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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16.6.28 지영호 구경민 기자


20대 국회 한달, 실적쌓기용 입법 과열…역대 최다 또 갱신

국회의 대표 권한인 입법활동이 실적쌓기로 변질되고 있다. 법안건수에 집착하는 당내외 평가시스템이 국회의원의 제대로된 입법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7일 국회에 따르면 20대 국회 개원이후 이날까지 발의된 의안은 522건(18시 기준)이다. 이중 의원입법 법률안은 정부안 42건 등을 제외한 438건이다.

이는 역대 최다 법안발의건수를 기록한 19대 국회보다도 110건이 많다. 33.5%가 증가한 수치다. 19대 국회의 같은기간 의원입법건수는 328건이었다.

국회 입법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다. 15대 국회 전체 접수 법률안은 1951건, 16대 국회 2507건, 17대 7489건, 18대 1만3913건, 19대 1만7768건으로 대수가 거듭 될수록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나타내고 있다.

◇폐기법안 재활용…하루 5.5개꼴 법안 내기도=
20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찬열 의원이다. 이 의원은 대표발의 19건 포함 160건의 법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20대 국회 의원입법의 3분의 1이 넘는 숫자로 하루에 5.5개 꼴의 입법활동이다.

국회부의장인 박주선 국민의당 의원은 110건(대표발의 3건)의 법안을 내놨고,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94건(대표발의 13건)을 발의했다. 주승용 국민의당 의원은 대표발의 25건을 제출하는 등 모두 84건의 법안에 이름을 올렸다.다수의 법안을 내놓다보니 이전에 발의된 법안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찬열 더민주 의원은 20대 국회 첫날 10건의 법안을 쏟아내면서 상당수 19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을 가져다썼다. 교육기본법과 고등교육법은 안민석 의원안과, 초·중등교육법은 원혜영 의원안 등과 거의 유사하다.

국회 본회의장 2016.6.22/뉴스1
◇번호만 다른 쌍둥이 입법=의안번호 '1918665'과 '2000454'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FTA 농어민 지원법) 개정안인 두 법은 법안 내용부터 법안 발의자까지 대부분의 내용이 일치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입법 시기. 하나는 19대 국회 종료 시점인 4월29일, 다른 하나는 20대 국회가 막 시작된 6월24일다.

법안발의자는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이다. 홍 의원은 사실상 국회 논의가 불가능한 시기에 법안을 발의한 뒤 예상대로 임기만료 폐기되자 곧바로 '재활용 법안'을 내놓은 것이다.

의안번호 '2000304~2000307' 4개 법안도 법안명만 다르지 내용은 똑같다. 무소속에서 새누리당으로 복당한 강길부 의원이 연달아 발의했다.

내용은 산학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교원과 연구원의 우대규정이 빠진 것을 포함시키는게 골자다.

강 의원은 한국과학기술원법, 광주과학기술원법, 대구경북과학기술원법, 울산과학기술원법 등 지역별 과학기술원에 대한 자구수정으로 4건의 입법 실적을 거뒀다.

◇제대로 된 의정활동 평가 있어야=현행 정당이나 NGO의 의정활동을 평가는 '법안발의건수'나 '회의 출석률' 등 에 한정돼 있다. 양적평가라면 누구나 쉽게 집계가능하다는 점이 꼽힌다.

그러다보니 의원들은 숫자의 함정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법안 베끼기, 법안 재활용, 무더기 자구수정, 무분별한 공동발의 등은 의원들이 건수에 집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때문에 국회의원이 신중한 입법활동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용철 한국반부패정책학회 회장은 "의정활동에서 법안발의는 의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고 국민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만큼 신중해야 한다"며 "하루 많게는 수십건의 법안을 살펴봐야 한다는 변명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법안발의 만큼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질적 평가가 필요하지만 국회의원 활동을 질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냐는 어려움이 있다 보니 결국 공천 때는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전락하게 된다"며 "좋은 제안이 있으면 원내에서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단독]의원들'엉터리 공동발의'..5조원 차이나도 '사인'

자신이 발의한 법안의 핵심 내용과 상반된 내용의 법안에도 공동발의하는 의원들이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법안 발의 건수에 집착하느라 법안 내용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 이른바 '품앗이 공동발의' 병폐라는 지적이다.

2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주승용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3일 지방교육재정교부율(이하 교부율)을 내국세의 25.27%로 상향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같은날 발의된 교부율 22.27% 상향을 골자로 한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안에도 서명했다.

개정안은 누리과정 예산을 부담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늘려 지방교육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자는 내용이다. 핵심은 현행 20.27%인 교부금의 내국세 비율을 몇%로 인상할지다. 주 의원 안은 현재 교부율 변동 내용으로 발의된 9개 법안 중 가장 높은 교부금 인상률을 담고있다. 반면 주 의원이 공동발의한 최 의원 안은 최저안에 비해 1%포인트 높다.

2016년 기준 내국세는 186조원 규모로 1%면 약 1조8600억원에 해당한다. 주 의원이 발의한 두 법안은 교부금액이 5조5000억원이 넘게 차이난다.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안보다 대폭 완화된 안에도 뜻을 같이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입법활동을 펼친 셈이다.

주승용 의원은 서로 다른 교부율에 사인을 한 것이 적절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교부금을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내가 발의한 법안은 국민의당 당론으로 한 내용으로 시도교육청에 노후시설 및 비정규직 정규직화 비용을 포함한 것이어서 (최 의원 안보다) 좀 더 포괄적이다"고 설명했다. 

공동발의로만 보면 국회부의장인 박주선 국민의당 의원과 3선인 이찬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행태도 이해하기 어렵다.

박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교부율 관련 9개 법안 중 6개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엔 가장 높은 비율안인 주 의원안과 가장 낮은 비율안인 윤소하 정의당 의원안(교부율 21.27%)이 함께 포함돼 있다. 이 의원도 최고비율안과 최저비율안에 모두 서명하는 등 5개 법안에 공동발의했다. 이 외에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에서만 15명 이상의 의원들이 서로 다른 교부율안에 중복으로 사인했다.

이 같은 법안발의 행태에 대해 교육부는 난감한 모양새다. 0.1%의 내국세를 지방재정교부금으로 가져오더라도 부처간 이견이 발생하는데 3~5%의 세수가 오가는 법안을 부처간 이해없이 마구잡이식으로 발의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내국세가 추가로 넘어오면 그만큼 국방이나 SOC로 들어갈 국정분야의 투자가 줄어들어야 한다"며 "내부적인 재정효율화를 위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입법활동에 대해 의원들의 관심 부족과 건수채우기 식 법안 품앗이 관행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는 "예산이 수반되는 법안을 만들 때 비용추계 자료를 제출하라고 규정한 것은 그만큼 신중하게 입법활동을 하라는 의미"라며 "(이번 사례는) 신중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입법기관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입법 품질' 높이려면…규제영향평가 도입 등 제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머니투데이 '더300'(the300) 출범 2주년 기념 '국회의원 의정활동 평가 어떻게 할 것인가' 심포지엄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16.5.2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적 위주의 의원입법 발의가 폭증하면서 과잉·부실 입법이 속출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의원입법에 규제영향평가 제도 도입 등 질적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원입법은 규제심사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10명 이상 의원의 찬성만 받으면 발의할 수 있어 '과잉입법' 사태를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7일 법제처에 따르면 국회에 발의·제출된 법률안은 20년전인 지난 1996~2000년 제15대 국회에서 1951건(상임위 대안 338건 포함)에 불과했지만 19대 국회에서는 1만7822건(상임위 대안 1285건 포함)으로 9배 이상 늘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법제처(처장 제정부)는 지난 15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힐튼 호텔에서 개최한 '국가입법 세미나'에서 "의원입법에 대해서도 규제영향평가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회법에 의원이나 상임위가 행정규제를 신설·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는 경우 법안 시행에 따른 규제영향분석 자료를 함께 제출하도록 규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김유환 전 한국법제연구원장은 "우리나라의 입법평가제도 또는 규제영향분석제도는 재구성돼야 한다"면서 "규제개혁위원회가 중심이 돼 몇몇 부처에 입법평가나 규제영향분석을 담당할 공무원을 파견하고 그 부처를 중심으로 입법평가제도를 시범적으로 실시해 볼 것"을 제안했다. 또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규제개혁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잘못된 입법평가는 재량권 일탈·남용의 한 사유가 될 것"이라며 "입법평가의 부실로 인해 정책실패가 발생한 경우 법적 책임을 묻는 사법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법안발의 건수에 대한 의원들의 의정활동 평가 기준을 '질적평가'로 바꾸자는 목소리도 높다. 
이현출 건국대 겸임교수는 "기존의 의정평가는 지나치게 양적지표 중심의 평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그동안 양적지표의 하나로 법안발의 건수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면서 의원입법의 양적 팽창이 크게 이뤄졌다. 양적지표와 질적지표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총량지표 중심의 평가는 입법활동의 품질 평가에는 한계가 있다"며 "심도있는 연구와 조사를 거쳐 만들어진 좋은 법안과 급조된 부실법안이 같은 점수를 받는다면 이는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자구수정만 한 다수법안과 사회변화에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법안을 발의건수 가결건수 등 정량지표로만 판단하면 그 중요성을 가려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단순한 정량평가보다는 입법의 품질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성평가를 위해서는 속기록의 분석, 현장 모니터링, 언론보도의 분석 등이 필요한데 객관성과 공정성을 구비한 평가가 가능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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