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수행자 8명이 제주도의 소박한 동네 절에서 7일 동안 집중수행을 했다. 절에서 숙식하며 오전·오후마다 발제하고 토론하며 공부에 전념했다. 함께하는 기쁨을 흠뻑 누렸다. 그런데 모두가 마음에 품은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우리가 숙식하는 그 절의 살림이었다. 도반 스님의 호의와 배려로 공부를 하고 있지만, 결코 넉넉하지 않은 절의 살림살이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절의 주인이 없을 때 모여서 말을 꺼내 보니 수행자들은 식비보다 난방비 걱정을 으뜸으로 꼽았다. 그래서 7일 동안의 최소한의 밥값과 난방비를 얼추 계산하여 몰래 입금했다.

내가 머무는 절도 대중이 많이 살고 건물도 많아 한겨울 많은 곤란을 겪는다. 절에 사는 사람들도 올겨울 가장 큰 걱정은 난방비였다. 많은 부를 누리는 소수의 사람에겐 주요 관심사가 아니겠지만, 대다수 사람은 빠듯한 살림에 치솟는 난방비가 공포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가구들은 난방비를 내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유달리 추웠던 지난겨울, ‘난방비’는 그렇게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그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떠오른 말이 바로 ‘공공성’이다. 그리고 그 공공성은 다양한 분야에서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공공성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이다. 오늘날 공공성이 작동되어야 하는 분야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의료·교육·주거·노동 등이 있다. 이 공공성이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적용되는 것이라면, 정책적 차원에서 두루 논의되고 해결되어야 한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정책적 논의와 해결에 앞서 공공성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절실하고 최우선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철학과 정신은 모든 일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공공성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나는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감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일이다. 가슴에 닿는 말로 하자면, 상대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여기는 따뜻하고 절실한 감수성이다. 그래서 대안 문명을 모색하고 공동체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공감 능력’을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보력, 재력, 과학기술, 특성화 능력보다 최우선으로 요구되는 실력은 ‘공감하는 능력’일 것이다.

공감은 그리 어렵고 복잡한 말이 아니다. ‘함께 살자’는 말이다. 함께 살겠다는 정신과 행위가 없다면 함께 살 수 없다는 말이다. ‘함께 살 수 없다’는 말은 ‘나도 너도 살 수 없다’는 말이며,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은 ‘나도 너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길은 이렇게 정직하고 단순한 자리에서 열린다.

전래동화 ‘의좋은 형제’를 기억할 것이다. 이 이야기가 창작인 줄 알았는데, 고려 말 충남 예산에 살았던 이성만·이순 형제의 실화라는 사실을 최근 알았다. 가을걷이를 하고 들판에 볏가리를 쌓아놓은 형과 아우. 형은 아우가 신혼이어서 살림이 어려울 것을 생각하고, 아우는 식구가 많은 형님의 살림을 걱정한다. 그런 역지사지의 우애가 바로 공감 능력이 아니겠는가. 공감은 ‘가진 자들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와는 다르다. 공감은 누구나 가지고 실현해야 하는 아프고 절실한 가슴이다. 모든 문제는 현장에 직면하면 답이 보인다. 현장에는 늘 아픔이 있고 소리가 있다. 그 아픔의 소리를 가슴으로 듣는 일이 공감이다.

이제, 우리에게 무엇이 요구되는가? 모든 사람이 공감이라는 텃밭을 잘 일구는 것, 그리고 그 텃밭에 공공성의 과일나무를 심고 거두는 것이다. 지금, 공감의 몫은 모든 시민에게 있고, 공공성 실현의 온전한 몫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이들에게 있다. 불멸의 이순신 장군의 말을 빌려와 변주하고자 한다.

“ 혼자만 살려는 자 반드시 필멸할 것이고,
함께 살고자 하는 자 반드시 불멸할 것이다.”

공감에서 공공성으로! 정답이고 해답이다.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중이며 지은 책으로 인문에세이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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