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의 미르·K스포츠재단 해산 발표는
사실상의 증거인멸 시도이자 전형적인 월권행위
재단 해산할 법적 권한 없는 전경련, ‘진짜 의도’ 의심돼
두 재단 신설 과정도, 재단 해산 과정도 모두 위법으로 점철
정경유착·최고권력 실세들의 불법적 개입 의혹, 반드시 진상 밝혀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어제(9/30) 그 설립을 청와대와 대통령의 ‘비선실세’가 주도하고 운영에도 깊숙하게 개입했다는 등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재단법인 미르(이하 미르재단)와 재단법인 K-SPORTS(이하 K스포츠)를 10월 중 해산하고 문화와 체육을 아우르는 750억 원 규모의 통합재단을 신설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경련의 이번 발표는 국민적인 의혹의 대상인 두 재단법인을 서둘러서 없애겠다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현재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한 사실상의 증거인멸시도에 가깝다. 특히, 이미 재단이 설립되고 이사회가 구성된 상황에서, 두 재단의 이사회를 뒷전으로 제치고 전경련이 직접 나서 두 재단의 통폐합을 주도하겠다는 것 자체가 이제까지의 의혹과 불법에 또 다른 불법과 월권을 더하는 것이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소장 대행: 김성진 변호사)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두 재단을 서둘러서 해산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이미 설립된 두 재단 이사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전경련 주도의 미르·K스포츠의 해산 및 통폐합 추진에 반대하며, 전경련에게 두 재단과 관련한 사안에 대한 불법적인 개입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나라 「민법」제48조 제1항은 “생전처분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때에는 출연재산은 법인이 성립된 때로부터 법인의 재산이 된다.”고 하여, 일단 재단법인이 출범한 이후에는 심지어 출연자조차 재단법인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다른 목적에 활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또한, 재단법인의 해산과 관련해서도 그 사유에 대해 「민법」제77조 제1항은 “법인은 존립기간의 만료, 법인의 목적의 달성 또는 달성의 불능 기타 정관에 정한 해산사유의 발생, 파산 또는 설립허가의 취소로 해산한다”고 해산 사유를 명시하여 제3자가 함부로 재단의 해산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재단법인 미르의 정관 제36조는 “이 법인이 해산하였을 때의 잔여재산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감독청의 허가를 얻어 귀속대상을 결정하되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유사한 목적을 수행하는 비영리법인으로 귀속시킨다 ”고 규정하고 있어 잔여재산의 귀속을 결정하는 주체는 전경련이 아니라 이사회와 감독청임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전경련에는 두 재단에 이미 출연된 재산에 대한 소유권도 없고, 두 재단을 해산하고 다른 재단으로 통합할 어떠한 법적 권한도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법질서가 이러한데, 도대체 어떻게 전경련이 재단 이사회의 결의나 감독청의 허가도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재단을 해산하고 그 잔여재산을 제 마음대로 재활용하겠노라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전경련이 두 재단을 해산하고 그 재산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도록 추진하는 것은 재단법인의 이사들에게 배임행위를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전경련의 오늘 발표의 근저에는 불법을 또 다른 불법으로 덮고자 하는 얄팍함뿐만 아니라, 국가가 그 공익성을 인정하여 세제상의 혜택까지 주는 세법상의 공익법인이 출연자의 사유물에 불과하다는 초법적 발상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인식이 비단 전경련에만 특유한 문제가 아니라 전경련이 대변하고 있는 우리나라 재벌집단에 만연한 사고라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 대표적 재벌그룹인 삼성의 경우, 불법대선자금과 안기부 X파일, 그리고 에버랜드 편법증여 등이 문제가 되자 2006년 2월 7일,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나서서 8천억 원 규모의 이건희 회장 사재출연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삼성이 발표한 8천억 원 중에는 이미 이건희 일가가 사회에 출연했던 삼성이건희재단의 4,500억 원이 중복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삼성이건희재단은 이건희 회장의 사재출연발표에 따라 사업을 중단했고, 그 대신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출범했다. 공공의 재산이어야 할 공익법인이 사실상 출연자의 사유물로 전락했던 순간이었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공익법인을 특정인이 맘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유물로 보는 시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전경련의 오늘 발표는 이런 후진적 사고의 잔재를 스스로 드러낸 산 증거일 뿐이다.
전경련만이 문제가 아니다. 두 재단에 출연한 개별 대기업들도 증거은멸에 나서고 있다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한겨레는 9/30 미르·K스포츠에 거액을 출연한 한 재벌기업의 관계자로부터 그룹 차원의 지시에 따라 지난 9/28 하루 만에 두 재단 관련 문서를 파쇄하고 이메일을 삭제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또한 미르재단 건물에서 파쇄 된 문서가 담긴 대용량 봉투가 발견되었으며 이 파쇄는 최근 전경련에서 파견한 미르재단의 신임 경영지원본부장 중심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재단과 재단에 출연한 기업은 관련 문건을 없애고 전경련은 느닷없이 나서서 재단의 해산을 발표하는 등 불법과 의혹을 덮기 위해 위법한 수단과 방법조차 마다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전경련과 재벌대기업들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불법과 월권 논란을 감수하면까지 신속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미르·K스포츠의 해산과 통폐합이라는 전경련의 오늘 발표는 그 자체로 위법할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의 불법 행위와 최고의 권력실세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덮으려는 사실상의 증거인멸 시도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에 참여연대는 전경련이 지나간 허물을 숨기고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면서 또 다른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고, 두 재단의 설립·운영과 기금출연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현재 제기된 각종 문제들의 진상이 제대로 드러나는데 적극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참여연대는 두 재단의 설립과 운영과정에 박근혜 정권의 최고위 권력실세들이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과 ‘정경유착’ 문제에 대해서도 그 진상이 반드시 철저히 밝혀질 수 있도록 적극 대응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