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021. 2. 25. 재판관 5:4의 의견으로,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2017헌마1113, 2018헌바330(병합) 형법 제307조 제1항 위헌확인 등).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위헌소원 및 폐지에 앞장서 온 오픈넷은 진실을 말한 경우에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미투 운동 등 각종 사회 부조리 고발 활동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한 헌재의 이번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
결정요지에서 헌재의 다수의견은 ‘사회적으로 명예가 중시되나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는 더 커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입법례와 달리 우리나라의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이나 위하효과를 확보하기 어려워, 입법목적을 동일하게 달성하면서도 덜 침익적인 수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공익적 목적이 있을 때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제310조가 공적인물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고 있어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 ‘본 조항이 위헌으로 결정되면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는 점’, ‘타인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손해배상청구 또는 형사고소와 같은 민·형사상 절차에 따르지 아니한 채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것은 가해자의 책임에 부합하지 않는 사적 제재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점’, ‘개인의 약점과 허물을 공연히 적시하는 것은 민주적 의사형성에 기여한다는 표현의 자유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본 조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시했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기 때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부분은 헌재가 징벌적 손해배상이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한 경우뿐만 아니라 ‘진실’을 말한 경우에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민사 손해배상의 대원칙을 넘어선 ‘징벌적’인 배상이 필요한 대상으로 전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명예 보호에만 치우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개인이 당한 피해사실을 고발하는 것은 사법 절차에 따라야만 하고 사적 제재를 해서는 안 된다’거나, ‘개인의 약점과 허물을 공연히 적시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의 보장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설시 역시 ‘표현의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몰각하고 있다. 사람이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법적’ 처단을 받는 것과 ‘사회적’ 평가를 받는 것은 별개의 책임 영역이다. 또한 성희롱 등 법적 처단의 대상이 아니지만 비판받아 마땅한 부조리한 행위도 사회에 무수히 존재하고, 복잡한 사법 시스템을 활용할 여력이 없는 서민 피해자들도 많다. 타인의 잘못된 행위를 알리는 표현 활동은 행위자가 이로 인한 사회적 비난이 두려워 자신의 행위를 시정하도록 하여 피해를 구제하거나 제3의 피해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행위 역시 사회적 감시와 공개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어 사회구성원들이 공론장에서 좋은 사회적 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각자의 행동을 반성하고 교정하도록 만든다. 공적 인물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뿐만이 아니라, 미투 운동이나 학교폭력 피해사실 고발과 같이 사인(私人)의 비위를 고발하는 행위도 중요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 사회는 이렇듯 사회구성원들이 각자에 대한 평가를 교환하는 공론의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이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목적이다.
한편, 다수의견은 ‘오로지 공익을 위하여’라는 위법성 조각사유가 위축효과를 막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전부 위헌으로 결정할 경우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를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본 조항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시했다. 그러나 이는 현재 사생활의 비밀과 전혀 관련없는 사실을 고발한 경우에도 본 조항으로 처벌되어 과도하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 설시다.
이번 헌재 결정의 4인의 반대의견에서는 본 조항의 위헌성이 명확히 지적되었다.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 4인은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법질서에 의해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행위로 보기 어렵고, 진실한 사실의 적시로 손상되는 것은 잘못되거나 과장된 사실에 기초한 허명에 불과하여 형사처벌이 정당화될 정도의 반(反)가치성이 없는 점’, ‘향후 재판절차에서 형법 제310조로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어 무죄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본 조항의 존재 및 공익성 입증의 불확실성으로 표현행위에 대한 위축효과를 막을 수 없는 점’, ‘진실한 사실을 토대로 토론과 숙의를 통해 공동체가 자유롭게 의사와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진실한 사실이 가려진 채 형성된 허위·과장된 명예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야기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법익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본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에서 공통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해당 조항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진실한 사실이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을 공개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필요성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국회가 헌재의 유력한 위헌 의견과 국제사회의 권고를 반영하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고 공익적 목적없이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을 공개한 경우에만 처벌하는 보완 입법을 통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폐해를 시정해나가길 바란다.
2021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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