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이용대가 = 연결대가로 규정하여 망중립성에 부합
– 신용카드와 인터넷의 차이점 이해 못해
– 사적자치 강조하면서 기존 합의에 대한 평가 부재
사단법인 오픈넷은 6월 25일 넷플릭스 대 SK브로드밴드 1심 판결이 망중립성에 대한 개념혼선을 보여줌으로써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으로 평가한다.
법원이 파악한 사실관계 따르면, 원래 SK브로드밴드는 미국 시애틀에서 상위 망사업자를 통해 넷플릭스 데이터를 받아서 국내에 공급을 하다가 데이터량이 늘어나자 2018년 넷플릭스와의 합의 하에 각각 홍콩과 일본에서 무정산직접접속을 하였고 SK브로드밴드는 최근 들어 ‘망이용대가’를 지불하라는 주장을 해왔다고 한다. 넷플릭스는 이에 대해 망이용대가 지급의무가 없다는 법원의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법원은 이번에 넷플릭스에 대해 ‘망이용대가 지급의무가 없다고 할 수 없다’는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어느 한 쪽이 이겼다고 할 수 없는 애매한 판결이다.
오픈넷이 꾸준히 지적했듯이 ‘망사업자가 자신의 고객들에게 데이터를 전송하는 대가로서 콘텐츠제공자로부터 받는 망이용대가’라는 개념 자체는 인터넷의 구조에서 성립될 수 없으며 이렇게 콘텐츠제공자가 돈을 낸다고 해서 그 콘텐츠제공자의 데이터를 전송하거나 우선전송하는 것은 망중립성의 차별금지 원리에 금지된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와 EU의 통신규제기구(BEREC)가 공히 이를 명시적으로 금지한 바 있다.
망이용대가 = 연결에 관한 대가
법원은 판결문 초반에 이에 반하여 ‘전송대가로서의 망이용대가’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원고 넷플릭스는 피고를 통하여 인터넷 망에 접속하고 있거나 적어도 피고로부터 피고의 인터넷 망에 대한 연결 및 그 연결 상태의 유지라는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고 있다고 보아야 하고, 이는 ‘통신사가 자사망에 흐르는 합법적 트래픽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인 망 중립성에 관한 논의나 ‘전송의 유상성‘에 관한 논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므로, 결국 원고들은 피고에게 적어도 피고로부터 피고의 인터넷망에 대한 연결 및 그 연결 상태의 유지라는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는 것에 대한 대가(이하 ‘연결에 관한 대가’라고만 한다)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고, 그와 같이 보는 것이 원고들과 피고 사이의 형평에 부합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법원은 망이용대가가 전송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연결에 대한 대가’임을 적시하고 있다. 망중립성은 인터넷에 접속된 이후에 돈을 내야만 전송해주거나 돈을 더 내야만 우선전송하는 식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이지 접속유지비용의 다양한 조달방법(peering, transit, paid peering등)을 금지하지 않는다(예: FCC2010년 망중립성명령 각주 79번). 그러므로 ‘연결에 대한 대가’ 즉 접속료를 주고 받아야 한다는 것은 망중립성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망중립성이 ‘연결에 관한 대가’와 무관하다는 표현도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SKB의 망에 대한 연결”이 넷플릭스에게 가치가 있는 유상의 역무임을 적시한 것 역시 잘못된 바는 없다. 물론 위 판시의 문제는, 거꾸로 “원고 넷플릭스의 데이터에 대한 연결” 역시 피고 SKB에게 가치있는 유상의 역무임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상호 가치있는 역무를 교환하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무정산(settlement free peering)으로 이루어지고 넷플릭스-SKB, 넷플릭스-LGU+, 넷플릭스-KT와의 직접접속이 모두 무정산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다음과 같이 ‘대가’의 내용을 폭넓게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CP가 ISP의 망을 통하여 트래픽을 전송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에 대하여 지불하는 방식은, 회선용량 단위(Gbps)로 접속회선료 또는 접속통신료 등의 명목의 금전을 지급하거나 CP가 ISP에게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이 사건에서 원고들이 제안하는 것처럼 복수의 지역에 CP의 OCA를 설치하여 ISP의 망에 발생하는 트래픽을 경감시키거나 각종 공사비용과 설비의 업그레이드비용을 상호 분담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에 관한 대가가 지급될 수도 있다. 이처럼 원고들이 피고에게 금전적으로 사용료를 지급하는 것외에도 위와 같은 방법들 모두 ‘CP의 콘텐츠를 최종이용자에게 도달시키기 위해 ISP의 망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지불되는 경제적 이익’에 해당된다. 원고들과 피고는 협상에 의하여 어떠한 방식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사적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법원이 금전으로 그 지급을 명하는 것은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가 완전히 결렬된 이후에 한하여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 . 실제로 Global CP들 중 구글은 금전으로 망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고 국내 ISP들과 별도의 계약을 체결하여 국내 ISP들에게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망 사용료의 지급을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넷플릭스가 ‘국내 망사업자와의 접속은 CP-ISP 간의 필요가 일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금전적으로 아무런 대가를 주고 있지 않더라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판결문에 나온대로 넷플릭스 역시 OCA 제공을 통해 대가를 대신할 수 있다면 결국은 상호무상접속이 되기 때문이다. 판결에서 말하는 구글이 제공한다는 “다른 서비스”라는 것도 사실 국내까지 데이터를 끌어온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컨퍼런스 운영자가 먼길을 날아와 준 참가자가 고마워 참가비를 받지 않는 상황과 비슷하게 보는 것이다.
결국, 법원은 (1) ‘망이용대가’는 ‘연결에 대한 대가’ 즉 접속료이며, (2) 그 접속료는 반드시 망사업자가 받아야 한다기보다는 서로간의 비금전적 가치교환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음도 인정한 것이므로 망중립성 원리에 부합한다.
양면시장이라도 신용카드와는 달라
단지 법원은 아래와 같이 인터넷의 특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보인다.
“신용카드회사가 신용카드 회원인 소비자로부터 연회비를 수취하고, 가맹점으로부터 결제 수수료를 지급받는 등 동일한 서비스에 관하여 양 당사자로부터 이용대가를 수령하는 형태의 다면적인 법률관계는 현대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원고들이 A서비스가입자에 대한 콘텐츠 제공과정에서 발생하는 콘텐츠의 전송은 명백히 원고들의 적극적 행위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피고가 인터넷 망을 제공하고 관리하는 것이 자신의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에 대한 계약상 의무에 해당한다고 하여 그 인터넷 망을 통한 콘텐츠의 전송을 두고 피고가 서비스 가입자에 대하여 행하는 의무의 이행에 불과할 뿐 원고들의 인터넷 망 이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고, 그와 같은 사정이 원고들과 피고 사이의 법률관계가 유상인지 여부에 관하여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여기서 법원은 ‘망 이용대가’를 언급하면서 ‘콘텐츠의 전송’을 ‘망 이용’과 등치시키면서 ‘망이용대가’가 ‘전송에 대한 대가’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는데 앞서 망이용대가를 ‘연결의 대가’로 규정한 다른 판시에 모순된다. 이 모순된 판시를 위해 동원된 신용카드회사 즉 VISA, Master에의 비유 역시 적절하지 않다. 망사업자들은 네이버, 카카오로부터도 접속료(전용회선료라고 부름)를 받고 다른 한편 국내 소비자들로부터도 접속료를 받고 있다. 여기까지는 VISA, MASTER와 같은 신용카드회사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의 서비스에 대해서 양쪽으로 돈을 받으려고 스스로 완결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드회사와 달리 인터넷서비스는 하나의 망사업자가 하나의 망을 양쪽에 모두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망사업자들이 힘을 합쳐야 비로소 하나의 완결된 제품이 나온다. 국내만 하더라도 하나의 망사업자가 모든 CP들을 호스팅하거나 초고속인터넷가입자 전부를 호스팅하고 있지 못하고 해외의 CP나 이용자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전 세계의 모든 인터넷 고객들은 ‘한국 인터넷’, ‘미국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 세계적 인터넷에 접속하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VISA카드를 발급받을 때는 VISA가맹점에서 이용하려는 것이지 Master카드 가맹점에서까지 이용할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점과 다르다. 이 때문에 망사업자는 국내외 다른 망사업자들과 힘을 합쳐야만 국내 고객들에게 매력있는 전 세계적인 연결성(full connectivity)이 있는 인터넷을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의 모든 망사업자들은 전 세계 모든 망사업자들과 상호접속을 통해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터넷은 상호접속시에 서로간의 전송에 대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엄청난 거래비용을 발생시켜 망이용을 위축시키기 때문에 전송의 대가는 없고 연결의 대가만 서로 받기로 하였다는 점이다(참고: 오픈넷 망중립성 동영상 3편). 이에 따라 국내 CP와 국내 이용자들은 국내 망사업자들에게 접속료를 내고 인터넷접속을 하고 미국 CP와 미국 이용자들은 미국 망사업자들에게 접속료를 내고 인터넷접속을 하면 미국 망사업자, 한국 망사업자, 그리고 전 세계 다른 모든 망사업자들이 트래픽을 서로 교환해서 비로소 인터넷이라는 상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해외 소재 콘텐츠제공자에게 국내 망사업자가 접속료를 달라고 하는 것은 Visa가 Master 가맹점에 카드수수료를 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양면시장의 구조에 반하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의 주장은 미국 CP의 트래픽이 한국에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망이용대가를 달라는 것인데 그런 ‘전송의 대가’가 인정된다면 네이버, 카카오가 미국 내에서 인기가 있으면 AT&T나 버라이존으로부터 망이용대가 청구서를 받아야 할 것이다(아래 웹툰에서 발췌).
정리하자면, 인터넷 이용자나 CP는 각자 자신이 소재한 지역의 망사업자에게 인터넷접속료를 내는 것이 양면시장에 충실한 것이다. 미국의 CP들은 미국의 망사업자들에게 연결에 대한 대가를 냄으로써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이지 자신의 데이터가 한국에 왔다고 해서 다시 한국에 전송의 대가를 낸다는 것은 도리어 인터넷 양면시장의 조직이론에 반하는 것이다. 물론 넷플릭스와 몇몇 대형 CP들은 미국 망사업자에게도 접속료를 내는 대신 트래픽 일부에 대해서는 비용으로 Open Connect Appliance 서버를 전 세계에 뿌려두고 자체 CDN을 구현하고 있고 구글 역시 해저케이블을 스스로 설치하여 데이터를 세계 각지에 분배하는 등 자기 지역의 망사업자가 할 일을 대신 하고 있다. 마침 법원은 이미 이런 ‘다른 서비스’들도 ‘연결의 대가’로 인정하였다.
사적자치 인정했다면 기존 합의에 대한 평가 했어야
법원 판결의 가장 큰 문제는 법원 스스로 인정한 대로 양당사자가 2018년경 ‘합의’에 의해 일본 등에서 무정산직접접속을 시작을 했고 이 ‘합의’ 역시 사적자치원칙에 따라 양당사자들의 협상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데, SK브로드밴드가 갑자기 기존 합의로부터 일탈하여 새롭게 망이용대가를 요구한 행위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시대로라면 2018년경 합의 역시 ‘연결에 대한 대가’에 대해 유효한 합의였고 그렇다면 별도의 채무가 있을 수 있다고 하려면 채무의 법적 근거에 대해 밝혔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원이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지 않는 모습은 다음과 같은 판시에서도 드러난다.
“원고들은 피고와 직접 연결되어 피고의 이용자에게 한정하여 콘텐츠를 전송할 뿐 피고로부터 전세계적인 연결성을 제공받고 있지는 않으므로 위와 같은 연결은 유상성이 인정되는 인터넷 접속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런데 피고는 전세계 여러 ISP와의 상호접속을 통해 원고들에게 전세계적인 연결성을 제공할 수 있고, 원고들도 원하는 경우 얼마든지 원고들의 데이터를 전세계에 송수신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으로 피고를 통해 전세계 각 종단으로 트래픽을 송신하지 않고 있을 뿐이므로, 피고가 원고들에게 원고들이 주장하는 전세계적인 연결성이 보장된 인터넷 접속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우선 전 세계적인 연결성이 있어야만 유상성이 인정되는 인터넷접속이라는 원고의 주장도 문제가 있다. Paid peering과 같이 접속상대방 사이의 연결성만으로도 유상접속이 이루어지는 경우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은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통해 전 세계 연결을 하지 않기로 합의를 했다는 점이다. 물건을 살 가능성을 제공한 것이지 물건을 사지도 않았는데 그 값을 받을 수 없는 것이고 물건을 사도록 강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는 위에서 사적자치에 따라 망이용대가를 정하라고 한 판시에도 어긋난다.
인터넷은 약자를 위한 플랫폼이다. 친약자성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망중립성이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망중립성에 어긋난 판결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망중립성에 대한 명쾌한 이해의 부족으로 효율적인 분쟁해결을 하지 못하였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돈을 낸다고 해서 전송 또는 우선전송을 해주는 행위를 명쾌히 금지하는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2021년 6월 29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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