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5월 13일, 일명 ‘역사왜곡방지법안’(김용민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2110105, 이하 ‘본 법안’)이 발의되었다. 본 법안은 3.1운동, 4.19민주화운동, 일본제국주의의 우리나라에 대한 폭력적·자의적 지배 또는 그 지배 하에서 범해진 폭력, 학살, 인권유린 및 이에 저항한 독립운동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행위, 외국인 또는 외국의 국가·단체가 역사왜곡 또는 일제찬양을 하는 것에 동조하거나 경제적 지원을 하는 행위, 공연히 일본제국주의를 찬양·고무·선전할 목적으로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군사기 또는 조형물을 사용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위반시 처벌하는 내용,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 여부 등을 전문적으로 심리하기 위하여 ‘진실한역사를위한심리위원회’를 설치하여 역사왜곡행위, 일제찬양행위에 대한 시정명령 등 시정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악의적 역사왜곡으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자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본 법안은 헌법에 위반하여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법안으로 조속히 철회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근본적 이유는 국가의 사상 통제를 벗어나 민주주의의 전제인 사상의 다원성·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대저 전체주의 사회와 달리 국가의 무류성(無謬性)을 믿지 않으며, 다원성과 가치상대주의를 이념적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 표현의 허용 여부를 국가가 재단하게 되면 언론과 사상의 자유시장이 왜곡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민주주의에서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를 국가가 1차적으로 재단하여서는 아니되고 시민사회의 자기교정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2002. 6. 27. 결정, 99헌마480 참조). 국가가 역사에 대해 일정한 방향의 ‘국론’이나 ‘진실’을 결정하고 이에 반하는 사상을 표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방식의 규제는 민주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또한 ‘진실한역사를위한심리위원회’라는 법정기구를 설치하고, 역사왜곡행위, 일제찬양행위에 대해 시정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부분 역시 표현물에 대한 국가의 강제적 검열권을 부여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 ‘동조’, ‘찬양, 고무, 선전’ 등의 구성요건 개념은 추상적·주관적이고 불명확하여 판단자의 자의에 따라 남용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표현의 허용 여부 및 형사범죄의 성부를 결정하는 것은 헌법상의 명확성 원칙,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위배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표현행위로 인하여 초래되는 해악은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막연한 해악 발생의 가능성만으로 이유로 함부로 규제해서는 안 된다. 즉, 표현이 특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거나 사회윤리 등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는 규제할 수 없고(헌재 2009. 5. 28. 2006헌바109 참조), 표현으로 인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발생할 때에만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 제한의 대원칙이다. 특히,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은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써 형벌과 책임 간의 비례원칙도 고려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역시 반국가단체에 대한 찬양, 고무를 처벌하는 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해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을 경우에만 축소적용”되는 선에서 헌법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는데, 그럼에도 이 역시 여전히 위헌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본 법안은 표현행위로 발생하는 ‘결과’나 ‘해악’을 구성요건으로 규정하지도 않고, 표현행위 자체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역사적 행위에 ‘동조’,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군사기 또는 조형물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즉, 특정한 내용의 표현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금지 및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안 제안이유에서는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는 행위로 국민적 공분이 점차 커져가고 있음을 배경으로 설명하며, 헌법적 가치와 국가의 존엄을 유지하고 국민의 역사인식 고양에 기여함을 규제의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민적 공분’과 같이 추상적이고 불분명한 해악은 표현물을 규제할 만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해악으로 볼 수 없으며, 국가 존엄 유지와 역사 인식 고양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 기인하는 것으로써 정당한 규제 목적이 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역사왜곡 행위가 불러올 수 있는 해악은 ‘역사적 사건의 관련자와 유족의 인격권 침해 등의 피해’ 및 ‘장래에 유사 사건의 재발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 관련자들의 현저한 인격권 침해에 대해서는 현행 명예훼손·모욕 법제로도 충분히 규제가 가능하다. 또한 사회통념상 건전한 상식을 가진 대다수의 국민들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하여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제국주의의 피해 당사국에서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는 행위는 오히려 공격과 비판의 대상이 될 뿐 다수 국민들의 사상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관련자 등이 사회에서 차별, 배제된다거나 유사 사건이 재발될 위험 등의 해악을 발생시킨다고 볼 수 없다.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죄 역시 국가 안보를 명목으로 소수의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남용되어 왔다. 반일 정서 등 국민 다수의 사상, 여론을 이용하여 구체적인 해악이 없는 표현을 규제, 처벌하는 내용의 포퓰리즘적 법안의 추진은 소수자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탄압하고, 다양한 사상적 표출만을 억제하여 올바른 역사 인식이 자유로운 토론의 장에서 성숙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갈 뿐이다. 김용민 의원 등은 위헌적인 역사왜곡방지법안 발의를 조속히 철회하고, 국회가 더 이상 이러한 포퓰리즘적 표현물 규제 입법을 추진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2021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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