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경쟁 대신 로비경쟁으로 얼룩진 입찰제도 전면 개선하라
– 가중치기준방식, 강제차등점수제 등 경쟁대신 로비 유발하는 제도 폐지하라
– 그간 경쟁 없이 진행된 턴키·대안입찰, 민자사업 등도 로비여부 철저히 조사해야
포스코건설 등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으로 공공건설사업의 고질적인 불법로비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포스코건설이 최근 수년간 정부, 공공기관, 지자체 발주 공사 입찰에서 평가위원들을 상대로 금품로비를 진행한 내역이 담긴 컴퓨터 외장하드가 경찰에 압수돼 정밀분석작업이 진행중이다. 외장하드에는 평가위원별로 이름, 출신학교, 고향, 가족관계, 지인, 취미, 담당직원 접촉 동향 보고 등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가 언제 어떤 평가위원을 만나 어디에서 식사를 했고 돈을 몇개(몇억)줬는지, 평가위원이 뭘 좋아하고 무슨 청탁을 들어주면 점수를 잘 줄지’ 등 로비에 필요한 모든 내용이 있어 로비가 업체 차원에서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와 업계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불법 입찰로비는 없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을 보았을 때, 로비가 비단 포스코건설만의 문제라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이같은 문제의 원인은 경쟁대신 로비를 유발하는 현 입찰제도가 가장 큰 원인인바, 정부가 경쟁체제 구축과 로비근절을 위해 전면적인 입찰제도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경쟁대신 로비 유발하는 가중치기준방식, 강제차등점수제 폐지하고 설계적합 최저가방식 적용해야
과거 턴키, 기술제안 등 대형공사 입찰은 로비와 담합 등 불법으로 점철되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업계는 자정 선언을 하고 정부도 관리 감독 강화하는 등 불법 근절에 나섰으나, 매년 적지 않은 입찰로비 사건이 적발되고 있다. 턴키방식은 애초 가격과 설계를 모두 평가해 가장 우수한 낙찰자를 선정하겠다며 도입했으나 설계에 대한 과도한 가중치 적용을 통해 입찰비리의 단골이 되었다. 설계심의위원들에 대한 건설업체들의 로비로 비리가 끊이지 않자 비공개 했던 위원명단을 공개하는 등 나름 개선된 운영을 보이고 있으나, 실력보다 로비를 통한 입찰 가능성이 높은 턴키제도가 존재하는 한 입찰 비리해결은 불가능하다.
이번 울산신항 방파제 공사 역시 설계시공일괄입찰(턴키)에 가중치기준방식으로 낙찰자를 결정했다. 설계점수가 70%, 가격점수가 30%이다 보니 가격경쟁력보다는 설계 점수를 얻기 위한 로비가 판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더군다나 설계점수의 경우 강제차등점수제가 낙찰의 절대적 요인으로 작용되어, 평가위원에 대한 불법적 로비를 극대화시키는 반면 가격경쟁을 무력화시켜 혈세낭비를 유도하게 만든다.
*** 강제차등점수제 : 입찰업체의 각 기술제안에 대하여 각각의 평가점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별 설계순위를 수, 우, 미의 순서로 평가한 후, 순위별로 평가점수를 강제로 설정하는 방식임.
예) 설계평점 1% 차이 → 설계순위는 1단계 차이 → 설계평가점수: 각 배점의 10%씩 차등적용
이미 국가계약법에 일괄입찰의 방식으로 설계적합최저가방식 등 경쟁이 가능한 방법이 있다. 가중치기준방식 등 로비를 유발하는 현 제도를 중단하고 업체간 경쟁이 가능한 입찰을 실시해야 한다.
다른 턴키·대안입찰, 민자사업 등도 로비여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공공건설사업뿐만 아니다. 그나마 2인 이상 입찰에 참여해야 하는 공공발주 사업과 달리 민간투자사업은 사업비의 상당부분이 세금으로 지원됨에도 불구하고, 단독입찰이 가능해 경쟁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다.
일례로, 신안산선은 3.4조원의 역대 민자사업 최대 규모이지만 경쟁없는 사업자 선정으로 인해 막대한 예산낭비가 우려된다. 비슷한 시기 고시된 GTX-A(수도권광역급행철도)가 경쟁을 통해 공사비가 약 4,000억원 낮아졌지만, 신안산선은 PQ논란으로 3,000억원 낮은 공사비를 제시한 업체가 탈락한 이후 경쟁없이 비싼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사업자로 선정됐다. 경실련은 지난 4월 신안산선에 대해 총 9개 항목의 공익감사를 청구했으며, 이중 몇몇 사항은 특혜 항목으로 로비가 의심되는 부분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신안산선에 대한 비리 의혹도 일고 있는바, 감사원은 속히 신안산선 사업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나라 건설업은 부패의 온상으로 비판 받는 등 그 어느 산업보다 폐쇄적이고, 비리가 많은 산업으로 인식되어 왔다. 최근 적정공사비 확보를 주장하고 있는 업계가 적정공사비 확보를 요구하기에 앞서 불법이 만연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야 한다. 말로만 그친 자정선언만으로는 건설업계의 적정공사비 확보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또한 정보비공개와 가격경쟁무력화 등 발판을 마련해준 정부와 정치권 등 공공의 책임이 가장 큰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전면적인 입찰제도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