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우리나라 최초의 공해병 피해자 故 박길래 17주기를 기리며

“공해를 뿌리 뽑지 못하면 우리 삶이 뿌리 뽑힌다” 故 박길래 17주기를 기리며
조수자(환경보건시민센터 공해피해자지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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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지구의 날 행사에서 “내 폐를 돌려다오!!!”라는 피켓을 든 박길래씨(경향신문DB)[/caption]
검은 민들레 박길래씨는 2000년 4월 29일 이른 새벽,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뒤로하고 무거운 세상살이 훌훌 벗고 저승길로 건너갔습니다. 검은 민들레 박길래님이 머문 그 나라에서 당신은 더 이상 고울 수 없는 노-오란 민들레로 피어나소서.
그녀와 함께 했던 순간들 기억 속에 남겨 뒀던 얘기들 한마디 한마디 떠올려 봅니다. 故 박길래씨 그가 이승과 이별한지 17주년이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그녀의 고통스러웠던 지난 이야기를 여기에 담아 봅니다.
어느 아주머니의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
박길래씨는 1989년 한국 최초의 공해병 환자로 대법원에서 판결을 받았습니다. 70~ 80년대 연탄공장이 밀집한 상봉동 삼표연탄 공장 주변에 거주하던 그녀가 얻은 병은 ‘진폐증’이라 했습니다. 한 번 걸리면 까맣게 변한 석탄먼지가 폐에 가라앉아 치유가 되지 않는 불치의 병 진페증은 광부들에게서나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박길래씨로 인해 도시의 오염된 공기 속에 사는 사람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임이 알려지고 증명이 되었습니다. 발병에서부터 공해병이란 판정을 받기까지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은 형극의 길로 표현될 만큼 험난했습니다. 국민을 위한 복지와 시민의 건강을 뒤로 미룬 정부는 박길래씨에게 공해병환자로 인정 할 경우 물밀듯 밀어닥칠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것이 두려워 판정을 질질 끌면서 박길래씨의 진폐증과 연탄공장과는 무관하다는 방향으로 재판을 이끌어 가기에 급급했습니다. 게다가 사업주 측의 공작 또한 집요했으며 ‘돈을 줄 테니 소송을 포기하라’는 유혹과 협박에 재판기간 내내 시달림에 지친 그 즈음 인권변호사로 명망이 높은 故 조영래 변호사의 도움으로 긴 싸움 끝에 원고 승소 판정을 받아 냈으며 한국 최초로 반공해운동사의 상징적 인물이 됐습니다. 승소 판정 후 14번의 재판 끝에 얻어낸 피해보상금은 고작 1천만 원. 살아있는 동안의 치료비도 감당 할 수 없는 적은 금액이었지만 보상금이 적다는 생각보다는 재판 중에 함께 했던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더 소중했다고 하였습니다. 검은 민들레 박길래는 어느새 반공해 운동가로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상봉동 지역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건강진단을 받도록 하는 한편 공해발생 현장이 있으면 먼 길 마다않고 달려가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다시는 나와 같은 사람이 나와선 안됩니다” 라며 피해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강연도 하며 반공해 운동, 환경운동의 전도사로 활동했지만 박길래 그녀의 굴곡진 삶과 고통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계속된 건강악화로 그녀는 외부 활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세인의 뇌리에서 잊혀 갔습니다. “숨이 점점 찹니다. 이젠 몇 발짝 걷는 것도 힘이 들어요” 병명도 모르던 시절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며 돈도 다 써버린 뒤 남은 것은 병든 육신뿐, 밭은기침과 호흡곤란으로 더 이상 기댈 곳 없어 검은 폐를 끌어안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검은 꽃으로 스러진지 17년. “들레 들레 민들레야 필적에는 곱더니만 질 적에는 까맣구나” 지리산 노고단에서 활동하는 안혜경 선생이 부른 검은 민들레 노래만이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곁에는 어쩔 수 없이 피해자가 된 환경성 피해자들, 현재 진행형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석면피해자, 시멘트피해자들이 있습니다. 환경공해병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최초의 공해병 환자 박길래의 삶과 죽음박현철(함께사는길 편집주간) 2000년 4월 29일 밤 11시 중대용산병원, 꽃 한 송이가 졌다. ‘검은 민들레’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던 한 사람이 향년 58세를 끝으로 목숨을 꺾었다. 그의 낙화로 인해 한국반공해운동사의 한 장(章)이 또한 접혔다. ‘박길래, 그 이름은 무한증식의 본능을 가진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희생양이며 이 사회가 키워낸 공해병 때문에 넝마처럼 해진 육신과 영혼이다.’지난 96년 4월, 당시 이미 죽음과 악수하는 삶을 살고 있던 박길래 씨와의 인터뷰 끝에 쓴 기사에서 기자는 그렇게 썼다. 그는 정말 한 벌 해진 옷을 벗듯 병마에 시달린 육신을 놓고 영면했다. 그의 장례는 너무나 검박해서 차라리 초라한 것이었다. 환경연합 등 환경단체와 그의 삶과 반공해운동을 후원하던 이들이 한 뜻으로 환경단체연합장(葬)으로 치르고자 했던 그의 장례는 혈연조차 적빈(赤貧)이었던, 그의 몇 안 되는 친족들의 의사를 존중해 교회장으로 치러졌다. 5월 1일 새로 3시, 마침내 운구차가 차게 굳은 그의 몸을 싣고 떠났다. 그 새벽 고(故) 박길래의 생애는 벽제의 장재장에서 연기로 날아가고 한 줌 뼈로 남았다.한국반공해운동이 사회운동의 한 부문에서 시민운동으로 전화하는 과정을 온몸으로 웅변한, 존재 그 자체로 환경운동의 귀한 동력이었던 한 탁월한 운동가가 영면의 길을 떠난 것이다. 88년 문송면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한국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고발하는 천둥소리였다. 열 다섯 어린 나이에 야간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입사한 회사에서 수은중독으로 쓰러진 문송면의 희생은 적어도 다시는 그와 같은 원시적인 작업환경 속에 노동자들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노동환경운동의 거센 불길을 일으켰다. 그의 죽음은 공장의 담 안에서 벌어진 직업병으로 인한 것이었다. 박길래의 경우, 병의 원인은 공장 안에 있었지만 병을 얻은 것은 정작 공장 밖 그의 생활공간에서였다. 이 경우의 병은 공해병으로 분류된다. 담장 안이냐 밖이냐의 차이일 뿐 결국 원인은 같다. 인간을 생산의 도구로 대상화하고 투여된 자본 이상의 이윤을 뽑아내려는 비윤리가 당연시되는 산업사회의 이면에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또한 공장 안의 노동자들의 건강조차 챙기지 않으면서 공장 가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해물질의 외부유출까지 신경을 쓰는 곳이 있을 리 없다. 그 결과는 박길래라는 희생자였다. 70~80년대 상봉동은 연탄공장 밀집지대였다. 삼표연탄공장 인근에 살았던 박길래는 연탄공장에서 날아온 탄가루 분진을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폐는 검게 타들어가기 시작했지만 병의 정체는 쉽게 밝혀지지 않았다. “감기인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감기약을 먹어도 낫질 않았어요.”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해 상봉동에 이사온 79년, 그해 겨울에 걸린 감기는 정말 질기게도 떨어지지 않았다. 잘 낫지 않는 희한한 감기에 걸려 박길래는 일도 못하고 벌어놓은 돈 죄 까먹으며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83년에는 갑자기 시력이 급격하게 저하됐다. 이대부속병원에서 건강종합검진을 받았지만 시력저하의 원인은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84년의 종합검진 때도 그의 병명은 밝혀지지 않았다. 85년 검진에서야 결핵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아무리 결핵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무슨 병인지 알고나 죽자’고 이를 악문 그는 86년 11월 국립의료원에서 폐조직 검사를 받았다. 그의 폐 조각은 숯처럼 검었고 연탄가루처럼 부서져내렸다. 박길래는 그 때 이미 알았다. 자신이 낫지 못할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공식판정은 ‘진폐증’. 탄광촌 광부나 걸리는 병에 자신이 왜 걸렸는지 그는 너무도 쉽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연탄공장 밀집지대에 살았다는 죄가 그녀를 진폐라는 불치병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길고 긴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87년 들어서는 이미 치료비조차 구할 길이 없을 지경이었다. 옆집 사람의 의료보험증을 빌려 그 이름으로 병원을 다녀야 했다. 그러던 차에 TV뉴스에 ‘상봉동의 연탄공장 다니는 여인이 진폐증에 걸렸다’는 오보가 나왔다. 억울했다.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고(故) 조영래 변호사를 찾아갔다. 87년 1월 23일 조 변호사와 함께 소장을 작성해 삼표연탄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공해추방운동연합(환경연합 전신)이라는 동지가 재판이 진행되면서 생겼다. 박길래의 싸움은 외롭지 않았다. 하나둘 어느 결에 반공해운동의 상징으로서 운동의 중심이 된 그의 곁에 후원자들이 모여들었다. 재판은 지리했고 회유는 끈질겼으며 방해는 야비하고 치사했다. 삼표연탄의 모기업인 강원산업은 거액의 무마비를 미끼로 ‘송사를 없던 것으로 하자’고 했고, 깡패들이 계속 협박전화를 해댔다. 박길래는 꺾이지 않았다. 이미 그는 환경운동가였다. 현재진행형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그에게 그 어떤 회유나 협박도 통하지 않았다. 전신을 갉아먹는 기침과 피고측의 온갖 방해공작을 물리치고 87년 12월 그는 승소했다. 그저 연탄공장이 있는 동네의 주택가로 이사왔다는 죄 때문에 천형을 짊어지게 된 대가로 받아 든 보상금은 너무나도 적은 것이었다. 단돈 1천2백만원, 그 돈으로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치료비를 갚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2백만원을 보상금에서 덜어내 공해추방운동연합에 비디오와 대형 TV를 사서 기증했다. “나 같은 사람들 더 많이 구제하는 데 유용하게 쓰세요.” 16살에 고향 정읍에서 상경해 결혼도 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모은 돈으로 장만한 집 두 채를 다 팔았다. 여기에 나머지 보상금 1천만원을 보태 치료에 진 빚을 갚았다. 그래도 20만원이 모자랐다. 청춘을 걸고 모은 재산이 7년 투병 끝에 날아간 것이다. 사라진 것은 그 뿐 아니었다. 남겨진 것은 육신을 갉아먹는 기침과 썩은 폐뿐이었다. 그의 나머지 인생은 무덤으로 가는 긴 터널일 뿐이었다. 박길래는 굴하지 않았다. 박길래의 법정투쟁은 똑같은 사연을 가진 상봉동 주민들에게도 용기를 주었다. 이후 5명의 진폐 환자가 상봉동에서 더 발견됐다. 박길래는 상봉동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상봉동 주민 공해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 삼표연탄공장 즉각 이전 △ 전 주민 건강검진 실시를 당국에 요구했다. 이들의 운동에 의해 88년 6월 서울시내 연탄공장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X-선 검사가 실시됐다. 1천8백42명이 검진에 응했고 그 가운데 상봉동 주민들이 1천2백명이나 됐다. 그리고 국정감사를 통해 검진 결과가 드러났다. 1천8백42명 중 50명이 진폐의증의 정밀검진대상자로 밝혀졌고 상봉동 주민이 24명이나 됐다. 박길래는 진폐 판정 이후 반공해운동가로 살았다. 어디든 자기를 부르는 곳에 달려가 “공해를 뿌리 뽑지 못하면 우리 삶이 뿌리 뽑힌다”고 호소했다. 90년 남산에서 공해추방운동연합 주최로 열린 지구의 날 행사에서 박길래는 이미 기울어가는 생명의 불꽃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었다. “진폐증을 불러오는 주택단지 내 연탄공장들은 이전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공해를 거부해야 합니다.” 박길래의 호소는 빗소리에 녹아들었다. 아무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는 한번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생명의 길이를 한줌씩 걷어내야 할 정도로 병세 심각한 환자였지만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공해추방운동연합과 함께 공해추방운동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반공해운동의 전도사로 끈질기게 활동했다. 진폐 판정 후 이사간 세검정 신영동에서도 그녀의 운동은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과 함께 마을의 당나무를 지키는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그 여름 당나무가 토지주에 의해 결국은 베어지고 그의 몸조차 함께 무너졌다. 진폐 합병증으로 허리뼈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굽은 척추로 인해 보조대를 차야 앉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바깥나들이조차 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는 그런 상태로 여러번 죽음의 문턱을 넘어들었다. 모두가 “이젠 가시나 보다” 할 때에도 그는 다시 깨어났다. 민들레처럼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언젠가는 정말 상황이 나빠져 지인들이 병원에 모여들었을 때에도 다시 살아나 “괜스레 성가시게 했다”며 도리어 미안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99년 말 정말이지 힘든 상황이 되었다. 너무나 오래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탓에 다 해진 입으로는 물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할 정도가 됐다. 무너진 척추 때문에 보조대를 하고 간신히 앉아서도 박길래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를 후원해 온 만화가 신영식 씨의 집에 요양하러 갔을 때 그는 말했다.“신 선생님, 부지를 좀 알아봐 주세요.”불우아동들을 수용하는 시설을 건립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박길래의 마지막 꿈이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살면서 자신의 약값조차 마련할 수 없이 고생하면서도 박길래는 그 꿈을 위해 후원금을 한 푼도 축내지 않고 고스란히 모아두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북한선교협의회가 주관하는 탈북동포돕기운동에 거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1999년 5월 4일 오후 2시 명동 향린교회에서 열린 추모식에 오랫동안 그의 후원자였던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김정욱 교수, 만화가 신영식 선생, 최열 환경연합 사무총장 등과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추도식에 참석한 이들은 몰랐던 박길래의 면면을 발견하고 새로운 감동과 더 깊은 슬픔에 빠져들었다.박길래는 죽음을 예견하고 자신의 수의를 마련하고 장례비까지 다 챙겨두었다. 그렇게 삶을 정리한 채 오래 기다리던 나라로 갔다. 남겨진 이들의 흐느낌이 길게 이어졌지만 그의 영정은 웃고 있었다. <검은 민들레 박길래 돕기 후원회>를 통해 가까운 자리에서 그를 지켜온 지인들 가운데 하나인 조수자 선생은 박길래를 보내는 인사가 단지 슬픔이어서만은 안 된다고 말한다. 박길래, 그는 한국의 공해추방운동을 환경운동으로 대중화하는 길목에서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뛰었던’ 걸출한 환경운동가였다는 것이다. “그저 그를 한 명의 공해 피해자로 보내버리고 잊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를 동지로서 앞세운 것입니다. 그를 보내는 인사는, 다시는 당신과 같은 이가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이어야 합니다.”그럴 것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은, 한국환경운동사의 지울 수 없는 상징으로서 고(故) 박길래 동지를 기억한다. |











모니터링단 정기회의에서 민·관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통해 조사의 신뢰성을 높여가겠다고 입을 모았다.ⓒ환경운동연합[/caption]
모든 현장측정과 시료채취는 환경연합 활동가, 한국수자원공사 담당자, 전문가가 함께 진행하며, 항목별 분석은 모니터링단에서 선정한 전문 분석기관과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동시에 수행해 데이터 신뢰도를 높인다. 환경운동연합은 한강모니터링단 활동을 통해 수질조사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단체의 기본 활동 목표인 정책 감시와 협력의 조화를 지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4대강사업 당시인 지난 2010년에 남한강 이포보 점거 농성에 참여했던 장동빈 한강모니터링단 위원장은 “환경단체, 전문가, 한국수자원공사가 함께 참여하는 한강 모니터링은 과학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며“민·관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통해 조사의 신뢰성을 높여갈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한편, 한강모니터링단은 1년 정도 모니터링 자료를 축적해 남한강과 북한강 수질 상태와 변화 경향성을 살펴 본 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문의 : 물순환담당 02-735-7066
수문이 열린 공주보를 지켜보는 참가자 .ⓒ 이정훈
모래톱에 새겨진 수달흔적 .ⓒ 이정훈[/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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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톱에 흔적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 .ⓒ 이정훈[/caption]
수문개방으로 실제로 물의 흐름이 생기면서 물은 다시 맑은 강의 모습을 되찾았다. 20일과 25일 찾아간 금강의 생물들의 다양한 흔적은 종다양성을 입증해주고 있었다. 재첩, 고라니, 삵,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의 흔적이 하천의 모래톱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본디 이렇게 살아왔을 생물들에게 4.5m의 인공호수는 그야말로 지옥이었을 게다. 수문개방은 생물들에게는 지옥으로부터 탈출구인 것이다.
사람들도 낮아진 강에서는 마음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20일 함께 찾은 아이들이 거침없이 강물에 발을 담갔다. 쌀쌀한 날씨에도 모래가 있는 물가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발을 담근 것이다. 맑은 물과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오가며 느끼는 간지러움 때문에 잠시지만 즐겁게 물놀이를 진행했다. 모래가 흐르는 강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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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보 상류에 생긴 모래톱에 발에 물을 담근 아이들 .ⓒ 이정훈
민물조개 ⓒ 이정훈[/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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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타난 재첩.ⓒ 이정훈[/caption]
흐르고 싶은 대로 흐르고 쌓이고 싶은 곳에 쌓이면서 만들어왔던 모습을 잃어버린 죽은 강을 이제 다시는 없게 해야 한다. 하지만 백제보는 11월 1일부로 다시 수문을 닫았다. 수막재배라는 농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백제보 수문개방으로 지하수위가 내려가면서 물을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이다.
11월부터 3월까지 겨울철 보온을 위해 사용되는 백제보 인근 주민들의 농업용수사용량은 부여인구 전체가 사용하는 용수의 수배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물을 사용하는 농법의 전환이 이루어지거나, 대체용수공극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백제보는 매년 겨울 수문을 닫아야 한다. 따라서 농가의 농법전환과 대체수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강은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역동성을 증명해주었다. 강의 역동성에 사람과 생명들은 더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을 만났다. 강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다시 닫힌 백제보 수문은 평가를 통해 반드시 다시 열릴 것을 기대해본다. 강은 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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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환경운동연합과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가 주최하고 (사)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가 주관하는 ‘태양광 가짜뉴스 오해와 진실’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토론회는 가짜뉴스(Fake news)로 인해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오해와 그 일련의 과정이 한국의 에너지전환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을 주제로 하였다.
좌장을 맡은 이창훈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학적 사실이 부족한 집단이 거짓된 근거를 가지고 사회적 논쟁에 참여하는 것이 가짜뉴스 문제의 시작인 것 같다”며 “그렇게 생성된 가짜 뉴스가 국민들 사이에 빠르게 퍼지는 것은 에너지전환을 지향하는 긍정적 변화에 장애가 된다”고 문제를 총괄 진단했다.
ⓒ환경운동연합[/caption]
이어서 임 컨설턴트는 EP(Environmental Progress)라는 찬핵단체 누리집에 태양광패널의 환경문제를 지적하는 짧은 글이 실린 것을 시작으로 이 게시물이 생산한 정보가 국회 국정감사장, 기성언론, SNS 등을 통해 빠르게 수용됨은 물론 심지어 특정 유튜브(YouTube) 채널에서는 민간단체인 EP가 미국 에너지연구원(EIA)으로 오기되는 등 가짜뉴스가 확대재생산 되는 과정을 드러냈다.
ⓒ임송택[/caption]
ⓒ환경운동연합[/caption]
그러면서 정부도 법안이나 대규모 사업계획을 통해 내수시장을 개척할만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야당이나 사업 예정지역 주민 반대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런 경우 반대의 논리가 대개 가짜뉴스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에너지공단도 팩트체크책자, 해명자료 등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대국민 홍보력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국민 정서상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토양이 착실히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을 맺었다.
ⓒ환경운동연합[/caption]
정부의 탈핵 정책과 맞물려 신재생에너지 사업계획이 확대됨에 따라 태양광 가짜뉴스도 비례하여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발제자와 토론자들, 그리고 열의를 가지고 토론회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지혜를 모았듯이 건전한 사회적 논쟁과 합의를 위해 악의적 가짜뉴스들을 바로잡고 에너지전환의 길로 가야 할 것이다.

신곡수중보ⓒ환경운동연합[/caption]
여러분 혹시 신곡수중보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신곡수중보는 1988년, 한강 김포대교 아래쪽에 설치된 길이 1km 길이의 보입니다. 신곡취수장의 수심을 확보하고, 서해에서 바닷물이 올라오는 피해를 방지하고, 유람선을 띄우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됐습니다. 한강을 바라봤을 때 상류와 하류를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신곡수중보 때문인 것이지요. 신곡수중보는 한강물의 흐름을 막아 수질을 악화시키는 문제를 발생시켰고 최근에는 인명구조를 하던 소방관이 신곡수중보로 인한 와류현상 때문에 사고를 겪는 등 안전문제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문제가 수년째 계속되자 마침내 서울시가 한시적으로 신곡수중보를 열기로 했습니다. 신곡수중보 정책위원회의 ‘신곡수중보 철거가 바람직하나 우선 수문 개방을 통해 부정적 효과를 분석하고 철거여부를 최종 결정하라’는 권고안을 받아들여 11월 중에 수문을 개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결정에 따라 당분간 보를 개방해 한강의 변화를 살필 예정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은 30년 만에 신곡수중보의 수문을 연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신곡수중보가 개방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최대 1.5m의 수위가 낮아질 예정인데요. 그동안 쌓였던 검은 펄이 먼저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한강에 버려진 쓰레기가 드러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50년 전 밤섬이 폭파되어 여의도를 쌓는데 사용된 이후 어느덧 습지가 살아나고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 것처럼 자연의 위대한 힘은 한강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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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신곡수중보모니터링단을 발족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서울환경운동연합[/caption]
환경운동연합과 서울환경운동연합,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녹색미래, 녹색당서울시당, 정의당서울시당 등 16개 시민사회와 정당은 지난 11월 13일 오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신곡수중보 시민모니터링단을 발족했습니다. 신곡수중보 철거를 위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신곡수중보 개방 이후 수위 변화에 따른 한강의 변화를 살피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신곡수중보 시민모니터링단」은 2019년 3월 수문개방 실험을 종료할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한강에 찾아갈 예정입니다. 한강 신곡수중보 상·하류 주요 거점에서 수질과 저질토를 채집해 분석하고, 수문상황도 모니터링 할 계획입니다. 시설과 안전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경관과 생태계는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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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전류리 일대에는 가무우지가 월동준비를 위해 찾아왔다 ⓒ서울환경운동연합[/caption]
한강의 물길이 복원되면서 한강이 어떻게 자연성을 찾아갈지 두근두근합니다. 몇 차례 비가 지나가고 상류의 모래가 차곡차곡 쌓이면 과거 한강처럼 해운대 못지않은 뽀얀 모래톱이 끝없이 펼쳐지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내년 3월까지 진행될 신곡수중보 개방실험동안 환경운동연합의 회원님들도 함께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문의 : 물순환 담당 02-735-7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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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1시,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와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은 19일 오후 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 주민 2명이 19일부터 23일까지 릴레이로 청와대앞 1인시위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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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부터 4년 넘게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월성원전 앞에서 농성해온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정부가 바뀌었어도, 탈원전이 진행되어도 우리의 문제는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국회에도 이주대책이 가능한 법 개정안이 제출되었지만 감감 무소식”이라면서 “조속히 정부가 나서서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이주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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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 해양서포터즈 천수만 흑두루미 먹이주기 활동 ⓒ환경운동연합[/caption]
환경운동연합 해양서포터즈는 가로림만 벌천포 해수욕장 정화작업을 진행한 다음 날 천수만을 찾았다. 지금은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날아간 흑두루미의 먹이를 주기 위해서이다.
천수만은 새들의 보금자리였다. 우리는 흑두루미가 먹이로 먹을 수 있는 벼를 나눠주기 위해 먹이 장소로 이동하는 도중 다양한 새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우린 아침에 먹이활동을 끝내고 쉬고 있는 큰고니 무리의 아름다운 모습에 놀라고 자연의 법칙에 열을 맞춰 날아다니는 쇠기러기 군무가 경이로웠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해양서포터즈와 중앙사무처 활동가들은 잊지 못할 하나의 장엄한 기억을 마음속에 새겼다.
천수만 흑두루미 터줏대감이신 서산태안 환경운동연합 김신환 자문위원님은 매년 흑두루미에게 먹이를 나눠주셨고 이번에는 환경운동연합 해양서포터즈와 활동을 함께 하기로 하셨다. 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우리가 천수만에 도착하기 전날 허리디스크 문제로 입원을 하셨고, 대신 자녀분이 나와서 함께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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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두루미에게 먹이를 나누는 해양서포터즈 ⓒ환경운동연합[/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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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누는 먹이는 비단 흑두루미뿐 아니라 주변에 날아다니는 철새와 고라니 등 야생동물의 먹이가 된다. 뿌려진 벼를 따라 걷고 있으면 이미 맛있게 먹이를 주워 먹은 고라니의 배설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길 위에 끊임없이 먹이를 잇는 작업은 우리에게 경험해 보지 못한 큰 즐거움이었다. 내년 2월 무렵에 다시 올라올 흑 두루미의 먹이를 주는 의미도 있지만, 눈삽으로 퍼 나르는 벼의 재미는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해양서포터즈도 중앙사무처 활동가도 길 위에 가볍게 흩날려 떨어지는 벼 소리에 추위를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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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두루미 눈으로 바라본 천수만 먹이길 ⓒ환경운동연합[/caption]
두루미의 눈으로 바라본 천수만 볏길은 우리나라를 지나 러시아로 이동하는 흑두루미들에게 반가운 식사 장소가 될 것이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활동이 야생동물의 자생력을 떨어뜨린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 우리의 활동이 앙상하게 날아오는 흑두루미를 보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은 아닐까 생각된다. 하늘에서 바라본 천수만 볏길은 흑두루미들이 매년 그러하듯 날아가는 도중 잠시나마 기력을 보충할 수 있는 중요한 중간지점이 될 것이다.
시민으로 구성된 환경운동연합 해양서포터즈는 현장에 방문하여 해양정화활동과 생태체험을 진행했다. 모든 체험을 종료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해양서포터즈 그리고 활동가들 모두에게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는 확신이 생겼다. 환경운동연합은 내년에도 시민의 눈으로 시민과 소통하고 소중한 자연 보전의 필요성을 시민과 함께 자연의 시각으로 체득하는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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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영훈 국회의원,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공동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불법어업 현황과 근절방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는 국내 어업량의 마지노선 100만 톤이 2016년 무너져 회복되지 않는 가운데 남획과 혼획 등의 불법어업 현황과 근절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됐다.
이강은 해양수산부 지도교섭과 사무관은 ”어업생산량이 100만 톤 이하인 현재 상황에서 불법어업이 최소 40만 톤~70만 톤이 추정된다“며 ”그 중 양식장 생사료로 사용되는 49만4천 톤의 어린 물고기 남획이 해양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불법어업으로 망가지는 해양생태계의 문제를 설명했다.
2006년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해양생태계의 생물 다양성 손실 효과’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조업형태로는 2048년 상업적 조업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고된 바 있다.
김은희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은 ”양식 생산량이 8만 톤인데 어린 물고기 생사료가 49만 톤으로 사용되는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위원은 ”과거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지방자치단체의 불법어업 단속량을 분석한 결과 불법 어구에 대한 단속률이 가장 높았다“고 설명하며, ”단속기관 사이 단속 유형을 통일하여 자료 신뢰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단속기관의 통합관리를 강조했다.
김도훈 동행어업관리단 어업지도과 과장은 ”성어가 되면 50~60만 원이 넘는 어린 조기가 10kg 한 상자에 3~4만 원에 광어 사료로 사용된다“며 현장 소식을 전했다. 김 과장은 ”불법어업이 자원양을 심각하게 떨어트리고 있으며 시민단체와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불법어업근절에 모두가 관심을 두고 참여해 줄 것을 호소했다.
참여자들은 생사료로 사용되는 어린 물고기가 성장했을 때 예상되는 경제적 이익과 해양생태계 보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에 한 목소리로 동의했다.
여길욱 도요새학교 대표는 ”자료뿐 아니라 신고체계를 단일화하여 현재 단속기관 간 협업이 되지 않는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경 파출소는 항포구마다 있고 기초단체 어업지도선은 출항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기관 간 신고 떠밀기가 의심된다는 설명이다. 이어 이용기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충남, 전북 등 지자체 단속현황은 연간 각 20건이 안 되는데, 현장에서 하루에 발견할 수 있는 불법 어구, 개조 선박이 100건 이상이다“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지자체 단속을 꼬집었다.
오영훈 국회의원은 “불법어업이 해양생태계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이 큰 손해를 입고 있다”며 “대한민국 어족자원 보호와 불법어업 근절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앞으로 관련 기관과 어민이 함께 정기적으로 불법어업을 근절을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넓힐 계획이다.
대체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누가 어떻게 규정하는가. 원자력 관련 전공자들에게만 맡기면 원전 안전은 더 향상되는가. 원자력계는 어떤 조직보다 폐쇄적인 운영으로 사고은폐와 사상초유의 원전비리사건 등이 발생한 바 있다. 그럼에도 다시 빗장을 걸어 잠그고 원자력 전공자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야 한다고 소리 높이는 게 안전향상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국회추천 등을 통해 환경단체 등 원자력계로부터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소수지만 처음으로 참여하면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밀실에서 이루어져왔던 회의를 공개방식으로 바꿨고, 각종 기록과 안전관련 정보들이 투명하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원전 관련 심사 역시 형식적인 승인이 아니라, 안전에 대한 검증이 위원회 안팎에서 논의가 치열하게 될 정도로 변화되었다.
중앙일보가 말하는 원자력 전공자가 아니면, 원자로 용어를 잘 모르면 비전문가라는 구별법은 타당하지 않다. 국내 원자력 관련한 어떤 조직을 보더라도 원자력전공자들만 있는 곳은 없다. 이는 원자력관련 조직들에서도 다양한 지식과 경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외 원자력관련 기관들도 이런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대표적으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위원 구성을 보더라도 원자력전공자만이 아니라, 법률, 정책 등 전문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언제나 원자력 전공자들이 다수였다. 최근 원자력 전공자들이 위원에서 한꺼번에 물러나게 된 것은 사업자로부터의 독립성을 위반한 결격사유가 감사원결과 등으로 밝혀지면서 자진사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자력계 본인들의 흠결까지 탈원전 때문이라는 궤변이 어디에 있나.
안혜리 논설위원은 제목부터 환경운동연합이 내용도 모르면서 원자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단정적 표현으로 환경운동연합에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고 있다. 본문 역시 원자력 관련 기관들에 환경운동연합 출신 인사들이 핵심 자리를 차지해 원전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명확한 근거도 없이 단체에 악의적인 이미지만 덧씌우고 있다.
사실관계부터 틀린 내용들이 있다. 안 위원은 환경운동연합 출신 또는 관계해온 탈핵운동가들이 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에 자리를 맡은 사람들이 20여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환경운동연합 출신은 물론 일부 관계를 맺어온 전문가들을 포함하더라도 소수에 불과하다. 도대체 20명의 근거는 어디서 가져온 것인가.
안 논설위원은 원자력안전재단이 재난 발생 시 주무부처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원자력안전재단은 원자력안전정책수립을 위한 기초연구나 원전안전연구개발사업 관리, 방사선작업종사자 교육훈련 등을 주된 업무로 하고 있다. 또한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와 발전회사인 한수원, 연구기관인 원자력연구원 등을 다 섞어서 원자력업계로 통칭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알고 글을 썼을까라는 의심마저 든다.
안 위원이 말하는 원전 안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내용도 문제다.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는 것이 신고리 4호기 운영허가를 빨리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이 안전을 위협하는 것인가. 사업자인 한수원의 입장에서는 빨간불일지 모르겠으나 안전을 위협하는 게 뭐가 있는가. 신고리 4호기 운영허가 심사가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현재 진행 중인데, 심사도 하지 말고 허가부터 내주라는 주장인가.
안 위원은 덮어놓고 신고리 4호기 운영이 원안위가 허가를 안내주어서 늦춰진 것처럼 말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신고리 4호기 운영이 지연된 것은 무엇보다 케이블위변조 등 원전비리 사태가 발생하면서 케이블 교체 작업 때문에 2년 정도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또한 GE사 밸브 리콜 부품 교체 설치, 경주지진 등으로 인한 부지안전성평가 등까지 이어지면서 더 늦춰졌다. 결국 사업자의 비리와 부실로 문제가 발생하고 시간이 늦춰진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원안위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환경운동연합 출신 인사들이 이를 막아서 허가가 미뤄진 것처럼 또 그로 인해 하루에 20억을 까먹고 있다는 근거도 없는 말들을 늘어놓고 있다.
안 위원은 결론에서 원자력 전문가를 빌려 “원자력과 관련해 거짓 또는 과장 정보로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해온 사람들로 원자력 관련 기구를 채워 대응능력 없는 조직으로 만들면 국민안전이 위험할 수 밖에 없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을 교묘하게 거짓과 과장 정보로 불안감을 조성해온 집단으로 밑도 끝도 없이 매도하고 있다.
중앙일간지의 논설위원이라면 적어도 사실 확인과 합리적인 근거를 갖고 주장을 펼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아무리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싶더라도 이건 아니다. 그동안 환경운동연합은 원전안전에 있어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로 의견과 정책을 제시해왔다. 창립 이래 지난 25년 동안 시민의 안전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 활동해온 환경운동연합을 중앙일보의 한 논설위원이 거짓 또는 과장 정보로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집단으로 매도한 것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끝>.

해양쓰레기 근절, 해양보호구역 확대 피켓을 든 환경운동연합 해양서포터즈 ⓒ환경운동연합[/caption]
유해물질 주의 표시가 된 화학약품통을 가리키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환경운동연합[/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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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포대에서 나온 생활쓰레기 ⓒ환경운동연합[/caption]
가로림만의 아름다운 풍경 ⓒ환경운동연합[/caption]
시민들의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