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영국 중부의 보스턴 시. 인구 3만 5천 여 명의 중소도시인 이곳에 거주하는 40대 중반의 제인 아주머니.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23일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에 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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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3일 EU탈퇴를 묻는 영국민들의 국민투표 결과는 지역적으로 뚜렷이 대조됐다. 북서부는 잔류를, 남동부는 탈퇴를 선택했다. (이미지 출처: BBC)

10여 년 전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폴란드인, 헝가리인 등 신규 EU회원국 시민들이 시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섰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친구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보스턴 시는 75.6%가 탈퇴에 표를 던져 이번 국민투표에서 최고의 탈퇴 지지율을 기록).

#장면 2: 런던안의 런던이라 불리는 ‘더 시티’. 금융산업 중심지인 이곳에서 일하는 35세의 폴. 하루에도 수차례 프랑크푸르트나 파리에 있는 동료들과 업무상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낸다. 폴과 함께 일하는 거의 모든 동료들이 EU 잔류에 표를 던졌다(더 시티는 잔류지지율이 75.3%로 최고를 기록).

BBC 방송이 현장 르포로 보도한 위의 두 사례는 양극화된 영국사회가 왜 EU 탈퇴를 선택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는 BBC보도 참조).

바보야! 문제는 분배야

5월 초까지만 해도 EU잔류 지지가 거의 20% 앞섰다. 그런데 불과 6주 만에 무슨 마법이 일어난 걸까?

EU 탈퇴파가 이민문제를 과장하여 속인 전략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런던 같은 대도시는 사용되는 언어만도 200개가 넘는 개방적인 글로벌 도시다. 반면에 보스턴시 거주인의 2/3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다른 EU회원국의 시민들이 영국사람 보다 취업률이 높아 복지혜택 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납부했다. 그러나 2010년 경제위기 후, 살림살이가 팍팍해지자 중소도시 시민들은 이를 이민자 탓으로 돌렸다. 탈퇴파가 주장한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복지를 도둑질한다는 선전이 먹혀든 것이다.

이번에 60%이상의 탈퇴 지지가 나온 잉글랜드의 북동부, 중부지역은 경제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도시들이 밀집해있다. 과거 산업도시로 번창하다가 쇠퇴한곳이 많다.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경제위기까지 겹치고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세계화(유럽통합)로 번창한 곳은 EU의 단일시장을 당연한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긴다. 일자리를 잃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시민들은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갖고 일자리를 앗아갔다고 여긴 EU를 비난한다. 얼굴없는 ‘브뤼셀의 관료’로 표현되는 EU가 희생양이 되었다. 정부가 소득 재분배에 더 신경을 쓰고 조세 정책도 개편해야 했는데. EU 잔류/탈퇴뿐만 아니라 세계화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영국 시민들이 정부에 대한 모든 불만을 국민투표에 쏟아 부었다.

EU에서 나가는 영국: 장밋빛에서 먹빛으로

EU 탈퇴파는 유럽연합에서 나와 이민을 통제하고 EU의 온갖 규제에서 벗어나 경제가 번창할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탈퇴파 운동을 이끈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우리는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다. 이민을 통제하고 EU의 규제에서 벗어나 경제가 더 호전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탈퇴가 결정된 24일 금요일 세계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졌다.

EU는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사람이 자유롭게 장벽없이 이동하는 단일시장이다. 인구 5억 여 명(영국 포함)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시장은 EU의 핵심 브랜드의 하나다. 그런데 영국이 교역의 45%를 보내는 EU 단일시장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민을 통제하려고 할까?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나 필립 해먼드 외무장관은 이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단일시장을 유지하면서 다른 EU 회원국 이민이 사회 복지 체제에 부담을 줄 정도로 몰려들면 이들의 복지혜택을 최대 7년까지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양보를 얻어냈다. 하지만 탈퇴 투표로 이번 재협상은 물거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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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탈퇴파를 이끌었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오는 10월 국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캐머론 총리가 물러나면 차기 총리로 유력하다. 뒤에 보이는 캐머론 총리는 영국을 분열시켰다는 이유로 지난 100년 동안 최악의 총리로 기록될 전망이다.

과연 차기 총리로 유력한 보리스 존슨은 J.K 롤링의 책 해리 포터처럼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주권을 되찾아 국경을 통제하고 이민을 줄이겠다는 그의 발언은 단일시장과 이민자 수 제한이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곡했다.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캐머런의 절친인 그가 기본적인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골드만삭스나 JP모건, HSBC 같은 다국적 금융기관은 벌써부터 런던 소재 일부 인력을 프랑크푸르트나 파리, 더블린 등으로 이전하려 한다. 더시티에 본부를 두면 나머지 EU 27개 회원국 시장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데 EU 탈퇴로 이런 이점이 사라질 수 있다.

안타깝다. 브렉시트로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질 사람은 바로 서민이다. 탈퇴파를 이끈 보리스 존슨이나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은 부자이기에 경기 침체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실리적인 영국 시민들이 정부 정책 수정을 다른 방식으로 요구해야지 자해와 같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불확실성의 시대…우리의 운명은?

브렉시트는 EU에 아주 좋지 않은 시기에 터졌다.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은 터키에게 30억 유로(우리 돈으로 약 3조 9천억 여원)를 안겨주어 잠시 소강상태다. 그리스 경제위기는 물밑으로 들어갔을 뿐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이런데 영국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브렉시트라는 폭탄을 EU에 던져 버렸다.

미국과 함께 서구를 형성해 2차대전 후 국제질서를 함께 이끌어온 ‘유럽’이 브렉시트로 분열의 단초가 드러났다. 브렉시트를 가장 기뻐할 사람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다. 위대한 러시아의 국제무대 복귀를 목표로 세우고 서구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런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기에 계속하여 협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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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직후인 지난 25일 베이징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리고 미국 대선에서는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지지를 얻고 있다. 브렉시트는 영국판 ‘트럼프 현상’으로 불린다.

영국서 도화선이 된 신고립주의와 민족주의 바람이 미국으로도 불어가 더 강한 바람이 될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자들과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사회경제적 위치가 매우 유사하다.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었지만 기존 정치권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영국의 EU 잔류를 위해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결국 그의 불장난에 집(영국)이 타고 있다. 누가 이 불길을 크게 번지기 전에 제대로 끌 수 있을까?

한 정치인의 잘못된 판단이 해당 국가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음은 물론이고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혼돈을 주었다. 세계화는 거부할 수 없는 큰 흐름이라고 치자. 소득 재분배는 정부가 얼마든지 신경을 써서 세계화의 낙오자들을 보듬어 안을 수 있다. 영국의 국민투표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