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국민의 시야를 넓혀주는 방송을 기대한다

 

국민의 시야를 넓혀주는 방송을 기대한다 

 

글.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나의 서양사편력 1·2>, <번역은 반역인가>, <밀턴 평전> 등의 저서와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등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를 통해 서양사를 우리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하는 데 힘쓰고 있다.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은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친근한 이미지의 패널들이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재미와 교양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다. 그런데 제목이 좀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간판은 ‘역사저널 그날’이지만 내용은 ‘한국사저널 그날’ 아닌가? 하긴 예전의 ‘역사 스페셜’도 마찬가지다. 그게 어디 ‘역사 스페셜’인가? ‘한국사 스페셜’이지. 

공연한 딴죽을 걸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칫 ‘역사=한국사’라는 편견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다. 기왕 ‘역사’라는 제목을 걸었다면 나라 밖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면 ‘요리인류’ ‘누들로드’ 같은 세계사 프로그램도 만들지 않았느냐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모두 흥미롭고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보는 내내 지적 즐거움을 누렸다. 관계자들의 노력을 치하한다. 하지만 역사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우선 소재 선정에 ‘더욱’ 엄정했으면 한다. 두 프로그램의 경우 시청률 확보와 제작 편의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소재를 선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본능에 호소하는 ‘먹을 것’ 이야기가 시청률을 올리는 가장 손쉬운 소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케이블 채널 티비엔tvN의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 차승원이 인기몰이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긴 먹방(먹는 방송)이 ‘그림’도 잘 나올 것이다. 모락모락 김나는 요리를 먹음직스럽게 시식하는 모습을 대형화면 가득히 잡아내면 시청자들이 자석처럼 끌려올 테니까.

 

참여사회 2015년 6월호

 

상상력이 갇힌 청년들, 정쟁으로 앞이 안 보이는 한국 사회
하지만 한 나라의 기간방송이라면 국가 발전을 위한 전략적 사고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동서남북으로 육로가 막혀 섬나라처럼 고립된 것이 대한민국의 현 상황이다(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육로로 만주, 연해주, 러시아, 유럽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청년들의 상상력마저 갇혀버린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어항 속 물고기 같다고나 할까? 세계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이 크다고 추측한다.

세계화를 본격적으로 부르짖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문민정부 시절부터이건만, 현재 고교에서 세계사를 가르치는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세계사 과목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결과 고교와 대학 과정을 마치고도 초보적인 세계사 지식조차 익히지 못한 인구가 대량 배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망언을 쏟는 일본 극우 정치인들을 보면 도대체 일본 역사 교육이 얼마나 형편없기에 저 지경일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일본은 1995년에 세계사를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반면 자국사인 일본사는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다. 초·중등학교의 역사 교육이 자국사 중심이기 때문에 고교 교육과정에서 세계사를 보완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재량권을 가진 학교장들이 대부분 자국사를 선택하므로, 일본사 역시 필수과목처럼 교육되고 있다. 일본에서 자국사와 세계사는 ‘사실상’ 모두 필수과목인 셈이다. 우리 교육 현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역사 교육에 관한 한 일본이 우리보다 크게 앞서 있는 셈이다. 

 

국민의 진취적 기상을 드높여줄 미래지향적 프로그램 필요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세계적으로 생각’하게 해줄 교육적 기반이 아예 없다. 지역갈등과 정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한국 사회의 혼미한 현실이 세계사 교육의 부재 때문은 아닐까? 4년, 5년 임기의 단기적 성과만을 노리는 무능한 정치인, 관료들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방송이라도 시대적 소명감을 가지고 이 시대 청년들로 하여금 더 큰 세계를 바라보고 원대한 비전을 품도록 격려해주길 기대한다.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이 야심작으로 방송했던 다큐멘터리 ‘대국굴기’(여러 해 전 교육방송EBS에서도 방송되어 호평을 받았다)는 이런 점에서 단연 돋보인다. 최근 500년 동안 세계를 주름잡은 아홉 나라가 어떻게 해서 강대국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우리도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강력한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보낸다. 경제적·문화적 굴기를 이루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가 프로그램 곳곳에서 강하게 묻어난다. 상거래의 신용, 자유로운 학문 탐구, 학자에 대한 온당한 대우, 과학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적극적 지원 등이 강대국 발전의 핵심 배경으로 제시되고 있다. 

먹방이 초등학교 수준이라면 이런 프로그램은 고교 수준은 될 거다. 먹방에 비해 제작도 어렵고 ‘그림’도 나오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은 이런 방송 아닐까? 이런 미래지향적 프로그램을 우리 시각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줄 것을 소망한다. 청년들로 하여금 100년, 500년 후를 내다보는 원대한 비전과 포부를 품을 수 있게 하는 진취적인 프로그램을 보게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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