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_타락한 전문가들의 사회
가짜 전문가 양산하는
방송의 비밀
글. 황진미 문화평론가
TV만 틀면 넘치는 전문가들
수년 전부터 TV에는 의사, 한의사, 변호사, 요리연구가, 다이어트 트레이너, 심리상담가, 투자전문가 등 온갖 전문가들이 넘쳐 난다. 그들은 교양 프로그램 외에도 온갖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해당정보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말이 모두 믿을 만한 것들일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어떤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의사인 필자가 보기에 건강관련 정보는 몹시 황당하다. 가령 천년초를 섭취하여 시력이 0.6에서 1.5로 좋아졌다거나, 흑초로 간질환과 파킨슨병을 치료했다는 주장들이 TV 전파를 탄다. 믿기엔 애매하지만, 의사와 한의사들이 한 말이니 무조건 안 믿기도 애매하다.
요즘 TV에는 건강관련 프로그램들이 부쩍 늘었다. KBS에서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생로병사의 비밀>, <한국인의 밥상>, <비타민>, <VJ특공대>, <생생 정보통>, MBC에서는 <생방송 오늘 저녁>, SBS에서는 <생방송 투데이>, <모닝와이드> 등등. 이중에는 원래 건강을 주제로 만들어진 프로그램도 있고, 처음과 달리 점차 건강 관련 내용을 늘려나간 프로그램도 있다.
그래도 지상파 프로그램들의 내용은 점잖은 편이다. 종편으로 넘어가면 의사들이 아예 떼로 등장하여 허황된 정보들을 내보내는 프로그램들도 많다. ‘떼토크’의 원조 격인 MBN의 <황금알>을 시작으로, <엄지의 제왕>, <알토란>, <만물상>, <내 몸 사용 설명서>, <닥터의 승부>(종영), <건강의 품격>(종영) 등등. 이처럼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이유는 뭘까. 이는 세 가지 측면의 이해관계, 즉 방송사의 입장, 시청자들의 입장, 의사들의 입장이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방송사의 입장
: 제작비가 적게 들어도 시청률은 높다네
방송사 입장에서 의사들이 출연하는 토크쇼는 제작비가 적게 들고 만들기가 쉽다. 종편들도 출범 초기에는 드라마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았지만, 1%에 불과한 시청률을 보면서 제작비가 적게 드는 프로그램들 위주로 편성을 바꾸어 나갔다.
스튜디오형 예능프로그램은 야외촬영을 동반하는 예능프로그램보다 제작비가 적게 든다.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경우 회차 당 제작비가 6천~8천만 원 정도 들지만, 스튜디오 형 예능프로그램은 4천~6천만 원 정도가 든다. 기존에 만들어 놓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고, 출연자들에게 출연료만 주면 된다. 게다가 출연자들이 연예인일 경우에는 출연료가 높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출연료가 적다. 그래도 전문가들인데 출연료가 높지 않겠냐고? 순진한 생각이다. 출연료가 없더라도, 아니 오히려 돈을 내더라도 출연하겠다는 전문가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협찬을 통해 부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MBN 미디어렙은 내츄럴엔도텍, 한국인삼공사 등과 협찬 계약을 맺고, MBN <다큐M 백수오 편>, <천기누설 아로니아 편>등을 편성하였다가 방심위에 적발되었다. 당시 가짜 백수오 사건의 파장이 워낙 컸던 탓에 방심위가 적발에 나선 것이지만, 이런 사례가 어디 이것뿐이었을지 의문이다.
시청자의 입장
: 고령층이 보는 TV, 건강정보에 관심이 쏠린다네
건강관련 토크쇼는 제작비는 적게 들지만, 시청률은 높게 나온다. 현재 종편에서는 뉴스나 시사프로그램보다 건강정보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더 높다. 출범 초기에 시청률이 평균 1% 정도에 머물던 종편 채널에서도 <황금알>, <엄지의 제왕>, <천기누설> 등은 3~4%가 나왔다. 이들 프로그램은 최고 5%의 시청률을 내고 있다.
시청률이 높은 이유가 뭘까. 신자유주의 시대에 각자 생존, 각자 행복, 각자 성공을 도모하다보니 건강과 장수, 다이어트와 성형, 정신건강과 힐링 등에 관심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시청층의 고령화가 가장 큰 이유이다. 요즘 TV는 ‘올드 미디어’로 분류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IPTV 등 방송 콘텐츠를 접하는 미디어가 다양해짐에 따라, 젊은층의 TV 시청 시간은 감소했다. 반면 노령층의 TV 시청 시간은 갈수록 늘고 있다. 새로운 매체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데다 여가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연령별 방송콘텐츠 이용 패턴 분석과 편성전략 변화추세 분석>(2013, 김창조)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30대 이하의 시청자들의 지상파 TV시청률은 크게 감소한 반면, 50대 이상 시청자들의 시청률은 크게 증가하였다. 지상파 TV 자체가 노년층의 매체가 된 것이다.
종편의 경우 시청층의 노령화가 더욱 심하다. 지상파 시청자들 중 50대 이상이 대략 70%, 종편의 시청자들 중 50대 이상이 85% 이상이라고 한다. 종편이 노령층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들을 내보냄으로써 고령화된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는 분석이 따른다. 노령층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손꼽히는 것이 건강 관련 콘텐츠이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최대관심사가 되기 때문이다.
출연 의사들의 입장
: 엄청난 홍보효과를 노린 쇼닥터의 출현
왜 의사들이 환자는 안보고 TV 토크쇼에 나오는 걸까. 더군다나 돈을 내면서까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엄청난 홍보 효과를 노리기 때문이다. 종편의 모 프로그램은 출연한 성형외과 전문의를 소개하면서 “고품격 성형의 중심에 선 ○○○원장”이라는 자막을 깔았다. 이렇게 한번 이름이 나가면, 환자들은 검색을 통해 병원을 찾는다. 의료시장의 왜곡으로 의사들이 비보험 의료분야로 눈을 돌리고, 해당 분야마저 시장포화로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병의원 광고규제도 풀려 병원들의 광고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의사들의 TV출연은 웬만한 광고보다 훨씬 큰 효과를 낸다.
어디 이뿐인가. 방송 출연으로 높인 인지도나 신뢰도를 활용해 관련 식품이나 의약품을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종편에 출연하여 어성초가 탈모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 의사가 차 전문업체와 함께 어성초가 들어있는 ‘모가득차’를 개발하여 판매하였다. 종편을 보다가 홈쇼핑으로 채널을 돌리면, 종편에서 뭐가 몸에 좋다고 떠들던 의사가 홈쇼핑에 나와 관련 제품을 파는 식이다. 한국인삼공사와 협찬을 맺은 MBN이 아로니아가 좋다는 방송을 내보내고, 같은 날 홈쇼핑에서 아로니아 제품을 판매했더니 완판 되었다.
이처럼 자신의 병원 홍보나 제품 판매를 위해 연예인처럼 방송에 출연하는 의사들을 ‘쇼닥터’ 라고 부른다. 이들에 의해 잘못된 건강 정보가 확산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자 대한의사협회와 복지부가 제재에 나섰다. 의사협회는 2015년에 ‘의사방송출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를 어긴 의사들을 방심위에 제소하고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나섰다. 또한 복지부는 쇼닥터에 대해 1년 이내로 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는 의료법시행령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쇼닥터를 만들어낸 세 가지 측면의 이해관계가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쇼닥터로 인해 의사집단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면, 결국 자신들에게도 큰 손해가 된다는 것을 자각해야 멈춰질까. 한번 실추된 권위와 신뢰를 다시 높이기 위해 몇 배의 힘이 들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