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장)
세계보건기구(WHO)가 5월 25일 국제질병사인분류(ICD)의 제11차 개정판에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등재시키는 최종결정을 내렸고 2022년 1월 1일 발효 예정이다. 향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가 이를 수용할 것인지가 문제되는데, 우리의 KCD가 이를 수용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헌법의 기본원리인 ‘문화국가원리’에 반한다. 문화국가란 문화에 대한 국가적 보호·지원·조정 등이 이루어져야 하는 국가를 말한다. 헌법은 문화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문화는 개별성·고유성·다양성·자율성을 그 본질로 한다. 게임은 표현의 자유의 보호대상이자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의 보호대상이자 문화콘텐츠인 영화·비디오물·음악·웹툰 등에 대해서 그 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게임을 정신장애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화국가원리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둘째, 문화콘텐츠산업과 관련된 우리나라 법의 기본적인 입장은 ‘진흥’에 있다. 문화콘텐츠산업과 관련된 법률의 명칭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컨대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이외에, 문화산업진흥 기본법,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 등, 문화콘텐츠산업에 대한 우리나라의 정부정책 및 법은 ‘진흥’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현행 법체계에 반한다. 한쪽에서는 진흥한다고 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치료와 예방의 대상이 되는 질병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법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알콜중독·도박중독과 관련된 주류산업이나 도박산업은 우리나라에서 진흥의 대상이 아니다.
셋째, 인권으로서의 ‘문화향유권’(right to culture)을 침해한다. 문화향유권이란 유엔 세계인권선언 제27조와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권리로서,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 혹은 ‘문화적 산물을 향유할 권리’를 의미한다. 게임은 문화콘텐츠다. 따라서 게임을 정신장애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우리 국민이 향유해야 할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 혹은 ‘문화적 산물을 향유할 권리’를 침해하거나 형해화시킬 위험성이 매우 크다.
넷째, 특정한 행위나 성향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번에 WHO가 ICD 제11차 개정판을 의결하면서 기존에 정신장애로 분류되어 있던 트랜스젠더를 질병분류에서 제외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뭘 의미하는가? 우선 WHO는 특정한 행위나 성향을 질병으로 분류할 때, 당해 행위나 성향이 갖는 사회문화적 맥락이나 개인의 정체성·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랜스젠더는 성(性) 정체성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다. 이번에 WHO가 트랜스젠더를 질병분류에서 제외하면서, 트랜스젠더를 질병코드에 등재했던 점에 대해 그 잘못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했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다음으로 WHO의 질병분류가 절대적인 무오류의 진리나 선(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개별국가 차원에서 WHO의 질병분류를 그대로 수용할 의무나 필요도 없고 그대로 수용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은 질병의 원인이 아니다. “게임은 문화다!”
이 글은 아시아투데이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9.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