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전략,
복지국가 건설의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
글. 이기찬 참여사회연구소 간사
10월 17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와 참여사회연구소는 공동으로 <참여사회포럼: 전환> “기본소득 전략, 복지국가 건설의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를 개최했다. 최근 스위스, 핀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실험적으로 도입이 추진되고, 우리나라에서도 제한적 형태이지만 성남시에서 청년배당이 실시되면서 더욱 더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기본소득이 제기되는
다양한 배경
최근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에 대한 해결책과 전통적 복지제도에 대한 대안을 꼽을 수 있다. 적극적으로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소극적으로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본소득이 제안되고 있다. 보다 급진적이고 각도를 달리 하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서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로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인공지능이 열쇳말이 된다. 인공지능을 정점으로 하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머지않아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결국에는 대부분의 생산영역에서 인간(의 노동)이 추방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바로 기본소득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노동에 대한 완전히 다른 해석과 젠더와 여성주의적 관점의 접근도 있다. 부불不拂노동, 즉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여러 형태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자원·봉사활동은 물론이고 가사·돌봄노동에 대해 기본소득을 통해서 부분적로나마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참고로 2008년 9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업주부 연봉을 찾아라>라는 월급계산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환산해 제시한 적이 있는데, 두 아이를 키우는 30대 후반 여성을 기준으로 12시간 노동시 월급은 371만여 원, 14시간 노동시 432만여 원이었다(노동부 발표, 2006년도 시간당 평균임금 10,172원 적용).
생태적 관점 또한 존재한다. 기존의 자본주의-복지국가 체제가 비록 불충분하지만 생산, 분배, 노동, 기술, 가사·돌봄 노동을 포함한 재생산 영역 등을 어느 정도 포섭하고 있다면 생태위기에 대한 대응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환경파괴를 수반하는 기업의 생산, 영리활동에 탄소세, 기후·환경·생태부담금 등을 부과하고 이의 일부분을 시민배당(기본소득의 다른 표현)으로 나눠주자는 것이다. 기업이 환경파괴나 훼손을 줄이면 관련 부담도 줄여주는 기술적 고민은 이미 전제되어 있으며 물, 공기, 전파 등 공공재의 사용으로부터 얻는 이익을 모든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는 철학 역시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 정당성에 대한 여러 접근과 주장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전제로 이날 포럼에서는 기본소득 도입 전략, 정책에 대해 보다 엄격한 논의들이 오갔다. 발제를 맡은 윤홍식 참여사회연구소 소장(인하대 행정학과 교수)은 “정치단위가 모든 개인에게 자산조사와 일에 대한 요구 없이 지급하는 소득”(반 파레이스)이라는 기본소득의 정의를 소개하며, 여기에 포함된 원칙 중 ‘무조건성’, 즉 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준다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동시에 논란이 되는 원칙임을 지적했다.
기본소득은
복지국가 건설에 도움이 될까?
게다가 이 ‘무조건성’은 기본소득이 복지국가의 소득보장정책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 된다. 복지국가의 소득보장정책은 최소한의 노동을 전제로 한다. 당사자 또는 남성생계부양자가 직업을 갖고 일을 하되 일정 수준보다 소득이 낮으면 근로장려금을, 소득이 낮고 아이가 있으면 자녀장려금을 지급하고 일시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면 정해진 기간 내에서 실업급여를 준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위에서 말했듯이 임금노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 지급액이 충분한가는 제쳐놓고, 무조건 돈을 주는 것이다.
기준을 엄격히 했을 때, 전 세계 어디에도 아직 기본소득을 도입해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우리의 경우에도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소수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잔여적 소득보장정책이고, 성남시 청년배당은 무조건성 등을 충족하고 있으나 대상(24세 한정), 금액(1년 50만 원)에 제한이 있고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상품권)로 지급하고 있다.
가장 힘주어 강조한 것은 복지와의 관계였다. 이제 막 복지확대를 시작한 한국 복지체제에 있어서 기본소득을 제한적 의미로라도 도입하는 것이 과연 복지국가 건설에 도움이 되는지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복지 급여(서비스)는 크게 현금급여와 현물급여로 나뉠 수 있는데 이상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모델은 현물급여, 즉 사회서비스가 중심이 되거나 최소한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복지체제이다. 그러나 아직 이런 복지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그것이 비록 변형된 형태일지라도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오히려 현금 중심의 복지체제로 갈 우려가 크고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대적 흐름을 보자
토론자들은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오히려 거꾸로 접근하면 복지국가 건설을 촉진하기 위한 지렛대로써의 기능, 기본소득 수혜를 통한 복지체험과 주체(찬성파) 형성의 효과, 기본소득 포함 복지 재원 마련과 확대를 위한 여론 형성 가능성 등의 우려와는 달리 기본소득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다양한 의견을 제출했다.
엄격한 의미의 기본소득은 아직 어느 사회에서도 적용, 실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당장의 옳고 그름보다는 기본소득의 제기되는 시대변화와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든 참석자들이 동의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