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트럼프 대통령은 전후 합의로 탄생한 여러 국제기구들을 무력화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자유무역에서 후퇴하는 한편, 중국을 겨냥한 패권국 주도권 싸움에 몰입하고 있다. 이에 일본과 캐나다는 미국을 배제한 채 TPP를 강행하였고, 유럽과 일본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였으며, 미일과 동맹관계에 있던 인도가 상하이 협력기구에 새로이 참여하는 등 복잡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럽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 간 개방적 자유무역체제의 구축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 전문지 Finance Times의 Free Lunch 칼럼리스트 Martin Sandbu의 글을 번역, 소개한다.


미국 발 무역전쟁의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로 위협하는 동안 “미국을 제외한 서구” (유럽 경제와 멀어지려고 애쓰는 영국은 예외) 는 조용히 경제세계화에 전념하고 있다. 이는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지지하는 자들이 결코 원하지 않는 질문 하나를 던진다. 세계 경제에 미국은 얼마나 필요한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여 미국이 세계무역체제를 벗어나는 경우, 미국을 제외한 세계는 이 체제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세계 지도자들은 언제든 이를 시도할 마음의 준비가 된 듯 하다. 큰 환영을 받은 EU-일본 FTA는 세계경제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관세장벽은 없애고, 비관세장벽은 줄임으로써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지역을 형성한다.

해당 협정에 서명한 지도자들은 이번 EU-일본 FTA는 전후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임을 분명히 밝혔다.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을 탈퇴 시킨 후에도 TPP가 존속하는 것을 보면, 과거 세계질서의 무임승객으로 불리곤 했던 일본이 이제 그 세계질서를 수호하는 책임을 떠안은 듯 하다.

이러한 주도권이 부국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능을 방해하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EU는 중국과 함께 세계 무역 체계를 감시 및 보호하는 WTO의 능력을 보강하기 위한 공동 대처에 대해 논의 중이다. 중국도 이런 논의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하다. 중국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관영 영어신문 글로벌 타임스(환구시보의 영문판)는 EU-일본 FTA를 강력 지지하는 논평을 실어 “EU와 일본의 파트너십은 미국의 참여 없이도 자유무역이 전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중략) 미국이 무역전쟁을 주요 소통 방법으로 생각한다면, 결국 스스로 고립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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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VOA 한국어판

프랑스 정부의 독립적 경제자문기구인 프랑스 경제분석위원회(French Council of Economic Analysis)는 필요한 경우 미국을 제외하는 가장 노골적인 다자간 자유세계질서 전략을 제안했다. 이들은 짧지만 의미 있는 문서를 통해 미국이 최악의 행태를 보일 때 프랑스와 EU 그리고 전세계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1안 실패 시 택할 수 있는 “2안”의 매뉴얼인 셈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WTO 방해를 피하기 위한 전략을 파악하고, 실행할 국가들을 조화시키는 것”이 포함된다. 나아가 의욕이 있는 국가들 간 무역자유화의 심화를 위한 노력도 포함되는데, 파리협정과 같은 기후정책을 지원하고 조세 탈루 문제를 타개할 방법과 자유무역을 연결하는 유럽스타일을 추구한다.

능동적인 파트너 간 심화된 무역자유화가 실현되면 더욱 광대하고 효과적인 “내수시장”이 생기고, 이는 대미 무역중단에 대응하는 보험으로 작동할 수 있어 미국의 고립주의에 따른 손실을 축소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 결과 미국이 세계를 인질로 잡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지난 70년간 미국에 의해 주도된 세계경제를 홀로 재편하라고 하면 분별력이 있는 그 누구라도 겁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과거만큼 강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EU와 중국은 각각 경제블록으로서 미국에 대적하고 있으며, 그 후유증이 있다해도 대규모 내수시장의 보호를 받는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가 시장을 통합하면 할수록 무역전쟁의 결과는 미국에 유리하지 않은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무역 마찰에서는 더 큰 경제블록이 언제나 유리한 위치에 선다. 트럼프가 양자간 협정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양자 거래에서는 미국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자유 세계경제의 수호자들이 취하고 있는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가 연합할수록 미국은 더 작은 경제블록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