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8월 11, 2015 - 14:54
영세사업장 노동자 삶의 전형, 봉제공장에 가다
- ‘봉제산업 노동자 건강안전 실태조사’ 사업
글 :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영세사업장의 대표주자 봉제 산업
우리나라 취업인구 중 약 1/4은 10인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봉제산업은 바로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대표적인 노동자군이다.
2014년 기준, 전국 의복제조업 종사자수는 약 27만 명이다. 이 중 의류봉제업 종사자는 약 23만 명이다. 그리고 여성이 남성의 두 배에 이른다. 전국 봉제산업 취업자의 약 57%가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이 노동자 집단의 평균 연령은 매우 높은데 50~60대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최근 필자는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진행한 ‘봉제산업 노동자 건강안전 실태조사’ 사업을 함께 했다. 그리고 50년 전 전태일이 일하던 사업장과는 다르지만,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은 봉제 공장을 돌아다녔다. 그곳에서 노동자(미싱사와 시다)와 사업주(주로 재단사_전태일도 재단사였다) 면담을 진행하면서 작업장 먼지와 소음, 등받이 없는 재봉틀 의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제일 큰 동대문상권,
그래서 동대문 납품 노동자가 더 힘들다
서울에 많은 봉제업체가 존재하는 것은 동대문시장 때문이다. 동대문 상권이 전국으로 뿌려지는 구조다. 그래서 우리가 만났던 종로구, 중랑구, 성북구, 중구, 동대문구에는 서울의 봉제업체 중 60%가 몰려 있다.
동대문시장으로 납품을 하는 업체 노동자들은 주로 월급제 방식으로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객공제’ 방식으로 임금을 받았다. 작업한 수량만큼 급여를 받는 것이다. 동대문시장에서 다음날 소비될 물량을 매일 매일 요청받는데, 일이 끝나지 않으면 집에 가지도 못하는 구조다. 당연히 야간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하루 평균 작업시간 11.2시간, 주6일 근무라는 기록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의 주간 노동시간은 67시간으로 뇌심혈관계질환 산재인정 기준을 훌쩍 넘는다.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고용노동부고시 제2013-32호에 따르면 ‘뇌혈관 또는 심장 질병’의 산재 인정 기준을 발병 전 3개월 동안 주당 60시간 이상의 노동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발병 전 4주를 기준으로 할 때는 주당 평균 64시간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전태일 시대는 갔나?
전태일 이후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정말 전태일의 시대는 갔을까? ‘10대 소녀 시다들이 허리도 펼 수 없는 곳에서 하루에 14시간씩 각혈을 쏟아내며 일하던’ 상황이 바뀐 것은 분명하다. 그곳에는 50대 장년의 여성 노동자들이 여전히 12시간 일하고 있다. 공장은 시끄럽고 분진 때문에 뿌옇다. 특히 재봉틀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가 하루 종일 흘러나왔다. 라디오 소리의 정체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주변 작업자와 이야기하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하게 하기 위한 사장님의 ‘배려(?)’ 때문이다.
▲봉제산업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질병 문제
노동자들은 업무량을 채우기 위해 화장실에 잘 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응답자의 21%가 방광염을 앓고 있었다. 하루 11시간 넘게 등받이도 없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일하다가 식사도 먼지와 함께 공장에서 하는 경우가 56%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업자의 63%가 허리통증을 호소하고 있었으며 74%가 어깨, 목, 팔 등의 근육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20%의 노동자들이 피부염을 호소하고 있었다. 근골격계질환 때문에 일을 그만둔 사람들도 있고 호흡기 질환 때문에 일을 그만둔 사람들도 있다.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 노동자의 삶은 크게 변화한 것 같지 않다.
“먼지 때문에 젊은이들이 봉제 공장에 안 와”“먼지가 너무 많아서 눈썹에 하얗게 쌓여...”“콧구멍은 맨날 새까매”- 봉제산업 노동자 건강안전 실태조사를 수행하면서 만난 작업자들의 말 중에서
노동자도 불안, 사업주도 불안
그런데 이들은 스스로 쉬면서 치료받고 다시 골병 구덩이로 재취업한다. 아픈 몸을 치료하고 다시 공장에 복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문조사에서는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둔 뒤 재취업하는 비율이 약 33%로 나타났다. 저임금 집단인 이들이 일하는 사업장은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언제든 복귀가 가능하다. 그래서 사업장마다 ‘미싱사구함, 시다구함’이라는 구인 광고가 붙어 있다.
▲중랑구의 한 봉제공장 간판 모습
게다가 이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것도 일거리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의류봉제업은 사계절 모든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러다보니 공백기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임금을 받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좀 쉬거나 아니면 일거리가 있는 다른 사업장에 재취업을 해야 한다. 사업주가 다시 일거리를 받아와도 노동자는 떠나고 없다.
노동자는 상시적으로 불안하고 힘들며 사업주도 상시 불안하고 힘들다. 사업주의 소득도 노동자보다 낫다고 보기 어려운 구조이다. 수많은 사업주가 도산을 하고, 다른 일을 했다가 결국 다시 봉제공장을 여는(‘배운 도둑질이 이것밖에 없어서’)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나 사업주 모두 입을 모아 하는 말은 향후 10년 이내에서 서울 안에서 봉제공장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젊은 사람이 안 들어오고 늙은 사람들은 병들어가고… 그래서 어떤 사업주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열심히 고용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서울시, 봉제산업과 노동자를 위한 산업정책 마련해야
서울시는 봉제산업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봉제산업은 인쇄, 귀금속, 기계산업과 함께 4대 도시형 제조업으로 불린다. 서울시는 이 산업들을 육성하기 위해 2010년 이후 지속적인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력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 지원, 작업환경 개선 지원, 의류봉제산업지원센터 설치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인력은 계속 부족하고 작업환경은 개선되지 않으며 사업주를 위한 지원도 대부분 모르고 있다.
현재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산업정책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영세사업장에 대한 환경개선과 노동자 장시간 노동 규제 등의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야 젊은 노동자도 봉제 일을 배우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봉제 업무에 최적화된 재봉틀 작업대를 제공하는 시도도 필요하고 집진시설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노동자 밀집 지역에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위한 의료적 지원이 가능한 구조를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