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30년, ‘전환의 계곡’과 그 너머

‘촛불시민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짚어본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운동

 

 

민주주의의 최전선. 군사주의적 표현이지만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시민혁명’을 경험하며 갖게 된 생각이다. 일렁이는 촛불을 보면서 또는 청와대로 행진을 하면서, 그러나 대부분 썰렁하고 찬바람이 부는 광장과 거리에서, 관련 문서작업을 하거나 쏟아지는 전화를 받는 사무실에서, 여전히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깨닫는다. 절차적이든 실질적이든 수식어를 무엇으로 하든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계속 싸워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 싸우면서 단련되고 승리할 수도 있겠지만 피폐해질 수도 있다는 것. ‘무명용사의 묘’라는 표현처럼 이 싸움에서도 이름모를 수많은 시민들과 활동가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 그럼에도 ‘죽 쒀서 개 주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 

‘촛불시민혁명’이라고까지 명명되는 시민들의 전에 없는 참여와 ‘거리의 정치’는 결국 국회로 하여금 대통령을 탄핵하게 했고, 이제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의 인용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미 여러 곳에서 이야기되듯이 대통령 하나 바꾸자고 촛불을 든 것도 아니기에 아무리 정권이 교체되고 누가 대통령이 된들 시민들의 참여와 시민단체의 역할, 즉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는 87년 6월 항쟁 30주년을 염두에 두고 12월 심포지엄을 기획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10월 24일 JTBC 뉴스룸이 대통령 연설문 및 청와대 회의자료가 담긴 최순실의 태블릿 PC에 대해 폭로했고,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 시위가 열리고,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일련의 상황이 진행되었다. 덕분에 연구소에서 기획한 심포지엄 <한국 민주주의 30년 ‘전환의 계곡’과 그 너머>에서는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과 “이게 나라다!”라는 희망을 모두 짚어볼 수 있게 됐다.

 

참여사회 2017년 3월호 (통권 243호)

 

아직 유서 깊은 노동조합과
좌파정당 없는 한국 시민사회

첫 발제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적 궤적과 현재에 대한 성찰>에서 장석준 참여사회연구소 기획위원이 지적한 한국 사회운동 역사의 첫 번째 특징은 노동조합, 협동조합, 좌파정당과 같은 유서 깊고 영향력 있는 구성 요소가 시민사회 안에 남아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서구 사회운동과 비교했을 때, 사회운동의 초기에 형성되어 시간이 지나도 운동의 거점으로 남아 있어야 할 노동자, 농민 조직이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 및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서 폭력적으로 파괴되고 단절되었다. 조직화라는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한 상태에서 현재의 노조와 진보정당이 대중들의 요구나 불만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모순이 축적되어 더 이상 해결될 수 없을 때, 대중들의 불만과 분노는 ‘직접’행동으로 분출된다.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바로 그 첫 사례였다. 이러한 대중항쟁은 강경대의 죽음으로 촉발된 1991년 5월 투쟁, 1996년 겨울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에 맞선 총파업,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이어 이번 2016년 박근혜 퇴진 운동으로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이어졌다. 우리가 ‘촛불’과 ‘광장민주주의’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신뢰위기를
겪는 시민단체

두 번째 발제인 <한국사회 시민단체 신뢰위기의 진단과 대안>에서 정한울 참여사회연구소 기획위원은 정부, 대기업, 시민단체 각각은 물론이고 정부 및 대기업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이런 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을 제안하고 있다. 기존 조사들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이후 시민단체는 제도로서도, 시민단체 지도자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도, 참여연대·경실련·민변 등 개별 단체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봤을 때도 신뢰도와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향이 진보적이라고 해서 시민단체를 더 신뢰하거나 보수적이라고 해서 불신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진보성향을 가진 시민들의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가 보수성향의 시민들에 비해 뚜렷하게 높았다. 그러나 최근 조사(2016)를 보면 진보-보수 이념성향이 어떻든 구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제3당 등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관계없이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가 일관되게 하락했고, 차이도 거의 없다. 

특히 정부 및 대기업 신뢰도와 시민단체 신뢰도 사이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의미 있는 변화 또는 새로운 경향이 관찰된다. 2004년에 실시된 조사에서는 정부를 신뢰할수록 시민단체를 신뢰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당시 정부가 노무현 정부였음을 감안하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2016년 조사에 따르면(‘박-최 게이트’ 이전) 박근혜 보수정권 시기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수록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 역시 높다. 시민운동 진영이나 이들에게 우호적인 시민들의 상당수는 시민운동의 존립기반을 보수정부 및 정당에 대한 견제와 대립에서 찾는 것과 달리 시민들의 참여연대에 대한 신뢰도는 이들 보수정부 및 정당에 대한 신뢰와는 별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대기업 신뢰도와의 관계 역시 통념과는 다르다. 2004년과 2016년 공히 대기업을 신뢰하는 응답층에서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가 높게 나타난다. 최근 박-최 게이트에서 삼성 등 재벌이 공모하고 연루되어 이후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만, 기존 조사를 분석해 보면 대기업 신뢰도와 시민단체 신뢰도는 뚜렷한 정비례의 상관관계가 나타나고 강화되고 있다. 이미 어느 정도 정부에 대한 신뢰가 형성된 나라에서 정부-대기업-시민단체 관계를 상호견제와 대립의 구도가 아닌 상호의존 협력적 파트너십 관계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결과는 시민단체, 특히 참여연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여연대는 시민들의 참여, 연대, 감시, 대안제시 등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지만 대외적인 인식에서 권력감시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시와 비판은 기본적으로 의존보다는 견제, 협력보다는 대립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향후 참여연대 활동의 방향에 있어서 이러한 결과 및 경향을 세심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17년 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87년 체제’라는 거대한 산에서 내려와 새로운 지평 위로 올라서야 할 때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행에 이어 공고화에 성공했으며, 여기에 민주노조운동, 학생운동과 함께 시민운동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와 우리의 사회운동을 더 공부하고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