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유수의 시위 현장에서 목격하게 되는 무기가 있다. 바로 ‘비살상 무기’다. 비살상 무기는 경찰이 사용하는 살상 무기 사용에 비해 사망의 위험이나 부상의 위험이 적은 진압 무기다.
경찰 등의 법 집행 공무원은 여러 폭력 속에서 시민들을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필요에 따라 비살상 무기를 사용해야 할 수 있다. 국제 법 집행 기준에 맞게만 사용한다면 비살상 무기는 시위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적법한 무기이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현장에서 이런 기준이 지키지지 않고 있다. 오늘 알아볼 ‘최루가스’는 이런 비살상 무기의 대표적인 예다. 최루가스는 많은 시위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엄격한 기준에 의거해 사용해야 하는 비살상 무기이지만, 많은 시위 현장에서 오용, 남용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몇 년간의 시위 현장을 분석했고 현장에서의 최루가스 오남용 사례를 확인했다. 이번 글을 통해 최루가스가 무엇인지, 그 남용의 실태가 어떠했는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최루가스가 무엇인가?
최루가스는 비살상 무기 중에 하나다. 흔히 폭동진압작용제라고 불리우며, 일시적으로 피부, 기도, 눈 같은 곳의 감각을 자극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무기다. 1928년 화학자 벤 코손Ben Corson과 로저 스토턴Roger Stoughton이 개발한 것으로, 두 사람의 이름에서 이니셜을 따 CS 가스라고도 불리운다.
최루가스는
본래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국제앰네스티의 보고서The Human rights impact of Less lethal Weapons and other law enforcement equipment>에서는 최루가스를 사용할 때 아래와 같은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루가스를 사용할 때는
- 폭력이 만연한 상태이고 다른 방법으로는 폭력을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사용해야 하며
- 사람들이 해산해 현장을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일 때만 사용해야 한다. 최루가스를 피해 탈출할 수 있는 공간이 없거나 밀폐된 공간일 때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 또한 최루가스를 사용한다는 것을 사전 고지하고 고지 후에 사람들이 해산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하며
- 사람을 조준해 직사로 발사해서는 안 된다.
현재 전 세계에서 최루가스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
하지만 전 세계의 최루가스 사용 실상을 조사한 결과, 많은 상황에서 최루가스가 남용되고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국제앰네스티의 위기 증거 연구소Crisis Evidence Lab는 여러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게재된 동영상을 통해 전세계의 최루가스 오남용 실태를 조사했다. 약 500건의 동영상을 확인한 결과 22개국에서 80 여건의 최루 가스 오남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분석을 위해 4개 대륙 6개 대학교에서 SNS 콘텐츠 확보 및 검증 훈련을 받은 학생 네트워크가 디지털 검증단으로 활동했다.
어떤 남용, 오용들이 있었나?
조사 결과 여러 형태의 남용과 오용이 확인되었다. 일부 경찰은 최루가스를 사용할 때
- 좁은 공간에 발사하거나
- 사람을 향해 직접 발사하거나
- 과도한 양을 사용하거나
- 평화적인 시위대를 향해 발사하거나
-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최루가스를 피해 도망치기 어렵거나 그 영향을 오래 견디지 못할 수도 있는 집단을 향해 발사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최루가스가 승용차 앞유리, 학교 통학버스 내부, 장례 행렬, 병원 내부, 주거 건물, 지하철, 쇼핑몰에 발사됐고, 최루탄을 사람에게 직접 발사하며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도 있었다. 발포 대상자는 기후변화 시위대, 고등학생, 의료진, 기자, 이주민, 인권 옹호자 등이었다.
사례 1 필라델피아
2020년 6월 1일, 미국 필라델피아시 경찰은 시위대 수십 명을 향해 여러 차례 최루가스를 발사했다. 시위대는 가파른 고속도로 경사면에 고립되어 있어 퇴로가 없는 상태였다.
사례 2 수단
수단의 수도 카르툼Khartoum 외곽 옴두르만Omdurman에 있던 의사들은 지난해 보안군과 군대가 병원 응급실을 습격해 유독가스를 살포하면서 환자 10명이 더 큰 부상을 입었다고 국제앰네스티에 증언했다. 그중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군인들이 병원 안에서 최루가스와 실탄을 쐈고, 응급실로 들어와 최루탄 네 개를 터뜨리고 갔습니다. 그중 한 개만 폭발한 것이 불행 중 다행입니다.”
최루탄이 던져진 곳은 심장마비 환자였던 70세 노인의 침상 밑이었다. 이 노인은 10분 뒤 사망했다.
사례 3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에서 촬영된 동영상에서는, 시위대가 임시로 만든 나무 방패에 최루탄이 박혀 커다란 구멍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방패는 카라카스Caracas에서 한 시위자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던 것이었다. 이 최루탄은 단 몇 센티미터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그렇지 않았다면 생명이 위험해질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사례 4 홍콩
2019년 8월 11일 홍콩에서는 진압 경찰이 콰이펑 지하철역 내에서 최루탄을 발사했다. 최루 가스는 사람들이 흩어지기 어려운 곳에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되었을 때 그 유해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
사례 5 팔레스타인
2018년 5월 18일 가자지구 국경에서 한 기자가 최루탄에 머리를 맞은 모습도 확인되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국경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대량의 최루탄을 발사했고 이를 위해 드론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해산할 때 무분별하게 최루탄을 사용하며 불필요하고 과도한 무력을 사용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샘 더버리Sam Dubberley 국제앰네스티 위기대응 프로그램 증거연구소장은 “보안군은 최루가스가 폭력적인 군중을 해산하는 ‘안전한’ 방법이며, 이 덕분에 더 위험한 무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앰네스티 분석 결과 경찰은 최루가스를 대규모로 오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이 평화적인 시위대를 향해 대량의 최루가스를 발포하거나, 사람을 향해 직접 발포해 부상을 입히거나 사망하게 하는 등 본래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최루가스를 사용한 사례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런 오남용을
해결할 해법은 없을까?
최루가스의 오남용이 만연한 수준임에도 최루가스나 다른 진압작용제 거래에 관해서는 합의된 국제적 규제가 없다. 최루가스 수출량과 수출 목적지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는 국가가 거의 없어, 독립적인 감시도 어려운 상황이다.
국제앰네스티와 오메가 연구재단은 최루가스 등 상대적으로 덜 치명적인 진압용 무기의 생산, 사용 및 거래에 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하며 지난 20여년간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유엔과 EU, 유럽의회 등의 지역기구는 진압용 무기의 수출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패트릭 빌켄Patrick Wilcken 무기통제 및 보안과 인권 조사관은 “최루가스의 문제 중 하나는, 일부 경찰들이 적법한 사용 방법과 사용 시기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이러한 지침을 아예 무시하고 있거나, 무기화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를 해결하려면 제대로 규제되지 않는 최루가스와 진압작용제 거래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루가스 역시 현재 유엔에서 논의되고 있는 진압용 무기에 관한 국제적 규제와 통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경 정보
사례 국가 및 지역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콩고민주공화국, 에콰도르, 프랑스, 기니, 홍콩, 온두라스, 아이티, 인도카슈미르, 이라크, 이란, 케냐, 레바논, 나이지리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점령지역, 수단, 터키, 미국 및 멕시코 국경지대,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최루가스 및 관련 발사기 제조 업체
카빔Cavim, 콘도르 비살상기술Condor Non-Lethal Technologies, DJI[1], 팔켄Falken, 페퍼볼PepperBall, 사파리랜드 그룹The Safariland Group, 팁만 스포츠 유한회사Tippmann Sports LLC
국제앰네스티는 상기한 7개 업체에 모두 연락을 취해 답변을 요청했으나 1개 업체에서만 답변이 돌아왔다.
가자 지구에서 최루가스 발포에 사용하는 상업용 드론 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