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해방과 한반도 분단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70년 전,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비극은 핵무기가 인류에 미치는 재앙적인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지만 갈등과 대결, 군비경쟁의 악순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 그에 따른 미국 핵 자산의 한반도 진입과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군사력 확충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군비 경쟁은 70년이 지난 지금 당시보다 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불안하고 위험한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 그냥 두어야 할까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이 악순환의 출발 지점인 정전체제의 한계를 진단하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하는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2015, 이제는 평화' 연재를 기획했습니다.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8일까지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과 평화국제팀 이미현 팀장, 백가윤 간사가 2015년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NPT) 검토회의 참관 차 미국 뉴욕에 다녀왔습니다. 앞으로 세 편의 연재를 통해 NPT 검토회의 결과와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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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 한국인도 피폭됐다

[2015, 이제는 평화] 2015 NPT 검토 회의 결과 ③

 

백가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한반도 핵 갈등은 불안정한 한반도 정전체제의 일부입니다"

 

2015년 5월 4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발표된 '한국 전쟁 종식과 한반도의 핵 위기 해소를 위한 지구 시민 선언'은 이렇게 단언한다. 핵 위협 없는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시아를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난 62년간 지속해 온 전쟁 상태를 끝내는 것이란 뜻이다. 2015 NPT 검토 회의에 참가한 참여연대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가 공동으로 작업하고 국내외 인사 400여 명, 단체 100여 개가 서명한 이 선언은 2015 핵 확산 금지 조약 검토 회의에서 발표됐다.(1)

 

참여연대와 평통사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과 핵 갈등의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해법을 국제사회에 제안하고 각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지지 및 연대를 촉구하기 위해 이번 2015 NPT 검토 회의에 참가했다.(2) 특히 참여연대는 이번 NPT 검토 회의 참가를 통해 △한반도 전쟁을 끝내자 (End the Korean War) △동북아 비핵 지대화 (Nuclear Free Northeast Asia) △태평양을 평화의 바다로 (Make the Pacific pacific)라는 세 가지 의제를 글로벌 시민사회에 제기하고 공동 행동을 모색하는 기회로 삼았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 전쟁 종식과 한반도 핵 위기 해소를 위한 지구 시민 선언'(Global Citizens' Declaration: A Call for an End to the Korean War and the Elimination of Nuclear Threats on the Korean Peninsula)은 5월 4일 유엔 본부에서 개최한 NGO 부대 행사에서 발표됐다. 

 

선언은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과 핵 갈등의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해법으로서 △2005년 9.19 합의에 입각한 6자 회담 즉각 재개 △정전 체제 종식과 새로운 평화 협정 체결을 위한 남·북·미·중 등 관련 당사국 간의 회담 추진 △북·미, 북·일 관계의 포괄적 관계 개선 △남북 대화 확대 △한-미-일 군사 협력·동맹 추진 중단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구 불용 △동북아 비핵 지대 건설 △남북이 각각 맺은 상호 적대적 군사 동맹의 단계적 해소와 호혜적이고 평화적인 관계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참여연대는 이 선언의 내용을 요약해 각국 정부 대표들에게 시민·사회단체가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시민사회 구두 발언(civil society presentation)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을 제외한 6자 회담 당사국 대표부들이 모두 참석한 '동북아 비핵 지대'에 대한 NPT 부대 행사에서는 핵없는 동북아시아를 만들기 위해 북한도 핵무기를 포기하고 다른 국가들도 적대적인 군사 정책 및 핵 억지력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NPT에 한국인 피폭자가 함께 참가한 것은 뜻깊은 대목이었다. 사실 일본인 피폭자들의 문제는 많이 알려져 있는 반면 한국인 피폭자들의 문제는 그동안 국내에서도, 국제사회에서도 주목받지 못했다. 대개의 한국인 피폭자들은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으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끌려갔다가 피폭당한 경우다. 약 70만 명의 원폭 피해자 중 7만여 명이 한국인 피폭자라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 약 2600여 명만이 생존해 있다. 

 

아베 총리 미국 의회 연설 규탄 집회가 열린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발언하는 심진태 지부장

▲ 아베 총리 미국 의회 연설 규탄 집회가 열린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발언하는 심진태 지부장(가운데). ⓒ참여연대 

 

이번 NPT에 참가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심진태 합천지부장과 원폭2세환우회 김봉대 고문은 한국인 피폭자들의 문제와 원폭 2세들이 겪는 고통을 전하며 일본과 미국 정부의 사과와 배상, 그리고 원폭 피해의 유전을 인정할 것과 실태를 파악할 것을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이러한 한국 시민사회의 활동은 워싱턴에서도 이어졌다. 마침 참여연대가 워싱턴을 방문한 날은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미국 의회에서 첫 합동 연설을 하기로 예정됐던 날이었다. 미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이틀간 미주 교민들 주최로 아베 총리 방미 규탄 기자 회견이 있었다. 한국 시민사회 방미단 역시 기자 회견에 참석해 미 의회에 대해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한국인 피폭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합동 연설이 끝날 즈음에는 국회의사당 건물 바로 옆에서 피켓 시위를 하며 의원들을 하나하나 만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길을 지나는 많은 미 하원 의원들이 한국인 피폭자 문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며 관심과 지지를 표해주었다.

 

별도로 미 하원 외교위원장인 공화당 에드 로이스 의원의 보좌관을 만난 자리에서는 미국의 대북 정책 및 북한 인권 정책, 한국인 피폭자 문제에 대한 참여연대의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워싱턴을 떠나기 전 참여연대는 미 국무부 한국과장과 북한과장을 만나 현행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한국 평화 단체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정책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한국인 피폭자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인지와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NPT 검토 회의는 각국 정부의 각축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 세계 반핵 평화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중요한 행사다. 특히 NPT 검토 회의 시작 전 개최되는 시민사회 워크숍과 반핵 평화 행진은 '핵 없는 세상'을 꿈꾸는 전 세계의 평화운동가들을 만날 좋은 기회다. 참여연대 역시 각국 평화단체들과 함께 '미국의 회귀, 중국의 부상, 그리고 정의, 안보와 함께 평화를 위한 투쟁'이라는 시민사회 워크숍을 개최하고 이 자리에서 한-미-일 군사 협력과 제주 해군 기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논쟁 등을 통해 미국의 회귀와 중국의 부상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들을 소개하는 기회를 가졌다.

 

NPT 검토 회의 시작 전날인 4월 26일 뉴욕 시내 중심가에서 개최된 '반핵 평화 행진'은 2000명 가까운 전 세계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기 다양한 색깔로 핵무기 철폐와 평화를 촉구하는 흥미롭기도 하고 가슴 뜨거워지는 행진이었다. 한국 시민사회 방미단도 한국에서 준비해 온 피켓과 노란 풍선을 들고 이 행렬에 함께했다. 전 세계 많은 활동가들이 '한국 전쟁 종식'과 '동북아 비핵 지대'를 촉구하는 노란 풍선을 함께 들어줬다. 

 

▲ 반핵평화행진에 참가한 참여연대와 전 세계 반핵 활동가들 ⓒ참여연대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의 이번 2015 NPT 평가 회의 참석은 각국 정상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반도 핵 문제와 동북아 평화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의 입장을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20년에 열릴 차기 NPT 검토 회의 때는 더 많은 한국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한반도 핵 갈등 해결과 평화를 위한 연대를 촉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인 피폭자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제기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핵무기의 인도주의적 영향이 올해 NPT의 주요 의제였던 만큼 앞으로 한국인 피폭자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연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NPT 검토 회의 참가는 핵 없는 한반도, 나아가 핵 없는 동북아를 만들기 위한 국제 연대 활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15 NPT 검토 회의에서 구축한 여러 단체 및 기관들과의 네트워크는 향후 활동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앞으로 참여연대는 핵무기의 비인도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약속(humanitarian pledges)을 한국 정부가 비준할 수 있도록 대 국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일 것이며 한국 정부의 NPT 조약 이행 상황을 꾸준히 모니터링할 것이다. 동시에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성과물 중 하나인 '지구 시민 선언'에 동참한 국내외 단체들과도 선언에 이은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실천해나갈 예정이다.

 

□ 필자 주석

(1) '한국 전쟁 종식과 한반도의 핵 위기 해소를 위한 지구 시민 선언; 전문 및 연명 단체와 연명자 명단 (☞바로 가기)

(2) 2015 NPT 평가 회의 전체 일정은 4월 27일~5월 22일이었으나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은 4월 23일~5월 8일(시민사회 사전 행사 참가 포함) 동안만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