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되어야 할까? 완화되어야 할까?

배진수 l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과장, 변호사

 

필자가 이글을 쓰는 지금은 8월 초, 더운 공기가 온 몸을 휘감는 찜통더위다. 연일 폭염주의보라는 문자메시지가 울린다. 뉴스에서는 한 평 남짓한 쪽방에서 연신 비지땀을 흘리는 노인들을 보여주며 이들의 건강권을 걱정하고, 국무총리까지 쪽방에 찾아 폭염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손을 잡는 장면을 내보낸다. 그런데 이런 쪽방도 한 달 월세가 25만원에 달한다. 무더위에 신음하는 쪽방을 찾은 국무총리가 쪽방의 한 달 월세와 서울시 기준 한 달 분 주거급여액을 알고 있을지 새삼 궁금해졌다. 이 월세를 내고 나면 그 달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정부에서 받는 돈이 반토막 나고, 부양능력이 있는 자녀가 있다면 쪽방 월세에도 못 미치는 주거급여조차 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개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1년의 성과

보건복지부는 최근 ‘발로 뛰며 일군 맞춤형 개별급여 1년’이라는 제목으로 2015년 7월 개정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의 시행 이후, 수급자 발굴에 앞장서온 공무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지난 1년간의 맞춤형 개별급여에 대한 성과를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2016년 5월 전체 수급자 수는 167만 명으로 개편 전 132만 명에 비해 27%나 증가하였고 신규 수급자도 47만 명가량 늘어났다는 것이다. 또 2015년 신규 수급자 39만 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약 62%인 24만 명이 기준완화 등 제도개편으로 인해 늘어났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제도개편이란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완화’, ‘개별급여로의 전환을 통한 급여별 수급자 선정’, ‘교육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 삭제’ 등을 이야기 한다. 특히 부양의무자 기준과 관련해서는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없음 소득 구간이 개정 이전에는 4인 가구 기준 약 217만 원가량이었으나 개정 이후에는 4,391,434원(2016년)으로 대폭 상향된 바 있다. 그렇다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수급자로 진입하지 못했던 약 117만 명의 사람들 중 몇 명이 이번 제도개편으로 신규 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었는지 조금 더 들여다보자.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 인한 수급사각지대 축소 효과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한 자료를 살펴보면 2015년 6월 대비 2016년 5월의 신규수급자는 35.2만 명인데 이중 교육급여 수급자는 22.3만 명 증가했다. 신규 수급자의 상당수가 교육급여에서 증가한 것이다. 교육급여 수급자로 선정되는 데는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유무를 판단하지 않으므로 부양의무자 기준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
반면 빈곤층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생계급여수급자는 9.8만 명이 늘어나는데 그쳤다. 의료급여수급자는 11.6만 명, 주거급여 수급자는 9.9만 명이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제도 개편으로 인하여 신규 수급진입한 사람들을 약 62%로 보고 있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생계급여 약 6만 명, 의료급여 약 7만 명, 주거급여 약 6만 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제도개편을 통해 신규수급자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약 19만 명의 신규수급자들, 그 중에서도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화를 이유로 신규 수급진입한 사람들의 수는 그보다도 낮을 것인데, 이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수급사각지대 117만 명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이다.
오히려 보건복지부는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완화로 기존에 간주부양비를 부과받아 생계급여가 삭감되던 14만 명의 급여가 평균 17.2만 원가량 증가했다는 것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서는 기존 수급자들 중 정기적인 확인조사를 통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급여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수나 그동안 몇 명이 간주부양비를 부과 받아 매월 얼마만큼의 생계급여가 깎여왔는지에 대해서는 분석을 내놓지 않았다. 더욱이 받지도 않았던 가짜소득을 부과해왔던 14만 명에게 17.2만원의 생계급여가 증가했다는 것은 원래 받아야 했던 급여를 이제야 받게 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결론적으로 부양의무자에 대한 소득 기준이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완화되었다고 해도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수급에서 탈락하는 약 100만 명의 사람들을 기초생활수급제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데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 것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가지는 근본적 결함

그렇다면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을 완화한다고 해도 부양의무자로 인한 비수급 빈곤층이 대폭 줄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부양의무자 기준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한다면 누구나 수급자가 될 수 있어야 하는데 현행 기초법에 따르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월 소득이 500만원인 아들 가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 살기에 바빠 생활비를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현행법에서는 원칙적으로 부양의무자에게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소득과 재산이 있다면 부양능력이 있고, 실제 부양을 받든 받지 않든 수급자는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는 것으로 간주해서 수급에서 탈락시킨다. 다시 말하자면, 기초법에서는 수급자를 선정하는 기준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두고 있고 1촌의 직계혈족이나 그 배우자가 부양능력이 있다면 수급자로 선정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부양의무자에게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할 수 없거나 부양을 거부·기피하는 경우임이 인정된다면 예외적으로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오로지 수급자의 소득과 재산만을 기준으로 수급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 정도에 따라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보장기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부양이 거부 기피되는 경우인데, 만약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일정 수준 이상이라고 하더라도 부양을 받고 있지 못하다면 수급자는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이 거부·기피되고 있다는 것을 예외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이 거부·기피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수급자가 증명해야 한다.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도 일단 무죄의 추정을 받고 유죄의 입증은 검사가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부양능력있는 부양의무자가 있는 수급자는 부양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먼저 부정수급자로 추정하고 부정수급자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를 요구한다. 수급자가 이러한 증명을 해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증명이 쉽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 인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한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양거부·기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보장기관에서는 수급신청자가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 외에, 가족 간에 부양을 하지 않는 상황에까지 이른 내밀한 가족사를 설명하고 그 상황을 증명하기 위한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보건복지부의 사무처리지침인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이하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보장기관에서 부양 거부·기피를 인정하기 위해 수급자에게 부양의무자의 부양기피사유서를 추가적으로 제출하도록 하도록 요청한다. 더불어 과거에 이혼, 가정폭력, 학대 등의 사유, 또는 이에 준하는 사유로 가족관계가 해체되어 부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할 추가자료를 요청한다. 만약 이혼판결문, 학대신고사실 등 이러한 사정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이를 제출하면 되나 그러한 증빙이 없는 경우에는 수급자의 진술만으로 담당공무원을 설득시켜야 한다.
보건복지부 지침에서는 이렇게 수급자가 부양기피사유서를 제출하지 못할 경우 담당공무원이 직접 부양의무자에게 부양기피사유서를 요청하고 가족관계가 해체된 사유 등을 조사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함으로써 부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관계가 소원해진 부양의무자가 부양거부기피 확인서를 보내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확인서를 보내준다고 하더라도 전술한 바와 같이 단순히 부양의무자가 형편이 어려워서 부양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답변을 한다면, 즉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부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가족관계가 해체된 정도의 특별한 사정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수급자가 부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결국에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인정액이 점진적으로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부양능력있는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 부양을 받지 못하는 사유가 가족관계 해체로 인정될 정도가 아니라면 수급자가 되기란 요원한 일이다. 이로서 부양의무자가 지는 부양의무의 성격이 수급자가 부양받아야 할 책임으로 뒤바뀌고 부양의무자로 부터 부양받지 못하는 책임이 수급탈락이라는 결과로 돌아온다. 가족관계가 해체될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부모 부양이 버거운 사람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가진 이러한 근본적인 제도적 결함이 부양의무자의 범위를 일부 축소하거나 소득 및 재산기준을 조정해 나가는 것만으로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비수급 빈곤층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언제까지 정부가 예산 규모에 맞춰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주기만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 그 사이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이유로 생계를 잇지 못하거나 누군가의 부담이 되기를 거부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할지 모른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한 논의

따라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수급자의 소득과 재산만을 선정기준으로 삼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인해 발생할 것이 예상되는 도덕적 해이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만약 예산 등의 문제로 당장 모든 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어렵다면 쪽방에서 폭염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부양의무자로 인해 쪽방 월세조자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주거급여에서만이라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우선적으로 폐지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최근 2015년도 주거급여에 대한 보도에 따르면 국토부가 지난 2015년 약 2,540억원 규모의 주거급여 예산을 불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68%의 예산 집행률이며, 수급신청을 한 95.9만 가구 중 7.9만 가구(8%)가 주거급여를 받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다. 이중에는 분명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주거급여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주거급여는 주거급여법에 따라 생계급여와는 그 지급 범위와 목적을 달리한다. 주거급여법 제1조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지원하여 국민의 주거안정과 주거수준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민법상의 부양의무든 기초법의 부양의무든 부양능력있는 부양의무자에게 수급자의 최소한의 생계부양을 넘어선 주거안정과 주거수준 향상이라는 의무까지 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현 시점에서 기준 중위소득의 29% 이하에서 받는 생계급여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여 책정한 최소한의 급여이다. 부양의무자가 수급자에게 생계급여 이상의 부양의무를 진다고 볼 합리적인 근거는 없다. 그것이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등 급여의 성격에 따라 급여지급 대상을 달리하여 개별급여로 개편한 개정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하는 것으로 정책방향을 설정하되 우선적으로는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에 대한 타당성이 낮은 주거급여에서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서울 기준 1인 가구 최대 19만 5천원의 주거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주거취약계층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거급여에서부터라도 조속히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