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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7.04.11 노지현 강승현 기자


 


[지방의회 26년… 권한-기능 업그레이드하자]<중> 지역 주민의 손발 자처한 지방의원들


1월 지역주민 행사에 참석한 김용석 서울시의원(46·더불어민주당·도봉1)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의회 회기가 아닐 때는 거의 매일 열리다시피 하는 지역행사에 대부분 참석한다. 김용석 의원실 제공

김용석 서울시의원(46·더불어민주당·도봉1·재선)은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난다. 조간신문과 인터넷으로 기사를 체크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오전 8시 지역 국회의원 사무실로 출근한다. 지역의 다른 지방의원들과 이용료를 함께 내는 사무실 ‘셋방살이’를 한다. 한쪽의 책상이 김 의원의 집무실이다. 개인 사무실을 낼 수는 있지만 후원회를 두지 못하는 시의원으로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오전 11시까지는 대부분 조례를 연구한다. 김 의원은 ‘청년기본조례’ ‘시내버스 재정지원 및 안전운행기준에 관한 조례 개정안’같이 생활밀착형 조례를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현안자료를 살펴보고 서울시에 요구할 자료도 주로 이때 추린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동안 항상 시정(市政) 관련 자료를 들여다본다.

오후에는 초등학교, 경로당, 지역 상가 같은 지역 현장을 주로 찾는다. 점심은 대부분 지역 주민과 같이 하면서 지역 현안, 민원 등을 듣는다. 매일 열리다시피 하는 지역 복지시설, 직능단체, 비영리단체 등이나 구청의 행사는 잘 빠지지 않는다.

각종 회의와 행사는 밤까지 이어진다. 동별 주민자치위원회, 방위협의회, 자율방범대를 비롯한 지역 기구 회의는 물론이고 월 2회 열리는 통장회의에도 참석해 의정보고도 한다. 김 의원의 현장 행보는 오후 9시를 훌쩍 넘어서까지 이어진다. 오후 11시 안팎에 귀가하고 나서야 못 다 본 자료를 들여다보지만 제대로 분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밤 12시를 넘겨 오전 1∼2시에야 잠을 청한다. 

○ “정책지원인력 한 명만 있다면…” 




시의회 회기(會期)가 아닌 달이라 이 정도다. 상임위원회와 본회의가 열리는 회기 중에는 회의 준비에 눈코 뜰 새가 없다. 행정감사나 시 예산을 심의하는 연말이면 시의회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시의원들이 보좌 인력을 절실히 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1년 지방의원을 다시 민선으로 선출할 때 지방의원은 무(無)보수 명예직이었다. 다분히 지방정부를 중앙정부의 집행기관 정도로 인식한 영향이 컸다. 국회의원처럼 보좌관을 둘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26년이 흘렀다.


김 의원은 “지방정부의 기능과 역할이 커졌고 당연히 시의원이 다뤄야 할 분야도 많아졌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보좌 인력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시만 봐도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할 시와 시의회 관계는 확연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국방과 외교를 빼고 모든 일을 다 담당한다’는 서울시는 공무원 1만7000명에 한 해 예산이 40조 원(기금 포함). 이런 골리앗을 시의원 106명이 상대한다. 송재형 시의원(자유한국당·강동2)은 “시의원 1인당 예산 3800억 원가량을 심의하는 셈이다. 혼자서 조례 만들고, 지역 현안 챙기고, 민원 해결하면서 예산까지 꼼꼼히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14일간 진행되는 행정감사도 마찬가지다. 상임위원회별로 감사를 하지만 혼자서 봐야 할 자료가 천장까지 쌓인다. 전문성도 부족하다. 한 상임위를 4년 동안 맡아도 공무원을 상대하기 쉽지 않은데 중간에 바꾸기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상임위마다 수석전문위원, 전문위원, 입법조사관 등이 있지만 시의원 106명을 보좌하기에는 많지 않다. 

민원 해결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지역 국회의원이 받은 서울시 관련 민원은 결국 돌고 돌아 시의원 몫이 된다. 성중기 시의원(무소속·강남)은 “교통, 문화, 보건, 복지 등 실제 주민의 삶에 직결된 많은 일은 시의원이 맡아서 한다”며 “그걸 시의원 혼자서 잘하려고 하면 끝이 없다”고 말했다. 




○ 시의회 전문 인력 풀 대안 될까 

서울시의원들은 정책보좌관 대신 정책지원인력이라고 말한다. 보좌관이라고 하면 “세금을 써서 개인비서를 채용하겠다는 뜻 아니냐”며 쌍심지를 켜는 여론을 의식해서다. 맹진영 시의원(더불어민주당·동대문)은 “지역에 비서처럼 데리고 다니며 쓰는 게 아니라 의회 일만 하더라도 지원 인력은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여론의 ‘색안경’은 지방의원들 스스로가 초래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지위를 이용해 지방자치단체의 이권에 개입하거나 외유성 해외연수를 다녀오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서울시의회 의장이 수뢰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들이 정책지원인력이 절실하다고 주장해도 ‘결국 시의원 자신은 지역을 닦아 향후 정치에 이용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적지 않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보좌 인력 배치에 대해 “절대 정책보좌관을 할 리가 없다. 무조건 정무보좌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의원 자신의 친인척이나 지인을 고용할 게 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만큼 정치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는 얘기다.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시의회가 공무원 6급 또는 7급의 정책보좌 전문 인력 풀(pool)을 선발해 관리하자는 방안이 제시된다. 조례 입안과 예산 분석에 뛰어난 인재를 양성해 시의원들은 바뀌어도 노하우는 계속 축적하자는 것이다. 시의회에서 정책지원인력 106명을 선발한다면 36억 원(7급 상당)∼45억 원(6급 상당)이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김태영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청년을 고용해 전문 인력으로 키울 수 있고, 시의원들은 주민생활에 밀착해 의정활동을 하는 일석이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지난해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정책보좌관제 도입을 핵심으로 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잠재적 경쟁자인 시의원을 ‘돕는’ 법안 통과에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일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지현 [email protected]·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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