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21년 7,8월호-우리들이야기(5)][같이 연뮤 볼래요?]

뮤지컬 <팬텀>
그대는 나의 음악이자 빛, 그대는 나의 인생

 

효겸

아홉 번째 이야기로 돌아온 [같이 연뮤볼래요?]의 효겸입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첫 번째 이야기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편1) 말미에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다른 뮤지컬인 <팬텀>에 대해서 언급해 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얼마 전 서울 공연을 성료하고 지방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스통 르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기 때문에 작품의 개괄적인 내용은 유사하지만, 필자는 두 작품이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뮤지컬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과 달리 팬텀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에릭이라는 한 인간으로서의 팬텀에 집중합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팬텀이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지만, <팬텀>에서는 에릭이 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오페라 극장 지하에 살 수밖에 없었는지, 그에게는 부모가 있었는지, 끝없는 어둠 속 그의 외로움의 깊이는 얼마였는지 감히 가늠하게 하고.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보다는 조금 더 어릴 듯한, 조금 더 유약한 에릭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화려한 무대 위 천장에 걸려 있는 샹들리에에 불이 켜지고 웅장한 서곡과 함께 1막이 시작되는데요. 에릭은 무대 옆 기둥 높은 곳에서 첫 넘버인 ‘서곡-비극적인 이야기’를 부르며 관객들을 자신의 이야기로 인도합니다. 막이 올라가고 크리스틴이 오페라 극장 앞 광장에서 악보를 팔며 등장합니다. 크리스틴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매료된 샹동 백작이 극장에 노래 레슨을 얘기해 둘 테니 찾아가 보라고 말을 전하고 떠납니다. 한편 오페라 극장에서는 새로운 극장 감독이 들이닥치고 기존 극장 감독인 카리에르는 해고당하고 마는데요. 카리에르는 극장을 관리하는 감독이자 에릭의 정체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윽고, 팬텀이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는 다르게 <팬텀>에서는 하얀 반가면 이외에도 에릭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다양한 가면들이 있습니다. 극 중에서 에릭의 감정이 변화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가면을 바꿔 쓰면서 극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 올립니다. 특히, 눈물이 그려진 반가면과 태양 가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난 시즌까지는 반가면이 아니라, 얼굴을 전부 가리는 가면을 썼었는데요. 필자는 반가면을 통해 에릭의 감정을 좀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뮤지컬 <팬텀>의 무대장치는 <오페라의 유령>만큼이나 인상적입니다. 특히 1막의 마지막, 화약을 활용해 불꽃을 터뜨리며 곤두박질치는 대형 샹들리에는 그 존재감이 압도적인데요. 이 밖에도 극 내내 무대 뒤쪽 스크린 영상을 활용해 극적인 효과를 부여합니다. 에릭이 ‘이렇게 그대 그의 품에’ 넘버를 부를 때는 스크린에 나타난 광장의 공간감 덕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울부짖는 처절함이 배가되고, 2막 처음 크리스틴을 배에 태우고 극장 지하 본인의 거처로 이동할 때는 스크린에 깊은 지하 기둥들이 드러나면서 지하 호수 깊은 곳까지 숨죽이며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필자가 뮤지컬 <팬텀>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크리스틴과 에릭이 처음 조우하는 부분입니다. 그토록 고대했던 오페라 극장에서 일하게 된 크리스틴은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내 고향’이라는 넘버를 부릅니다. ‘바로 그 순간 이곳(오페라 극장)은 내 고향’이라는 가사가 인상 깊은 넘버인데요. 에릭 역시 이 넘버를 부르며, 그토록 저주했던 이 오페라 극장에서 본인이 갈구하던 완벽한 목소리를 가진 크리스틴을 만난 이 순간을 통해 여기가 바로 자신의 고향이라는 것을 온 마음으로 깨닫게 됩니다. 에릭은 크리스틴에게 천사의 목소리라 찬사하며, 본인을 드러내지 않는 조건으로 노래 레슨을 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에릭이 무대를 떠난 후 크리스틴이 홀로 남아 마지막으로 부르는 ‘바로 그 순간 이곳은 내 고향’이라는 구절을 다시 들었을 때 필자도 마치 그 순간이 제 마음속 고향 같아서 사실 눈물이 조금 났었습니다.

이후 크리스틴은 에릭의 레슨을 받으며 차근차근 목소리를 훈련해 갑니다. 레슨 마지막 날 에릭과 크리스틴은 ‘넌 나의 음악’이라는 넘버를 함께 부르는데, 이 넘버는 ‘오 너는 음악 고귀한 음악, 넌 나의 환한 빛, 오 너는 음악 강렬한 음악, 그대는 내 인생’이라는 가사로 크리스틴과 에릭의 시선이 교차되고 맞닿는 순간들을 보여주며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이 서로에게 빠져들고 있음을, 그 사랑의 씨앗을 조심스레 깨닫는 장면입니다. 에릭은 본인의 어두운 삶에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크리스틴을 본인의 구원이라 믿습니다. 크리스틴 역시 에릭에 대한 올곧은 사랑을 가지고 있고, 이를 표현하지만 에릭은 미처 이 사랑을 깨닫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2막 초반에는 에릭이 어떻게 흉측한 얼굴을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에릭의 부모님인 벨라도바와 카리에르(앞에서 보신 그분이 맞습니다)의 이야기를 발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사 한마디 없이 무용수들의 몸동작과 표정으로만 표현되지만, 그 감정은 폭발적입니다. 유부남이었던 카리에르의 아이를 가진 벨라도바는 독약을 마시고 오페라 극장 지하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러한 어둠 속에서도 에릭은 벨라도바의 사랑을 가득 받고 자라납니다. 하지만 벨라도바가 사망하고 우연히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된 어린 에릭의 슬픈 울음소리가 극장의 벽을 타고 올라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고 그렇게 에릭은 팬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에릭은 크리스틴과 잠시 떠난 피크닉에서 어린 시절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내 몸은 어둠으로 덮여도 영혼만은 빛처럼 밝았지’라는 ‘나의 빛, 어머니’ 넘버로 고백하고, 크리스틴은 이를 온 마음으로 공감하며 자신의 사랑을 ‘내 사랑’이라는 넘버를 통해 절절히 표현합니다. 그리고 크리스틴은 에릭에게 얼굴을 보여 달라고 청하는데요. ‘알아볼게요 당신 음악처럼’이라는 가사처럼 크리스틴은 본인의 진실한 사랑을 표현하지만, 막상 에릭이 가면을 벗었을 때는 너무 놀란 마음에 자리를 피하게 됩니다. 이에 에릭은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크리스틴에 대한 사랑에 어쩔 줄 몰라하며 ‘저주해, 너를 사랑해, 널 저주해 크리스틴!’ 울부짖습니다. 결국, 그녀를 찾아 극장으로 다시 올라온 에릭은 총을 맞고 마는데요. 크리스틴은 그 마지막 순간에 다시 에릭의 가면을 벗기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환한 웃음으로 ‘넌 나의 환한 빛, 오 너는 음악, 꿈 같은 음악, 그대는 내 인생’ 노래를 부르며 다시 한번 그녀의 사랑을 고백하고 에릭은 이를 마지막으로 눈을 감습니다. 아마도 에릭은 눈을 감는 그 순간에 자신을 사랑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크리스틴에게서 보았을 것 같죠. 그것이야말로 크리스틴이 그 순간 에릭에게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크리스틴뿐만 아니라, 회한에 찬 카리에르도 눈물로 에릭을 보냅니다. 그 마지막 울음이 막이 내려가고 나서도 귀에서 잊히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필자는 에릭이 죽고 나서 과연 크리스틴과 카리에르는 어떻게 견뎌냈을지, 에릭이 살아 있었더라면 어떠한 결말을 볼 수 있었을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뮤지컬 <팬텀> 커튼콜 마지막에서는 에릭과 크리스틴을 연기한 배우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무대 뒤쪽으로 걸어가고 에릭이 품속에서 장미꽃을 꺼내 크리스틴에게 건넵니다. 크리스틴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그 꽃을 받아 드는데요. 그게 에릭이 살아 있었더라면 관객들이 볼 수 있을 최고의 엔딩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뮤지컬 <팬텀>은 뮤지컬뿐만 아니라 발레, 정통 오페라 등 다양한 무대 예술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뮤지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시즌 때는 코로나가 완화되어 여러분들이 이 작품을 꼭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 추신, 반복되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다들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항상 부족한 소개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월간경실련 2020년 1,2월호, http://ccej.or.kr/58849


[같이 연뮤 볼래요]에서는 같이 이야기하고픈 연극과 뮤지컬을 소개해드립니다.
필자인 효겸님은 11년차 직장인이자, 연극과 뮤지컬를 사랑하는 12년차 연뮤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