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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칼럼] 새 정부와 한반도 평화공존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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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칼럼] 새 정부와 한반도 평화공존의 과제

익명 (미확인) | 월, 2017/05/15- 15:31
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새롭게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대면하고 있는 과제들 가운데 북핵 위기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남북한 간의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느냐 하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외교안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동안 한국에서 외교라는 것은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냉전시기 이래 현재까지 한국의 안보는 강력한 한·미 군사동맹과 핵우산을 통해 보장되었다. 다수의 한국민들은 미국과 한국의 국익이 분리될 수 없고, 따라서 한·미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외교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외교는 미국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미 관계는 실제에서나, 사람들의 인식에서나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5차 핵실험 성공 이후 북한의 핵무장화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현실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예측하기 어렵고 충동적인 데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대북 강경정책을 한편으로 하고, 체제 존립을 위해 ‘미치광이 이론’으로나 설명될 수 있는 북한 김정은 간의 극단적 대응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북·미 간 치킨게임은 한반도를 아슬아슬한 전쟁의 벼랑으로 몰아갔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 땅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하려는 트럼프 정부의 시도는 박근혜 정부와의 합의를 끌어냈지만, 왜 밀실 결정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하기에 충분하고, 그와 아울러 이른바 정부 간 합의는 국회의 비준을 필요로 하는 중대 사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드 배치 자체가 한국을 위해 중대 사안인 이유는 안보를 위한 미국과의 연대냐, 경제교역과 문화교류를 위한 중국과의 연대냐 하는 양자택일을 강제하는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치가 결정될 경우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자신의 국익을 위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무척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한국민들로서는 당혹스럽게도 트럼프 정부가 한국이 사드 배치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외교안보 문제를 미국 우선주의라는 모토로 공공연하게 미국의 경제이익과 결부시키는 상거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 관계를 단기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규범적인 절대명제처럼 생각했던 한국민들로서는 당혹감을 금할 수 없다.

한국은 변화하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에서 자신의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독자적인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말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장착한 북한의 강화된 군사력에 대응해야 하는 한국 안보에 있어 한·미 군사동맹과 미국의 핵우산 역할을 경시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국제정치 질서에서 미국 영향력의 범위를 존중하고 그 틀을 지킬 때 한국의 국익이 실현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미국과 한국의 국익은 이슈와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한국 자체의 국익을 추구하는 것에 진력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남북한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국제환경은 과거 냉전 시기에 비해 근본적으로 변했다. 프린스턴대의 국제정치학자 아이켄베리의 말처럼, 아시아의 국제정치 질서가 “이중 위계질서”로 특징지울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그것은 미국과 중국이 공동경영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새로운 형태로 초강대국 중심의 헤게모니 체제도 아니고, 세력균형 체제도 아니다. 이 새로운 질서는 우리와 같이 두 강대국 사이 중간에 위치하는 국가들을 위해 안보를 위해서는 미국에, 무역과 투자를 위해선 중국에 더 많이 의존하면서, 두 국가 모두와 연대하면서 필요에 따라 어떤 국가를 끌어들이고, 동시에 어떤 국가에 대해 방어하는 혼합된 전략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둔다.

지금 우리를 위해 다행스러운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통해 탈냉전 시기 남북한 간 데탕트를 통해 평화공존을 일정하게나마 시도해 봤던 경험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지금 새로 출범한 민주당 정부에서 이 평화공존의 과제를 추구할 때 염두에 둬야 할 중요한 문제는, 앞선 시기 ‘햇볕정책’은 왜 지속 가능할 수 없었는가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보완하는 일이다. 한국사회에서 평화 지향적 대북정책을 안정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정치와 사회에서 보수든, 진보든 어느 한 진영만의 힘으로는 남북한 간의 평화공존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핵심은 이들 사이의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일이다. 핵무장으로 가는 북한을 평화공존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순진함은 금물이다. 강한 안보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그 과정은 극히 위험하다. 막스 베버의 표현을 빌린다면, 그 과업은 보수의 안보와 진보의 평화공존이라는 가치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고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출처: 중앙일보] [최장집 칼럼] 새 정부와 한반도 평화공존의 과제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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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외교안보 위기를 문재인 대통령이 잘 헤쳐 나갔으면 하는 기대가 높았던 7월11일. 문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이 있다고. 그건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의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고백이었다. 취임 두 달 만의 무력감 토로라니.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음을 강조하려는 과장법이려니 했다. 난제에 직면한 지도자가 한 번쯤 할 수 있는 푸념일 거라고 넘겼다.

[이대근 칼럼]문재인의 힘

두 달이 흘렀다. 한반도 문제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고 그에 비례해 한국은 더욱 존재감을 잃어갔다. 트럼프 추종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펴졌다. 놀랍게도 정부는 이번에도 부인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의원은 모욕을 참고 가랑이 밑을 긴 한신을 문 대통령과 동일시했다. 며칠 뒤인 9월22일 문 대통령이 김 의원 발언을 뒷받침했다. “지금처럼 잔뜩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섣불리 다른 해법을 모색하기도 어렵죠. 압박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 추종은 이제 가설이 아닌, 입증된 사실로 확정됐다.

이때만 해도 기대감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정부가 한신처럼 반전의 기회를 노리며 뭔가 도모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국은 충분히 그럴 역량을 갖고 있다. 한국은 인구, 산업능력, 군사력과 같은 하드 파워로 보나 기업혁신, 문화, 정부, 교육과 같은 소프트 파워로 보나 명실상부한 중견국이다. OECD 가입국이자 여러 국가의 역할 모델이기도 하다. 주변 강국으로 인해 중견국에 걸맞은 역할을 다 하지는 못하지만, 한 세대 전, 한 세기 전과 같이 주변국의 요구를 무조건 따라야 했던 약소국은 더 이상 아니다. 영화 <남한산성>이 굴욕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약소국의 처지를 새삼 부각하지만 381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취임 5개월째인 10월10일 문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의구심과 미련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안보 위기에 대해 우리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세 번째다. 우리는 그가 세 번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더 이상 푸념도 과장도 아니다. 역전의 순간을 위해 일부러 힘을 감추려는 전략도 아니다. 그의 정직한 안보인식이자 정부 능력에 대한 자가 진단의 결과다. 또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곧 다른 경로가 열리지 않을까 하고 가슴 한쪽에 품고 있는 낙관론을 접으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무기력증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최후의 생존게임을 하고 있다. 자원을 최대로 동원해야 하고 무얼 하든 결사적이어야 한다. 남한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북한의 무릎을 꿇리려 한다. 게다가 남의 말 잘 안 듣는 트럼프가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런 북·미 대결 상태도 한국이 손 놓고 물러선 상황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 반대다. 한국이 더 많은 힘을 쏟고, 다른 방법을 찾고, 비상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내놓은 해결책은 이런 것이다. ‘긴장이 완화되고 북한이 도발을 스스로 중단하면 그때 근본적 해법을 모색한다.’ 그렇게 기다리면 위기는 누가 해소하나? 문 대통령도, 트럼프도 아니라면, 김정은밖에 없다.

한국의 안보와 미래가 달린 일이다. 북한과 미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면 한국은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가? 미국에선 요즘 대안 논의가 활발하다. 트럼프의 외교 멘토 키신저는 주한미군 철수 대가로 중국이 북한을 붕괴시키는 안을 백악관·국무부에 제시했다고 한다. 백악관 실세였던 스티브 배넌은 미군철수와 북핵동결 구상을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한·미연합훈련 축소 한마디 했다가 경고를 받았다. 주한미군 철수론은 말할 것도 없다. 그건 한국인이 말할 수 없는 말이다. 미국은 한국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상을 마음껏 논하는데 한국인은 그러면 안되는 이유를 누가 좀 설명해주면 좋겠다.

김정은도 세계를 흔들었다. ‘당당한 외교’를 하겠다던 문 대통령은 왜 흔들리고 있나? 문 대통령은 광야에 홀로 선 존재가 아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를 이끄는 강력한 통치자,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민주사회의 지도자다. 트럼프·김정은이 아니라 문 대통령을 믿고 싶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운명, 우리 손으로 개척할 수 있다. 문재인은 힘이 있다. 그 힘을 보고 싶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172115025&code=990100#csidx60c975ee78b420e8a028e2384f106b3

목, 2017/10/1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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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은 '유권자'가 아니라 '주권자'다

대의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공리인가?

 

진시원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촛불집회 이후 민주개혁 정부가 다시 들어서고 적폐청산이 추진되고 있는 2017년 현재, 촛불집회의 의미를 폄하하고 시민들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며 대의 민주주의만이 한국 민주주의의 공리이자 바른 길이라고 강변하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대의제 민주주의는 선거로 선출한 대표에게 통치를 위임하는 귀족주의의 장점과 평등한 인민주권을 실현하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결합한 체제이기에 (직접 민주주의보다) 더 우월하다'는 취지의 글을 발표했으며(중앙일보, 10월 11일자),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주권은 시민 개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그들의 전체 의사이자 그것을 합법적으로 위임한 것을 가리키는 바, 민주주의에서라면 그것은 법을 만들고 집행할 권리를 시민으로부터 일정 기간 위임받은 선출된 대표들에게 주어진다'고 주장했다(동아일보, 10월 10일자). 그런데 이 분들의 글은 오해와 잘못된 인식에 기초해 있다.

 

첫째, 촛불시민 중 대다수는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다고, 혹은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을 듯하다.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제 보다 낫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촛불시민들의 열망은 오작동 중인 대의 민주주의와 비민주적이고 자기 이익추구적인 정치 엘리트를 주권자 시민이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통제하겠다는 것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즉, 촛불시민들은 '유권자'에 머물지 않고 '주권자'가 되겠다는 것이고, 주권의 '소지자'뿐 아니라 주권의 '직접 행사자'도 되겠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촛불혁명이 만들어낸 주권자 시민은 대의 민주주의와 엘리트 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대의 민주주의의 오작동과 자기이익 추구적인 정치인을 주권의 직접 행사를 통해 통제하고 이를 통해 대의제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촛불시민이 바라는 직접 민주주의는 두 가지 형태일 듯하다. 하나는 국민(주민)투표, 국민(주민)발안, 국민(주민)소환을 통해 대의제와 정치 엘리트를 직접 통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자치와 분권 그리고 풀뿌리 차원의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직접 민주주의 강화 움직임은 이번 개헌과정에서 상당수 시민들의 열망임이 확인되고 있다. 둘째, 정치체제가 대의 민주주의이든 아니면 직접 민주주의이든 간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시민 개개인의 소유이자 시민 전체의 소유이다. 즉, 주권은 그 누구도 아닌 시민들에게 있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주권의 소유자는 시민이며 주권의 행사자는 선출된 정치 엘리트이지만, 직접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주권의 소유자와 직접 행사자이다. 주권은 절대로 선출된 정치인, 즉 대리인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주권은 시민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주장은 박상훈 학교장의 오해이자 왜곡이다.

 

더욱이 대의 민주주의의 근간인 한국의 정당과 의회는 그 존재 자체가 상당히 퇴행적이다. 한국 정당사와 정당의 제도 경로성을 보라. 그리고 대다수 시민은 그 많은 정당의 명칭 변천사를 기억하지 못한다. 영국이나 미국, 유럽 국가들의 정당과 한국정당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더욱이 우리 국회의 비민주성과 갈등 증폭 성향은 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회생가망이 그리 높지 않은데, 정당과 의회가 살아야 한국 민주주의가 산다는 주장은, 약효 없는 약을 과신하는 것일지 모른다. 거의 기약 없는 정당과 의회를 붙들고 사는 것보다, 그것을 추구함과 동시에 오작동 중인 한국의 대의 민주주의와 공익보다 사익추구적인 정치인을 주권자 시민이 직접 통제하여 개선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가 한 걸음 더 민주화되는 길인 듯하다. 촛불집회가 만들어낸 유권자이자 주권자인 시민, 주권의 소지자이자 직접 행사자인 시민이 한국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은 과소평가하기엔 너무 엄청난 전환기적 정치 경험이다. 다시 말하지만, 촛불시민은 오작동 중인 대의 민주의의와 이기적인 정치 엘리트를 시민주권 민주주의로 개선하고자 한다. 대의제를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공리(axiom)라는 것은 그것이 진실하다는 점이 자명하고, 그 내용이 아주 잘 확고하게 정리되어 있어 합리적인 인식 공동체 내에서 의심받지 않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진술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의 민주주의는 한국 민주주의의 공리이고 한국 민주주의는 반드시 그 길을 가야만 하는가? 촛불집회 이후 시민들은 더 이상 '유권자'가 아니라 '주권자'이다. 촛불시민을 다시 '유권자'로 퇴행시키려는 기획은 다분히 복고적이고 보수적이며 시대착오적이다. 주권자 시민들에게 대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한국 민주주의의 금지옥엽도 아니고 불사조도 아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수, 2017/10/2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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