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21년 5,6월호-우리들이야기(2)]

777 없는 슬롯머신, 공정한 건가요?

-확률형 아이템을 샀는데 확률이 0이라고?-

 

이하람 수습간사

 
1. 들어가며

2021년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가상’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지난 1년간 현실세계 대부분은 불편함으로 가득 채워졌으며,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필요한 만큼 격리시키고 있다. 야외 활동에 제약을 받으며, 필요 이상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떠오른 건 ‘가상세계’에서의 활동이다.

세계적으로 가상화폐는 유례없는 호황을 등에 업고 글로벌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으며 초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메타버스’라는 그간 흔치 않았던 용어까지 주목받으며 ‘가상세계’가 더 이상 ‘현실세계’ 내에 존재하는 부속적 의미가 아니라, 이분하여 양립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로서 주목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게임이 오늘날 질병의 위협을 피하는 데에 있어 어쩌면 가장 바람직할지도 모르는 취미생활이 되었고, 그것을 증명하듯 수많은 게임회사의 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이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해당 부분에 대한 관심이 과거보다 더 커지게 되고, 어쩌면 지난 날엔 별문제 아니었을 일들 또한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2. 디지털-코딩으로 이루어진 가상세계

‘그래픽 쪼가리에 쫄지마!’ 유명 게임 유튜버가 게임플레이를 하며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결국 게임은 그래픽들의 합이며 프로그래머가 디지털 언어로 코딩한 가상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상세계는 언제든지, 제작자·프로그래머의 의지대로 조작될 수 있다.

일례로 2018년 4월 정부는 게임 아이템 뽑기 확률을 조작한 3개 게임사(넥슨, 넷마블, 넥스트플로어)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면서, 확률 및 기간과 관련된 정보를 허위로 표시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최근 이른바 ‘강환불 사태’라 불리는 사례 또한 얼마든지 가상세계에서의 확률은 조작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 2월, 넥슨은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업데이트 내역을 통해 게임 내에서 사용되었던 ‘무작위’라는 단어를 정정하였음을 알렸다. 지금까지 ‘무작위’라고 적었던 확률들이 사실은 ‘작위’였음을 인정한 셈이다. 그리고 이후 밝혀진 확률 정보에 따르면 ‘무작위’라고 표현되었던 확률은 이용자들이 더 선호하는 옵션이 낮은 확률로 등장하도록 ‘작위’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무료 재화가 아닌, 유료로 판매되었던 확률형 아이템 또한 실제로 확률이 조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더 분노했다. 아이템의 옵션을 무작위로 변경시키는 유료 확률형 아이템 ‘큐브’는 이용자가 돈을 지불하면 확률에 따라 옵션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용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옵션들(이른바 ‘보보보’, ‘방방방’. ‘드드드’)은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획득이 불가능하게 설정되어 있었다. 언론에서, 그리고 이용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777 없는 슬롯머신’이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확률 조작 사태는 과거엔 별문제 아닌 일로 치부되어 해당 게임사들이 아주 적은 과징금을 납부하는 것에서 일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번 ‘강환불 사태’는 연일 메인뉴스로 보도되며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용자들은 확률 조작 사태에 대응해 더 이상 돈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결제 한도를 0원으로 설정하는 ‘한도 0원 챌린지’를 하며 넥슨을 압박했다. ‘메이플 난민’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이용자들이 다른 게임으로 이탈하는 현상도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은 넥슨, 국회에 자율규제를 개선하고 공정거래를 위한 법안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트럭시위를 진행하는 등의 집단행동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게임 콘텐츠를 지탄의 대상으로 봐왔던 정치인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발의하였다. 또한,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을 대상으로 확률형 아이템 확률 조작에 관한 조사를 요구하였으며 지난 4월 20일 공정위는 넥슨코리아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새로운 반향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3. 자율규제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새로운 파동에 따라 개정안 발의, 자율규제 개선 등 문제가 해결되어 가는 과정인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첫째, 지금까지 이용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배상문제이다. 옵션을 얻을 수 없다는 정보를 알지 못한 채, 사용한 유료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배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용자들이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등장하지 않는 옵션을 위해 아이템을 사용하였다고 입증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입증책임의 문제가 이용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약자인 이용자는 이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

둘째, 자율규제에 대한 개선 및 법률안 개정이 반드시 조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 공정위는 넥슨과 넷마블이 아이템 확률을 조작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태료 및 과징금을 부과하였다. 그리고 약 2년 만에 같은 문제가 재발한 것이다. 이는 목적이 이윤의 확대인 기업이 자율규제라는 틀 안에서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개선하는 것은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자율규제로는 안된다. 발의된 법안들이 통과되어 실효성 있게 작용되어야 하지만 게임산업의 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여전히 보류되어 있다. 게임산업은 확률형 아이템 없이도 매출을 낼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의 개발이 이루어질 때 발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정한’ 거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게임사가 확률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많은 게임사가 문제가 되었던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했으나 여전히 이용자들은 기업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사용한 아이템이 실제로 제공된 확률대로 작용하고 있는지 이용자들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든 확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될 때, 그때야말로 떠나간 이용자들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4. 마치며

‘강환불 사태’가 불러온 커다란 파동은 한국게임산업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 이용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으며, 공정위는 게임사 조사에 착수했고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게임사들은 새로운 자율규제안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지난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넥슨과 넷마블은 자산총액 10조 원을 넘어서며 ‘대기업 집단’이 되었다. 게임산업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책적, 법적 제도적 기반이 가진 문제가 선결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용자들을 속여 판매하는 행위를 중단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