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무제한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독일의 ‘9유로Euro 정책’이 국내외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무제한 또는 무상 대중교통을 확대하고 있는데, 9유로 정책은 이 흐름에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정책 내용을 살펴보자.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3개월 동안 지역 간 고속 열차를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을 월 9유로(약 1만2천 원)로 무제한 이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를 위해 제도 시행 기간에 26억 유로(약 3조 4천억 원)의 정부 재정을 투자했다.
9유로 정책은 시행되자마자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총 5,200만 장의 티켓이 판매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독일 정부는 △물가상승률 0.7% 감소 △대중교통 이용 25% 증가 △이산화탄소 180만 톤 저감 및 대기오염 6% 감소 △교통혼잡 개선 △가구 소득보존 등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효과를 달성했다. 이 밖에도 독일의 복잡한 대중교통 요금체계를 단순화하는 성과도 얻었다.
정책이 대대적으로 성공하자 상시적인 도입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독일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논의 끝에30억 유로(약 4조 원)의 예산을 절반씩 부담하기로 하고, 2023년 5월 1일부터 월 49유로(약 6만 6천 원) 무제한 독일 티켓DeutschlandTicket을 상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기후위기와 고물가 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공공요금 정책으로 대중교통의 사회경제적 편익을 증명하면서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한국산 ‘9유로 티켓’ 도입, 재정여력은 충분하다
이러한 영향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기후환경단체 중심으로 1만원패스연대(준)가 결성되었고, 정의당도 ‘3만원 무제한 패스’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반면 서울시는 ‘해외에 비해 요금이 싸며, 무임수송에 따라 적자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300~400원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예고했다. 정부의 공공요금 동결 기조에 따라 인상 시기는 올 4월에서 하반기로 연기했지만, 계획은 바꾸지 않았다.
이러한 서울시의 입장은 대중교통 이용자가 누구인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변화된 상황은 무엇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다. 우선 외국과 달리 정기할인권이나 소셜Social할인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만큼 요금이 늘어난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저소득 노동자, 청년 실업자, 노인, 영세자영업자, 장애인 등에게는 요금부담이 역진逆進적이다. 특히 요즘같이 경제위기와 고물가 시기에는 그 부담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중교통 이용률은 보수적인 정부 통계로도 이전 대비 3분의 1 이상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률 회복과 증진을 위해서 적극적 인센티브 정책도 요구된다. 지금은 오히려 무제한 정액제 도입 등의 긴급 처방이 필요하다. 재정을 들여서라도 서민을 위해 요금을 내리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복원하고 더 늘려서 환경오염에도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재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교통시설 특별회계 세출 예산’을 교통 관련 재정으로 사용한다. 이 중에 불용不用 처리되어 5년2017~2021년 동안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예탁된 돈만 무려 20조 원이라고 한다. 정부의 결단만 있으면 유류세에 부과되는 재원으로 조달된 교통시설 특별회계 예산을 대중교통 요금할인과 운영지원을 위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중앙정부가 재정을 내어놓는다면 지방정부 또한 쉽게 호응할 것이다. 정부는 이미 자가용 이용자들에게는 유가 인상에 따른 9조 원의 유류세를 감면해주었다. 대중교통 이용자에 대한 혜택도 그만큼 줄 수 있어야 한다.
사회구조를 바꾸는 요금제, 우리도 할 수 있다
독일 9유로 정책의 사회경제적 편익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증명되고 있다. 아직은 소규모이지만 강원 정선군, 경기 화성시, 경북 청송군 등에서 무상버스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강원 정선군은 2020년 6월부터 버스공영제와 함께 65세 이상 노인과 초·중·고 학생들에 대한 부분 무상교통을 실시했는데 승객이 30% 증가하고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경기 화성시 또한 2020년 11월부터 버스공영제와 함께 청소년·노인·청년(만23세 이하) 대상 무상교통을 실시해 환경개선, 교통비 절감, 경제활성화 등으로 연간 약 86억 6천만 원의 사회경제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보편복지의 일환으로 2023년부터 전면 무상버스를 도입한 경북 청송군은 시행 두 달 만에 이용객이 20% 늘었고 이동 증가로 지역경제도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광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세종시는 광역단체 최초로 2025년부터 시내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앞으로 지역을 중심으로 부문 또는 전면 무상교통이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요금할인과 무상교통 자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책이 지속적으로 유지·확대되기 위해서는 수요 확대에 걸맞은 인프라 확대, 재정투자 증가, 안전인력 충원 그리고 통합공공교통체계가 수반되어야 한다.
대중교통이 잔여적이고 주변적인 한국 현실에서 무상교통 및 무제한 요금제는 고물가 대응, 환경오염 저감과 지역 활성화 등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경제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가용 중심 체계에서 대중교통 중심 체계로 전환하는 마중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독일 9유로 정책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시사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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