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꼭 필요하지만, 살기 위해 사야하는 것 중 가장 비싸다. 그래서 우리는 매달 월세만으로도 생활고를 겪고, 전세 대출금을 생각하며 직장에서의 모욕을 견디고, 지금보다 십년 뒤가 더 불안하다. 이렇게 뼈 빠지게 유지하는 집은 나쁘거나 썩 좋지도 않으면서 계속 탈이 나고 대부분의 집주인은 그걸 모른척한다. 그래서 세입자라 쓰고 비적정주거 생존자라 읽는다. 복지예산은 점점 늘고 있는데 이상하게 여전히 가족 말고는 비빌 언덕이 없어 보이는 2014년의 한국.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에서 비빌 언덕이 없는 비혼여성 10명을 만나 비적정주거 생존자로 살아왔던 집 역사를 인터뷰했다.

 

 

 

 

 

 

 

하윤과 해미는       

 30 비혼여성이다.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일을 시작한 하윤 스무 살에 독립했다. 가족과는 연락하지 않고 지낸다. 퇴직금을 주지 않는 사업주 때문에 법령정보센터 사이트를 뒤적이고 판례를 찾아보기도 했으며, 집주인과의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 임대차보호법을 공부하다 어느새 독립 10년차가 됐다.

 

해미 역시 1인 가구로 지낸지 10여년이 됐다. 열아홉 살에 부모님의 지원으로 독립해 지내다 20대 후반에 결혼을 했다. 결혼이 주거문제를 해결해줄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혹독했다. 신혼집은 잠만 겨우 잘 수 있는 컨테이너 가건물이었다. 이후 겨우 빚을 내 임대주택에 들어갔지만 가정폭력으로 이혼하게 됐다. 현재는 LH공사에서 가정폭력피해여성 주거지원으로 위탁운영하고 있는 원룸형 빌라에서 지낸다. 15만원이라는 저렴한 주거비와 환경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지만 해미에게 2년의 계약기간은 짧기만 하다. 재계약이 불투명한 주거지원에서 언제까지 머무를 수 있을지, 보증금 마련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가 고민이다.

 

 

전입신고를 할 수 없는

집에 산다는 것          

 

하윤은 2004년부터 보증금이 없는 고시원에 살았다. 직장이 안정되지 않아 대체로 알바를 했고, 겨우 10만원씩 저축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조금 더 나은 집으로 가자"라는 다짐으로 악착같이 모아 2010, 처음으로 보증금이 있는 집을 구했다. 500/28. 반지하이긴 했지만 볕도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하는 집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주택청약을 위해 전입신고를 하려고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 주거용으로 지어진 집이었지만 사무공간으로 신고 돼있다는 게 이유였다. 알고 보니 집주인이 내야 하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사무용으로 신고한 거였다. 하윤은 집주인의 탈세를 위해 성남에 살지만 법적으로는 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평소 일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느라 책도 보고 자료도 찾아야 하는 하윤은 도서관 이용이 잦았지만 해당지역 시민이 아니라 책을 빌려볼 수 없었다, 살고 있는 지역구 투표도 할 수 없어 답답했다. 다행히 보증금을 떼이진 않았지만, 전입신고가 안 된 집에선 집주인이 보증금을 떼먹어도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됐다. 다시는 전입신고가 안 되는 집에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2년의 계약기간을 채우고 이사를 했다.

 

 

창문은 그저 장식일 뿐      

점점 몸이 아프고 화가 났다

 

하윤이 새로 구한 집은 또 반지하였다. 그래도 공간분리가 잘돼있는 집이라 그전에는 없던 부엌이 생겼고, 몇 만원이지만 주거비도 줄었다. 기대에 들떴지만 실생활은 "시궁창"이었다.

 

집에 창문이 있었는데 그게 장식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별로 안 걸렸어요. 하루는 창문 다 열고 선풍기 틀어놓고. 대문도 열었어요. 근데 아무리 다 열어 놔도 공기가 안 흐르더라고요. 공기가 흐름이 있어야 환기가 되잖아요. 다른 건물이 가까워 바람이 나가다가도 가로 막히는 느낌이고, 창문 밖은 주차장이라 먼지도 많이 들어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라 시선 때문에 창살이랑 발이 쳐있었거든요. 물론 그거 없어도 공기가 잘 통하는 구조는 아녔어요.”

 

특히 여름엔 집에 습기와 열기가 가득해 마치 한증막에 있는 것처럼 호흡이 곤란해질 지경이었다. 머리가 계속 아팠고 심적으로 취약해졌다. 백화점에서 12시간 가까이 일을 하고 돌아와 쉬어야 하는 집이 '정신이 몽롱해지고 제대로 잠조차 잘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하윤은 건강상의 위협을 느꼈다. 왜 이렇게 집을 지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이런 집에 세를 놓는 집주인에게 화가 났다.

 

 

공기가 흐르지 않는 집에서 겪은 두 번째 큰 사건은 곰팡이의 습격 이었다. 그 집에서 지낸지 2년째가 됐을 때 일이다.

 

여름에 빗물이 들어와 벽에서 줄줄 흘렀어요. 뭐랄까 벽에 인테리어로 물 흐르게 해놓는 거 있잖아요. 콸콸 흐르는 건 아니고 벽타고 흐르는하하.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어. 그래서 가구랑 옷에 곰팡이가 다 핀 거예요. 제가 책을 좋아하는데 책장으로 쓰고 있던 것도 그렇고 가죽가방이랑 신발에도 다 폈어요. 그리고 부엌이 따로 생겼으니까 나도 요리할 거야!’하면서 샀던 도깨비방망이에도 구석구석 곰팡이가 폈어요. 그 외에도 조미료 그릇, 간장병! 간장병 안에는 무사해요. 근데 병 바깥에 핀 거예요. 거기에 무슨 양분이 있어서 피는지 모르겠는데. 세상에 세상에 곰팡이가 여기저기 막

 

 

흔한 집주인과의 싸움

 

그 꼴을 보고나니 이 집은 사람 살 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계약이 끝나는 겨울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세 번째 사건이 벌어졌다. 날씨가 추워 수도랑 보일러가 동파돼 수리를 요청했는데 집주인은 그 책임을 하윤에게 물었다. 물을 잠그지 말고 쫄쫄 틀어놔야 하는데 안한 거 아니냐고 했다. 집주인들의 흔한 책임회피의 말을 듣자니 어이가 없었다. 말다툼이 있었고, 집주인은 갑자기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하윤은 지금 나가길 바라면 직접 비용을 대 포장이사를 부르라고 했다.

 

아침부터 전투력이 상승한 하윤은 임대차 계약기간 동안 자신에게 우선하는 권리와 이사비용을 찾아봤다. 퇴근길에는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고시원을 돌아봤다. 집주인과 또 싸우다 당장 집을 나와야 하면 들어갈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 생각했다. '그래. 나랑 진검승부를 하자'

 

근데 집에 들어오니까 바닥에 발자국이 나있는 거예요. 집주인이 온 거 같긴 했는데 경찰에 신고를 했어요. 경찰도 짬밥이 있으시니까 눈치를 깠죠. 좋게 마무리 하라고 하셨어요. 사실 집주인이 집에 문제가 있을 때 들어올 수 있잖아요. 하지만 집에 사람이 살고 있는데 신발도 벗지 않고 안방까지 발자국이 찍힐 정도로 만들어 놓다니. 이게 대체 뭐냐고요.”

 

집주인은 보일러를 확인하느라(그날 수리를 한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말없이 집에 들어온 것도 황당하고, 보일러실뿐만 아니라 안방까지 발자국을 남기고 간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싸움의 이유가 됐던 수리비용에 대해서도 경찰이 집주인이 내야 한다고 할 때에서야 수긍했다. 그렇게 보일러를 겨우 고쳤다. 하지만 집주인은 계약이 끝나 보증금을 돌려줄 때 집을 너무 더럽게 썼다는 이유를 들며 청소비용 3만원을 제했다. 하윤은 이 집을 최악의 주거공간+집주인으로 꼽았다.

 

 

안전한 집에 산다는 것

보안이 취약한 현관문

 

하윤이 곰팡이의 습격과 집주인의 횡포에 휘청거렸다면 해미는 안전문제 때문에 힘들었다. 해미는 처음 혼자 살 때, 비오는 날 우산 밑으로 들어온 어떤 남자에게 나랑 같이 가자. 네가 어디 사는지 알고 있다고 위협을 당한 일이 있었다. 해미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들에게 누군가 따라와 두려움에 떨거나 성추행을 당하는 일은 흔한 경험이다. 그렇기에 안전은 여성들에게 민감한 지점일 수밖에 없다.

 

근데 두 번째 집에서도 한밤중에 누가 문을 열어달라고 하더라고요. 누구냐고 했더니, 자기가 방송국 PD인데 문 좀 열어달라고 잠시 쉬어가겠다는 거예요. 계속 문을 안 열어주니 저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것도 한밤중에. 그때는 문도 보안에 취약한, 밖에서 금방 열수 있는 그런 문이었어요. 창문은 보안창이라 제가 안에서 열고 도망갈 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그 남자가 억지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프라이팬으로 때리려고 들고 서서 경찰에 신고를 했어요. 조금 뒤에 경찰이라고 문 열라고 세게 두드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당신이 경찰인지 아닌지 어떻게 믿느냐고 좀 전에 그 사람도 방송국PD라고 했다 그랬더니 현관문 바로 옆에 있는 환기구로 손을 내밀면서 신분증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렇게 사태가 일단락되면서 또 다시 이사를 갔죠.”

 

 

문을 열면 도로가,       

화장실이 밖에 있는 집

 

당시 해미가 살던 곳은 집과 밖의 경계가 현관문뿐이라 대문을 열면 바로 도로인 연립주택이었다. 환기구로 손을 넣을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안전에 취약한 집이었다. 쪽방처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였는데 화장실이 밖에 있어 오가는 자신을 보고 혼자 산다는 것이 노출되진 않을까 불안했다. 방송국 PD라고 우기던 그 사람이 집 문을 두드렸을 때도 도로가에 바로 있는 오래된 현관문이, 밖에 있는 화장실이 원망스러웠다. 이런 상황들을 겪다보니 주거환경에서 안전은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됐다. 그래서 해미는 집을 구할 때 문의 잠금장치는 잘 되어 있는지, 편의점같이 위험시 주위에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이 있는지, 너무 외지진 않는지, 도로랑 얼마나 가까운지 등을 더욱 세심히 체크 하게 됐다.

 

서울시에서는 여성안전정책으로 무인택배서비스, 홈 방범 서비스, 안심택시, 안심귀가 스카우트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이런 정책이 주거환경으로서의 안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진 않는다 말한다. 집 자체가 누군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다면 괜스레 두려움에 떨 필요야 없겠지만 안전한 집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하윤과 해미 모두 10년 동안 몇 번의 이사를 하고나니 집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기준들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하지만 110만 원 정도가 되는 월급을 생각할 때 이후의 주거환경이나 삶이 얼마나 쾌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하윤과 해미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것은 여전히 집에 대한 걱정이다.

 

하윤은 특히 비혼여성으로 계속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늘었다 

독신여성들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나이 먹고 벌이도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벌고 있는 돈으로 나중을 위해 대체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하는가심각하게 고민을 했어요. 근데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나이 먹고 돈 없으면 그냥 죽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단은 나이 먹고 돈 없기 전에 집을 마련하는 게 최우선이 된 거에요. 제 또래들이 소비세대라고는 하지만 3만 원 이상 물건 살 때는 꼭 사야하는지 3~4번 계속 생각해보고 검색해보고 사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안정된 공간 외에는 갖고 싶은 게 별로 없는 거예요.”

 

 

해미는 집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적은 월급으로는 저축을 할 수 없어 투잡을 시작했다.

본업 외에 다른 일을 또 하게 된지 두세 달 됐어요. 많이 받는 건 아니지만. 지금 급여만으로는 저축을 못하거든요. 외부 교육 같은 것도 한번 들으려면 30만원은 그냥 나가잖아요. 아무리 월세가 적어도 그런 교육 듣고 통신비 내고, 교통비에 식비 생각하면 다른 건 꿈도 못 꾸잖아요. 운전도 하고 싶은데 차가 생긴다고 해도 유지하기는 어렵겠죠. 주택청약을 넣고 있었는데 계속 못 넣어서 지금 해지된 상태에요. 조만간 다시 넣으려고요. 사람들은 흔히들 그러잖아요. 저 수많은 집들 중에서 내 몸 하나 쉴 곳은 왜 없는가. 저처럼 월급이 적은 사람들도 편히 집을 구하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답은 없는 걸까?

 

하윤과 해미가 살았던 집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과 노력들을 들으니 우리가 정말 대단한 것을 바라고 있

는 건가 생각하게 된다. ‘집이 집답게 공기가 흐르고, 빗물이 새들거나 곰팡이가 필 걱정을 하지 않길 바라는 것. 집이 집답게 외부인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고, 집수리 문제로 집주인과의 쓸데없는 다툼이 없길 바라는 것.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이나 결혼제도에 들어가지 않은 채 혼자 살며 주거비 걱정 없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정말 큰 꿈일까?

 

모아둔 돈은 별로 없고, 집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점점 비싸진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한 노동조건은 불안하고, 여전히 집은 말썽이다. 집 문제가 내 삶을 지배하지 않길 바란다면 각자가 알아서 생존전략을 짜고 버텨야 하는 것일까? 정말 그것 밖에는 답은 없는 걸까?

 

 

* 이 기획기사는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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