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으로 교육부가 지난 9월 확정한 교육과정 개편 고시를 재개정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의 무리하고 졸속적인 국정화 추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지난 9월 고시한 ‘2015 개정 교육과정’개편 고시를 다시 개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11월5일 행정예고 했다.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를 국정으로 전환하지 않았다면 필요치 않을 절차다. 교육부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안을 행정예고 하면서 “중학교 역사 및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 도서로 개발함에 따라 해당 과목 교육과정의 적용 시기를 2017년 3월 1일로 변경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서 9월 23일 고시했던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부칙에 이 내용을 신설했다고 덧붙였다. 교육부, 국정교과서 관련 비공개 TF 운영 강은희 의원도 “야당 의원들이 25일 교육부의 역사지원팀을 방문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정말 그런 방문이면, 사전에 연락하고 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저도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위 간사를 맡으면서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의 확대 필요성에 대해 동의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지원팀을 확대하는 건 교육부가 행정부처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업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대 정부에서도, 과거 참여정부에서도 여러 TF팀이 있었다”며 “행정부가 고시를 앞두고 준비하거나 진행 중일 때 원활히 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 더 열심히 해야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은 “급습, 감금의 사전적 의미도 모르냐. 우리가 교육부 직원들을 언제 공격했냐. 모욕감을 느낀다”며 “사실관계 확인도 안하고 동료 의원들에게 ‘감금’, ‘급습’ 용어를 쓴 박대출 의원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유기홍 의원은 “그날(25일) 유리창 하나 손상된 것이 없다. 또 심야라고 했는데 우리가 방문한 시간은 오후 7시45분”이라며 “벨을 누르고, 담당자가 나와서 우리 신분을 밝혔는데 안에 들어가더니 대꾸도 없고 불을 꺼버렸다”고 강조했다. 유 의원은 “창틈으로 기자들이 보니 자료, 컴퓨터를 옮겼다고 한다”며 “뭘 깨고 부수고 한 것도 없고, 처음부터 신분을 밝히고 한 것인데 그걸 어떻게 심야 급습이라 표현하나”고 불쾌해 했다. 설훈 의원 역시 “감금했다고 하는데 감금은 못 나오게 하는 것이 감금이지, 우리는 열어달라고 한 것”이라며 “지금 정치를 하는 건지, 사기를 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 의원은 “지금 정부여당이 어떤 자세로 국정화를 진행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국민을 호도하고, 동요 의원들을 화적떼로 비유하고, 국사학자들을 다 좌파라고 하고, 앞으로 국민들이 뭐라 그러겠나”라고 비난했다. 이어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향해 “지금 국정화와 관련한 이 사태가 정상적이냐”며 “대통령께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린다고 했는데 거꾸로다. 지금 정상을 비정상으로 돌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역사 교과서의 편향성’ 지적 근거 없어 미래엔 고교 한국사 321쪽에는 ‘북한, 1인 독재와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형성하다’고 소개한 뒤 ‘북한에서도 김일성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었다. 김일성은 비판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1인 독재 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고 서술했다. 이어 ‘북한의 인권실태’를 탈북자 사진과 함께 소개하면서 ‘공개 처형, 정치범 수용소 운영, 종교의 자유에 대한 탄압’ 등을 전부 나열하기까지 했다. 이밖에 천안함은 8종 교과서 중 5종이 본문에 나왔고, 2011~2014년 집필진 75%가 반복적으로 집필에 참여해 좌경화 됐다는 것도 교과서 시장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시각이다.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서울의 한 대학 사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출판사들이 집필 경험이 있는 교수들을 선호하는 현상 때문에 황 총리 말대로 절반 이상이 중복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시장 환경도 고려하지 않고 기존 집필진들을 모두 좌편향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악화될 대로 악화된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의 역전을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도 “불과 얼마 전까지 주체사상 등 북한에 대해 가르치라 하고서 기존 교과서의 좌편향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자가당착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역사 학회 잇따라 국정화 집필 불참 성명 발표 지난 10월15일 국정 한국사 집필진 불참을 선언한 한국역사연구회는 1988년 망원한국사연구실과 한국근대사연구회 등을 합쳐 창립됐다. 이들은 현재까지 가장 활발한 연구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 사학계 대표적 학회다. 수도권 대부분의 사학과 교수들은 물론 대학원생까지 연구회원만 총 65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발행하는 학회지를 구독하는 일반회원은 120 명 가량이다. 한국역사연구회는 창립 당시 군부 독재라는 시대현실을 극복하고자 ‘실천적 역사학’, 즉 민중사관을 표방했다. ‘사회의 민주적 변혁과 분단의 자주적 극복’에 이바지하는 역사학 연구라는 것이 이들이 지향하는 목표였다. 이들은 대체로 ‘조선이 정체적·타율적으로 근대화했다’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의 강압적인 근대화 정책 없이도 자발적으로 근대화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던 이기백 전 서강대 교수, 김용섭 전 연세대 교수 등의 계보를 이었다. 한국역사연구회 이외에도 역사 연구자들의 시대 전공별로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중세사학회, 조선시대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등 1980~1990년대에 형성된 학회가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통상 최대 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의 회원은 시대별 학회에 함께 참여한다. 이 가운데 500여 명 규모의 한국근현대사학회는 이미 교과서 불참 선언을 발표했으며, 한국고대사학회도 임원회의를 통해 불참 의견 발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각 학회들이 형성되던 당시 ‘절대다수’ 사학계 가운데서도 다른 결의 움직임이 일었다. 안 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이영훈 서울대 교수 등은 조선이 근대화하는 데 일본이 영향을 주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다시 꺼내든 것. 이들은 일제 강점기 조선 쌀이 일본으로 흘러들어 간 것을 두고 쌀의 ‘강탈’이 아니라 ‘수출’이라고 분석했다. 이영훈 교수를 중심으로 낙성대경제연구소를 열고 활동 중이다. 뉴라이트는 이들의 견해를 차용해 2000년대 새롭게 등장했다. 한국현대사학회는 2011년 뉴라이트 성향 학자들이 조직한 단체다. 현재 국정교과서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역사 학회는 이곳이 유일하다. 회원 수는 사학자, 경제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등을 망라해 150여 명이다. 실제 활동 중인 학자는 30~40명 규모로 추산된다. 그러나 익명의 사학과 교수는 “사실상 학회라고 볼 수 없다”며 “학회라면 주기적으로 세미나를 열고 학회지를 발간하는 등의 활동을 해야 하는데 이곳은 2011년 토론회 내용을 담은 책자 하나를 내어 놓았을 뿐 이후 학회다운 활동이 이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한국현대사학회 홈페이지는 폐쇄 상태다. 이에 대해 이명희 한국현대사학회 회장(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은 “한국 현대사 연구에 정치학·경제학·사회학 등을 접목시켜 학제적 연구를 하겠다는 문제의식으로 출범한 학회”라며 “지난 주말에도 50여 명의 사학자와 국제 심포지엄을 진행했다”고 반박했다. 한편, 지난 10월16일 국정 교과서 지지를 선언한 대학교수 102명은 한국현대사학회 등 특정 학회 신분이 아닌,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 소속으로 성명에 참여했다. 이들은 최근 역사 관련 전공 교수들이 잇달아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한 것에 대해 “진정한 역사 교육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폐쇄적인 집단행동으로서의 대응이 아닌 각계각층과의 논의와 협력을 통해 역사 교육의 발전 방향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성명에 참여하신 분들은 만약 요청이 오면 집필에도 참여할 의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성명 참여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 집필진 모집에 난항 황 총리와 만난 한 명예교수 A씨는 “국편이든 교육부에서든 요청이 오면 임할 생각은 있다”며 “제대로 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주류 사학계의 보이콧 속에 A씨 외에도 보수 교육계 인사 102여 명은 지난 10월16일 국정 교과서를 지지하고 나섰다. 일부는 요청이 오면 집필진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도 표명했으나, 가뜩이나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상황에서 보수 교육학자를 필두로 한국사를 쓰기에는 국편의 부담이 만만찮다. 이 때문에 국편은 그동안 언론 등에 참여 의사를 밝힌 친정부적 성향의 교수 외에도 집필 거부 선언에 동참한 학자라도 어떻게든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초 국정화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 목소리를 내온 주류 사학계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더욱이 정부는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학교에서 쓰일 시기를 2017년 3월로 못 박고 있어 사실상 내정된 보수학자를 필두로 한국사가 집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사학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집필진을 모집하면 과연 얼마나 양질의 교과서가 나오겠느냐”며 “결국 친일·독재를 미화한 교학사 한국사처럼 함량 미달의 책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 집필진 자진 사퇴 현재 국편은 최 교수가 맡았던 상고사 분야에 새 집필자를 영입하는 대신 현재 섭외된 이들 중에 최 교수의 자리를 대신할 전문가가 있을 지를 검토할 방침이다. 국편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국편이 집필을 고사하는 교수님을 잡을 방법이 없다”면서 “새로운 분을 모셔야 하는지, 고대사 담당하시는 분이 이 영역을 담당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는 최 교수의 자진사퇴와 관련해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여론이 악화일로를 치닫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최 교수 사퇴와 관련해 교육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번에 논란에 휩싸인 최몽룡 교수는 국내 고고학계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학부·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고고학을 전공했으며 1972년 26세의 나이로 교수(전남대 전임강사)에 임용되는 등 국내 고고학 교수 중 최연소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88년(5차 교육과정)부터 2011년(7차 교육과정)까지 23년여 동안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편찬에 관여하기도 했다. 국정 교과서에 ‘대안 역사교과서’ 발간으로 대응 이 같은 대안교재 제작에는 이미 검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해 충분한 경험을 쌓은 역사학계 교수와 교사들이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교원대 김한종 역사교육과 교수 등 과거 정부가 ‘좌편향’ 비판을 가했던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참여한 이들이 대안교재 제작 집필진 물망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국정교과서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지지했던 교학사 교과서 내용 등을 살펴보면 대안교재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좋을지 예측하기에는 무리가 없다는 관측이다. 부산대학교 양정현 역사교육과 교수는 “역사를 단일한 시각으로 재단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국정교과서에 대비해 다양한 시각을 담은 복수의 교재를 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정교과서와 대안교재 내용의 간극이 클 경우 한동안 교육 현장의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송재혁 대변인은 “2017년 국정교과서를 받아든 고1 학생들이 치를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국정교과서 내용이 반영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대안교재 배포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국정교과서 고시 철회까지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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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미 기자 ([email protected])
기사원문(http://www.newsmaker.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0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