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
국가가 개인에게 형벌을 내릴 때는 기소 및 재판을 통하여 그 이유와 범위를 피고인에게 알려준다. 압수수색도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한다는 의미에서 형벌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일반 압수수색의 경우 그 대상자에게 그 범위와 이유를 알려주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집이나 자동차에 대한 압수수색 모두 영장을 제시하고 이루어진다. 감청과 이메일수색도 반드시 통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감청이 끝난 후 신속하게 피감청자에게 통지하도록 되어 있다. 예컨대 미국의 통신비밀법(ECPA)은 검찰이 감청신청만 해도 그 결과에 관계없이 일정 기간 후에 무조건 통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통신비밀보호법은 경찰이 대상자에게 기소나 불기소 결정을 내린 후에야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즉 수사가 길어지면 감청이나 메일수색의 대상자는 아주 오랫동안 감청이나 수색사실을 모르고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통지 마저도 검사장의 승인 만으로도 계속 유예가 될 수 있다. 수년 동안 아무런 통보 없이 이메일이 반복적으로 수색되고 전화가 지속적으로 감청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감청에 대한 사후통지가 이렇게 무한정 지연될 수 있는 상황이 없도록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
메일수색에 대한 통보는 더욱 심대한 개정이 필요하다. 감청은 감청개시와 동시에 통보하면 감청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추후 통지를 하는 것이 옳지만, 메일압수수색은 다른 압수수색과 달리 볼 것이 없다. 메일의 취득과 동시에 대상자에게 알려주도록 법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차피 압수수색은 과거의 기록을 취득하는 것이므로 취득과 동시에 알려준다고 하여 수사의 기밀성이 훼손되지 않는다.
감청과 메일수색에 있어서의 통보의 필요성은 단지 ‘이유나 알고 맞자’는 호소를 넘어선다. 감청과 메일 해독 모두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기 때문에 국가는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대상을 한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우선 감청이나 메일수색을 해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이 딜레마 때문에 국가의 개인에 대한 감시는 자연스럽게 한정된다. 그런데 감청과 메일수색을 대상자에게 통보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할 수 있게 되면 이 딜레마를 깰 수가 있다. 국가가 수많은 사람들을 감청해보고 ‘가능성있어 보이는’ 사람을 골라서 그 사람을 집중적으로 감청과 메일수색을 할 수 있다. 즉 모든 국민이 국가에 의한 완전감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통보되지 않는 감청과 압수수색의 공포는 이런 것이다.
이외에도 압수수색영장의 발부기준이 너무 낮다. 체포영장발부에 요구되는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도 없이 메일수색을 당하는 것은 억울하다. 이러한 법개정이 없이 이동통신 및 인터넷사업자에게 협조의무를 부과하여 휴대폰 및 이메일감청을 더 수월하게 만드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민은 더욱 ‘통보되지 않는 감청과 메일수색의 공포’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0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