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혜미 녹색전환연구소 운영실장
올겨울 난방비 고지서를 받고 모두 사색이 되었을 것이다. 난방비가 많이 나온 이유는 다양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한국은 에너지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이기에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그뿐인가. 북극에서 불어닥친 한파가 보일러 온도를 올렸고 이러한 맥락에서 에너지 요금이 동반 상승했다.
난방비 문제로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자 국회와 정부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원금 카드부터 꺼냈다. 동시에 ‘난방비 폭탄’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여당과 야당은 서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마땅한 해결책 없이 상대 정당을 비난하는 현수막만 동네마다 즐비하게 걸었다. 일각에서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인상한 것 자체가 ‘공공성’ 또는 ‘에너지 기본권’을 훼손하고 박탈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결국, 작금의 난방비 사태는 ‘전쟁’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기에 난방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말이다. 한국과 해외 사례를 비교해서 살펴보자.
같은 폭탄, 다른 정책
한국에서 난방비 대란에 대한 공방攻防만이 오갈 때, 우리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심각하게 러-우 전쟁의 타격을 입은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독일과 프랑스, 미국의 경우 난방비가 급격하게 오른 상황은 같으나 정부의 대응 방식은 한국과 큰 차이가 있었다. 이번 사태가 에너지 위기의 결과임을 인정하고 구조적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점, 더 나아가 난방비를 주거 문제와 연결 지어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 핵심 차이다.
한국처럼 재생에너지 비율이 두 자릿수조차 안 되는 국가에서는 에너지 생산부터 소비까지 모든 과정에서 과도하게 탄소배출을 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대응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난방비 문제 해결을 위한 기존의 에너지 생산 방식은 필연적으로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상승시킨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에너지 요금 인상을 정직하게 논의하지 않았고, 이로 인한 충격을 시민들이 직격으로 맞은 것이다. 에너지 생산 및 수요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고, 보통의 시민들이 그 부담을 각자 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과 적응’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에너지 안보를 지켜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탄소 절감, 에너지 분권·자립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가격 변동성이 낮고 지속 가능한 재생에너지 확대도 필수적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조차 영구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핵발전소로 탄소중립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획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모두가 안전한 에너지 전환정책은 이제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날씨는 변덕스러워질 것이며, 에너지 가격은 감당할 수 없이 높아질 것이다.
주거권과 에너지 기본권, 두 가지 권리 동시에 사수하기
또 하나 우리가 함께 요구할 것이 있다. 주거 공공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난방비 사태를 맞은 독일이 가장 먼저 내린 결단은 바로 ‘강제 퇴거 금지’ 조치였다. 에너지 요금을 감당하지 못해 월세를 못 내도 세입자를 내쫓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프랑스 역시 주거 관련 법안을 만들고 있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집은 아예 세입자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단기적인 에너지 요금 지원으로 땜질만 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미국의 경우 ‘모두를 위한 청정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주거 개선 사업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고, 백악관 홈페이지에 관련 정책 정보를 게재하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 감축법1 Inflation Reduction Act의 연장선에 있는 조치로, 주거 공간의 상태에 따라 기후위기의 영향을 다르게 겪기에 정책적으로 주택 품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2018년 한국의 여름을 복기해보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기록적인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160여 명에 달했다. 온열질환 사망자의 50%가 의료시설에서, 19%가 주택에서 발생했다.
이 통계는 적정하지 못한 주거 공간이 시민의 삶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잘 보여준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 빈곤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한국에서 폭염·혹한 등 날씨로 인한 인명피해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나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주거 공간확보’는 필수적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주거 공공성을 가열차게 주장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구멍 뚫린 에너지 바우처 대신 에너지복지법이 필요하다
이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화는 피할 수도 미룰 수도 없다. 대표적으로 에너지복지법이 있다. 바우처voucher로 포괄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삶을 담을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 여러 전문가가 지적하듯 현재 에너지 바우처는 대상자가 매우 불분명한 데다가 심각하게 파편화되어 있다. 또한 한국 복지정책의 고질적 문제점인 ‘신청주의’로 인해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복지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수급 자격도 협소하다. 소득 기준으로는 바우처를 받을 수 있는 생계급여·의료급여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노인·영유아·장애인·임산부·한부모가족 등 ‘세대원 특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급 자격에서 탈락한다.
이로 인해 매년 에너지 바우처 지급률은 떨어지는 추세다. 단전가구2 중에서도 에너지 바우처 이용률은 10%에 불과하다. 결국 에너지 위기 속에서 사회안전망의 구멍이 더 커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2월 8일 ‘기후전망과 전략, 10인과의 대담’에서 대기 과학자 조천호 교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 6차 보고서를 토대로 “어느 때보다 나빠지는 기후 상황에서 지역별·계층별 불평등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제 의회를 통해 기후위기 불평등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법을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런 점에 최근 출범한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다. 엘니뇨El Nino 현상으로 또다시 역대급 더위가 예상되는 2023년에 5년 전 여름처럼 불평등한 재난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1 기후변화 대응, 친환경 에너지의 보급, 취약계층 지원 확대, 일자리 창출 및 노동자 보호, 의료비 지원 등을 목표로 약 7,900억 달러의 재정을 투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
2 전기요금 체납으로 전류 제한을 겪은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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