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참여팀] 참여연대의 자원활동가는 상근 활동가들과 손발을 맞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10대 청소년부터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학생, 주부, 직장인, 은퇴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의 숨은 활약을 자원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책상에 앉아서만은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민생희망본부 자원활동가 김홍진님
민생희망본부 자원활동가 김홍진님
기나긴 휴일이 지나고 홍진님을 만났다. 활짝 웃는 표정, 어딘가 들떠 보이는 분위기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말부터, 인터뷰도 처음이고 참여연대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할 말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말까지 쏟아내는 그를 보며 재미있는 대화가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는 물론 기대 이상이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A. 저는 24살이구요, 3학년입니다. 전공은 글로벌리더학부라고, 처음 들어보셨을 거에요. 예전에 법학과로 있다가 로스쿨 생기면서 없어졌거든요. 약간 대체하는 학과 느낌으로 법학과 연계해서 글로벌리더학부가 생겼어요. 전공은 법학이랑 국가정책이에요. (글로벌 리더로 거듭나시려고!) ‘글로벌’까지는 아니고, 대한민국 리더 정도....? 하하하하...
참여연대에서는 민생팀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소소권’이라고 해서 작은 권리들을 하나씩 지켜나가는 일을 말하는 건데요. 자료도 찾고 아이디어도 내고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제가 낸 아이디어로 무언가를 해본 일은 없습니다. 그니까... 아이디어를 내긴 했는데 그게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어가지고...(웃음) 이제 막,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Q. 무슨 아이디어를 내셨기에 채택되지 않으셨나요?
A. 대학교 학생회비 같은 경우에 4년 치를 한꺼번에 내고 그런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건 작은 권리가 아닌 큰 권리라서 이미 다른 분들이 다 하셨더라고요. 또, 커피숍 같은 경우에도 가게마다 가격도 다 다르고 용량도 다 달라서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용량이나 이런 것들을 좀 규격화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가 자영업자분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포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Q. 3학년이면 사실 꽤 바쁜 시기일 텐데, 참여연대 자원활동가는 어떻게 지원하셨나요?
A. 제가 작년에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로 돌아오면서 먼저 제대한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걸 봤어요. 저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공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한데 그것보다 사회에 나가서 더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책상에 앉아서만은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고 제가 공부를 하는 목적 자체도 사회참여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였거든요. 목적은 분명 학교 밖에 있는데 과정에서 너무 안에만 집중하면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았어요. 또 제가 이쪽 일과 잘 맞는 사람인지 테스트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Q. 언제부터 공부의 목적을 사회 참여적·기여적인 가치에 두셨던 건가요?
A. 어릴 적 꿈도 변호사였어요. 인권 운동하는 변호사. 군대에 가면서 더 확고해 진 것 같아요. 군대에 있을 때 뉴스를 보는데 김무성 의원이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보여줬던 태도나 언행, 내용까지 너무 터무니없고 심지어 예의까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그런 사람이 대선 후보 중 지지율이 1위였거든요. 정말 당황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선 후보, 심지어 1위를 달리고 있는 걸까. 또 같이 군생활 했던 친구 중에 저와 생각이 비슷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정치가 중요하고 사회문제가 중요한 거구나. 사실 군대라는 사회가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구조기 때문에 자유나 인권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많았다고 생각해요.
Q. 참여연대는 언제 알게 되신 건가요?
A. 군대 가기 전부터 알고 있긴 했어요. 아는 형이 여기서 6개월 정도 자원활동을 한 적이 있어서 그 때는 곧 군대에 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부러워만 했었어요.
예전에는 참여연대가 운동을 엄청 심하게(?) 하는 단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솔직히 조금 꺼려지는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극단으로 치우친 집단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언제 그걸 느끼셨어요?) 일단 간사님들이 인격적으로 너무 잘해주셨고, 어떠한 주장을 하실 때 근거에 정말 많은 공을 들이시는 걸 봤어요. 학술적인 근거부터 책, 논문 할 것 없이 꼼꼼하게 살펴보시는 모습을 보니까 신뢰가 많이 갔어요. TV에 나오는 피켓이나 이런 구호·문구는 자극적이잖아요. 그 구호에 맞는 근거들이 탄탄하다고 딱 느껴지니까 멋있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참여연대에서 하는 자원활동이 고민을 키워나가는데 도움이 되고 있나요?
A. 아무래도 주변의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또 발견하려고 한다는 부분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 저도 깜짝 놀랄 만한 궁금증이 하나 생겼었는데, 유아들이 차량에 탑승할 때 카시트 사용이 의무화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명백한 재산권 침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궁금증을 간사님께 말씀드렸더니, 건강보험도 사실 국가가 돈을 내도록 강제하는 건데 카시트도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냐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 설명을 들으니까 이해가 가면서 이런 질문이나 고민들이 생길 때마다 여쭤볼 분들이 계신다는 것도 좋았고 명쾌하게 설명해주시는 것도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제가 자원활동하는 것도 이런 일들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확인해 보고 싶은 측면도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간사님들 일하시는 것 보면 겁이 나는 부분도 있어요. 워낙 많은 일들을 처리하시고 휴식을 취하기도 힘든데 버틸 수 있을지, 남을 위해 일한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을지. 고민되는 부분들이 있죠.
물론 제 성격 때문이라도 그런 생각을 길게, 깊게 하진 않을 것 같아요. 이런 활동을 계속 하고 싶은 이유가 제 스스로한테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마주한다거나 사회의 부족함·부당함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 있으면 저 스스로가 참기 힘든 느낌을 받거든요. 나라는 사람은 아마도 절대 못 참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혼자서 행동하지 않고 있는 시간들이 더 힘들 것 같아요.
Q.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생각인가요?
A.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건 아니지만 다음 학기 휴학도 생각하고 있어요. 사회문제 관련한 일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싶은 생각도 있구요. 물론 참여연대에서 하고 싶긴 한데, 간사님들이 받아주셔야 할 수 있는 거니까. (웃음) 활동하는 건 좋을 것 같은데 참여연대에서 일할 때 사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요. 아무래도 제가 간사님들한테는 손님이다 보니까 갈 때마다 엄청 챙겨주시거든요. 그래서 자주 가고 싶어도 부담될 것 같아서 마음이 쓰이는 것도 있고. 또 사실 참여연대 사무실 채광이 좋잖아요, 낮에 일하면 햇살 때문에 나른해지는 기분도 있어서 졸리기도 하더라구요. (웃음) 빨리 간사님들과도 친해지고 뭐 분위기도 익숙해지고 그러면 더 활기차게 일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웃음)
Q.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으셨던 것 같다.(웃음) 보통 인터뷰 말미에 꿈을 물어보고 끝내는데 홍진님은 특별히 간사님들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으시니, 꿈과 함께 간사님들께 하고 싶은 말을 들어보고 싶다.
A. 꿈...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싶은 공간에서 무엇이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중에 내가 죽었을 때 내 장례식에 올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나에게 대해서 말을 할 때, 그래도 홍진이는 참 여러 일들을 이뤄냈고 사회에 도움이 된 사람이었다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꿈인 것 같아요.
간사님들께 하고 싶은 말은...간사님들 안보시겠죠....? (웃음)
항상 고생도 많으시고, 다크서클도 깊게 보이고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먼저 전하고 싶어요. 그럼에도 제가 갈 때 마다 챙겨주시는 것도 정말 감사해요. 이제부터는 좀 막대해 주셔도 좋다, 알아서 커나가겠다, 뭐 이런 말을 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음)
인터뷰가 끝난 후 너무 편하게 대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그를 보니 왠지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무겁고 거대한 이야기만으로 인터뷰가 채워지지 않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기도 했다. 담론이나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소소권’, 다시 말해 일상의 권리들을 고민하고 실천해나갈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 발자국의 의미를 아는 그가 목적지까지 지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걸어 나갔으면 좋겠다. 꼭 꿈을 이루길 바라요, 간사님들과도 더...!
작성 자원활동가 박영민 (활동가를 위해 활동하고 싶은 대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