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21년 5,6월호]

“ 악행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순간, 선행은 시작된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이정국 감독1)

 

문규경 회원미디어국 간사

 

민주화의 열망에 몸을 맡긴 채,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5월 18일이 돌아왔습니다. 올해로 41주년을 맞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가 있습니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를 통해 스크린에서 광주를 기억하고 있는 이정국 감독을 경실련이 만났습니다.

Q. 월간경실련 구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월간경실련 구독자 여러분, 이정국 감독입니다. 이번에 경실련과 인터뷰하게 돼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이번에 5·18을 소재로 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를 만드셨습니다. 간략하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는 5·18 트라우마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현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중년의 대리운전 기사(안성기)가 5·18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5·18 가해 책임자들을 향해서 복수를 시도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5·18 영화를 보면,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왔습니다. 우리 영화는 피해자 입장도 있지만, 명령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심도있게 캐릭터에 담았습니다.

Q. 데뷔작이신 ‘부활의 노래’도 5·18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요. 30년 전에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제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하지만, 5·18 당시에는 군 복무 중이어서 광주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후에도 저는 오직 영화 공부만 하고 영화를 만든다고, 시위에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대신 나는 영화인이니까 영화로 말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첫 데뷔작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5·18을 다루게 된 것입니다. 영화 제작할 당시가 노태우 정권이었습니다. 당연히 영화를 못 만들게 했었습니다. 처음에 영화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5분 정도를 잘라서 개봉을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개봉하기 전에 연세대에서 시사회를 했었는데, 그것을 빌미로 영화법 위반이라는 혐의로 법정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30대 중반의 나이에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두 번째 심의에서는 영화를 결국 받아줬는데, 핵심 장면들은 4~5분 정도 잘린 채로 개봉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Q.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다시 5·18을 다룬 영화를 만드신 계기가 있을까요?

A. 앞서 말했듯이 제가 ‘부활의 노래’라는 데뷔작을 만들고 나서 5·18을 경험하신 분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로 인해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20년간은 5·18 이야기도 안했고, 5·18 관련한 다큐멘터리가 나와도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트라우마를 갖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한 10여 년 전부터 광주에서 시민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면서 단편으로 5·18에 대해 다루게 되었고, 다큐멘터리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게 기반이 되어서 이번 장편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 제가 5월의 10일간 항쟁을 다룬 대작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20권 분량의 증언록을 봤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광주사람들은 5·18 때 그렇게 억울하게 당했는데, 왜 아무도 복수를 안 하지, 가해자들은 단죄받지도 않고 잘 살고 있는데’라는 것이었습니다. 증언록은 읽는 동안 너무 화가 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로라도 이 사람들을 대신해서 복수해주자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Q. 40년이 지난 일이지만, 최근에서야 몇몇 사람들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지난 3월에 5.18 당시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 한 명이 유족에게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그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부분적으로 우리 영화와도 비슷한 점이 있고요. 어떻게 보면 너무 늦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분들도 가족이 있기 때문에 자기 얼굴을 내밀고 사과를 하기는 힘들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의 친일부터 그 이후의 수많은 역사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가해자들이 반성을 하거나 제대로 단죄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5·18 가해자들도 피해자들보다 건강하게 오래 잘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영화를 통해서 명령에 의한 가해자가 된 사람들을 포함한 가해자들이 양심고백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Q. 이번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특별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A. 5세기 종교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게 생각납니다. “악행에 대한 고백은 선행의 시작이다.” 악행을 고백하고 그걸 반성하는 순간, 선행은 시작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5·18을 포함해서 우리 역사에서 악행을 양심고백하고 무릎 꿇고 사죄하는 것을 제대로 못 본 것이 참 아쉽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가해자들이 좀 깨달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계획이 있으신가요?

A. 원래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려고 출발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5·18을 소재로 영화를 시작했지만, 그 이후에 했던 <편지>, <산책>, <두여자 이야기>는 멜로에 기반한 서정적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고 작가주의 감독으로서 일관되게 한 가지만 하기보다는, 현실에 발을 딛고 사회·정치적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삶의 정서가 담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해보고 싶습니다.

1) 이정국 감독은 1990년 영화 ‘부활의 노래’로 데뷔, 1994년 영화 ‘두 여자 이야기’로 대종상 신인감독상과 최우수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했습니다. 이후 <편지>, <산책>, <블루> 등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