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의 1순위는 “과로방지”
글 : 정병욱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해외 유명 만화사이트 '도그하우스 다이어리'가 나라별 대표분야 세계지도/사진=도그하우스 홈페이지(http://thedoghousediaries.com/)
‘워커홀릭들’의 나라, 대한민국
2013년 해외 만화사이트 도그하우스 다이어리가 세계은행과 기네스북의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세계지도에 각국을 대표하는 특징을 붙여 공개했을 때, 우리나라는 “워커홀릭들(Workaholics, 일중독자들)”의 국가로 표시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긴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010년을 기준으로 2193시간으로 회원국 평균인 1749시간에 비하여 무려 444시간이나 길었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2015년 9월 30일이 한가위 명절 대체공휴일로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일터로 향해야 했다.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늘 야근에, 특근에, 잔업에 시달리고 심지어 토요일, 일요일이 없어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이라는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정부는 노동시간을 단축한다고 하지만, 그 단축은 연장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에 불과한 것이어서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할 수 없고, 결국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구조적으로 과로(過勞)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 질병 사망자 중 절반 이상 과로와 관련있어
우선, 과로사(過勞死)와 관련한 통계를 살펴보자. 2013년 심상정의원실이 1995년부터 2013년 6월까지의 근로자의 과로사(過勞死) 실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과로사 산재 신청 건수는 1만 3,088건이다. 전체 과로사 산업재해 신청자 중에는 40~50대가 60%를 차지했는데, 40대가 31.2%로 가장 많았으며 50대가 29.4%로 뒤를 이었다. 또, 2013년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노동자 839명이 질병으로 인한 사망했고, 이 중 뇌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348명이었다. 뇌심혈관지로한은 과로 및 스트레스 증가와 관련이 있으며, 전체 사망자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이 통계결과에 따르면, 과로로 사망하였다고 신고된 사람이 공식적인 통계수치로만 2013년 기준으로 약 1만 3,088건에 이르고 한창 가족을 돌보아야 할 4, 50대 가장의 사망률이 60%에 육박하며, 질병 사망자 중 절반에 가까운 수가 과로와 관련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사망에까지 이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그로 인해 한 가정이 붕괴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는 것이다.
과로사,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 불합리한 사건
2015년 9월 19일 있었던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주최하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와 일과건강이 주관한 ‘과로사방지법 일본 전문가 초청강연회’ (일본은 2014. 11. 1. ‘과로사 등 방지 대책 추진법’이 시행되었다)에서 일본측 과로사 유가족 대표 테라니시 에미코는 “과로사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우수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 지극히 불합리한 사건”이라고 정의내린 바 있다.
우리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성실하고 근면하며 책임감이 강하다. 어찌 보면, 우리가 “워커홀릭들(일중독자들)”의 나라인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성실하고 근면하며 책임강이 강한 사람들을 과로로 죽게 내버려두고(과로로 인한 질병과 자살을 포함한다) 한 가정까지 파탄으로 몰아가는 것을 언제까지 지켜볼 수는 없다. 과로사는 만성적인 피로의 누적이나 스트레스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성실한 근로자의 사망과 한 가정의 파탄 등 직접적인 피해도 막대하므로 ‘과로’를 정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방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근로조건 기준 설정해야
대한민국 헌법 제32조 제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이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제3항에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제34조에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였다. 우리 모두 과로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인간다운 근로를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또 국가는 모든 국민의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근로조건의 기준을 설정할 의무가 있다.
누군가는 과로 방지보다는 노동시간의 단축에 전념하여야 한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워커홀릭들’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로 방지와 노동시간 단축은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의 논쟁에 불과하다. 노동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정부는 지금이라도 노동개혁의 1순위로 ‘과로 방지’를 올려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