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마늘농사 지을 수 있으려나 – 연이은 비와 안개 때문에 한숨 깊은 전남 해남 참솔공동체 정재열·남순옥 생산자
“봄 안개는 죽안개”라고 한다. 가을 안개를 ”쌀안개”나 “천 석을 올리는 안개”라 부르는 것에 비해 너무 박한가 싶다가도 봄 안개가 얼마나 농사를 ‘죽 쑤게’ 하는지 들으면 마땅하다 싶다. 벼가 여무는 가을날의 안개는 따스한 온도를 유지하게 해 풍년이 들게 돕지만, 봄 안개는 볕이 식물에게 가는 길을 막고 숨구멍을 틀어막아 생장을 방해하고 병해를 입히고 그 습한 기운으로 병을 키운다.
마늘은 특히나 거의 다 키웠을 때쯤인 생장후기에 습한 기후에 노출되면 갈색 잎마름병에 걸리기 십상이라는데 전남 해남에는 지난 4월 한달 동안 열여섯 날이나 비가 내렸다. 안개 낀 날도 계속되었다. 한참 푸르고 생기로워야 할 마늘잎이 빨간 점박이로 뒤덮이면서, 전남 해남 참솔공동체의 정재열·남순옥 생산자의 마음도 빨갰다가 까맸다가 했다.
맛있는 장아찌를 담그고 싶다면 그에 맞는 마늘을 고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아따, 이파리가 녹는데 밑이 제대로 들겄오?” 마늘을 내려다보는 정재열 생산자의 한숨이 깊다. 마늘을 심은 지난해 가을에는 날이 너무 따스해 마늘이 웃자란 데다 겨울철 냉해를 입어 가뜩이나 약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 봄에 안개까지 낮게 깔렸다. 지난해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해남뿐 아니라 전북 부안과 경북 영천, 제주도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올해 한살림 전지역에서 생산되는 난지형 마늘은 계획했던 것에 비해 생산량이 60.5%에 그쳤다.
더구나 정재열 생산자가 농사짓고 있는 해남 황산면은 지난 1996년 바다를 막는 간척지 사업이 벌어진 이후 농사가 어려워졌다. 군데군데 호수가 생겨 안개가 심해지고 이전보다 병충해가 많아졌다. ‘고랭지배추와 파와 마늘이 잘 자란다’는 명성도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 그곳 농부들은 고민이 많다. 게다가 올 봄엔 비가 끊이지 않았다.
익은 마늘을 땅에서 뽑는 일은 일꾼들이 꺼려할 만큼 힘든 일인데, 올해는 마늘이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데다가 통이 크게 여물지 않아 그리 힘들이지 않고뽑혔다. 그렇다고 관행농사를 짓는 이들이 하는 것처럼 화학 살균제로 어떻게 해 볼 생각은 단 한번도 안했다.
한 번 담가 두고 두고 먹는 ‘알싸달곰’한 장아찌
난지형마늘은 흔히 ‘육쪽마늘’이라고도 부르는 한지형마늘보다 통이 큰 편인데 올해는 눈으로 보기에 큰 차이가 없었다. 난지형마늘과 초절임용 마늘은 마늘쪽수가 일정하지 않고 줄기와 이어진 윗부분이 조금 벌어져 있다.
이번에 정재열 생산자가 심은 초절임용 마늘은 ‘대서종’이다. 초절임용 마늘은 아린 맛이 덜해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이 생으로 먹거나 양념할 때 써도 좋지만 단단하기가 덜해 오래 저장할 수 없어 초절임이나 장아찌를 담그곤 한다.
막 귀농한 친구는 마늘을 처음 심은 해에 풍년이 들어 창고에 가득 쌓인 마늘로 장아찌를 담갔다고 했다. 드디어 3개월을 기다렸다가 맛을 보았는데 그때까지 아린 맛이 안 가셔서 몇 개월을 더 보내고야 먹을 수 있었다며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니 맛있는 장아찌를 담그고 싶다면 그에 맞는 마늘을 고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흙에 짚 덮어 주고 다섯 시간 곤 친환경자재 뿌려 주고…
난지형마늘이나 한지형마늘이나 재배 과정은 비슷한데 기르는 지역과 시기에 차이가 있다. 난지형마늘은 이름 그대로 남쪽에서 기르는 마늘로, 중부 지역에서 기르는 한지형마늘보다 생장이 1~2개월 정도 앞서 9월에 심고 이듬해 5월쯤 거둔다. 심을 때부터 밑 부분을 땅에서 바르게 놓이게 해야 뿌리가 제대로 내린다. 너무 깊게 심으면 늦게 자라기 때문에 적당한 깊이로 심어야 한다. 겨울엔 얼지 말라고 비닐을 덮고 잘 살피며 발소리를 들려주고, 봄엔 비닐에 구멍을 뚫어 마늘대 오르는 길을 내 준다. 또 마늘종을 잘라 영양이 분산되는 걸 막는다.
미생물의 활동을 촉진시켜 땅을 건강하게 하려고 짚을 덮어 주기도 한다. 농약을 안 뿌리는 대신 수시로 풀을 뽑고 친환경 자재를 만들어 뿌려 준다. 정재열생산자는 살균 효과가 있는 돼지감자, 은행, 협죽도 등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직접 친환경제재를 만든다. 가마솥에 여러 재료를 넣어 한 다섯 시간 정도 고는데 한 번에 많은 양을 준비하기 때문에 친환경자재를 만드는 데만 몇 날 며칠이 걸린다.
“이웃들은 약을 사다 뿌리면 되는 걸 왜 그러고 있냐면서 ‘아따, 좀 편하게 살아’라고들 하면서도 이제는 저희를 존중해 주세요. 서서히 친환경농사하는 분들도 생겼고요. 마을에 76살 된 어느 할머니는 우리가 농사짓는 걸 수년 지켜보더니 지난해부터 논농사는 우리를 따라 우렁이를 풀어 친환경으로 짓기 시작했어요.”
30년 넘게 고집스레 친환경농사를 지은 그에게도 올해 마늘농사는 힘들었다. 속상할 게 뻔한데 그는 불긋불긋한 마늘밭에 들어서는 이에게 “마늘잎에 단풍이 들었다”고 농담처럼 말을 건넨다. 잘 자랐다면 막 봄에 접어든 때, 그 야들야들한 연두색 잎을 몇 개 따 초장과 양념에 버무려 먹는 소소한 재미를 누릴 수도 있었겠지. “일희일비하면 농사 못 지어요. 털어내야지. 자연환경이 그런 걸 사람이 어쩌겠어요?”라고 말하는 그지만, 그런 그도 내년에 또 마늘농사를 계속 지을지 아직 결심이 서지 않는다.
글 김세진 · 사진 김현준 편집부
새콤달콤 마늘장아찌 담그기
재료 통마늘 3kg, 식초 10컵(2L), 간장 2컵, 소금 10큰술(100g), 설탕 1컵
방법
1. 마늘의 뿌리 부분을 잘라 내고 줄기를 1cm 정도만 남기고 자른다. 겉껍질을 벗기고 속껍질 한두 겹 정도만 남겨서 물에 씻어 건져 놓는다.
2. 큰 볼에 물, 식초, 소금을 잘 섞어 식촛물을 만든다.
3. 저장 용기에 마늘을 담고 식촛물을 부은 뒤 윗부분을 무거운 것으로 눌러 준다.
4. 뚜껑을 덮고 서늘한 곳에서 1주일 이상 두고 매운 맛을 빼고 신맛을 입힌다.
5. 식촛물을 저장 용기에 따라낸 후 간장과 설탕을 넣고 우르르 한 번 끓인다.
6. 마늘이 담긴 저장 용기에 끓여서 식힌 간장물을 부어 저장해 두고 먹는다.
고은정 한살림연합식생활센터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