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기(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교수, 생태학)

 

섬의 지식, 섬 속의 지식

최근 섬은 기후위기에 의한 해양환경의 변화, 고령화·인구감소에 의한 사회변화, 접근성 증가에 의한 문화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섬들은 내재적·내외적 원인에 의한 섬 정체성의 변화를 겪고 있는데, 연륙·연도, 방조제, 공항 등에 의하여 고도화되는 접근성과 관광 정책으로 인하여 그 변화의 폭은 증폭되고 있다. 그럼에도 섬 중에는 내·외적 압력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섬의 고유한 특성, 변화의 속도, 빈도에 대한 민감성이 다른 섬들도 있다. 섬의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때는 섬의 고유성, 독자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섬은 물리적 특성 만이 아니라 섬의 정체성도 중요하다.

 

미래지식을 위한 전통지식의 가치
지식은 한 시대의 고유한 문화 유전자이며, 세대를 거쳐서 전승된다. 지식에는 인간이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제한된 자원을 이용하여 적응해 온 전통적인 인지체계가 포함되어 있고, 그러한 지식은 미래 생존을 위한 도구로 후세에 전달된다.
도서해양지역의 전형적 생업인 채취와 어로는 생태학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치를 갖는 전통지식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전승되는 단순 도구와 채취 및 어로 기법, 사회제도, 토착지식(indigenous knowledge) 등은 자연 과정에 대한 인간의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높은 효율의 생존자원을 얻고 생태학적 균형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생태계의 전체 체계(eg. 학계에서는 생태계 보다 확대된 의미로 경관“landscape”혹은 “seascape”라는 용어를 사용함) 속에 인간과 문화를 포함시켜 놓고 그 전체에 대한 생태계 접근(ecosystem approach)을 해야만 도서지역의 지식체계를 규명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요인들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현대와 미래의 생업환경문제에 대비하고 생태적 보전, 경제적 요구, 문화적 다양성을 조화롭게 충족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 곧 섬 지식의 전승과 보존의 방안이다.
전통지식은 미래지식으로 발전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어업과 양식 관련 과학 기술은 지역사회의 특수한 생태계를 살리고 환경친화적, 생태학적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도달해 있다. 문화적으로도 전통문화 요소를 살리거나 주민의 자치조직과 규범, 정부, 비정부 조직을 살려서 생태학적 어업과 양식을 정착시킬 수 있는 인적, 사회적, 문화적 여건들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자원 착취 쪽으로 행위와 의사를 이끌어가는 현대문화와 경제적 동인들 때문에 이들이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민과 어촌공동체의 해양생태계 보전에 대한 의식 고양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섬 정체성, 즉 섬성(islandness)을 알아야 하고, 평가할 때는 ‘섬의 지식, 섬 속의 지식’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이다.

 

바다와 뭍의 경계의 삶,‘갯벌인’
음식은 바다와 섬의 생물자원을 이용하고 주민들의 전통지식으로 만들어진 지식유산이다. 어류, 조개류, 해조류, 소금 등 바다 및 갯벌에서 얻는 식재료는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소들의 원천이다. 이들이 획득되고 유통되며 소비되는 경제체계를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따라 환경친화적, 생태학적 발전 가능성이 달려 있다.

[caption id="attachment_206322" align="aligncenter" width="640"] 망그로브숲은 해일과 해풍을 막고 갯벌생물을 보전하는 역할을 한다(베트남 하이퐁, 2012.12.20. 필자촬영)[/caption]

예로부터 다도해는 섬이 많고 지형과 바닷물의 유로가 다양하고, 갯벌 등 영양분을 내장한 지질학적 토대가 다양하여 매우 뛰어난 어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해역의 생태지리적 특성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의 세토내해, 베트남 메콩강 하류나 중국 주산군도 등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갯벌이 발달한 이 지역들은 먼 바다에서의 어업활동뿐 아니라 갯벌에서의 다고유어가 있듯이 ‘갯벌인’이라는 용어도 함께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caption id="attachment_206323" align="aligncenter" width="640"] 바다와 뭍의 경계, 갯벌 (무안군, 2014.8.24. 필자촬영)[/caption]

바다의 경계, 섬의 지형지리를 파악하는 것은 섬 생활에 매우 중요한 지식의 하나이다. 반도는 바다를 통한 물류의 통로이고, 섬은 바다를 통하여 반도로 들어가는 길목의 징검다리이다. 이처럼 섬과 반도는 물류와 사람의 소통과 교류의 중요한 회랑(corridor)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caption id="attachment_206324" align="aligncenter" width="640"] 1980년대 중국 주산군도 일원의 소금생산 활동 (중국 주산박물관, 2017.11.25. 필자촬영)[/caption]

[caption id="attachment_206325" align="aligncenter" width="640"] 자염(煮鹽)방식의 소금생산 도구 (중국 주산박물관, 2017.11.25. 필자촬영)[/caption]

어패류, 해조류와 함께 다도해의 주요한 특징을 이루는 것이 소금이다. 다도해 지역 특히 신안군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천일염으로서 바닷물과 갯벌 흙과 태양열이 산출해내는 산물로 자연 과정에 거의 의존하는 생산체계를 갖추고 있다. 소금을 일궈내는 것도 일종의 농사이다. 소금이 익을 무렵, 벼도 익어간다. 갯벌인은 펄에서 해산물도 채취하고, 소금도 키워내고, 쌀도 키워내는 그야말로 자연을 읽어내는 전통생태지식의 달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