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7년 전인 2011년 3월15일은 '아랍의 봄’ 을 맞아 시리아 주요 도시들에서 민주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진 날이다. 시리아 전쟁은 21세기 최악의 인도적 재난으로 기록된다. 해마다 적게는 5만 명, 많게는 7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웃도는 최대 난민 배출국가가 됐다.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시리아의 참극을 끝장내지 못하고, 강대국들과 주변국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는 동안 희생자는 더 늘어났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회에 걸쳐 시리아 전쟁의 실상과 문제점을 다룬다. 편집자 주
'정의의 무력감' 안긴 시리아 전쟁 어떻게 끝장낼까
[아시아생각] 시리아 전쟁발발 연속기고 ②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 전쟁으로 파괴된 시리아 중부 도시 홈스의 구시가지 ⓒ유네세프한국위원회
3월 15일로 7년째로 접어든 시리아 전쟁의 문제는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내전이라면 힘의 균형이 무너져 어느 한 쪽이 힘이 빠지면 짧은 기간 안에 그치기 마련이다. 시리아 전쟁에는 저마다 이해관계를 지닌 여러 외부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7년이나 시리아의 참극이 이어져 온 데엔 중동 지역의 패권을 노린 외부 세력들의 개입 탓이 크다. 결국은 비판의 화살은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시리아에 개입한 강대국과 주변국들로 향한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고등판무관은 2016년 유엔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안토니오 구테헤스의 후임자이다. 그는 UNHCR에서 3월 9일에 낸 문건 <시리아 분쟁 7년> 앞머리에서 시리아 시민들이 그동안 겪은 고난을 가리켜 국제사회의 '부끄러운 실패(shameful failure)'탓이라고 못 박았다. 시리아 전쟁을 끝내려는 국제사회의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가 굳건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엄청난 비극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그란디 고등판무관이 지적했듯이, 군사적 수단으로 시리아 전쟁을 끝내려면 패자와 희생자만 있을 뿐 승자는 없다. 어느 쪽에선가 "우리가 이겼다"고 선언하더라도 상처투성이일 뿐이다. 누가 이기든 희생자는 분명하다. 분쟁에 휘말려 생목숨을 잃은 시민들, 그리고 죽은 이를 기억하며 슬픔에 잠긴 채로 생존의 벼랑 끝에서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시민들이다.
시리아 내전? 전쟁? 분쟁?
여기서 짧게 용어 선택의 문제를 짚어보자. 흔히 시리아에서 지난 7년 동안 벌어져 온 유혈 충돌을 '시리아 내전'이라 부른다. 내전은 한 국가 안에서 이해관계가 크게 다른 무장세력들이 벌이는 유혈사태를 뜻한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의 군대와 그에 맞선 반군 사이의 전쟁은 내전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 시리아에서 무장활동을 벌이는 세력은 정부군과 반군뿐 아니다.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헤즈볼라 민병대), 터키 등 중동지역에 이해관계를 지닌 세력들이 저마다 군사작전을 펴는 중이다. 따라서 '시리아 내전'이란 용어보다는 '시리아 분쟁' 또는 '시리아 전쟁'이란 용어가 더 정확해 보인다.
전쟁을 오래 끈 4가지 이유
시리아 전쟁이 7년을 넘도록 이어진 까닭은 여러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로, 아사드 독재정권의 물리적 바탕인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군사적 균형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은 군사력의 강약으로 결판이 난다. 그런데 시리아에선 여러 해에 걸쳐 정부군-반군 사이의 힘이 팽팽히 맞서왔다. 탱크나 전투기 등 고급 군사 장비 면에선 정부군이 압도적이지만, 국제 여론을 등에 업고 민주화를 피로써 이루겠다는 전투 의지의 측면에선 반군이 우세했다.
시리아 인구 1800만 명(2017년 추정) 가운데 △수니파 무슬림은 74%로 시리아 사람 4명 가운데 3명은 수니 무슬림이다. 나머지는 △시아파 무슬림 13%(시리아 독재자 아사드가 속한 알라위파), △기독교 10%, △드루즈 3% 등이다. 시아파의 한 분파로 독재자 아사드 가문이 속한 알라위파 사람들은 세속적인 성향을 보이며,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이슬람 시아파나 수니파 모두 시리아 전쟁이 종파 간의 전쟁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리아 정부는 정부대로 반란을 진압하고 테러 위협으로부터 사회질서와 안정을 되찾으려는 노력이며, 반란군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려 싸울 뿐이라 주장한다. 독재자 아사드는 기회 있을 때마다 테러분자들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안정을 지키겠다고 강조한다. 시리아의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가 결코 그의 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아사드 체제를 지지하는 시리아 시민들 가운데는 수니파도 소수지만 섞여 있다. 이들은 체제 안정이 민주화보다는 우선하는 가치라 여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약 4년 동안은 그런대로 힘의 균형 상태에 있었다. 반군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힘을 하나로 모아 다마스쿠스로 진격하지 못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민중의 강력한 저항으로 사기가 떨어져 반군을 압도할 수가 없었다. 정부군 가운데에서도 아사드 독재에 환멸을 느낀 병사와 장교들이 탈영해 반군에 가담하는 일들도 잦았다. 아사드 정권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화학무기를 사용해온 데엔 체제 붕괴의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리아 전쟁 초기에 서구의 여러 중동전문가들과 언론 매체들은 아사드 정권이 곧 무너질 것이라 내다보았다. 그 예측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아사드 정권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무너졌던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나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과는 달랐다. 군 주요 지휘관들은 아사드가 속한 알라위파 출신들로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아사드는 집권 바트당과 함께 자본가 위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몇몇 족벌에게 특혜를 주어왔다. 그로 말미암아 사회 양극화가 생겨났지만, 그 수혜자인 대기업가들과 고위 종교인사들로 구성된 기득권층은 아사드 체제에 충성을 바쳐왔다.
이런 내부 결속과 러시아 등 외세의 지원을 바탕으로 아사드는 2016년 말 시리아 제2도시이자, 북부지역의 산업·금융 중심지인 알레포를 반군으로부터 되찾았고, 그 뒤로도 정부군의 우세가 뚜렷이 보인다. 2018년 봄 다마스쿠스 동쪽 교외지역인 동구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즈음 아사드는 여러 공식 석상에서 "곧 시리아의 안정과 평화를 이룰 것이다"라며 큰소릴 치고 있다.
미국의 IS 공격, 아사드에게 반사이익
둘째로, 시리아 전쟁이 오래 끌게 된 데엔 (아울러 독재자 아사드의 군대가 수세 국면에서 공세로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 데엔) 강대국들의 이해 타산적인 개입 정책 탓도 크다. 여기서 강대국이란 미국과 러시아를 가리킨다.
아사드 체제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역설적이지만 이슬람국가(IS) 세력이다. 2014년 6월 시리아북부 락까를 수도로 한 '이슬람국가(IS)'를 선포하면서 기세를 올리자, 수도 다마스쿠스도 위협받은 상황이 됐다. 바로 여기서 미국이 무력 개입하고 나섰다. 2014년 9월부터 공습이 이루어졌고, 해병대를 주축으로 2000명 규모의 지상군을 투입했다. 쿠르드 민병대와 손을 잡은 미군이 공격 목표로 겨냥한 것은 시리아 독재정권의 군대가 아니라 IS였다.
여기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본다. 미국이 IS를 공격한다면 누구에게 이로울까. 먼저 이스라엘이다. 미국의 중동정책 핵심은 첫째는 중동석유의 안정적 확보, 둘째는 이스라엘 안보로 요약된다. 중동석유를 위해서라면 사우디 독재정권과도 친구가 되며,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서라면 중동지역의 반미정서가 커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왔다. 허약한 아사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강성 이슬람 극단세력인 IS가 다마스쿠스를 점령한다면, 이스라엘에겐 안보 위협이 커지기 마련이다. 이스라엘로선 약한 독재자가 강한 극단세력보다 만만하다.
미국이 IS 공격으로 이스라엘 안보를 챙겨주는 상황에서 반사 이익을 얻는 쪽은 아사드 독재체제이다. 아사드는 2014년 9월부터 벌어진 미군의 공습이 더없이 고마울 것이다. IS는 여러 시리아 반군조직 가운데 가장 세력이 강하고 전투적인 투쟁성을 지녔기에 시리아 정부군조차 두려움을 품었다고 알려진다.
아사드에게 고마운 친구는 또 있다. 미군의 시리아 공습 꼭 1년 뒤인 2015년 9월엔 러시아군이 IS공습으로 시리아에 군사 개입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은 오로지 IS를 공습하는 미군과는 달리 짬짬이 반군의 근거지들을 공습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시리아-러시아의 우호 관계는 옛소련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시리아군의 무기체계는 미그 전투기와 미사일을 비롯해 옛소련제로 채워져 왔다. 지금 러시아가 옛소련 이외의 지역에 유일하게 해군기지를 두고 있는 곳이 지중해변의 시리아 타르쿠스 항구라는 점은 두 나라의 밀접도를 잘 보여준다. 시리아는 러시아의 최신형 전투기 등을 수입하고, 러시아는 시리아의 인프라 확장공사, 천연가스처리공장 등에 연간 수백억 달러를 투자함으로써 서로의 이해관계를 이어왔다.
지역 패권 노린 사우디-이란의 대리전
셋째,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저마다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면서 개입한 것도 시리아 전쟁이 오래 끌게 된 한 요인이다. 중동 지역 패권을 노린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proxy war) 양상은 전쟁의 성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왔다.
아사드 독재정권엔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 세력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시아파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헌법상 대통령보다 높은 최고 지도자인 이란은 같은 시아파의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가 권력자로 있는 시리아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해왔다. 9.11 테러 뒤 이란 동쪽 아프가니스탄, 이란 서쪽 이라크엔 친미정권이 들어섰다. 이란은 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동맹인 '초승달 벨트'를 통해 국가안보 위협을 덜어내려 한다.
하지만 많은 이란 사람들은 자기모순에 빠져 있음을 느끼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독재 팔레비 왕조를 몰아냈다는 정치적 자긍심을 지닌 이란 시민들의 시각에선 시리아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정부의 대외정책에 박수를 치기 어렵다. 결국 이란-시리아 동맹관계는 시아-수니를 가르는 종교적 신념보다 지정학적 국가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정치의 냉정함을 보여준다.
넷째, 끝으로 시리아 전쟁이 오래 끌게 된 데엔 국제사회의 무능한 대응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릴 때 내세웠던 '국민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이하 R2P) 논리는 시리아엔 적용되지 않았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달라 시리아 평화를 위한 이렇다 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일시적 휴전을 이뤄내고 그 틈에 긴급 구호활동을 펴는 것이 고작이다. 화학무기로 시리아 시민들을 희생시키는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UN 안보리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전쟁에 관한 국제법 문서들은 시리아에서 휴지처럼 구겨졌다.
정치적 해법으로 전쟁 끝내야
기득권 체제의 충성과 외세의 군사적 지원에 힘입어 아사드 체제는 초반의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2016년 무렵 정부군-반군 사이의 힘의 균형은 깨졌고, 미국과 사우디 등 지원세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통합력이 없는 반군은 이제는 수세 국면이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시리아 전쟁은 자칫 정부군의 승리로 끝날 조짐마저 보인다.
'극적인 반전'이란 군사적 해법이 아닌 정치적 해법이다. 늦었지만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제라도 정치적 해법으로 시리아 전쟁을 끝장내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흐름대로 시리아 정부군이 군사적 해법으로 전쟁을 끝내도록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리아에 개입한 주요국들의 입장이 서로 엇갈리는 탓에, 아사드에게 퇴로를 열어주거나 퇴진을 압박하지 못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한계로 꼽힌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비롯한 미국의 이른바 중동 전문가들이 포진한 여러 싱크 탱크, 또는 미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와 같은 외교전문가 집단에서 시리아 해법에 관련된 글들을 거듭 검색해봤다. 하지만 미국의 중동정책이 이스라엘 안보 챙겨주기에 무게중심이 있는 까닭일까, 눈에 띄는 정치적 해법을 내놓은 글을 찾아보질 못했다.
큰 틀에서 바람직한 정치적 해법은 독재자 아사드 일족이 물러나고 다마스쿠스에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쪽이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3~1990년 집권)처럼 면죄부를 받고 퇴진하는 수순도 생각해볼 수는 있다. 러시아로 망명해 푸틴의 보호를 받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아사드로선 그럴 뜻이 없다고 알려진다. 지금껏 아사드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측근들도 아사드의 퇴진을 반대할 것이다. 군부 쿠데타나 암살 등 극적인 사건이 터진다면? 전쟁의 긴 터널 끝이 보이겠지만, 그 가능성은 말하기 어렵다.
끝으로 전쟁범죄. 국제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면 시리아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전쟁범죄를 덮어주긴 어렵다. 아사드와 그의 일족이 퇴진을 거부하는 데엔 전쟁범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아사드 체제가 저지른 전쟁범죄 목록은 길다. 전쟁범죄는 공소시효나 국적에 관계없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사법권' 논리가 국제법계에서 힘을 얻는 마당에, 아사드를 전쟁범죄자로 붙잡아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세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좀 더 시일이 지나야 될 일처럼 보인다.
결론적으로 전쟁을 하루빨리 끝장내고 '아랍의 봄'을 시리아에서 되살리려면, 결국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아사드 독재정권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면서 평화 중재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길밖에 없다. 아사드의 퇴진과 전쟁범죄 처리는 그 뒤 수순이다. 인권과 민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세계 시민들은 지난 7년 동안 시리아의 재앙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픔 속에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시리아에 7년째 이어지는 '아랍의 겨울'은 끝내려면 이제라도 국제사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