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2일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등의 혐의로 구속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법원이 구속적부심사 청구를 받아들이며 석방했다. 애초 김 전 장관을 구속 기소한 뒤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을 조사하고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조사하려던 검찰의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피의자 신분으로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 의혹의 ‘윗선’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미래 육군의 희망’,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군인’이라 불리며 노무현 정부-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의 국방·안보 분야에서 모두 중용된 그가 왜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그가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국가안보’보다 ‘특정 정권의 안보’에 앞장선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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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된 김관진 전 장관 (사진:뉴스1). 오른쪽 사진은 청년장교 시절의 모습.

 

김 전 장관은 1949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해 육군사관학교 28기로 임관했다. 생도때부터 군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매 기수 1명만 선발하는 독일(당시 서독) 유학 시험에 합격해 1학년을 마친 뒤 독일 육사에서 3년간 위탁교육을 받았다. 학사학위를 수여하지 않는 독일 육사를 다녀온 뒤 임관한 장교들이 보통 대학 위탁교육을 통해 학사학위를 취득하는데 이를 거부한 일은 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유명한 일화로 꼽힌다. 서울대 위탁교육 기회가 있었지만 “군인이 되려고 육사를 간 거지 서울대 가려고 한 게 아니다”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공식 학력이 고졸이었지만, 이후 정부에 시정을 요구해 대학 졸업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초급장교 시절 보병학교 교관을 하며 명강의로 이름을 날리며 ‘미래 육군의 희망’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그는 ‘뼛속까지 군인’의 모습을 이어갔다. 야전군 지휘관 시절부터 집무실에 북한 최고 지도자와 인민군 책임자의 사진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자신이 상대할 ‘적’을 마음에 항상 두겠다는 뜻이었다. 사진들이 자신의 등을 지켜보는 것을 생각하며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체로 그의 과거 군생활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군인 정신’이 바탕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부에서 탄탄대로  걸어

이러한 면모로 그는 역대 정부를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육군본부 기참부장(소장)과 2군단장(중장), 합참 작전본부장(중장), 3군사령관(대장)으로 거침없이 나아갔고, 2006년 11월 군서열 1위인 합동참모의장에 올랐다. 2008년 전역했지만 2010년 12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옷을 벗자, 국방부 장관으로 발탁돼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는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공관에 짐을 빼고 떠날 준비를 했지만 후임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며 유임됐다. 전·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이어가는 이례적인 사례였다. 2014년 6월에 세월호 참사 뒤 사퇴한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뒤를 이었다.

 
 이 당시 ‘북한이 싫어하는 김관진’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됐다. 장관 재임 뒤 “북한이 도발하면 굴복할 때까지 응징한다”, “도발 원점 타격” 등 대북 강경발언을 잇달아 쏟아냈다. 2011년 1월 신년사격인 장관 지휘서신 1호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의 한 대목인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則無憾·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역시 김관진’이라는 평가가 따랐고, 대북 강경론을 주장하는 보수세력을 열광케 했다. 이에 북한에서도 김관진 실장을 김관진놈이라고 부르며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훈련 때 목표물에 사진이나 그림을 붙여놓고 훈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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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사이버사령부가 2011~2013년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을 영웅화하기 위해 영화 포스터 등을 이용해 만든 합성 사진.

 하지만 군인으로서 그의 이력은 과대 포장됐고 ‘관운’이 좋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가 육군 3군 사령관이던 2005년 예하 부대인 28사단 530GP(전초기지)에서 총기난사 사건으로 장병 8명이 숨졌고, 국방부 장관 재임 중에는 제2해병사단 총기 난사 사건, 북한군 노크 귀순 북한 무인기 추락사건, 제22보병사단 총기 난사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하지만 그는 책임을 지지 않고, 합동참모의장, 국방부 장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군 인사 문제에서도 전횡을 부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장군 인사 절차 및 여망’ 보고서를 열람하고 최근 공개한 내용을 보면, “김 장관이 독일 유학파(일명 독사파) 출신 등 연고가 있는 인물들을 무리하게 진급시켜 장관 인맥 대 비장관 장교들 간 갈등을 초래한다”, “육사 35∼42기 독일 유학파 출신 7명 중 교수나 무관을 제외한 5명이 1, 2계급씩 진급했다”등이 보고서에 담겨 있었다. 당시 부임 6개월 만에 장경욱 기무사령관이 전격 경질된 배경이 이 보고서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 실제로 최근 공관병 갑질 사건을 야기한 박찬주 전 육군대장도 독일 육사출신이고, 군 사이버사 댓글공작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도 독일 육사 출신이다. 

 

 권력과 거리를 좁히며 승승장구한 그에게 현재 붙는 꼬리표는 ‘정치개입’이다. 그는 4년 전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 의혹에 대해 국회에 “그런 사실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시종일관 부인했다. 하지만 최근 검찰과 국회를 통해 공개된 사실을 보면, 그는 특정인과 진보성향, 야권 인사들에 대해 군 사이버사령부가 댓글과 블로그 글을 통해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온라인 심리전’을 벌인 것을 매일 보고 받고, 이를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공개한 군 사이버사 심리전단 요원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김 전 장관이 군 사이버사로부터 2010년 12월 국방부 장관 재임 초기부터 3년 동안 거의 매일 보고를 받은 정황이 나타난다. 
 게다가 군 사이버사령부는 ‘윗선’인 김 전 장관을 영웅화하는 합성사진들도 온라인에 뿌렸다. 김해영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등에 김 전 장관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나 포스터를 만들어 온라인에 올리고, “북한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분” 같은 류의 댓글들 달아 유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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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4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국방부 장관 임명장을 수여받을 때의 김관진 전 장관.

 

정권의 이익 대변하며 재빠른 변신 

결국 그가 부여잡고 있던 것은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였을까? 군 사이버사의 정치개입 외에도 그가 정권의 이익을 대변한 모습은 곳곳에 드러난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합참의장으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합의서에 직접 서명을 하며 전작권 환수를 지지했던 김 전 장관은 2010년 12월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는 입장을 뒤집었다. 노무현 정부가 2012년을 전작권 환수 시기로 합의한 것을 이명박 정부에서 2015년으로 3년 더 연기했는데, 이에 대해 김 전 장관은 “전작권 환수가 2012년의 국가 안보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시기가 연장된 것”이라며 당시 정부의 입장을 지지했다. “전작권 전환 논의될 시점에 저(당시 합참의장)를 포함해 군에서는 현재 안보에서는 전작권 전환이 맞지 않다고 건의를 많이 했다”며 노무현 정부를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참여정부 말기 청와대 오찬 건배사에서 ‘전작권 환수에 전군이 힘을 모아 확실히 추진하겠다’라고 했던 분”이라고 인사청문회 야당 위원들의 비판이 따라왔다.

 그는 자신을 ‘참군인’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그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프레임으로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안보’를 위해 해온 일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 짙은 그림자로 남아있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금기를 깨버린 군 사이버사령부 정치개입 의혹, 2017년 9월로 예정돼 있던 배치 시점을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 요청해 앞당겼다는 ‘사드 알박기’ 논란 등 그와 연관된 사건들은 여전히 실체를 규명할 여지가 남아 있다. 

 무엇보다 지금도 일선에서 ‘국가안보’라는 가치에 매달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장병들의 명예에 그의 몰락은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지금도 사관생도의 신조는 ‘참군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하나,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둘,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셋,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김 전 장관이 다시 되새겨야 할 내용 같다.