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세원 확충 없는 복지확대’ 언제까지 가능할까?

 

독립연구가 펴낸 <장제우의 세금수업>
세금 관한 잘못된 상식들 밝혀
진보 ‘증세 없는 복지국가’와
보수 ‘낙수효과론’ 모두에 일침

박근혜 정부 ‘증세 없는 복지’
민주당 정권서도 사실상 답습
반도체·부동산 호황 지나고
7년 만에 국세수입 감소 전망
복지비용 지출 느는데 대안은?

“소비세 인상”-“소득·보유세부터”
각자도생 넘어 공동체 강화 향한
‘증세 논의’ 총선 뒤엔 가능할까

 

 

“세상에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명이자 100달러 지폐 속 인물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남겼다는 명언이다. 인간인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죽음은 피할 수 없고, 한 국가의 국민인 이상 아무리 애를 써도 세금을 피해갈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맞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다르다. 죽음과 달리 세금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금 문제가 이슈가 되면 보수-진보는 물론, 부자와 빈자, 기업과 시민이 극렬하게 대립한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법인세 등을 감세할 때도, 문재인 정부가 기업과 고소득층을 상대로 핀셋증세에 나섰을 때도 반복됐던 논란이다.문제는, ‘뜨거운 감자’인 세금 문제는 외면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이다.

 

제대로 정리할 시점을 놓치면 경제가 망가지고 후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남기는 등 공동체에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최근 출간된 <장제우의 세금수업>(이하 <세금수업>)은 보수와 진보 모두 세금에 관한 허상을 깨야 한다며, 더 늦기 전에 세금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치적으로 어렵더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학계에서도 나온다.

 

 보수·진보의 잘못된 ‘세금 상식’

 

“법인세 의존 높은 한(韓), 조세개혁 필요”지난해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도한 <문화일보> 기사 제목이다. 한국이 기업들로부터 걷은 법인세가 국내총생산(GDP)의 3.6%로 미국·프랑스(각 2%) 등보다 훨씬 높다며, 법인세는 낮추는 대신 소득세와 소비세를 늘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며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는 것은 보수 쪽의 오랜 모습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기 대학을 중퇴한 뒤 여러 공장을 거쳤다는 독립연구가인 <세금수업> 저자에게 이런 보고서는 ‘제멋대로 통계쓰기’일 뿐이다. 글로벌 기준으로 기업들이 내는 세금은 법인세와 사회보험료, 급여세(직원당 정액으로 징수하되 세목이 정해져 있지 않은 세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국에서 운용)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한경연 자료대로 프랑스는 국내총생산 대비 법인세 비중은 2.1%(2018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사회보험료와 급여세까지 더한 기업 세금 비중은 13.3%로 한국(7.8%)을 압도한다. 전체를 보지 않고, 자기 입맛에 맞는 대목만 떼다가 비교해 현실을 왜곡했다는 얘기다.

 

(중략)

 

 세금 대신 보험 택한 각자도생 사회

 

증세라면 바로 법인세를 떠올리는 일부 진보들에 던지는 또 다른 일침도 있다.“한국은 법인세와 소득세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가운데 멕시코와 슬로바키아에 이어 세번째로 작다(2019년 기준, 소득세 84.5조원-법인세 72.2조원). 반면에 복지 선진국들인 덴마크·아이슬란드·핀란드·스웨덴·캐나다·뉴질랜드·오스트리아·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소득세가 법인세보다 110조~380조원씩 더 많다.”이 가운데서도 복지 일등국인 덴마크와 스웨덴은 국내총생산 대비 소득세 규모가 24.4%, 12.7%다. 한국(5.2%)의 두배~네배 수준이다.(2018년 기준)종합하면, 한국은 직접세, 간접세를 막론하고 세금이 적다.

 

실제 한국 조세부담률(소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약 25%)에 한참 못미친다.세금을 덜 내는 대신 어디에 돈을 쓸까? 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36개국 중 한국이 1등인 지표 가운데 하나는 국내총생산 대비 민영보험료 비중이다. 무려 11.8%(2010~18년 평균)로 6%대인 독일, 7%대인 미국·캐나다·스웨덴 등을 압도한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 대비 소득세+사회보험료(고용주 몫 포함·10.7%) 비중이 민영보험료보다 적은 유일한 나라다. 웬만한 선진국들은 국내총생산 대비 소득세+소비세 비중이 민영보험료보다 10~20%포인트 높지만, 한국만 더 적다(-0.2%포인트). 여기에 민영보험 중도 해지 때 손해액인 납입액과 해지 환급금의 차액도 매년 10조원이 넘는다.

 

(중략)

 

 당신의 세금이 우리의 삶을 책임진다면

 

“복지국가를 만들자며 (보편증세가 아닌) 부자증세를 주장하거나, 낙수효과를 이야기하며 증세에 반대하는 좌우 모두의 위선과 모순을 통렬하게 고발”(이한상 고려대 교수의 추천사)하는 저자가 내놓는 결론은 상식적이고 단순하다.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더 큰 부담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제각기 부담을 늘려야 세금과 복지가 온전히 돌아가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국민개세주의(국민이라면 누구나 소액이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민주국가의 중요한 원칙이고, 한국사회에서 보편증세 필요성에는 사회정책과 재정 전문가들 상당수가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야 거의 모든 정치인과 관료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표 떨어지고 머리 아픈’ 얘기이기 때문이다.‘혁신적 포용국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된 무상보육 정책을 확대했고, 아동수당을 도입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 확대,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제 기준 완화, 장애인등급제 폐지 등 복지제도를 꾸준히 확대했다. 올해에도 기초연금 인상(30만원)과 고교 무상교육 도입이 이뤄졌다.

 

(중략)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세금수업> 저자는 세수 확대를 위해 간접세인 소비세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지 선진국일수록 소비세율이 높고, 소비세가 전체 세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는 것이다.하지만 반론도 나온다. 1600만명 근로소득자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한푼도 내지 않는 소득세 과세 구조 손질, 자산보유세의 점진적 인상 등이 먼저란 얘기다. 황상현 인천대 교수(전 조세연구원장)는 “소득세와 자산보유세 다음으로 법인세를 손볼 수 있을 텐데, 세율을 더 올리기는 어렵고 최고세율(25%) 적용 구간을 (현재 3000억원에서) 예전처럼 200억원으로 환원하는 수준은 가능할 것 같다”며 “소비세 인상은 이런 조치들을 다 시행한 뒤에나 검토해 볼 수 있을 텐데, 그중에서도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키는) 술·담배·유류 등에 대한 교정과세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도 “증세에 찬성하지만 당장 실현 가능성은 작다. 비합리적인 비과세 감면조항 손질과 과도한 재정칸막이로 인한 재정 비효율 문제 개선에 우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문제는 증세나 재정효율화 필요성에 대한 논의나 공감대의 장이 실종됐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를 허구라며 비판하던 민주당은 사실상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당시 박근혜 정부를 함께 비판하던 진보진영은 별다른 말이 없다. 국가채무비율이 양호하니 당분간 적자재정은 별문제 없지 않느냐는 위험한(?)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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