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반도 일대에 국토부가 설치하려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는 문산읍에서 장단면 도라산역까지 11.8㎞ 구간입니다. 국토부가 왕복 4차로의 고속도로를 설치하려 하는 이 구간은 통일이 되거나, 남북 간 교류, 협력이 활성화되기 전까진 교통량이 전무할 수밖에 없는 지역입니다. 남북 관계가 극도로 경색돼 있는 현재로선 검토할 필요조차 없는 노선인 것이지요. 하지만 파주지역 환경단체들에 따르면 국토부는 “현 정부 임기 내에 착공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이 도로의 건설을 막무가내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토부와 한국도로공사가 “현 정부 임기 내 반드시 착공이 필요하다”면서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에 대한 환경부의 조건부 동의 조치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의견서를 환경부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앞서 지난 5월 환경부는 한국도로공사가 제출한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서’에 대해 환경 훼손 우려가 적은 노선을 택하는 등 내용으로 조건부 동의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파주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환경부가 비무장지대(DMZ) 인근 생태계 파괴를 용인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당시 임진강~DMZ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와 파주·북파주 어촌계는 성명을 내고 “정부는 DMZ 일원의 생태를 망가뜨리고 농어민 생존의 터전을 빼앗는 고속도로 추진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게다가 이 고속도로 건설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면제 받은 채 추진되는 ‘묻지마’ 개발사업 중 하나입니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막대한 예산을 낭비한다는 점에서 육지의 4대강사업 중 하나라는 비판을 받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기획재정부는 2018년 국토교통부가 남북철도경협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신청을 받아들인 바 있습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우려를 낳고 있는 조건부 동의 처리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지난 7월 환경부에 보냈습니다.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처리를 개발주체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일각에서는 같은 정부 부처인 국토부가 환경부를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략환경영향평가의 조건부 동의, 부동의 처리 등에 대해 개발주체가 수용하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긴 하다”거 합니다. 하지만 환경부로서는 자존심을 구기는 일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장단반도 일대가 포함된 서부 민통선 지역은 소똥구리뿐 아니라 멸종위기 조류 12종이 상시적으로 관찰되고,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의 주요 서식지역과도 중첩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지역에 많이 남아있는 둠벙들은 국내의 주요 보호지역 못지 않는 생물다양성을 간직하고 있는 습지로서 보호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DMZ생태연구소는 지난달 학술지 ‘환경과 생태’에 서부 민통선 북쪽 지역의 둠벙 가운데 경기 파주에 있는 둠벙 143곳을 선정해 생물상을 조사한 결과 총 59과 192종의 저서무척추동물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2018년 8월 15일부터 9월 22일까지 둠벙의 생물상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저서무척추동물이란 곤충, 조개류 등 가운데 물속 바닥이나 수초 주변에 사는 척추가 없는 동물을 말합니다. 둠벙은 전통적인 농법에서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지하수를 가두어 만든 인공습지를 말합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서부 민통선 둠벙들에서는 연천 물거미서식지(26과 60종), 강화 매화마름군락지(29과 48종), 대암산 용늪(36과 61종), 울주 무제치늪(23과 64종), 창녕 우포늪(59과 135종) 등 정부·지자체가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습지들보다 더 많은 생물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역시 보호대상인 제주 동백동산습지(22과 60종), 제주 물영아리습지(26과 58종) 역시 서부 민통선 둠벙들보다 적은 수의 저서무척추동물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다. 조사 면적, 시기 및 반복 횟수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일대 둠벙이 국내 주요 보호습지에 준하거나 더 높은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 종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도로공사의 제안을 일축하고, 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파주환경운동연합과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파주지회는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에 대한 ‘공동조사’에 참여할 수 없음을 밝힌다”며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노선은 전 구간 지뢰지역으로 조사를 할 수 없는 곳인데 공동조사를 한다는 것은 기만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들 단체는 “(생태적으로) 소중한 곳에 대해 고속도로 건설을 강행하기 위한 공동조사에 참여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한다”며 “지역주민과 전국의 환경단체, DMZ와 민간인통제구역을 소중히 여기는 국제사회와 협력해 이 지역 농어민의 생존과 생태환경을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의 지적처럼 한국 사회는 현재 ‘필요하지도 않은 고속도로’와 ‘다양한 멸종위기 생물의 보고’ 중 어느쪽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물어볼 필요도 없는 어리석은 질문 앞에 놓이게 된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 부끄러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선택되는 답변은 상식적인 쪽이길 기대해 봅니다. 고속도로 건설 백지화라는 선택이 내려져야만 한국 사회는 4대강사업을 비롯한 온갖 인위적 환경재앙으로부터 조금이나마 교훈을 얻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6년 경향신문 입사했고, 2013년 환경부를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동물면 담당을 맡고 있으며 환경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2020년 3월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에서 공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