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21년 5,6월호-우리들이야기(4)]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의 매력, 연극
효겸
어느새 여덟 번째 이야기에 접어드는 ‘같이 연뮤볼래요’ 입니다. 이번에는 앞선 일곱 번의 이야기에서 다루지 못했던 연극을 다뤄볼까 합니다. 필자가 작년에 여러 번 관극할 정도로 애정했던 연극으로 제인 오스틴의 대표적인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 입니다.
연극 은 원작 소설 출판 200주년을 기념하여 영국에서 초연되었던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2019년에 초연, 2020년에 재연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제작 당시 무대 위 배우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극으로 만들고자 무대를 꽉 채우기보다 비워 내는 디자인을 구성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극장에 들어서면 단출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니멀한 무대가 먼저 눈에 띕니다. 천장의 샹들리에 하나, 조각난 듯한 액자와 의자 몇 세트, 약간 허전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극이 시작하자마자 필자의 기우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극이 시작하면서 무대에는 배우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요. 놀랍게도 연극 은 2인극입니다. 원작 소설이나 동명의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하실 정도로 많은 등장인물들이 기억나실 텐데요. 연극 에서는 두 명의 배우가 총 21개의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필자의 글로는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라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요. 배우들이 활용하는 오브제(소품)와 대사의 톤, 말투, 표정으로도 캐릭터 간 구분이 정확하게 가능합니다. 여자 배우인 A1은 주인공인 베넷가 둘째 딸인 엘리자베스(리지) 베넷과 그녀의 어머니인 미세즈 베넷, 막내동생인 리디아뿐 아니라 빙리남매, 엘리자베스의 친구인 샬롯 루카스, 캐서린 남작 부인 등을 연기합니다. 남자 배우인 A2는 마찬가지로 주인공인 미스터 다아시, 미스터 콜린스, 위컴, 자매들의 아버지인 미스터 베넷, 베넷가 첫째 딸인 제인 베넷과 넷째 딸인 키티, 하녀 등을 연기합니다. 미스터 베넷은 파이프를 입에 물거나 손에 들고 있고 미세즈 베넷은 말할 때마다 손수건을 꼭 말아쥐고 있으며 미스터 콜린스는 성직자임을 나타내는 모자를 쓰고 있는 등 모든 캐릭터는 매칭되는 각각의 오브제가 있습니다. 아울러 배우들의 긴 코트를 여몄을 때는 여성 캐릭터, 코트 자락을 젖히고 바지를 드러내면 남성 캐릭터 등 성별 구분 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생동감 있게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사라집니다. 다아시의 약혼녀인 앤, 그리고 베넷가 셋째 딸인 메리는 각각의 오브제로만 표현이 되는데요. 몸이 약하지만 아름다운 앤은 하얀 쿠션을 통해, 분위기에 상관없이 열심히 음악을 연주하는 메리는 악보 스탠드를 통해 표현됩니다. 두 배우가 연기하는 미스터 베넷과 미시즈 베넷이 악보 스탠드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있는데 전혀 이상하지 않단 말이죠,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매력적인 극입니다.
필자는 뮤지컬과 다른 연극의 묘미는 말맛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배경음악 이외 넘버가 없는 연극의 경우는 뮤지컬보다 배우의 표정이나 대사, 몸짓에 더욱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연극 은 이런 말맛이 극대화된 작품입니다. 대본이 8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분량이 방대하고, 배우들은 등장인물 간 대사뿐만 아니라 소설 안 문장을 내레이션 하는데요. 그렇다 보니 관객들은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유려하게 흐르는 대사와 캐릭터의 내밀한 심정까지 어우러진 말맛에 흠뻑 빠져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릴 정도로 극에 몰입하게 됩니다.
연극 은 베넷가 둘째 딸이자 솔직하고 당찬 리지와 무뚝뚝하지만 신중하고 올곧은 다아시가 여러 우여곡절을 딛고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에 쓰여진 고전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지만 심장을 콕 찌르는 배우들의 표정과 두 배우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에 몰입하다 보면 캐릭터의 감정들이 너무나도 현재의 제 일과 같이 와닿습니다. 1막 마지막에 리지와 다아시가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서로에게 분노 찬 말들을 쏟아내고 다아시가 먼저 무대를 떠나면 리지가 화를 가누지 못하면서도 눈물이 가득찬 눈으로 그 자리를 쳐다보는데요. 인터미션으로 조명이 밝아와도 그 여운이 남아있을 정도로 감정이 짙습니다. 2막 마지막에는 리지와 다아시가 서로를 향한 사랑과 소망을 진지하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행복감을 생생하게 표정으로 드러내는데요. 그 순간 필자는 사랑만큼은 결국 시대를 초월해서 공감되는 하나의 장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영국 오리지널 무대와 다르게 한국에서는 조명과 음악을 활용해서 보다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을 구현하고 배우의 연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하는데요. 이와 더불어 찰떡같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분명히 같은 배우를 보고 있는데 전혀 다른 사람과 같이 느껴질 정도로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심지어 얼굴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번 글을 쓰다 보니 또 연극 이 그리워질 정도인데요. 언제든 극장에 이 연극이 보인다면 꼭 가셔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연뮤 볼래요]에서는 같이 이야기하고픈 연극과 뮤지컬을 소개해드립니다.
필자인 효겸님은 11년차 직장인이자, 연극과 뮤지컬를 사랑하는 12년차 연뮤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