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20년 5,6월호 – 같이 연뮤 볼래요?]

400년을 기다린 사랑, 뮤지컬 <드라큘라>

 

효겸

 

영국의 웨스트앤드 뮤지컬(오페라의 유령), 오스트리아 비엔나 뮤지컬(레베카)에 이어 이번에는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공연인 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대표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입니다. 오늘은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작곡한 프랭크 와일드혼의 또다른 작품인 뮤지컬 <드라큘라>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미 영화나 TV시리즈로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인 드라큘라는 15세기 루마니아 왕자 블라드 체페슈(블라드 3세)를 모델로 합니다. (사실 ‘드라큘’은 블라드 체페슈의 아버지이었던 블라드 2세의 별명이었다고 합니다. 드라큘라는 드라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블라드 체페슈는 포로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것으로 유명했고 이는 동유럽 전설로 전해지며 1897년 공포 소설의 원류인 ‘드라큘라’의 모티프가 됩니다. 굉장히 공포스러운 인물이지만, 그의 영원한 삶이 영원한 사랑으로 치환되면서 현대에 와서는 로맨틱한 존재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도 뱀파이어 로맨스로 유명하지요. 남의 뜨거운 피를 탐하지만 정작 그는 섬뜩한 한기가 흐르는 역설적 존재로, 그의 비현실적 사랑이 관객들에게는 좀더 극적으로 다가올 텐데요. 뮤지컬 <드라큘라>의 주인공인 드라큘라도 전생의 연인이었던 엘리자베사를 400년간 기다리며, 현생으로 환생한 미나에게 절절하게 구애합니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트란실베니아에 있는 그의 고성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영국으로의 이주를 돕기 위해 런던의 젊은 변호사인 조나단 하커가 드라큘라의 성을 찾고, 드라큘라는 이 곳에서 조나단과 함께 온 약혼녀 미나를 통해 그의 옛 연인인 엘리자베사와 조우합니다. 전생의 드라큘라는 엘리자베사와 결혼하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암흑의 시대, 신을 위한 전쟁에서 싸우게 되고 엘리자베사는 드라큘라를 지키려다 적의 칼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드라큘라는 신을 원망하고 저주하며 악마에 영혼을 팔고 역성호를 그으며 뱀파이어로 변모하게 됩니다. 현생에서 미나로 환생한 엘리자베사를 되찾고 사랑하기 위해 드라큘라는 조나단의 피를 마셔 다시 젊음을 찾게 되고 위트비베이에 머무르고 있는 미나에게 찾아갑니다. 다짜고짜 영원한 삶을 선물하겠다는 드라큘라를 미나는 온몸으로 거부하지만, 끈질기게 미나를 찾아와 전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절절히 구애하는 드라큘라를 미나는 받아들이지도 거부하지도 못합니다. 한편, 정체 모를 어둠에 아내를 잃고 이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힘을 길러온 반헬싱 교수는 드라큘라를 없애기 위해 미나를 찾아오고, 쫓기고 쫓기는 추적 끝에 모든 사람들이 다시 트란실베니아에 있는 드라큘라의 성으로 모이게 됩니다.

드라큘라는 4중 턴테이블을 활용하여 무대를 구현했는데, 높은 기둥을 위치하여 신과 사회로부터 자신을 분리해 낸 고독한 드라큘라를 나타냅니다. 높은 무대 뒤에 스크린을 통해 구현해 낸 하늘은 피로 물든 붉은 달이 스러지는 모습까지도 담아내어 고딕 양식의 성과 더불어 신비한 느낌을 관객들에게 선사합니다. 뮤지컬에서 무대와 더불어 큰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조명인데, 드라큘라는 붉은 빛으로 반대로 미나는 푸른 빛을 나타내며 두 빛이 합쳐진 어두운 보라빛까지 끝없는 색의 향연을 무대에서 보여줍니다. 실제로 조명과 어우러진 높은 성과 그 속에서 안개와 바람을 조종하는 드라큘라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마법진 같기도 합니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이미 접해보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프랭크 와일드혼의 넘버는 실로 놀라울 정도로 서정적이며 서사가 가득합니다. 드라큘라와 미나가 함께 부르는 ‘Loving you keeps me alive’는 뮤지컬 <드라큘라>의 대표 넘버로, 드라큘라의 미나에 대한 400년간의 깊은 사랑이 ‘그대는 내 삶의 이유, 나를 살게 한 첫 사랑. 그대는 나만의 숨결, 아물지 않는 내 상처. 당신만이 나를 채워줄 나의 사랑’과 같이 한 글자 한 글자 가사에 담겨 있습니다. 이외에도 드라큘라가 젊음을 되찾고 내지르는 ‘Fresh blood’, 반헬싱 일행을 피해 성에 돌아와 미나를 그리며 쓸쓸히 부르는 ‘The longer I live’, 반헬싱과 드라큘라의 대결로 나타나는 ‘It’s over‘ 등 많은 넘버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이 이야기에 몰입하고 헤어나오지 못 하게 합니다. 드라큘라와 미나가 마지막으로 함께 부르는 ‘At last’를 통해 마침내 미나 역시 드라큘라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드라큘라는 결국 미나를 놓아주고 스스로 길고 지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필자는 뮤지컬 <드라큘라>를 보면서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지 잠시나마 생각해 보았습니다. 드라큘라는 미나를 다시 만난 순간부터 그녀에게 영원한 삶을 선물하겠다고 합니다. 이별 없는 사랑, 죽음 없는 사랑을 하겠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드라큘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어둠으로 인해 사랑하는 미나의 영혼 역시 빛을 잃고 암흑 속에 갇히는 것이 과연 그녀를 위하는 것인지 괴로워합니다. 미나를 다시 빛의 세계로 돌려보내고 그의 사랑을 놓아주는 것이 미나를 위해 더 큰 사랑이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고 눈물로 그녀에게 부탁합니다. 비록 400년이나 미나를 기다려 왔지만, 드라큘라가 미나를 다시 잃음으로써 어찌 보면 그의 진정한 사랑은 완성된 것이지요.

드라큘라가 사라지고 난 후 미나는 눈물로 신에게 읊조립니다. ‘신이시여, 그가 가엾지 않나요. 오직 사랑만을 원한 그를 용서해요.’ 신이 이에 화답하듯 안개만 가득했던 드라큘라의 성에 한줄기 빛과 함께 눈송이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마치 신의 구원이 눈으로 내린 것처럼요. 드라큘라의 영혼이 빛을 찾고 용서 받았기를 바랍니다.


추신.

최근 발발한 코로나19로 인해 다들 건강히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필자의 일상뿐만 아니라 공연계 역시도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었고, ‘stay-at-home’ 트렌드와 맞물려 온라인 상영회가 열리기 시작했는데요. 필자도 최근에 열렸던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공연을 유튜브로 관람했습니다. 로얄 알버트홀에서 진행되었던 특별 공연이었는데요.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월간 경실련 1-2월호에 게재되었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공연 관련해서도 기존 6월에 막을 내리기로 했던 서울 공연이 8월까지 연장되었습니다. 기회가 닿으신다면 관람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같이 연뮤 볼래요]에서는 같이 이야기하고픈 연극과 뮤지컬을 소개해드립니다.
필자인 효겸님은 10년차 직장인이자, 연극과 뮤지컬를 사랑하는 11년차 연뮤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