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구조조정 속에 사라진 기초보장의 권리

 

남기철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근 공무원 연금, 무상급식 등 사회복지와 관련된 몇몇의 이슈가 연일 뉴스의 맨 처음을 장식할 만큼 뜨거운 사회적·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공통점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던 기존의 복지 프로그램에 대해 보수적 정치세력이 복지축소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절대적 빈약성 때문에, 새로운 복지제도나 프로그램을 도입하거나 확충하려는 시도가 쟁점화되어왔던 것과는 정 반대의 양상이 연출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연달아 직면하는 공통적인 사회복지 상황이다. “모든 노인에게 2배의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던 공약으로 노인층의 스타가 되었던 대통령의 행적으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반복지적 움직임이다. 물론 이 기초연금 공약도 허공에 날아가버린지 오래이다. 연금이나 학교급식의 이슈에 비해 다소 조용히(?) 진행되어버린 또 하나의 주요한 이슈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것이다. 불행히도 이 역시 복지의 보강이라는 방향이 아니라 복지의 후퇴라는 방향으로 진행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현 정부의 일관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겠다. 

 

지금 이 순간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그간의 최저생계비와 연계된 통합급여체계의 시대를 뒤로 하고, 개별급여와 ‘급여기준선’에 토대한 제도체계로 변화하고 있다. 얼핏 듣기에 공공부조제도의 전문적 기술사항의 변화로 보인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간 시민사회에서 기초보장제도의 개혁을 요구해왔던 결과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이후 수급자와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했던 비수급 빈곤층 사이의 공공지원의 격차,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문제, 최저생계비를 절대적 방식으로 계측하면서 계속 그 수준이 하락되어왔던 문제, 비현실적으로 낮았던 주거급여 등의 문제에 대한 비판들과 개선요구가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과 현재의 제도개편 방향은 시민사회가 요구해왔던 개선과는 전혀 다른 내용과 방향이며 너무나 개탄스러운 것이다.

 

첫째, 통합급여에서 개별급여로 전환되었다고 정부는 표현한다. 그런데 애초에 개별급여 주장이 나타났던 이유는 수급자가 아닌 차상위층 등의 경우에도 (생계급여는 받지 않지만) 주거나 의료 등의 영역에서 폭넓은 사회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번 개편은 주거나 의료급여의 확대라기보다는 생계급여의 대상과 보장수준을 축소하는 결과로 귀결되어버렸다.

 

둘째, 대상자 선정 기준에서 절대빈곤에서 상대빈곤으로의 방식전환을 표방하였다. 기존에 시민단체에서는 (수백 가지의 물품가격을 더한 전물량방식으로 측정하는) 절대빈곤선 방식의 최저생계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던 바 있다. 이는 수급자 혹은 빈곤층의 생활과 필수품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규격화’하는 방식이라 문제가 있고, 그 수준 역시 너무 낮아서 일반적 생활 모습과의 격차가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개편은 상대빈곤을 표방하였다고 하지만, 중위소득 대비 너무 낮은 수준을 그 기준으로 삼고 있다. 또 중위소득 산정방법마저도 예전에 일반적으로 논의해왔던 자료들과는 다른 방식을 채택하는 꼼수를 부렸다. 여러 편법을 동원하여 결국 상대빈곤선 측정방식을 도입하되, 그 수준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제약하고 있다. 결국 상대빈곤방식으로의 전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셋째, 주거급여를 독립된 방식으로 도입하였으나 그 실제 운영에서 별도의 전달체계 라인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 사실상 공급자 이해관계 위주의 개편이 되고 있다. 이는 비용의 문제, 일선 현장성이 없는 제도의 운영 등 부작용을 유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넷째, 가장 중요한 문제로 권리성의 삭제이다. 그간 학교의 강의 등에서, 15년 전 생활보호제도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바뀌었을 때, 그 가장 큰 의미는 국민이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수준을 보장받도록 한다는 근대적 권리성 공공부조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라고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최저생계비가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개념으로 바뀌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임의적 복지프로그램 중 하나로 전락하였다. 최저생계비 이상의 보장수준에 대한 국민의 권리성이라는 부분이 사실상 없어졌고, 예산 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국가가 축소나 철회시키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이번 개편은 결국 제도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된 원래의 방향(실질적 보장수준의 강화, 사각지대의 해소)에 대해 접근해가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궤도를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궤도의 이탈은 빠른 시간 내에 바로잡아야 한다. 이탈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야할 길과 멀어져 바로잡을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우리나라의 빈곤문제에 대응하는 소득보장 체계가 가지는 특성 중의 하나가 공공부조제도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이 개선은 공공부조제도의 지원이 필요한 계층을 줄여가는 소득보장 체계의 정상화, 즉, 연금제도, 각종 수당, 임금체계 등의 개편과 보강을 통해서 관철되어야지 무조건 공공부조제도의 축소를 통해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이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은 광범위한 복지사각지대의 빈곤층에 대한 복지지원 내실화를 시도하였다기 보다는 명백하게 “불필요한(?) 복지지원의 구조조정과 축소”를 겨냥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세 모녀법’이라는 범주 안에 이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을 섞어 넣었다. 민생지원이라는 범주에 포함될 수 없는 개악임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수사를 사용하여 마치 ‘보강’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번 개편내용을 기계적으로 적용해보아도 세 모녀 사건은 예방이 가능하지 않다. 세 모녀 사건을 포장지 삼아 오히려 복지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시민사회와 친복지 진영은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더 큰 다른 유사한 이슈들에 묻혀 빈곤층에 집중된 사안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권리성 해체는 정부와 보수정당의 이해관계 속에 무난히 진행되어 버렸다.

 

시민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몇 년 전까지 시민사회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해소와 보장수준의 향상을 요구해왔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 최저생계비 상승과 측정방식 변화, 부양의무자 기준의 철폐, 탈수급 저해요인인 차상위층 이상에 대한 부분적 지원방식(개별급여)의 보강이나 소득공제제도 보강을 요구해왔다. 허무하게도 이번 정부의 제도개편은 이런 흐름과는 정반대의 구조조정 측면에서 ‘개별급여‘와 ’최저생계비‘ 이슈를 다루었다. 그리고 국민의 복지권이라는 것을 해체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정부는 행복이음 등 전산망을 통해 부정수급을 줄이겠다는 감시적 전산망 운영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당분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관련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제도개선 요구의 기초가 되었던 ‘권리성 공공부조’의 기반 자체를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특정 부분에서 보장수준을 높이려 했던 미시적 활동에 집중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현 정부는 복지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비용의 축소’와 ‘권리의 해체’를 도모하고 있다.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권리성을 ‘회복’하려는 시민사회는 기초보장제도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보다 넓은 연대의 활동에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지향 혹은 복지국가운동이 선별주의적 제도의 전형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살리는 가장 좋은 길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에 많은 것을 위임할 수는 없다. 정부와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불행히도 야당 역시 최근의 복지의 권리 해체 상황에서 보수적인 프레임의 한계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었기에 신뢰는 극히 제한적이다. ‘세 모녀’를 혹은 심지어 ‘장그래’를 살리려는 진정성은 정치가 직업인 현재의 그 누구에게서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구도의 정당정치에서 수단을 찾고자 집중하기보다는 새로운 여론화의 밑바닥 작업을 더 필요로 한다. 국민들의 사회적 이슈화를 위한 힘으로 보수 정치권을 압박하고 견인해야 할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시민사회의 활동이 그간 너무 정치권과 입법부와의 소통기술에만 집중되어 있었던 대가를 지금 치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