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이 폐쇄적인 사회복지 현장에 균열을 낼 수 있기를
‘사회복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 ‘대숲지기’
인터뷰 및 정리 김경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불합리한 상황을 맞닥뜨리고도 쉽게 말할 수 없다면, 혼자서는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이 자신 혹은 동료가 겪은 어려움을 토로하기 위해 ‘사회복지 대나무숲’을 찾는다. 간간히 페이스북 피드에 올라오는 글을 보니, 대나무숲에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회복지 대나무숲에 제보되는 사연을 대신 올리고 관리하는 대숲지기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자신이 아닌, 제보하는 사람들을 위해 익명의 공간을 운영하며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는 동시에,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갈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는 든든한 대숲지기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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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의 프로필
- ‘사회복지 대나무숲’이라는 공간은 어떤 곳인가?
“사회복지 대나무숲은 사회복지 현장 속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의 공간이다. 현장에서 또는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에서 모르는 것이나 의문이 생기는 일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지만 하소연 할 수 없는 이들이 목소리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이며, 이를 통해 공감을 받고 위로를 받는 곳이다. 누군가를 특정해 비난하거나 욕설, 반인권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어떤 글이든 익명으로 올릴 수 있다. 2016년 7월 13일 첫 글을 시작으로 3천900여 명의 팔로우, 1천400여 개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들이 모이고 있다.”
- ‘사회복지 대나무숲’은 언제,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되었나?
“다른 대나무숲과 동일한 이유이다. 올라오는 글을 보아서 알겠지만 상사와 직원 관계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학대 수준의 반인권적인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학연과 지연 등에 얽히고 폐쇄적인 데다 피해자보다 가해자 입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납득하기 힘든 보수적인 분위기의 문화에 균열을 내려면 익명으로라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했다.
직원을 성추행 한 의혹을 빚은 관리자가 이렇다 할 처벌 없이 일터를 떠났다가 다른 일터의 관리자로 돌아오고, 직원들을 하대하고 리더로서의 자질에 문제를 지적받은 이가 논란을 피해 잠시 현장을 피했다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는 일을 수시로 목격한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으니 잘못된 상황을 목격하더라도 직장은 물론 직업을 떠날 각오를 해야 대응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들을 사법적으로 처벌하거나 단죄할 수 있는 권한도 능력도 없다. 그렇다고 성폭력을 저지르고, 횡령을 하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직원들을 이용하는 이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아 피해자가 낙담하고 떠나는 일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까. 사회복지인의 자긍심은 ‘세상 사람들이 이런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냐’며 덮는 것이 아닌 사회복지인들이 나서서 잘못한 이가 제대로 처벌받고, 재발을 막는 문화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온다고 본다. 대나무숲은 이런 단계로 넘어가는 작은 발판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 사회복지 현장의 좋은 소식과 경험을 제보하는 ‘사회복지 소나무숲’과는 어떤 관계인가?
“아무 관계도 없다.”
- 사회복지사협회 같은 직능단체, 혹은 분야별 노동조합도 있는데 대나무숲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사회복지사협회나 사회복지 노동조합이 각각의 설립된 목적에 따라 회원들의 이익을 위해 각각의 규약에 준해 활동하는 곳이라면 대나무숲은 누군가를 특정해 대변하는 공간도 아니고 운영 주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대나무숲을 운영하다 보면 ‘공정함’을 잣대로 들이대며 무엇인가 요구하는 분을 만나고는 하는데, 앞서도 언급했지만 사회복지 현장에서 부당하고, 잘못된 상황을 접해도 어디에다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이 누구나 편하게 떠들 수 있는 열린 공간에 불과하다. 어떤 일에는 가해자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일에서 피해당한 누군가도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으며, 특정인에 대한 비난과 욕설, 반인권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글을 올릴 수 있다.
다만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현실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체계가 전무한 상황이다 보니 사회복지사협회나 사회복지 노조 등에 많은 역할을 기대하고 응원하며 지켜보고 있으며, 우리 대나무숲의 기록을 보면서 변화를 위한 의지나 행동에 앞장 서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다.”
- 대나무숲에 어떤 제보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지. 최근에 들어온 사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을 소개한다면?
“제보 하나하나 각자가 느끼고 실망했던 경험이기에 소중하지 않은 부분이 없지만, 사회복지 대나무숲에 올라오는 글들을 외면한 채 기관장들만의 리더십을 배양하기 위해 평일 제주도로 떠났던 것을 비판한 글이 기억에 남는다. 제보 내용의 대부분은 ‘직장 내 갑질’인데, 최근 사연 중에는 ‘역린’시리즈를 가장 인상깊은 글로 꼽고 싶다(페이스북 그룹 ‘사회복지 대나무숲’ #833, #839, #852, #853 등 참조).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어느 기관에서 벌어지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이 안타깝다. 대나무숲이 없었다면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고들 넘어갔을 것이다.”
- 대나무숲에 올라오는 제보글과 댓글을 보면(#850), 기관의 목적과 서비스 제공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현장이 있고 그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입장차이가 드러나기도 하는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대나무숲이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나?
“대나무숲의 역할은 더도 덜도 아닌 전달자 역할에 불과하다. 다만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850의 글도 서로의 입장 차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지나친 주장의 글이 올라오면 실명 또는 익명으로 이를 비판하는 댓글이 올라오고, 그 댓글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면 이를 비판하는 댓글이 달리며 자연스러운 토론의 장이 열리는 등 자정작용이 이뤄지고 있다. 집단지성의 힘이 여기서도 작용하는 것이다. 간혹 억측이나 공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글 삭제 등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운영진의 한계로 인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이 계셨다면 양해 부탁드린다.”
- 사회복지사로서의 윤리를 내재화하지 못해 일어나는 갈등에 대한 제보(#849)가 많은 편인지? 사회복지 종사자의 윤리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용기가 필요하다. 대나무숲에서 외치는 것조차 용기를 내야만 하는 것이 2019년 대한민국 사회복지 현장의 민낯이다. 사회복지인들의 가치는 윤리와 전문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현장에 있는 많은 관리자들은 윤리와 전문성이 아닌 자신의 권위를 지켜내기 위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의 가치가 무너지고, 현장을 떠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더 이상 중이 싫어, 절이 싫어 떠나가는 일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하다. 또 작은 용기를 내어 대나무숲에 글을 올리는 것이 일차원적인 대응이라면 이러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제보한 분들을 보호하면서도 대변하고 지원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의 체계가 시급히 만들어져야 한다.”
- 대나무숲을 운영하며 느끼는 어려운 점 혹은 우려되는 점이 있는지?
“이곳만큼은 공감하고 격려해주는 곳이었으면 한다. 얼마나 힘들고 억울하면 이곳에 글을 작성하겠는가. 하지만 현장의 현실은 대나무숲의 글을 작성한 자를 찾아내려고 하고, 의심하고, 도리어 낙인을 찍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대나무숲 운영진을 잘 안다며, 글을 올린 사람을 추측하고 협박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나무숲을 운영하는 사람이 익명일 이유가 없지만 이런 일들이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익명의 그늘 뒤에 있다.
사회복지 대나무숲은 ‘자경단’도 아니고, 익명에 기대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공간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라오는 사례는 특정인의 이야기이지만 만연한 현상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를 자신에게 보낸 화살이라고 지레짐작해 제2의 피해를 양산하기보다 우리 일터에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자정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 대나무숲을 이용하는 사회복지 현장 종사자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이 있다면?
“이곳은 자기 편향적인 곳이다. 합리적인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고민하고 작성하는 모습들도 좋지만 그런 것들 생략하셔도 되니 언제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셔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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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법인의 종교 강요 행위를 고발한 사회복지사
-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는데, 대나무숲을 이용하는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기대감은 어떤가?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는듯하지만, 상황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들을 예단하고 있는 모습들 또한 느껴져 안타깝다.”
-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조직(회사) 내의 관계 등 여러 갈등의 중심에 놓이게 되는 사회복지 현장 종사자들을 위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독립이다. 종속적 관계에서의 독립.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사회복지사업을 진행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묻고 노력하고 실천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하거나 확장해나갈 수 있다면 종속이 아닌 독립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복지 현장은 왜 이렇게 노동 문제에 소극적일까. 어떤 직업군이든 상호 갈등은 빚어지게 마련이지만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을 하는 사회복지 현장의 특성상 이런 갈등이 타 직종에 비해 상당하다. 때문에 더욱 뚜렷한 직업인,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중심을 잡았으면 한다. 소방관이 불을 무서워하거나, 경찰이 폭력단의 주먹을 두려워 나서지 않는다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듯이, 사람을 만나다 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다. 이 과정에서 부당하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일들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피해가 발생한 이후에라도 대처할 수 있는 장치를 요구하고 구현해냈으면 한다. 사회복지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회복지인들도 사회속에서 복지를 누려야 할 대상이다.”
- 끝으로 남기고픈 말이 있다면?
“‘현장은 왜 이렇게 이기적인 것일까, (그러는) 당신들은 잘하고 있나요, 당신들의 생각이 의심스럽군요, 당신들이 현장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지 아십니까…’ 사회복지 대나무숲에 글을 작성한 자들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행태들이다. 우리가 배우며 추구하고 있는 이타성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우리의 이타성을 누군가에게 지배당해 사용(이용)당하는 것이 아닌 직접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소수가 아닌 다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나무숲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을 읽으며 경각심을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다음세대나 후배들을 위해 욕심내지 않고 다수를 만들어 가는 첫걸음을 함께 내딛어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노동조합이든, 또 다른 단체이든. 자신과 동료를 위해 함께 목소리 낼 공간을 만들고 목소리 내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희망한다.
대나무숲을 운영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나 힘을 갖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크고 작은 오해나 맹목적인 비난으로 상처를 받는다. 그럼에도 3년이라는 세월을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유지해오고 있는 이유는 건강한 사회복지 현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 하나 뿐이다. 운영자를 찾거나 ‘누가 글 쓰는지 다 안다’는 식으로 왜곡하기보다 사회복지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서 건강한 현장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논의와 움직임들이 다양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분께서 올려주신 글을 공유하며 인터뷰의 끝을 맺겠다.”
#876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대숲에 글들이 1000개쯤 올라올 무렵 유형별로 나누어 기관장, 시설장, 원장 등이 각 기관별, 협회별 CEO나 리더십 교육에서 공유했으면 하는 상상, 그리고 다함께 이런 일들이 없는 사회복지현장만들기위해 노력하는 리더들이 되자고 함께 선포하는 날!!
그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