 전 의원과 오 전 서울시장은 "동생이...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9:30
4
0

【 기자 】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를 시작으로 시작된 새누리당 공천 면접. 나란히 앉아 면접을 기다리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박 진 전 의원은 겉으론 호형호제 하는 사이지만 미묘한 신경전은 계속됐습니다. 박 진 전...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6:23
5
0

오늘 첫 면접은 박진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출사표를 던진 서울 종로구 선거구부터 시작됐습니다. 박 전 의원은 면접 이후 기자들의 질문에 평소 늘 본선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오 전 시장은 서울...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6:21
4
0

서울 종로구 예비후보들이 공직후보자추전관리위원회(공관위) 위원들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부터 예비 후보 오세훈, 박진, 김막걸리, 정인봉. 새누리당 공관위는 이날 서울(8곳)·인천(4곳)·경기(7곳) 공천신청자 74명에...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5:36
4
0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20일 오전 열린 20대 총선 공천면접에서 서울 종로구 예비후보들이 공직후보자추전관리위원회(공관위) 위원들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부터 예비 후보 오세훈, 박진, 김막걸리, 정인봉./연합뉴스...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3:53
3
0

종로구에 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박진 전 의원 등 4명이 가장 먼저 심사를 받았습니다. 새누리당은 수도권 등 약세 지역이나, 당내 경선이 치열한 곳의 후보를 먼저 결정하겠단 방침입니다. 2012년 19대 총선...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3:33
9
0

서울 종로구에 공천을 시작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박진 전 의원, 정인봉 후보, 김막걸리 후보 등을 첫 시작으로 면접이 시작됐다. 오 전 시장과 박 전 의원은 면접시작 전 30분가량 대기실에서 대화를 나눴다. 웃는 낯이었지만...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2:42
5
0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20일 오전 열린 20대 총선 공천면접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사표를 던진 박진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16.2.20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연합뉴스...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2:19
12
0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20일 오전 열린 20대 총선 공천면접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사표를 던진 박진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악수하고 있다. 2016.2.20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2:19
7
0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20일 오전 열린 20대 총선 공천면접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사표를 던진 박진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악수하고 있다. 2016.2.20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2:19
8
0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20일 오전 열린 20대 총선 공천면접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사표를 던진 오세훈(왼쪽부터), 박진, 김막걸리, 정인봉 예비후보가 면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2.20 [email protected]...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2:18
5
0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20일 오전 열린 20대 총선 공천면접에서 서울 종로구 예비후보에 나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박진 전 의원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새누리당 공관위는 이날 서울(8곳)·인천(4곳)·경기(7곳)...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2:18
4
0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20일 오전 열린 20대 총선 공천면접에서 서울 종로구 예비후보에 나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박진 전 의원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새누리당 공관위는 이날 서울(8곳)·인천(4곳)·경기(7곳)...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2:18
5
0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20일 오전 열린 20대 총선 공천면접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사표를 던진 오세훈(왼쪽부터), 박진, 김막걸리, 정인봉 예비후보가 면접에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6.2.20 [email protected]...

Enable the current entity/bundle in the Like & Dislike settings page.
토, 2016/02/20- 12:18
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