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20년 3,4월호][같이 연뮤 볼래요?]
맨덜리 저택으로 초대합니다,
뮤지컬
효겸
‘레베카, 지금 어디 있든 멈출 수 없는 심장소리 들려와, 바람이 부르는 그 노래,
레베카 나의 레베카, 어서 돌아와 여기 맨덜리로 (댄버스 부인)’
‘항상 내 맘을 짓눌러 왔던 레베카의 그 영혼 (이히, 나)’
이번에 소개해드릴 공연은 뮤지컬 레베카 입니다. 앞서 보여드린 것은 이 뮤지컬의 등장인물들이 레베카에 대해 부르는 넘버들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뮤지컬 레베카에서 수없이 불리는 이 ‘레베카’는 뮤지컬 속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뮤지컬 레베카는 영국의 여성작가인 대프니 뒤 모리에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 영감을 얻어 2006년 오스트리아에서 탄생한 뮤지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초연 이후, 2019년 무려 5번째 시즌을 맞이한 명실상부한 스테디셀러 뮤지컬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친근한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런던의 웨스트엔드가 아닌 비엔나의 뮤지컬로 미하일 쿤체, 실베스터 르베이 듀오의 작품입니다. 이 듀오의 작품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작품들이 꽤 있는데요. 레베카 이외에도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뮤지컬 모차르트!, 그리고 뮤지컬 엘리자벳 등이 있습니다.
이디스 반 호퍼 부인의 말동무를 하고 있는 이히(독일어로 ‘나’라는 뜻)는 그녀를 따라 휴양지인 몬테카를로를 방문하는데요. 이히는 그곳에서 영국의 상류층 신사인 막심 드 윈터를 만나게 됩니다. 막심은 전 부인이었던 레베카의 죽음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순수하고 밝은 이히를 만나 사랑에 빠진 막심은 그녀를 데리고 고향인 영국 콘월 지방의 맨덜리 저택으로 돌아가는데요. 안개가 자욱한 맨덜리 저택에는 수많은 하인들과 더불어, 그 저택을 일사분란하게 진두지휘하는 댄버스 부인이라는 집사가 있습니다.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와 어릴 적부터 함께 했던 하녀로 레베카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서 레베카 대신 드 윈터 부인이 된 이히를 끊임없이 경계합니다. 이히는 집안 내 많은 사람들이 회상하는 아름다운 레베카에 주눅 들어 막심도 아직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보트 침몰 사고로 구조 작업을 벌이던 중 바다 속에서 또 다른 보트가 발견되고, 그 곳에서 레베카의 시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과연 이는 사고일지, 의도적인 살인일지 재수사가 시작되면서 모두들 생각지 못한 숨겨진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데요.
뮤지컬 레베카는 여타 라이센스 뮤지컬과 다르게 음악과 대본은 그대로 유지한 채로 자율적인 무대 구성이 가능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무대는 원작자에게도 한국 무대가 세계 최고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잘 구성 되어 있습니다. 무대 정중앙 뿐 아니라, 사이드도 자주 활용해서 대저택의 이야기를 엿듣는 장면이라거나 프랭크의 사무실, 레베카의 보트 보관소 등을 볼 수 있어 사이드에 앉아서도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극 중 맨덜리 저택은 흡사 레베카에 사로잡힌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때마다 무대의 가장 중앙 위쪽에 새겨져 있는 큰 R에 조명이 들어와 관객들은 마치 레베카도 이 저택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외에도 콘월 해안에 위치한 맨덜리 저택에 걸맞게 무대 뒤 바다에 대한 표현력이 참으로 생생합니다. ‘레베카를 집어 삼킨 검은 바다’ 라는 대사처럼 끊임없이 파도가 치고 안개가 자욱한 바다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전 레베카가 머물렀던 서쪽 안채는 무대에서 나타나는 바람과 더불어 스산하면서도 기묘한 느낌을 주는데요.
필자는 개인적으로 바람이야말로 뮤지컬 레베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극 중 댄버스 부인이 처음 이히에게 레베카의 안채를 보여줄 때, 댄버스 부인이 발코니 문을 여는 순간 스산한 바닷바람이 불어 들어와 댄버스 부인의 검은 드레스를 휘감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데요. 관객들도 실제로 자리에 앉아 이히처럼 스산한 느낌을 받으며 절로 몸을 움츠리게 됩니다. 아울러 2막에서는 댄버스 부인이 이히를 발코니로 끌어내 레베카를 목 놓아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이 바로 뮤지컬 레베카의 백미입니다) 이히를 발코니로 끌어당기는 동시에 관객들이 레베카의 안채가 아닌 발코니 밖을 볼 수 있도록 무대가 돌아가게 되는데요. 이 때 레베카 안채의 보라색 커튼이 바닷바람에 밀려 안쪽으로 물결처럼 들이치면서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 올립니다. 이 장면은 뮤지컬 레베카의 대표 장면으로 뮤지컬 시상식 무대 등으로 많이 재현되어 쉽게 접하실 수 있습니다.
뮤지컬 레베카가 5번째 시즌까지 오게 되면서 많은 배우들이 이를 거쳐 갔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배우는 ‘댄버스 장인’으로도 불리는 옥주현 배우와 신영숙 배우입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동시에 레베카에 대한 애정과 후에 그녀에 대한 배신감을 강렬하면서도 절절하게 표현해냈습니다. 류정한 배우는 초연에서 막심을 연기했고, 이번 시즌에서도 다시 한 번 막심을 연기했는데요. 예민하면서도 창백한 냉미남의 표본을 보여주면서 레베카로 인한 트라우마를 누구보다 잘 표현했습니다. 이히는 얼핏 보면 전형적인 신데렐라로 보이지만 누구보다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바다 속에서 레베카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무너지는 막심을 지키기 위해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합니다. 특히, 사랑의 힘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행복을 지켜내는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는데 이번 시즌에서는 레미제라블 초연의 에포닌을 연기했던 박지연 배우가 자기주도적 여성으로 변모해 가는 이히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레베카는 따로 무대에 등장하지 않지만 댄버스 부인과 막심의 대사를 바탕으로 굉장히 아름다우면서도 칼날 같은 미소를 띄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성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극 후반부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녀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맨덜리 저택은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이 모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댄버스 부인도 엄청난 배신감으로 맨덜리 저택에 불을 지르고, 그녀 역시 맨덜리 저택이 무너질 때 불길 사이로 사라져 버립니다. 맨덜리 저택이 불타서 무너지는 순간, 무대 위 새겨진 R도 벌겋게 타오르다가 연기가 나면서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레베카 역시 맨덜리 저택이 무너져 버릴 때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아마도 극 말미에 여러분들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레베카가 곧 맨덜리 저택이었고, 맨덜리 저택 곳곳에 그녀가 숨 쉬고 있었다는 것을요. 레베카는 맨덜리 저택이 무너지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여러분들 곁에서 숨 쉬고 있지 않았을까요?
뮤지컬 레베카 서울 공연은 3월 15일에 종료되었지만, 지방 공연이 연이어 준비되어 있습니다. 4월 천안, 전주, 여수, 5월 광주, 성남, 김해, 부산, 인천, 6월 고양 등이 예정되어 있지만 현재 코로나19의 상황으로 인해 변경이 있을 수 있으니 예매처를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같이 연뮤 볼래요?]에서는 같이 이야기하고픈 연극과 뮤지컬을 소개해드립니다.
필자인 효겸님은 10년차 직장인이자, 연극과 뮤지컬를 사랑하는 11년차 연뮤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