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ㆍ청년ㆍ자영업자, 법이 없어 슬픈 이여…
경제민주화 법안 시급한 이유
안진걸 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 공동사무처장 | 더스쿠프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국가비상사태’ ‘대통령 긴급명령권 발동’을 운운하면서 노동악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일명 원샷법) 등을 처리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입에 담았던 공약과는 반대되는 법안들이다.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그중에서도 도입이 시급한 건 무엇일까.
최근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악조치와 노동악법들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비정규직과 청년을 위한 조치와 법’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이런 조치는 사실 재벌ㆍ대기업들의 오래되고 부당한 민원에 불과하다. 쉬운 해고, 비정규직 기간연장, 실업급여 수급조건 악화, 간접고용 파견직의 전면화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 필요한 건 민생 회복이다. 국민 대다수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노동개악이 아니다. 무엇이 필요할까. 박근혜 정부는 대선 당시 얘기했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째, 중소기업적합업종보호에관한 특별법 제정이 절실하다. 중소기업(제조업) 중심의 고유업종제도가 ‘시장개방’ 조치와 규제완화, 경쟁촉진이라는 미명 하에 사라지면서 특정 재벌들이 무분별하게 영업망을 확장하고 있다. 그 결과, 자영업자들의 생계형 업종(슈퍼ㆍ문구ㆍ치킨ㆍ떡볶이ㆍ공구상ㆍ빵집ㆍ식자재 납품 등)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서민 경제를 힘들게 하고 있다.
2013년 6월에 만들어진 대ㆍ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은 업종 선정에서부터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중소기업이나 중소상공인들의 업종 가운데 경쟁력이 있는 업종들을 신청 받아 중소기업청이 심의를 거쳐 적합업종으로 선정하고,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막을 특별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는 국토계획법 개정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재벌ㆍ대기업의 대형복합쇼핑몰과 아웃렛 반경 10㎞ 인근 중소상인들의 매출이 평균 50%(음식업종은 78%) 이상 급감해 고사위기에 처해 있다. 지역경제가 초토화되고 있다는 거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복합쇼핑몰과 대규모 아웃렛을 계속 출점할 계획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도시계획단계에서부터 대형 복합쇼핑몰과 아웃렛 등의 출점에 따른 상권영향평가를 실시해 허가해주는 허가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특히 복합쇼핑몰이나 쇼핑센터 등의 용도로 쓰이는 대규모 점포 바닥면적이 1만㎡(약 3030평)를 초과하는 경우, 애초에 상업지역 내에 지을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셋째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제정이다. 정부와 여당은 노동개악이 마치 청년을 위한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청년 실업률과 고용률이 모두 낮은 건 비경제활동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20대에 명예퇴직을 강요받을 정도로 고용이 불안한 여건 속에서 많은 청년이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자발적인 비경제활동인구가 된 거다.
실제 청년 고용을 늘리려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 문제는 정부의 노동악법은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해고를 쉽게 만드는 것으로 좋은 일자리가 아닌 나쁜 일자리를 만든다는 거다. 때문에 고용여력이 있는 정부와 공기업, 고용인원 300인 이상의 대기업에는 청년고용할당제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골목상권 되살리는 게 우선
넷째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이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는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이유도 없고, 비정규직으로 뽑아서도 안 된다. 하지만 정부가 책임을 방관하는 동안 비용 절감과 쉬운 해고를 원하는 기업들은 정당한 사유 없이 비정규직 채용을 확대해왔다. 일례로 2013년 대졸 청년 가운데 첫 일자리가 1년 미만의 단기 계약직인 비율은 20%를 넘었다. 2008년의 두 배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민간 대기업 ‘고용형태 공시’ 결과에 따르면 2015년 3월 기준 3233개의 대기업 노동자는 459만명이고, 이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39.5%에 달한다. 청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면 내수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당시 공공부문 상시ㆍ지속 업무 일자리를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이 원칙을 민간으로 확대할 것을 약속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섯째는 고용시장에서 밀려난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높은 임대료 때문에 대책 없이 쫓겨나는 상가임차인들을 보호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이 그것이다. 전국의 임차상인들은 재건축과 짧은 계약보장기간(최장 5년에 불과)을 내세운 건물주들의 일방적인 계약해지와 권리금 약탈에 속수무책 거리로 쫓겨나고 있다.
2015년 5월 권리금 보호조항이 생겼지만, 임대인들의 횡포는 여전하다. 때문에 재건축 등으로 임차인을 강제퇴거하면 합당한 보상을 해주는 ‘퇴거 보상제’ 도입이 절실하다. 보증금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상가건물에 임대차보호법이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하고, 특히 상가임차인들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기간을 현행 5년에서 최소 10년 이상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여섯째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다. 무주택 서민들의 삶을 보호하고, 전월세 폭등으로부터 가계 경제의 평온을 지켜내기 위함이다. 역대 최악의 전월세 대란으로 인해 집 없는 서민ㆍ중산층의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서민ㆍ중산층의 가계가 안정되고, 가처분소득이 늘어나야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세입자 보호 제도 마련을 약속했던 국회 서민주거복지특위는 2015년 내내 지속된 정부ㆍ여당의 반대에 밀려 계약갱신청구권(현행 2년인 세입자 보호 기간 연장)과 전월세 상한제 등 세입자들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끝났다. 이번에 이 논의를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경제민주화가 경제 살릴 것
이외에도 지자체에도 공정거래위원회와 비슷한 권한을 주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전국의 프랜차이즈 업종을 더욱 공정하게 만드는 가맹사업법 개정안,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을 위해 원ㆍ하청 공동교섭 의무화와 하청업체 교체 시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법안,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안 등도 꼭 필요한 경제민주화 입법안에 속한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이유로 들어 재벌ㆍ대기업 중심의 규제완화 정책을 펴면서 자신이 내세웠던 국민에게 약속한 경제민주화를 파기했다. 스스로 ‘국민을 배신하는, 배신의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중소기업, 중소상공인,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시민ㆍ소비자 등 사회ㆍ경제적 약자가 살아야 극심한 사회 양극화와 내수 침체를 겪고 있는 한국 경제가 살아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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