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19년 9,10월호 우리들이야기3]
다시 온 가을에 만난 책
조진석 책방이음 대표
[당신과 나를 이어줄 ㅊㅊㅊ]은 책방이음의 조진석 대표가 추천하는 ‘책 소개 코너’입니다. 책방이음은 시민단체 ‘나와우리’에서 비영리 공익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서점입니다. 2009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문을 열었으며,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드는데 수익금을 써왔습니다.
8월 초 국제 행사가 취소되었다. 지자체에서 후원하고, 인권과 평화와 관련한 재단에서 주관하는 국내·외 대학생이 함께 인권과 평화를 배우는 아카데미였다. 좋은 취지로 마련한 행사였기에, 국내· 외 대학생에게 소개했다. 그런데 불과 2주를 앞둔 시점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취소 통보를 받았다. 한일 관계가 악화된 시점에서, 강사진에 일본 국적자가 있고, 참가 학생 중에 일본인이 참가하는 행사를 지자체에서 지원할 수 없다는 사유였다.
반일 또는 반 아베를 방방곡곡에서 외치는 형국에서, 지자체에서 이런 행사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구설에 오르고 싶지 않은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인권과 평화를 주제로 아카데미를 여는데도, 단지 일본인이 참가한다는 이유만으로 행사를 취소한 것은 한국인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수십 년 동안 인권과 평화를 위해서 활동하고 연구해온 일본인 교수와 이제 막 한국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일본인 대학생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 했다.
이런 때일수록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이유를 밝혀서 말해야 한다. 식민지를 지배했고 제국주의를 청산하지 못한 일본, 제국주의 청산을 스스로 이루지 못한 일본 민주주의의 허약성이 현재 한일 관계 해결을 어렵게 하고, 미디어를 통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필요성이 있다.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와 참여지식인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대담을 엮은 가 2018년 일본에 출판되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이 책은 한일 관계의 핵심에 ‘식민지 책임’ 문제와 ‘일본 민주주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1945년 이후 도금(鍍金)으로 숨겨졌던 일본 사회의 본성(地金)이 지금 드러났다는 점을 이 책은 주목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성립했다. 1869년 홋카이도와 1879년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복속된 것’은 조선 식민지화의 예고편이었다. 일본 사회의 성립은 곧 홋카이도와 오키나와, 대만과 조선으로 이어지는 식민지 강점과 세트로 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일본이 근대 국가로 탈바꿈한 메이지유신의 150주년 해가 바로 2018년이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을 얼마나 기억할까. 한국에게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인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를 읽어야 한다.
한일 관계가 악화된 요인 중에 ‘북한 문제’가 있다. 한국에게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적국이고, 공존하고 평화로운 통일을 더불어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파트너이며, 이산과 전쟁의 상처를 함께 치유할 동포들이 사는 땅이다. 그러나 일본에게 북한이 파트너라는 인식은 강하지 않고, 화해해야 할 동포가 있을 리 만무하니, 오직 남은 것은 적국이라는 인식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북한이 적국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때, 한일 정부 간 관계는 긴밀했다. 그렇지만, 북한을 파트너이자 동포로 중시 여기는 한국의 정권이 들어설 때 한일 관계는 삐걱거리고 이해를 달리한다.
한국과 일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고 외교적으로 승인하지 않으면 결코 풀릴 수 없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은 전쟁의 기억이 북한에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는지, 전쟁 결과 미국은 북한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전쟁 없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한국전쟁의 종결과 새로운 미래를 여는 북미 간 평화협정과 외교적 승인이 반드시 왜 필요한지 역사에 근거해서 설명한다. 한국에게 ‘북한 문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서 중요하고, 북한과 관계 재설정에 한국전쟁은 너무도 중요한 주제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은 이 문제를 이해하는 필독서다.
지난 4월 그레타 툰베리가 EU의회에서 연설했다. “우리의 아름다운 숲은 사라지고 있고, 대기는 오염되고 곤충과 야생 동물들은 사라져 가며, 우리의 바다는 산성화되고 있습니다. 부자 나라에 사는 우리가 이대로 살아도 되는 것을 여기는 삶의 방식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는 재앙들입니다.” 이런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내용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강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매주 금요일 등교하지 않으면서 악화일로의 현실을 막고자 시위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16세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레타 툰베리와 같은 이들의 목소리를 두 달에 한 번씩 모아서 내는 잡지가 바로 이다. 많은 사람이 을 ‘환경 잡지’로 알고 있지만, 단순한 환경 잡지가 아니다. 현재 인류가 처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폭주기관차와 같이 질주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자연이 파괴되는 것이고,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경쟁으로 점철된 사회이며, 무한정의 개발이 무한정의 풍요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상이라는 점을 1991년 창간 이후 쉼 없이 주장하고 있다.
단순하지 않다는 말속에는 환경이라는 분야만을 떼어 내어서 말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태생된 문제라는 점, 인간의 사고방식과 어쩌면 마음과 태도 때문에 현재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복잡하고 착잡한 심정을 담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다시금 창간사의 첫 문장을 찾아 읽는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